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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입양을 인터뷰 하다

입양계에서만 20년... "태몽도 대신 꿔줍니다"
[입양을 인터뷰하다⑮] 동방사회복지회 최정희 소장

15.05.05 17:49 | 김지영 기자쪽지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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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하고 관계를 했다. 남자가 사정을 해서 방출되는 정자 수는 1억~2억 개다. 그러나 여성 질 내로 방출돼 배란된 난자를 만나 임신에 성공하는 정자 수는 단 한 개다. 난자는 한 개 이상의 정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균 일억 사천구백구십구만 개의 정자는 그럼 쓸데없는 정자냐면, 그건 또 아니다. 가장 먼저 난자에 도착한 일등 그룹은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난구세포를 없애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탈진해 버린다. 그 다음으로 도착한 정자들 중 억세게 운이 좋은 한 개의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간다. 그 즉시 난자는 자기를 둘러싼 투명 막을 두껍게 만들어서 문을 닫아 버린다. 이 정자가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다.

분명, 당신을 탄생 시키는 데 당신 부모가 했던 역할이 결정적이긴 하나 당신 부모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의 폭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난자 속에 들어갈 정자를 선택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성별, 지적 능력, 운동 능력, 신체적인 특징과 심지어 코를 후비는 습관도 부모의 선택이 아니었다.

입양도 실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성별과 장애 정도다. 입양을 결심하기까지 입양부모는 평균으로 일억 사천구백구십구만 번의 고민을 한다. 입양을 꼭 해야 하는 이유와 입양을 상상했을 때 오는 모종의 두려움들이 그 '억수'로 많은 고민들의 종류다. 물론 그 고민들 중 마지막 단 한 번의 극적이고 결정적인 고민이 입양을 결심하게 한다.

이렇게 결심을 마친 입양부모가 다음으로 하는 일은 입양기관을 알아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입양부모의 종교적 신념이나 주거지역이 주요하게 작동을 한다. 입양기관에 따라 종교적 색채가 짙은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지역은, 입양이 완전히 성사되기까지 각종 상담과 면접과 조사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물리적인 거리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다 거치고 입양기관을 방문하면 입양부모에게 자연스럽게 한 명의 입양전문가가 담당자로 연결이 된다. 이 담당자는 입양부모에게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이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입양부모는 입양특례법에 따른 매우 힘들고 어려운 법적 과정을 거치는데 전문가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사실상 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 담당자가 입양부모에게 아이를 점지해 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입양계의 '삼신할머니'인 셈이다. 

입양을 모르는 사람들은 입양을 할 때 여러 아이들 중 한 아이를 선택해서 데려오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부모가 아이를 낳을 때 아이의 외모나 개별적 특성들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입양 역시 여러 아이들을 보고 그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아이를 데려오는 방식이 아니다. 그저 아이가 나에게로 자연스럽게 저절로 오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낳을 때는 엄마의 산도를 따라 아이가 부모에게 오지만 입양은 모든 절차를 함께 해준 입양기관의 담당자에 의해 부모에게 온다는 정도다. '산도'를 의인화하면 그 사람이다. 입양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이고 입양을 결심하게 되면 꼭 만나게 될 사람이다.

"초창기 입양, 가짜 임신하는 사람도 많았죠"

▲ 동방사회복지회 부산상담소 최정희 소장 ⓒ 김지영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서른두 살 입양기관에 입사해서 한 자리에서만 꼬박 20년을 입양전문가로 활동해 온 동방사회복지회 부산지부 최정희(51) 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 분은 8년 전 내게, 지금은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딸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소린이를 점지해 준 분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사회복지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입양 관련 일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한데요.
"대학 졸업하기 전부터 사회복지 시설에서 조금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운 거랑 많이 달랐어요. 단적으로 사회사업가와 사회복지사의 차이를 느낀 거죠. 시설 쪽 일은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다 서른둘에 좀 늦게 입사를 했는데요. 원래 아동 쪽 일을 하고 싶었어요."

- 소장님 세대가 사회복지가 체계화되는 1세대인가요?
"그죠. 졸업하고 1987년에 사회복지공무원이 처음으로 생겼죠. 당시에는 사회복지가 요즘과 달리 그냥 좀 퍼주는 개념이었죠."

- 동방사회복지회에 입사하셔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입양, 미혼모 쪽 일만 했어요. 근무도 여기 부산 상담소에서만 20년을 있었네요."

- 제가 2006년에 입양 문의하러 소장님을 여기서 처음 만났었는데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계시네요?
"미혼모도 그렇고 입양도 그렇고요. 지역적인 특성이 있어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사정이 그렇다 보니까 이렇게 한 지역에서 뿌리를 잘 내리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입양부모나 아이를 입양 보낸 미혼모들 입장에서 입양 당시의 당사자가 이렇게 계속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도 되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 분들 입장에서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뿌리일 수도 있거든요."

- 굉장히 오랜 기간을 한 분야에서 일해 오셨는데요. 초창기 입양은 어땠나요. 요즘과의 차이도 함께 말씀해 주시겠어요?
"1995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요. 당시에는 가임(거짓임신)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비공개로 부부만 안다거나 아니면 아주 최소한의 가족들만 아는 선에서 입양을 진행했죠. 그리고 자녀가 없는 난임 가정이 대부분이었죠. 그게 2000년대로 중반을 넘어서면서 양태가 많이 바뀌었는데요. 자녀가 있는데도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요. 난임 가정이라도 입양하는 과정을 오픈을 하는 분들도 많아졌죠. 초기에 비하면 엄청 좋아진 거죠."

- 입양아동의 경우, 과거와 지금 발생하는 유형이 많이 바뀌었나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입양아들의 생모는 거의 대부분이 미혼모인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절대적이죠. 굳이 차이점이라면 과거에는 호적에 안 올린 아이들을 입양 시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입양특례법 이후로 법원 허가도 취득해야 하는 정도죠."

- 입양을 시키겠다고 생모가 직접 찾아오나요?
"그런 경우가 많죠. 가끔 입양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해요. 대체적으로 장애나 건강상의 문제이고요.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보내죠."

- 과거에도 요즘처럼 여아를 절대적으로 선호했나요?
"예전에는 그렇진 않았어요. 통계를 보면 과거에는 남아 쪽이 더 많았어요. 대부분 난임 가정이다 보니 자기가 낳은 것처럼 해서 대를 잇는 그런 경향이 있었죠.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여아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 버렸어요."

- 그럼 남아는 입양이 안 되기도 하나요?
"되기는 하는데 지역적인 특색이 좀 있죠. 여기 부산 경남은 여아 선호가 심하고요. 위쪽 지역으로 그러니까 서울 경기 지역은 아들 딸 개념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 가족을 만드는 의미에서 입양을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물론 그 쪽도 여아 선호가 분명 있긴 하지만 여기 보다는 적은 편이죠."

"'아, 이 아이는 이 집에 가야 되는 아이구나' 느껴져요"

- 소린이 입양할 때 소장님이 한 말씀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게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애를 보면 대기하고 있는 입양부모들 중에 느낌이 오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요. '아 이 아이는 이 부모한테로 가면 좋겠다' 하는요. 그런 느낌이 정말 있는 거예요?
"정말 있어요. 입양이란 게 가족이 되는 거잖아요. 부모에게는 자녀가 한 명 생기고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생기는데 이게 죽어서도 후손으로 넘어가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이건 영원으로 가족을 이어가는 굉장히 귀한 일인데, 제가 조금 더 신중하려 노력하고 약간이라도 선입견을 안 가지려 노력을 하지만요. 저도 사람이니까 편견이나 선입견을 안 가질 수 없더라고요.

제가 미혼모를 직접 만나서 우리 쪽 시설에 입소를 시키고 입양부모를 연결해 주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추천을 부탁 받아서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는데요. 실제로 가서 아이를 딱 보면 '아, 이 아이는 이 집에 가야 되는 아이구나' 딱 느껴질 때가 있어요." 

- 우리 입양부모 입장에서는 영특하신 삼신할머니잖아요?
"제가 다리를 놓아드리는 건 맞는데 저도 놀랄 때가 사실 지금도 많아요. 입양된 아이가 엄마나 아빠를 닮아가는 모습도 신기하고요. 저는 요즘도 매일 아침에 눈 뜨면 기도를 해요. 우리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가 빨리 가정을 찾아가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 태몽을 꿔주는 경우도 있어요.

보통은 부모님이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꼭 딸이 있어야겠다 그래요. 제가 상담을 해 보고 집에도 가보고 계속 보면 어떤 집은 분명히 아들이 가야 되는 집이 있어요. 부모님들 성향이나 가족들 구성이나 이런 걸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는 거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는 딸은 없고 아들만 대상아동으로 들어와요. 한 번 (아들로 입양) 해보시라고 권하죠. 나중에 사후관리 하면서 만나면 그 때 소장님 말씀대로 아들을 (입양)한 것이 너무 잘 한 것 같다고 그런 적도 있었어요."

- 저는 소린이 입양을 할 때 입양부모 자격 심사를 통과하면 아기는 제가 고르는 건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소장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런 아기가 있는데 하실 겁니까, 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근데 그 앞에서 어떻게 '안 할래요'라고 대답을 할 수 있어요? 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가서 보니까 소린이가 딱 있는 거죠. 모든 경우에 다 그런 방식으로 아이하고 연결이 되나요?
"일차적으로 제가 선택을 하는 거죠. 저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이미지는 함께 살면 많이 닮아가요. 근데 성향은 좀 (기본적으로) 닮은 게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엄마의 성향이 중요해요. 24시간 같이 있으니까. 물론 저도 아이를 셋을 키우다 보니까 그 중에 저랑 안 맞는 아이도 있어요. 부모는 그걸 참아내고 인내해야 하는 입장이죠. 그걸 할 수 있는 부모님이 있는 반면에 아이가 서로 호흡을 해서 잘 맞춰가야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성향은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생모를 직접 만나니까. 아이가 이런 부모님한테 가면 더 잘 크겠다고 생각이 드는 아이가 있거든요."

- 저는 솔직히 소린이 처음 봤을 때 좀 낯선 느낌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생각하면 소린이한테는 정말 미안한데요. '아, 얘가 지금부터 내 딸이구나' 하는 생각은 드는데 뭐랄까요, 잠깐이긴 했지만 좀 이물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저는 첫 애를 스물일곱에 낳았는데 그 때도 사실은 결혼을 하고 애기가 생겼으니까 낳고 키워야 된다고 생각했지 한 달 정도는 제가 엄마 같은 느낌이 안 들었어요. 입양부모들이 상상하시기를, 애를 처음 보면 필이 확 하고 올 것 같지만 그런 것 없어요. 필 같은 거 없거든요. 밤잠 못 자고 키우면서 정이 새록새록 드는 거죠.

입양부모들이 처음에 아이 보러 오실 때는 잠도 못 주무시고 두근두근(하며) 오시거든요. 진짜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많으시고요. 한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사후관리를 하러 가면 할머니들이 애 데리러 온 거 아니냐고 얼굴이 새파래지는 경우도 있어요. 벌써 자기들한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으로 받아들인 거죠."

"입양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일부러 많이 보여줘야"

▲ 동방사회복지회 부산상담소 최정희 소장 ⓒ 김지영

- 이십 년을 입양 관련해서 일을 하셨는데요. 요즘 양부모에 의한 폭력과 학대 사건이라든지 심지어는 살해당하는 사건들까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나오잖아요.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입양시키면서 장사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고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얘기 들을 때면 당사자로서 어떠세요?
"모를 때는 그런 말 할 수 있죠. 실제 일을 해 보면 금방 이해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경우가 많거든요. 바깥 시선으로는 더 그럴 거예요. 요즘에 입양아동 학대나 폭력 심지어 살인 같은 기사들이 많이 터지잖아요. 실상을 들여다보면 친부모에 의한 경우가 더 많고 입양가족은 대부분 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거든요. 저는 그걸 직접 지켜보는 입장이잖아요. 그런데 아주 소수의 특별한 일들이 자극적으로 기사로 나오니까 입양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지요.

저만 해도 미혼모들 상담을 하면서 양육을 하든 입양을 하든 당사자가 원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주려 많이 노력하거든요. 저는 애 낳고 친정 엄마가 미역국 끓여 줬지만 미혼모들은 못 먹거든요. 내 돈 들여서 미역국 끓여주기도 하고요. 몸조리 잘 해야 다음에 또 좋은 사람 만나 아이 낳을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 신경 써주고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그런 사건들이 기사로 방송으로 나올 때는 마음 둘 곳을 모르겠어요. 죄인 아닌 죄인 같은 기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 미혼모들 보면 사연이 많죠?
"요즘에는 경제적인 부분이 상당히 큰 것 같아요. 혼자 키우는 부담감은 사실 이혼가정도 많고 한부모 가정도 많아져서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애 하나 키우는 데 사실 돈이 많이 들잖아요. 똑똑하면 똑똑한 대로 돈도 더 많이 드는 현실이잖아요. 나이는 어려도 대부분 자기들조차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부담감이 엄청난 거 같아요."

- 요즘 국가적인 정책이나 아동복지 시스템이 원가정 보호 쪽으로 흐르잖아요. 기본적으로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장님 계시는 사회복지기관 같은 곳에서는 사업 영역이 줄어드는 거잖아요?
"원가정 보호는 당연히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것 같고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입양이라는 부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또 아닌 것 같아요. 생모나 생부가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절박한 상황들도 한 부분 분명히 있고요. 또 정말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건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아이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 아이가 잘 커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을 하고 또 가족을 꾸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도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거죠.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은 가족밖에 없어요. 그런 가족을 지원하는 것도 정책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어쨌든 정부에서도 건강한 젊은이들이 많아야 좋은 것 아니겠어요?"

- 지금 우리나라의 입양문화가 아직은 그리 긍정적이진 않는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직접 만나고 느끼는 점은 어떠세요?
"제가 1998년에 미국에 출장을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거기 입양기관에서 하는 행사도 보고 입양부모들도 만나고 그랬는데 입양가족을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더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현실인 것 같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입양기관이 나서는 것보다 입양가족들이 자주 만나서 대화하고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그래야 해요. 당사자들이 나서야 더 호소력도 있고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바뀔 수 있는 거죠. 요즘 미혼모들에 대한 시선이 바뀌는 게 눈에 보이는데요. 그것도 미혼모들이 당당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거든요. 입양가족들도 부정적인 입양문화를 바꾸고 싶으면 먼저 입양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그렇게 사는 모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일부러 많이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07년 6월 7일. 태어난 지 27일 되던 날, 소린이는 최정희 소장을 통해 우리 가족이 되었고 우리 부부의 딸이 되었다. 만으로 8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소린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자식을 둔 부모들이 으레 그렇듯 지금 우리 부부에게 소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이틀에 한 번씩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는 20여 분의 시간은 내 일상 중 가장 아름답고 예쁜 시간이다. 누가 보아도 나는 어쩔 수 없는 딸 바보 아빠다. 최정희 소장은 내게 이 아름답고 예쁜 시간을 선사해 준 장본인이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입양기관 종사자들의 수는 200여 명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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