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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가족 신문 만들기

초딩 3학년 첫 기사, 허 그거 참....
[10만인리포트-가족신문 만들기②] 영산강으로 떠나다

15.04.07 21:26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 막내의 첫 그림 기사 ⓒ 김병기

"가방에 종이(A4용지) 몇 장 챙겼니?"
"30장이요."

큰 딸은 가족신문 1대 편집장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빠의 제안을 흔쾌히 받았다. 엄마 아빠가 여행에 필요한 짐을 챙기는 동안 편집장은 신문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필기구를 자기 가방에 넣었다. 대단한 게 필요한 건 아니다. 집구석, 책상 위에 뒹구는 학용품과 잡동사니를 끌어 모았다. 미술시간 준비물을 챙기듯 10여 분 만에 끝나는 일이다.

1대 편집장의 임무

목걸이용 취재수첩은 동네 문방구에서 판다. 볼펜이나 연필, 자, 접착테이프, 연필깎이는 필수품목이다. 여행지에서 편집도 하기에 팸플릿을 오리거나 그림을 A4용지에 따서 붙일 수 있는 가위와 풀을 챙겼다. 컬러 신문을 만들려면 색연필과 크레파스도 가져가야 한다. 인증 샷은 휴대전화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하다. A4 용지는 가족시민기자단의 원고지였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런 준비물은 우리 가족 역사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가르는 도구였다. 2006년 겨울, 가족신문을 만들면서부터 우리는 여행이 끝난 뒤 일주일이면 잊어버리는 기억의 시대에서 기록의 시대를 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동차 운전석을 초보 운전자인 아내에게 맡겼다. 호남 고속도로 2차선을 시속 50~60km로 달렸다. 뒤쫓아 오던 차가 신경질적으로 빵빵대면서 총알처럼 앞질러 갔다. 그럼에도 아내는 끝까지 2차선을 지켰다. 나머지 가족신문 기자 3명은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첫 가족여행에 들떠 있었다.
  
집에서 출발한 지 7시간 만에 목포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첫 주행에서 진땀을 흘렸던 아내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했다. 나도 기분 좋게 막걸리 한 통 비우고 일찍 쓰러졌다.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톨게이트에서 구한 관광 안내도를 펼쳐놓고 여관방에 엎드려서 가고 싶은 여행지에 동그라미를 쳤다. 

'펭귄 기자'의 당황스러운 첫 기사

▲ 편집장의 첫 기사와 인증샷. ⓒ 김병기

다음날 찾은 영산강은 무척 추웠다. 하굿둑 근처의 갓바위에서부터 영산강 중류,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편집장은 목에 취재수첩을 걸고 한 손엔 볼펜을 들고, 주머니 속엔 돋보기를 넣은 채 취재 의욕을 불살랐다. 돌멩이와 흙의 알갱이를 관찰한 뒤에 내놓은 첫 기사, 창간호 3면을 장식한 머리기사 내용은 이렇게 시작했다.

"우린 상류, 중류, 하류에 있는 흙과 모래를 채집했다. 그 결과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알갱이가 작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직접 탐험하면서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강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야! 집에서 앉아서 책 보고 써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

나도 모르게 언론사에서 익숙한 말이 튀어 나올 뻔했다. 교과서에 다 나와 있는 말이었다. 이걸 왜 이제 알게 된 거지? 현장을 간 티가 안 났다. 강의 형태가 각 구간별로 어떻게 변화됐는지? 왜 변화됐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뼈대만 앙상할 뿐 살점이 붙어있지 않았다. 흙의 알갱이는 왜 작아진 것일까? 이런 물음표도 없었다. 그렇다고 참신하거나 독특하지도 않았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간 곳의 지명도 몰랐다. 현장 보고서로 치면 낙제점이고, 취재 기사의 ABC가 갖춰 지지 않은 날 것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세울 거예요?"
"자리가 여기 밖에 없는데요."
"큰 차들도 다니고…. 위험하잖아요."
"여기에 있을 테니, 얘 데리고 빨리 갔다 와요!"

아내의 말투는 단호했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주차 결정권도 없었다. 강 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로가 보이지 않았기에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대형트럭이 쌩쌩 달리는 갓길에 자동차를 세웠다. 낯선 곳에서 초보운전자가 아무렇게나 세운 자동차 안에 아내와 막내가 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가족의 안전을 걱정했다.    
 
강에선 칼바람이 불었고 나는 조바심이 났다. 옷을 잔뜩 껴입은 편집장은 펭귄처럼 미끄러운 비탈길을 뒤뚱거리며 내려갔다. 아빠 기자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뒤를 쫓았다. 큰 딸은 몸을 사리지 않고 마른 갈대밭을 헤치면서 강변으로 뛰어가 돌멩이와 흙부터 비닐봉지에 담았다. 이때부터 아빠 기자는 취재도 하지 않고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조르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엄마 기다리신다!"
"동생 춥겠다."

역사적인 첫 기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열악한 취재환경 때문이었다.   

마음속의 현미경

▲ 초등학교 3학년 첫 기사 ⓒ 김병기

취재 내용이 부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각 효과를 노린 디자인이 탄생했다. 강의 상·중·하류 부분에 커다란 돋보기 모양을 그려 넣은 뒤에 그속에 알갱이 크기와 형태를 그렸다. 초등학교 3학년의 뉴스 디자인 감각치고는 그럴 듯했다. 취재현장에서는 주머니의 돋보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그림 디자인만 놓고 보면 현미경을 들이대고 확인 취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사실 4학년 교과서에 나올만한 핵심을 현장에서 스스로 발견했다는 것만도 대견한 일이다. 편집장은 그곳에서 자신이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지만, 뒤를 따라다니면서 재촉했던 아빠 기자는 기사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둘째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때였다. 엄마는 속이 터졌다. 강의 구조가 나오는 단원을 공부하는 데 녀석이 자꾸 헷갈려했다. 그 날, 차 안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녀석이 강의 구조를 알 턱이 없겠지만….

"아니,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또 까먹었어! 너, 우리 가족이 영산강 하구에 간 것 기억 안나? 언니가 가족신문에 기사도 썼는데 생각 안 나니?" 
"언제 갔는데요? 기억 안 나요!"

초보 편집장은 영산강 취재 현장에서 거친 돌을 발견한 게 아니라 아픈 흔적을 남겼다.  
 
"영산강 하류 흙을 채집하고 위험한 오르막길을 올라올 때였다. 가까운 정자가 앞에 있었다. 난 모서리가 위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일어서려다 뒤통수를 '꽝!' 하고 부딪쳤다.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왜 그 모서리가 이곳에 있을까…. 생각하면서 속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아직도 내 뒤통수는 얼얼하다. 만화에 나오는 아이처럼 머리 위에 별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몽탄대교 정자엔 아직도 내 머리가 부딪친 자국이 남아있을 것이다."

강물처럼

▲ 창간호의 표지. 첫 작품이어서 엉성하다. ⓒ 김병기

'바다와 하나 되는 영산강'. 창간호 때 쓴 편집장의 첫 기사 제목이다. 후하게 치자면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생각해낸 제목으로는 90점 이상이다. 기사의 내용처럼 상류의 거친 돌은 작아지고 낮아져야 넓게 퍼진다. 흐르는 강물처럼 여울과 소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구르면서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야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 강물은 항상 똑같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위에 부딪치고 모래 속에 파묻혀 흐르면서 매순간 새로워진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새로워지는 강물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녀석들도 그렇게 흐를 것이다. 연필과 색연필로 채운 A4용지 30장은 그 강물이 흐르면서 남긴 흔적이다.
 
1호 가족여행 경로
2006년 12월 23일 : 목포 도착
2006년 12월 24일 : 목포 국립해양유물 전시관->목포 자연사 박물관->갓바위->영산강 하굿둑->몽탄대교(영산강 중류)->나주대교(영산강 상류)->도곡온천
2006년 12월 25일 : 화순 고인돌공원->운주사->보성 녹차밭->해남 땅끝마을
2006년 12월 26일 : 땅 끝 전망대->보길도->땅 끝 전망대->보옥리 공룡알 해변->세연정->예송리 갯돌해변->예송리 전망대->송시열 글씐바위->보길도 중리 해수욕장
2006년 12월 27일 :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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