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4대강 찬성한 전문가들, 피해 모를 리 없었다"

10만인 리포트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도우미 노래방'에 끌고 간 상사
고발하니 돌아온 건 해고통보장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2-①] 상사 갑질·모욕에 눈 감지 않다

15.04.15 14:42 | 강민수 기자쪽지보내기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의 내부고발자 특별기획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가 제18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이 기획은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최초 제보자 김재량씨 인터뷰를 비롯해 포스코 계열사의 동반성장 실적 조작을 고발한 정진극씨, 상사의 성희롱을 외부에 알린 이은의씨 등 총 9편의 내부고발자 이야기를 심층 보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내부 고발자가 당하는 억압과 핍박, 따돌림과 해고, 복직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예심은 물론 본심에서도 최고점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이 기획은 지난 6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도 수상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기획기사 9편을 차례로 다시 싣는다. - 편집자 말

한 남자가 발가벗겨졌다. 상사의 부정과 회사의 비리를 공개했다며 전 직원 앞에서 이름이 까발려졌다. 그는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게 있으면 언젠가 밝혀진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를 윤리적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포스코그룹 계열사 포스메이트의 비리를 고발한 정진극(34)씨다. 사내 비리를 고발했지만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다. 망가진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동료들의 따돌림, 회사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두 번째 고발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 통보장이었다.

입사 2년 5개월 만에 회사에서 쫓겨난 정진극씨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두 차례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결정문과 회사 측의 부당해고재심판 소송 1·2심 판결문, 정씨의 녹취록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상사의 갑질] 부장은 왕, 부하는 신하... 동료들은 침묵

입사 1년 만인 2011년 4월 인사가 났다. 새 부서는 'HR혁신그룹(총무와 인사 업무를 맡은 부서)' 내 상생혁신팀이었다. 정씨는 이 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도모하는 동반성장실무를 맡았다.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면서 중소기업들이 허덕일 무렵이었다.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이었지만 의미 있는 업무라고 여겼다. 신입 사원으로서 노력했고 2011년 12월에는 'HR혁신그룹' 우수사원으로 표창을 받았다.

문제는 부서장 유아무개(53)였다. 유 부장은 왕처럼 굴었으며 직원들을 신하 대하듯 했다. 도를 넘는 인격 모독과 명예훼손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부서장의 직위를 이용한 이른바 '갑질'이었다.

심지어 유 부장은 부하 직원들이 자신에게 준 '상향식 인사평가 점수'까지 알고 있었다. 간부를 대상으로 한 '상향식 인사평가 점수'는 회사 최고위층만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다. 유 부장은 자신에게 낮은 점수를 준 부하 직원에게 '점수를 더 올려달라'고 직접 요구했다.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지만,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침묵했다.

▲ 결국 억지로 끌려간 노래방에서, 유 부장은 보란 듯이 여성 도우미를 불렀다. ⓒ freeimages.com

정씨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강압적인 조직문화였다.

회식하던 날 유 부장이 정씨에게 여성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기독교 신자인 정씨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못 가겠다고 거부했다. 그러자 유 부장은 표정을 바꿨다. 정씨는 버텼지만, 두고 보자는 식으로 을러댔다.

결국 억지로 끌려간 노래방에서, 유 부장은 보란 듯이 여성 도우미를 불렀다. 한두 달 새 유 부장은 수백 만 원이 넘는 노래방 비용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회사가 비상경영체제라며 긴축경영을 하던 시기였다.

유 부장은 근무지를 이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포스코그룹 전 계열사의 동반성장 담당 직원을 대상으로 1박2일 워크숍이 열렸다. 유 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씨가 전화를 하자 저녁에 가겠다고 답했다. 저녁에 다시 전화했더니 다음 날 아침에 오겠다고 했다.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 함구를 부탁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알리지 마라."

[만연한 관행] 팀장 마음대로... 쌈짓돈이 된 시간외수당

포스메이트는?
(주)포스메이트는 포스코 그룹의 한 계열사로 포스코 그룹 내의 부동산 임대 및 관리, 시설물 관리, 실내건축·기계·전기공사업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1990년 12월 퇴직 임직원들의 모임인 '포스코동우회'가 설립, (주)포우진흥으로 출발했다가 2006년 포스코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포스메이트로 상호가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포스코가 회사의 최대주주로 지분 57.2%, 포스코동우회가 31.7%, (주)포스코건설이 11.0% 보유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 대치동에 있으며 임직원은 680여 명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회사가 내부거래,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했다는 점을 포착했다. 포스코그룹의 내부거래에 힘입어 회사의 매출액이 2009년 822억 원에서 2013년 1184억 원으로 44%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포스메이트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여하는 등의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간외수당을 부정하게 받았다. 근무 여부와 상관없이, 한 달에 기본 15시간의 시간외수당을 받은 것이다. 2009년에 이미 포스코 본사가 제도 개선을 지시했지만 포스메이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수당이 불평등하게 지급됐다는 점이다.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일지에 수기로 시간을 작성해야 하는데, 각 부서 팀장이 임의로 시간을 적용했다. 직원의 실제 시간외근무가 1시간이라고 해도 팀장이 담당 직원에게 '20시간 더 올려' 하고 말만 하면 그대로 지급됐다.

시간외수당 결재 처리 부서인 인사팀 직원들의 시간외수당은 특히 더 높았다. 정기 감사 때문에 일주일을 밤새우다시피 일한 정씨보다 하루도 야근을 안 한 직원의 급여가 더 많았다.

정씨는 책에서 봤던 한 실험을 떠올렸다. 두 칸으로 나뉜 우리에 원숭이를 한 마리씩 길렀다. 가운데 칸막이가 유리로 돼 있어 원숭이들은 서로 볼 수 있다. 오른쪽 원숭이에게는 한 개의 바나나를 주고, 왼쪽 원숭이에게는 두 개를 줬다. 며칠 지나자 한 개를 받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안 먹고 유리벽에 집에 던졌다. 정씨는 생각했다.

'부당한 처우라는 것은 인간만이 이성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동물들도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표출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하나?'

전 직원들의 사원증 뒷면에 있는 '기업윤리 자가진단표'에는 '지금 하는 행동이 공개되어도 부끄럽지 않은가', '시간과 권한을 회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등 다섯 가지의 질문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이런 물음들은 유명무실했다. 직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는 보복이 두려워서 눈을 감았다.

[최초 신고] '내가 도망치면 누군가가 또 당한다'

▲ 2012년 1월 20일 새벽, 정진극씨는 포스코 비윤리신고센터에 유아무개 부장의 비위 행위와 만연한 시간외수당 부정 수급을 신고했다. ⓒ 정진극

2012년 1월 20일 밤이었다. 정씨는 침대에 누워 고민했다. 유 부장의 말이 떠올랐다. 경남 창원 사업소에서 누군가 비윤리 신고를 한 것에 대해 "저런 신고는 어린애들이 선생님께 조르르 달려가 고자질하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생각했다. 신고하면, 정말 내가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어린애가 되는 것일까.

아내 역시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왜 신고해, 이직하면 되지"라며 정씨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고 입을 닫을 수 없었다. '내가 도망가 버리면 다른 누군가가 또 똑같은 피해를 당한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포스코 본사 비윤리 신고 센터에 접속했다. 1월 21일 오전 0시 47분에 신고가 접수됐다. 한겨울 새벽, 정씨는 방 안에서 몸을 떨었다.

"수차례 정도경영실(회사 감사팀)의 문을 두드려 도움을 받고 싶었습니다. 저로 인해 한 사람이 피해받는 것을 원치 않아 수도 없이 참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의 한계를 넘은 듯합니다. 늦었지만 오늘에서야 신고합니다."

이후 포스코 본사는 조사를 시작했다. 정씨는 본사를 오가면서도 조심했다. 자신이 신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몸을 사렸다. 그런데 하루는 포스메이트 경영본부장이 정씨를 불렀다. 본부장은 '바깥에다 그런 불만을 얘기했느냐', '회사 안 다닐 거면 몰라도 회사에서 일 하려면 자꾸 건드리지 마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미 회사 간부들은 정씨가 신고자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는 2012년 3월 16일, 비위 행위자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결정했다. 그러나 징계 결과를 보며 정씨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 부장에게는 감봉 1개월의 징계가 내려졌다. 회사 인사 규정 내 '비위유형별 양정기준'에는 "고의가 있는 경우 징계 최고 수위인 면직 처리"라고 규정돼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봉 1개월'은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시간외수당과 관련한 비위 사실에 대해서는 상생협력팀장(감봉 1개월), 인사팀장(견책) 등이 책임을 지게 됐다. 정씨 또한 시간외수당 부당 신청으로 경고를 받았다. 

정씨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징계가 미약하다며 재검토를 의뢰했다. 정 회장은 포스메이트에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후속조치로 징계자들에게 보직 변경이 내려졌다. 회사는 시간외수당 운영 세부지침과 법인카드 관리기준 개선안을 마련했다. 또 신고자 보상 규정에 따라 정씨에게 보상금 500만 원을 지급했다. 정씨의 신고가 사실로 밝혀졌다는 뜻이다. 

[신분 노출] 사장이 전체 직원들 앞에서 고발자 공개

▲ 포스메이트 회사 직원들이 목에 건 신분증 뒷면에 적힌 윤리자가실천표. 이 표에는 '지금하는 행동이 공개되어도 부끄럽지 않은가', '시간과 권한을 회사를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등의 항목이 적혀 있다. ⓒ 정진극

징계가 끝난 뒤인 2012년 3월 30일, 공아무개(63) 포스메이트 사장은 전 직원을 소집했다. '비상회의'라는 명목으로 이번 사건을 무마하려는 것이었다. 본사 대강당회의실에 전 직원이 모였다. 분위기는 냉랭했다. 먼저 정도경영팀장이 소집 배경을 설명했다.

"고발자가 누군지 공공연히 나돌고 있어서 고발자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보다 나은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이렇게 모이게 됐습니다. 유 부장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피고발자의 입장을 듣겠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 유 부장이 짧게 말했다.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정도경영팀장이 정씨를 호명했다. 고발자 보호 조치를 실천해야 할 팀장이 스스로 고발자가 누구인지 공개적으로 까발린 셈이다. 정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 정씨는 마녀사냥을 당하는 듯한, 자신이 발가벗겨진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 회사가 약한 사람을 힘으로 제압하는 조직폭력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정씨는 기죽지 않았다. 자신에게 한 시간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공 사장은 길게 할 얘기가 뭐가 있냐며 거절했고, 1분 가량의 시간이 주어졌다.

"출입증 뒤에 보시면 '(기업)윤리 자가진단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공개되어도 부끄럽지 않느냐'고 적혀 있습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상사의 잘못을 신고한 저는 계속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게 있으면 언젠가 밝혀진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를 윤리적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공 사장은 20분 동안 긴 연설을 했다. 연설의 요지는 단지 더 이상 불필요한 소문과 갈등을 확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 편집|최은경 기자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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