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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가족 신문 만들기

선장실로 막무가내 돌진... 아빠는 당돌했다
[10만인리포트-가족신문 만들기④] 보길도

15.05.07 08:01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 땅끝마을에서 기념 촬영 ⓒ 김병기

여행 넷째 날,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보길도로 가는 장보고호를 탔다. 

"아빠! 바람이 자꾸 내 귀를 때려!"

갑판에 선 꼬마 편집장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 내 귀를 때렸다. 그건 바로 시였다! 장차 천재 시인이 되는 건 아닐까? 때 묻기 전에 시집이라도 한 권 낼까? 부모들은 한 번쯤 '내 자식은 천재일지 몰라'라는 착각에 빠진다던데, 내가 그 꼴이었다. 사실 말이 서투른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주어를 아무 데나 갖다붙이곤 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뱃전에서 잠시 감상에 젖었던 틈을 비집고 자식에 대한 기대심리가 은연중에 표출된 것이다.  

"아빠, 언니는 어디 있어요?"

막내 기자가 갑판으로 나오면서 언니를 찾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두 녀석의 손을 잡고 2층 선장실로 올라갔다. 

"선장님, 들어가도 되죠? 아이들이 선장실을 보고 싶어 해서요."

이건 아빠가 지어낸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몰랐고 아빠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라죠. 들어오쇼. 근데 넌 몇 학년?"
"3학년요."
"그럼, 넌?"
"……."

선장실에서 인터뷰 노하우 전수?

손바닥만 한 수첩과 볼펜을 쥔 어린 취재기자들은 내 등 뒤에 숨었다. 막무가내로 선장실로 들어간 아빠의 당돌한 태도에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기계음이 들리고 모니터 화면에 뜬 이상한 그래프에 어리둥절했다. 그 순간에 나는 영락없는 아빠 기자였다. 취재원 앞에서 당당하라! 취재 1단계다. 엔진과 바람 소리가 뒤섞여 시끄럽기도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선장님, 아이들이 잠깐 핸들을 잡아도 되지요?"

선장실에서 핸들을 잡고 기념촬영을 한 뒤에 취재 2단계로 들어갔다. 돌발인터뷰였다. 여행 4일차까지 글쓰기는커녕 취재 방법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새벽 아빠'가 실력발휘를 해야 할 때였다. 

- 보길도는 어떤 섬이죠?
"전남에는 섬이 1967개 있고, 완도군에는 201개가 있습니다. 그중 유인도는 54개죠. 땅 끝은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있고, 제주도까지 직선거리로 92km입니다. 맑은 날에는 땅끝에서 제주도가 보입니다. 보길도의 특산물은 전복, 파래, 다시마, 김, 멸치이고 미역과 다시마는 전복의 먹이로도 쓰입니다. 보길도와 노화도, 소안도는 옛날 무인들의 유배지였고, 진도는 문인들의 유배지였어요. 천용택 국방부장관은 노화도 출신이고, 박지원 의원은 진도 출신입니다."

그는 걸어 다니는 보길도 백과사전이었다. 언 손을 녹여가면서 그의 프로급 브리핑을 속기사처럼 받아 적었다. 어렵사리 만난 취재원의 금쪽같은 이야기를 주워담기 바쁜 취재기자처럼. 이날 저녁에 나는 "땅 끝에 서면 제주도가 보인다"란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썼고, 편집장은 '선장님의 하루'라는 기사를 A4용지에 날렸다.

"우리 가족은 땅 끝 마을에서 장보고호를 타고 보길도에 갔다. 배 안에서 우린 이 섬이 보길도인가 물어보면서 선장실 안에 들어갔다. 선장 아저씨는 할아버지 같았다. 우린 그곳에서 사진도 찍었다. 난 운전 핸들도 만져봤다. 또 자기 추적 장치와 전파 레이더도 직접 보았다. 나 같은 보통 아이가 대단한 선장실에 가다니, 복이 많기도 하다."

선장의 유창한 말솜씨에 주눅이 들긴 했지만, 녀석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다면 아빠로서는 할 만큼 했다. 막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A4용지에 장보고호를 그려 넣고 구름, 새, 나비 형상의 추상화를 그려 보길도 특집 면에 붙였다. 뒤죽박죽이지만 총천연색 색감에서 즐거움이 배어 나왔다.

▲ 창간호 가족신문의 보길도 특별면 ⓒ 김병기

초등학교 3학년의 비판의식

보길도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인 세연정에서 편집장은 또다시 아빠의 귀를 때렸다.

"아빠, 윤선도가 이런 사람이었어요?"

1시간 동안 둘러본 뒤에 녀석이 던진 문제의식은 한마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이었다.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데, 윤선도는 유배지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것이다. 노비나 평민들이 세연정에 연못을 파고 거대한 바위를 옮겨놓았다는 안내판 문구를 보고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의 비판의식 앞에서 나도 당황했다.

"그래도 교과서에 나오는 어부사시사 같은 시를 쓴 분이기도 한데……."

말끝을 흐렸다. 세연정은 병자호란 때 세상을 등진 윤선도가 보길도에서 낙서재를 짓고 동천석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시 들러 인공연못에 작은 배를 띄워놓고 무희들의 노래를 들으며 술을 먹었던 공간이다. 자연을 노래한 그의 시는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당시에는 편집장처럼 불평하는 백성들이 있을 수 있다.  

이렇듯 똑같은 현장에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엄마 기자는 남인 윤선도의 최대 정적이었던 서인 우암 송시열의 '글씐바위'에 시선이 꽂혔다. 그가 이조 숙종 때 세자 책봉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륙한 보길도 동쪽 끝 백도리 해변의 절벽에 새긴 글이다.

청별항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나 홀로 남아서 차를 지키는 사이에 세 식구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암석에 새겨진 글귀를 봤다. 비바람과 파도에 깎여 흔적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는데, 엄마 기자는 연필로 탁본까지 떠서 가족신문에 붙였다. 

"여든셋 늙은 몸이
푸른 바다 한가운데 떠 있구나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대궐에 계신 임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다만 남녘 바다의 순풍만 믿을 수밖에

담비 갖옷(가죽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윤선도가 사랑했던 보길도는 그를 귀양 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송시열이 한양을 향해 절규했다는 아이러니의 현장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송시열의 절규를 뒤로하고 보길도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보옥리 해변에서 본 공룡알 크기보다 작은 자갈이 깔려있었다. 대자연이라는 조각가가 수천 년에 걸쳐 만든 작품이다. 편집장은 가족신문에 소감을 이렇게 남겼다.

▲ 가족신문 창간호에 붙인 '글씐바위' 탁본 ⓒ 김병기

솔직과 정직 사이

"<돌멩이 사이로 솨~솨~ 주변엔 상록수림이 절경!!!>
우리 가족은 예송리 해수욕장을 왔다. 우리가 이곳에 온 까닭은 검은 자갈이 펼쳐진 해변을 보기 위해서다. 바닷물 파도가 밀려오고 내려갈 때 검은 자갈이 올망졸망 붙어있는 사이로 자연이 만든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조그만 자갈은 내려갈 때 큰 소리를 내었다. 굴러가는 소린 북소리, 물이 사이로 흘러가는 소리는 심벌즈 소리인 것 같았다. 주변의 상록수림은 분위기를 잘 맞춰주었다."

안빈낙도의 삶을 바란 고산 윤선도의 역작 어부사시사와 83세 송시열의 절규, 그리고 10세 학생이 연필로 가족신문에 새긴 감상문. 감히 글의 수준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솔직담백한 점은 같았다. 그 글을 보고 한마디 했다.

"솔직하게 잘 썼네."  
"솔직하게 쓰는 게 좋은 거죠?"
"최고지!"

이오덕 선생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녀석에게 이 말도 하고 싶었다. '세 치 혀는 도끼와 같아서 상대방을 해치고 결국 자기 몸까지 망치는 독이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은 미덕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은 신체적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약용 선생도 목민심서에서 세 글자로 정리했다. '노즉수'(怒則囚). 불같이 화가 나면 곧바로 몸속에 가두라는 뜻이다. 영영 가두는 게 아니라 오염 덩어리를 가라앉힌 뒤에 정수장 바깥으로 절제되고 깨끗한 물을 흘려보내듯이……. 이게 정직이다. 감정의 찌꺼기를 거르고 절제해야 소통이 된다.

▲ 꼬마 편집장이 쓴 기사 ⓒ 김병기

파도 소리가 귀를 때렸다

보길도를 떠나오면서 편집장은 솔직·정직한 글을 가족신문에 남겼다. 

"조개를 줍고 배를 타며…….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 아빠, 동생 영이와 중리 해수욕장에서 조개를 주웠다. 떡조개가 바닷가에서 굴러다녔다. 조개들은 떠나지 말라고 계속 해변으로 끌어들였다. 아빠가 나를 부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소나무 잎을 따고 콘도로 갔다. 바닷가 모래가 없어지자, 더 밟고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오늘따라 파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가족신문 창간호가 탄생한 겨울 여행의 마지막 날, 유난히도 큰 파도소리가 아빠 귀를 애잔하게 때렸다.

▲ 엄마 기자 창간호에 쓴 기사 ⓒ 김병기

1호 가족여행 경로


2006년 12월 23일 : 목포 도착
2006년 12월 24일 : 목포 국립해양유물 전시관->목포 자연사 박물관->갓바위->영산강 하굿둑->몽탄대교(영산강 중류)->나주대교(영산강 상류)->도곡온천
2006년 12월 25일 : 화순 고인돌공원->운주사->보성 녹차밭->해남 땅끝마을
2006년 12월 26일 : 땅 끝 전망대->보길도->땅 끝 전망대->보옥리 공룡알 해변->세연정->예송리 갯돌해변->예송리 전망대->송시열 글씐바위->보길도 중리 해수욕장
2006년 12월 27일 : 귀가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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