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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확성기, 개XX야" 실시간 글
세월호는 그렇게 '연결'됐다
[이 사람, 10만인] <나의 시민운동 이야기> 펴낸 하승창 씽크카페 대표

15.04.24 20:35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 18일 오후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다. ⓒ 권우성

영화가 아니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훌라~ 훌라~."
"으챠~ 으챠~ 으챠~."

나는 지난 4월 18일 오후 3시부터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를 <오마이TV> 생중계 화면으로 지켜봤다. 이날 서울광장에 3만 명이 모였다. 화면은 30여 명의 시민들이 경찰차를 넘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을 비췄다. 시민들의 머리 위로 물대포가 쏟아졌다.
  
"1시 방향 물포 발포! 물포 2호 2시 방향, 물포 발포!... 바로 검거해!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 전부 채증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려는 시민들은 경찰 차벽에 막혔고, 경찰 현장 지휘자의 단호한 어투는 광장을 쩌렁쩌렁 갈랐다. 이 와중에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도로 한가운데를 걸었고 어떤 부부는 아이 2명을 데리고 나왔다. 다른 곳으로 카메라를 비추니 경찰이 한 시민의 사지를 든 채 호송차로 끌고 가는 모습이 잡혔다. 시민들은 물포를 맞고 쓰러졌다. 생중계 화면 옆의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글이 올랐다.

"확성기, 개XX야"
"같이 행동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2015년 4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단면이다. 현장에서 떨어져 있던 나는 그곳의 숨소리까지 들었다. 이럴 때 시민운동 현장은 PC가 켜진 거실과 안방, 모바일로 생중계를 보는 전철과 버스 안일 수 있다. 공간은 다르지만 그 순간 세월호에 '연결'된 사람들. 현장에서, 또는 성명서로 집단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느낌을 거침없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쏘아 올리는 개인들이다.  

"90년대 시민운동은 단체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발적인 개인의 참여를 '연결'하는 시대다."

지난 9일 만난 하승창 씽크카페 대표(54.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그가 최근 펴낸 <나의 시민운동 이야기>(휴머니스트 출판)의 핵심 메시지이다. 90년대에 경실련 정책실장으로, 2000년대에는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몸담으면서 25년 동안 현장을 지킨 그는 시민운동의 산증인이다. 또 시민정치의 새 지평을 열려고 박원순 캠프와 안철수 캠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은 아이쿱 협동조합 지원센터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요즘 만나는 사람들이 "시민운동은 이제 다 죽었다"고 말하곤 한단다. 하지만 그는 "시민운동은 '죽은 게' 아니라 '진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시민운동 이야기 속에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수직적 계통에서 수평적 연대로 움직이는, 중앙의 거대 권력 대신 지역에 풀뿌리를 내리려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작은 몸짓들의 '연결',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운동의 미래가 있다. 그의 책과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다.

[과거] 군보다 센 시민운동

▲ 하승창 씽크카페 대표. ⓒ 권우성

<시사저널>이 1993년에 실시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나 세력'에 관한 조사에서 재야, 학생 세력이나 군부가 하위권으로 밀려나고 시민단체가 순위권에 들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경실련을 창립한 서경석 목사가 순위권에 들었다. 이때 <시사저널>은 표지 이야기 제목을 '경실련, 군보다 세다'라고 뽑았다.

김영삼 정부는 경실련의 금융실명제 주장을 받아들였다. 참여연대는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재벌들의 불투명한 기업경영 폐단을 만천하에 공개했고 관련 법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환경단체들은 대형 국책사업(동강댐 건설)을 막았고, 여성단체들은 호주제를 폐지했다.

시민단체들은 어떻게 이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일까? 하 대표는 크게 두 가지로 진단했다.

"시민운동은 사회적 과제가 변했다는 것을 통찰했다. 경제정의와 사법정의, 복지, 인권 신장, 생태적 가치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는데 공감대가 커졌다. 권력기관들은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하나는 운동 방식의 변화다. 1980년대에는 불법적 정권에 대항하려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걸 사회가 용인했다. 시민의 힘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뒤에 정책대안 운동 등 합법적 운동의 방식이 영향력을 확장했다."

2000년 '총선연대'는 90년대식 시민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전국 1000여 개에 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했고, 총선연대가 낙선 대상자로 선정한 후보들은 수도권에서만 90% 넘게 떨어졌다.

그 뒤부터 정치권은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발휘한 시민운동을 경계했고, 언론은 보도 횟수를 줄어나갔다. 두 영역은 시민운동이 선정한 개혁 대상이기도 했고, 그걸 실현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졌기 때문이다.   

[현재] 한산한 대선연대와 북적대는 노사모

2002년에 최초의 촛불시위가 열렸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언론이 월드컵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오마이뉴스>는 효순과 미선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사건을 연일 특종보도 했다. 기사의 댓글은 '눈물'로 얼룩졌다. 두 여중생에 대한 미안함과 불평등한 한미 소파에 대한 분노의 댓글이 달리면서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온라인에서만 부글거리다가 사그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앙마'라는 시민기자가 촛불 시위를 제안한 뒤에 온라인의 불꽃이 오프라인으로 옮아 붙었다. 12월에는 수십 만 명이 광화문을 '촛불 바다'로 만들었다. 이게 새로운 시민운동의 씨앗이었다.

"그해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대선연대'는 한산했다. '차떼기 사건'이 있었기에 정치자금 투명화라는 주제를 내건 활동에 호응할 줄 알았는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북적댔다. 그건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단순한 지지가 아니었다. 시민단체들이 해왔던 정치개혁 과제를 유권자들이 넘겨받아서 '정치인 노무현'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하 대표는 이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도 시민사회단체들이 행사를 진행했지만, 사람과 자금을 모으는 작업은 자발적인 시민들의 힘이었다"면서 "시민단체들이 '조직'한 대중이 아니라 인터넷의 수많은 카페와 블로그, 게시판,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 양상이 과거처럼 '조직'되는 게 아니라 '자발적 참여'의 형태로 바뀐 것이다. 그 참여는 이름만 걸어놓고 연대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와는 달리 분산된 개인을 연결하면서 행동으로 이어졌다. 구성원 개인이 드러나지 않고 '단체'만 강조됐던, 그것도 중요 단체만 등장했던 과거의 시민운동 시대가 주춤하면서 개인과 개인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활동하는 모습이 늘었다.

[미래] '연결'하는 사람들

"사회를 보는 사람도 집회를 준비하는 실무 인력도 도통 아는 사람이 없었고, 딱히 주최 단체라 할 만한 곳도 없었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와있는 데다, 가지각색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중략)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쏟아져 나왔으며 어떻게 준비해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책 150쪽) 

2008년 광우병 촛불의 광경은 나에게도 생소했다. 화장을 짙게 한 하이힐 부대가 등장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아줌마 부대도 있었다. 예비군복을 입고 물대포가 쏟아지는 광장 바닥에서 미끄럼을 타는 아저씨 부대도 등장했다. 카메라를 들고 인터넷 카페에 생중계하는 1인 미디어도 눈에 띄었다. 교복 입은 여중생도 마이크를 들었다. 도로 한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치맥을 즐기는 연인도 등장했다.

하 대표는 책에서 '2008년 촛불 시위가 사회운동에 남긴 것'을 7가지로 정리했다.

1) 담론과 일상이 만났다.
2) 운동의 단일한 중앙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3) 기존 조직과 집단에 대한 신뢰가 약했다.
4)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과 경로가 달랐다.
5) 다양한 가치지향을 가진 집단과 사람들이 특정한 사안을 중심으로 만나고 헤어졌다.
6) 엄숙주의가 파괴된 집회문화가 일반적이었다.
7) 조직적 참여도 역할을 했지만 '개인'의 결정과 참여가 중요한 흐름이었다.

하 대표의 진단처럼 기존의 시민운동은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민운동이 나타났다. 기존 시민운동이 모르는 사이에 이들은 세분화된 영역과 지역에서 실핏줄처럼 연결된 새로운 시민운동을 열었다. 직업적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은 아니었다. 동네에서 삶과 운동에 경계를 허물었고, 개인과 조직의 경계도 허물었다. 조직이라는 경계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개인이자 네트워커였다. 2008년 촛불집회 때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다시 지역과 삶의 공간에서 네트워킹을 이어갔다.

시민운동의 경계를 허문다

"2010년에 창립한 청년 유니온은 위험한 배달 아르바이트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을 벌여서 이슈화했다. 대전과 서울에서 원룸에 사는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의논하려고 '원룸작당모의'라는 모임이 열렸다. 도시락 배달업체인 '소풍가는 고양이', 결혼문화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 등은 기존에 비영리로 운영됐던 시민운동의 경계를 허물고 영리도 추구한다."

- 새로운 시민운동의 양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과거에는 '한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아지면 달라진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나 단체가 사람들을 조직해서 세상을 바꿨다. 이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꾼다. 과거에는 시민단체들이 자기만 알고 있는 정보를 언론에 폭로한 뒤에 대안을 세워놓고 시민들을 끌고 갔지만, 이제는 조그마한 정보라도 인터넷상에서 공개하고 토론하면서 대안을 세우는 과정이 시민운동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서 '시민 있는 시민운동'으로, 백화점식 시민운동에서 실핏줄 시민운동으로, 조직하는 시민운동에서 연결하는 시민운동으로, 거대담론만 주장하는 시민운동에서 생활밀착형 시민운동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시민운동의 경계가 전방위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다." 

그가 말한 경계에는 '시민운동의 정치 중립'이라는 테제도 있다. 이번에 낸 책에는 이 영역을 허물기 위해 2010년 '희망과 대안'이라는 시민정치 조직에서 활동했던 뒷이야기도 실려 있다. 또 2011년 박원순 보궐선거 캠프, 2012년 안철수 대선캠프,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 등에서 핵심 참모로 뛰면서 느낀 성과와 한계도 기록했다.

▲ <나의 시민운동 이야기> 책 표지 사진 ⓒ 휴머니스트

그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소망했다.

"1980년대의 민중운동이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데 기여한 것이나, 그를 이어 1990년대의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기여한 것처럼 2000년대 이후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 혁신 운동들은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청년과 노인의 문제, 빈곤의 문제, 인류의 문제이기도 한 생태적 문제들에 도전하면서 다시 또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시민운동은 살아있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 70~80년대로 되돌아가려는 기막힌 현실에 맞서는 유쾌-통쾌-상쾌한 실핏줄이 꿈틀거리며 '연결'되고 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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