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주인만 2천명, 이런 집은 처음이다

10만인 리포트

공포의 후쿠시마, 그 후 4년

핵발전소 막은 대만, 그래도 안심 못 한다
[공포의 후쿠시마, 그 후 4년⑨] 대만의 반핵운동

15.04.09 18:58 | 류화젠 기자쪽지보내기

3월 11일은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상처의 현장을 고발하고,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원전 연장-폐쇄 문제를 되짚어보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이 기획은 환경운동연합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으로 진행한다. 이번 글은 류화젠 대만대학 부교수가 보내왔다. [편집자말]
▲ 지난달 14일 대만 수도 타이베에서 '핵과의 이별, 새로운 에너지 염원'이란 주제로 반핵 집회시위가 열려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 대만 전국핵폐기행동플랫폼

과거 30년간의 각종 크고 작은 반핵운동과 비교하면 대만에서 올해 3월 14일 열린 반핵시위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역대 반핵시위는 '제4핵발전 건설 중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시위 현장엔 제4핵발전소의 예정지인 대만 신베이시 동북부 해안가 공랴오(貢寮)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늘 맨 앞 열에 서 있었으며, 항의하는 사람들의 손에 든 피켓의 문구와 구호도 '제4핵발전소의 중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 대만 반핵 운동은 '핵과의 이별, 에너지의 새로운 염원'이 주요 이슈가 됐다.

당일 수도 타이베이와 신베이 까오슝, 타이난, 타이동 등 5개 주요 도시에선 '대만핵전력 종결을 위하여'라는 개념의 동시다발적 집회시위가 열렸는데 약 4만 5000명이 참가했다. 수도 타이베이에는 3만 명이 집결해 핵과의 이별을 고하는 장례의식행사를 여는 한편, 재생에너지 바퀴를 설치해 시위참가자들이 직접 이 바퀴를 돌려 발전을 하도록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계획에 자극을 받은 재생에너지 및 제도적 절전,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력망) 등의 새로운 의제가 반핵시위의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5년간 이 집회를 이끌어온 '전국핵폐기행동플랫폼'의 조직도 몸집이 커졌다. 환경보호 단체와 여성, 인권, 교육, 사회, 노동 등 200여개 이상의 시민단체 및 NGO 조직이 참여한 대규모 시민사회환경단체로 탈바꿈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3월 14일 집회는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높았다. 또, '핵발전 폐기' 주장을 지지하는 정당 대표들과 대만의 야당인 민진당, 최근 창당한 군소 정당들도 시위대열의 끝줄에 섰다.

앞서 밝혔듯이 올해 반핵시위는 새로운 에너지로 초점이 전환됐다. 지난해 대만의 집권당인 국민당 행정부가 제4핵발전소 공사를 일시적으로 전면 중지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국민투표의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다시는 제4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새로운 의제 발굴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4핵발전소는 3년간 공사를 중지했을 뿐, 언제든 공사가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시위현장에선 공사 중지 상태에 놓인 제4핵발전소를 그대로 놔두지 말고 즉시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공사 중지상태가 이어져 봤자, 매년 수십 억 원에 달하는 세금과 전기요금을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힘을 보탰다.

현재로써는 이 같은 반핵 운동의 힘이 계속 이어진다면, 제4핵발전소 이외 다른 3기의 핵발전소도 2025년이면 퇴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는 대만 정부가 올해 이후 핵발전소를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반핵 및 환경단체들이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대만 정부가 제4핵발전소를 폐기하고 '포스트 핵시대'의 에너지 정책을 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대만, '포스트 핵 시대' 이끈 건 제4핵발전소 건설 반대한 반핵운동

▲ 지난달 14일 대만 수도 타이베에서 '핵과의 이별, 새로운 에너지 염원'이란 주제로 반핵 집회시위가 열려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 대만 전국핵폐기행동플랫폼

대만을 '포스트 핵 시대'로 이끌 관건은 제4핵발전소의 건설에 반대한 반핵운동 30년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일본 후쿠시마 핵재난이 발생한 지 4년이 더해지면서 이전보다 진화한(또는 2.0버전이라 일컬을 수 있는) 반핵운동이 등장했다. 과거 1.0 버전의 반핵운동은 고도경제, 성장, 취업 시장의 활성화, 소득 수입이 해마다 증가한 1980년대에 나타났다. 대만 민주화운동의 한 갈래에서 핵에너지는 권력과 위세가 치솟던 국민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계획이었다.

반면, 당시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 인근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정 과정의 불투명과 안전문제 등의 우려로 반핵운동가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또 '반핵이 곧 독재에 반대한다'는 이념이 자리 잡으면서 반핵운동가들은 조만간 건설될 제4핵발전소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를 반대한 민진당과 핵발전소 소재지의 지역 대표, 각 지역의 수장 등도 결합해 핵발전소 예산을 '보이콧' 하기에 이르렀다. 건설허가 발급을 거부하고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며, 반핵시위를 연례적으로 여는 등 후속대책이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겪다 보니 1990년에 이르러서는 '반핵=민진당, 찬핵=국민당'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2000년대 대만 역사상 최초로 야당 인사가 총통에 당선됐고 가장 먼저 제4핵발전소 건설 중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곧 다시 공사가 재개돼 '제4핵발전소 건설 중지'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었다.

세간엔 이러한 세태를 꼬집어 민진당이 집권한 8년(2000~2008년)을 '운동 동지의 배반'이라 지칭했고,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그리하여 후쿠시마 핵재난이 발생하기까지 반핵시위가 이어질 수 없었다. 그저 소규모 NGO 조직과 핵발전소 예정지역 주민들만이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반대운동이 다시 들끓기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고부터다. 반핵운동의 역량이 다시금 모여 1.0버전의 반핵운동과 다른 형태가 성립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즈음 대만은 경제성장 및 소득수입의 정체, 낮은 임금, 취업조건의 악화, 정부효율 저하 등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이때 반핵운동가들은 시대의 변화를 면밀하고 세심히 살펴 상당수의 청년들이 반핵운동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한다. 갖가지 문제도 제기해 반핵운동의 연료로 삼았다. 이 시기 대만의 반핵운동의 구체적인 차이는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지난달 14일 대만 수도 타이베에서 '핵과의 이별, 새로운 에너지 염원'이란 주제로 반핵 집회시위가 열렸다. ⓒ 대만 전국핵폐기행동플랫폼

먼저, 정당 연합의 변화이다. 과거의 반핵운동은 개인적인 정서 또는 역사적인 원인으로 국민당과 민진당이 대결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부담을 버린 새로운 세대의 운동가들이 출연했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 두 정당을 오가며 반핵운동을 펼쳤다.

이 시기에 열린 각종 선거라는 이점을 활용해 핵에너지 의제에 대한 각 정당의 후보자들의  태도를 압박했다. 특히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압박했다. 당파를 가리지 않았으며, 핵발전소에 찬성하는 주민대표의 명단과 연락방식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또, 유권자들을 동원해 이들에게 전화와 팩스, 이메일 등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인력을 동원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1.0버전의 반핵 운동은 고도의 기술적인 핵에너지 정책 토론을 중점에 두고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 인근 주민 등을 '피해자'로 동원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대만의 반핵운동은 과거의 과학 및 전문 용어를 고치고 핵에너지 의제에도 변화를 주었다. 성별과 연령, 핵발전소 주변 거주 여부를 떠나 모든 대만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반핵운동과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반핵운동 2.0버전... '핵폐기 씨앗교사'

그 결과 반핵운동은 2.0버전을 맞이하게 돼 '핵폐기 씨앗교사'라는 상징적인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 수백 명의 강사를 교육하고 이렇게 육성된 강사들이 직접 핵옹호자들을 반박하는 교재를 만들어 각 초중고교, 회사상점, 커피숍, 학교단체, 각종기금회 등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이들이 나선 이유는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만들어 대만의 핵전력 발전 현황과 위기를 교육해 '핵 없이는 안 된다'는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론 100여 명의 대학 교수가 대만 핵에너지에 관한 주제를 학기 교재로 채택해 대학생들이 교실에서 '제4핵발전소'를 주제로 토론하도록 했다. 그밖에도 국경일에 반핵 깃발을 게양하고 모든 국민이 자기 집 주소와 핵발전소와의 안전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제작했다. 특히 반핵 영화감독은 '반핵56 운동'에 나서 매주 금요일 오후 6시에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특정장소에서 반핵 집회를 진행했다. 노래가 울려 퍼지고 반핵 강연과 영화 상영이 이어져 꼬박 100회까지 계속됐다.

끝으로 반핵운동의 사회 연명 확대를 말하고 싶다. 1.0버전의 반핵운동의 사회적 기초는 야당 지지와 우호적인 시민사회운동단체에 머물렀다. 과거 반핵 시위 참가자 중 7할 이상은 민진당의 네트워크가 동원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반핵 시위는 각종 민진당 후보자와 대표, 그들의 깃발 또는 제복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2.0버전의 반핵운동은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했다.

우선,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반핵 음악앨범, 반핵화보를 만들고 반핵음악회를 개최했다. 각종 반핵 문화상품(티셔츠, 머그컵, 손수건, 엽서, 스티커, 팔찌)을 제작하고 모금도 병행했다. 연예인들도 각종 행사에서 '제4핵발전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당홍의 음악단체가 연주회서 무대장치에 반핵 메시지를 설치하고 영화배우가 수상소감으로 반핵을 선언하기도 했다.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아동 및 동물에 미치는 중대한 위해를 알려 대만 중산계층의 부녀자들이 스스로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엄마 모임'을 조직하는데 기여했다. 이 모임의 회원들은 대부분 대기업 또는 상류층,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이었다. 아울러 대만의 제4핵발전소 건설 저지 30년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반핵인사의 도움도 컸다.

결론적으로 현재 제4핵발전소 공사는 잠시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대만이 진실로 나아가야할 길은 '포스트 핵에너지' 시대다. 사실 대만의 반핵단체들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 등 이웃 국가로부터 경험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를 보면서도 중요한 것을 배웠다.

반대로 인도와 한국, 중국 등은 핵발전소 건설을 계속 늘여나가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핵발전소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대만이 제4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한 경험이 이웃 국가들의 반핵 운동에 양분을 제공하고 지역을 뛰어넘어 전지구적 핵발전 감소와 핵폐기 운동에 공헌하기를 바란다.

"시의원 당선 68명 중 40명이 핵발전 퇴역 청원서에 서명"
[틈새 인터뷰] 류화젠 교수에 정대희 기자가 묻는다


▲ 대만대학 사회학과 류화젠 부교수 모습 ⓒ 류화젠

- 대만의 제4핵발전소는 공정률 98%에 달했으나 공사 중지가 내려졌다. 또, 원전 3기도 2025년이면 폐쇄할 수 있는 상황이라 설명했는데,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제4핵발전소는 3년간 공사를 중단했을 뿐, 언제든 다시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올해 시위현장에서도 제4핵발전소의 공사 중지를 뛰어넘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요한 목소리였다.

또한, 대만 신베이시에 있는 2기의 핵발전소는 모두 30년을 넘어 운행허가가 조만간 만료될 예정이다. 제1핵발전소는 2018년, 제2핵발전소는 2021년이다. 퇴역, 폐쇄의 단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당인 국민당은 오히려 노후원전의 퇴역을 연장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노후원전이 단층대에 인접해 있고 부품이 노화된 점, 규정위반사고와 운행중단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다. 올해 말 고준위핵폐기물처리장은 가득 찬다. 연료봉 초고사용의 위기에도 소홀하다.

제1핵발전소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37년째 가동 중이고, 제2핵발전는 1981년부터 34년째 가동 중이다. 대만 경제부가 허가가 상업운전은 40년이다. 대만 남부 헝춘에 위치한 제3핵발전소는 2025년이 허가만료 년이다. 예정대로라면, 2025년 3기의 원전이 폐쇄되어야 한다. 그러나 타이완전기가 제1핵발전소의 수명연장(20년)을 신청했다. 대만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선포한 '핵발전소 퇴역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공약에 변수가 생겨,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 한국에서는 핵발전에서 유출되는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크다. 대만에서도 방사능 유출 사고 있었는가?
"타이완 핵발전소에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꾸준히 이어졌다. 그 중 신베이시 스먼에 위치한 제1핵발전소는 1991년 2호기 파이프라인에서 누수가 발생해 작동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1993년에는 수리작업을 하는 중 작업 규정을 어겨 3명의 작업자가 방사능에 피폭됐다. 남부 헝춘 제3핵발전에서도 지난 2001년 타이완 핵발전소 역사상 '열처리대기상태의 1호기 전력 전체 손실 2시간 초과'를 기록했다. 이는 핵발전소 사고 등급에 의하면 '무방사성물질 누설의 제3종 긴급사고'에 해당된다. 타이완 핵발전소 사상 가장 심각한 사고였다.

최근에는 원전 회로의 노후와 인위적인 요소가 만들어낸 의외의 사고 발생률도 크게 상승해 곳곳에서 운행 말기, 고위험 시기에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 한국의 경우 대규모 거주지역에 원전이 들어서 있고 지진대에 원전과 핵폐기물처리장이 세워져 논란이 되고 있다.
"대만은 3기의 노후원전이 있다. 이들 모두 판산표층의 고위험 지진대에 자리하고 있다. 활동단층과의 거리가 모두 국제 관례에 맞지 않으며, 내진계수도 일 년 내내 부족한 실정이다. 동시에 3기의 핵발전소는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원전사고 시 필요한 제대로 된 대피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산 수산물수입이 중단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는 이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의 상황은 어떤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대만은 일본의 8대 종류 식품(냉장야채 및 냉동야채, 활어냉장수산품, 냉동수산품, 유제품, 영유아식품, 음용수, 해초류) 및 차(茶)류제품 등 9종에 대해 100%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후쿠시마 인근 5대 현에서 생산․제조된 식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대만 정부의 통제 능력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일본 정부에 생산지와 무방사선 증명을 요구할 방법이 없으며, 상세한 검사를 실시한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또, 원산지를 위조해 위법적으로 대량 수입된 일본산 제품이 시중에 유통돼 대만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즉, 대만 정부가 일본산 수입제품을 통제하고 있으나 구멍투성이라는 거다. 아울러 대만 위생복지부 장관도 올해 3월 일본 정부의 건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를 계기로 환경보호 및 소비자 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 대만 반핵운동의 2.0버전의 특징 중 하나로 선거 출마자의 '반핵'공약 채택을 언급했다. 얼마나 많은 후보가 이를 받아들였나?
"지난해 전국핵폐기행동플랫폼이 연말 선거에서 신베이시의 모든 선거출마자들에게 3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1․2핵발전소는 되도록 빨리 퇴역시키고 연장하지 않아 시민들 가정에 핵재난의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둘째, 신베이시 핵재난 대피계획을 되도록 빨리 엄밀하게 만들어 집행한다. 셋째, 고준위핵폐기물을 세밀하고 신중히 처리해 제1핵발전소의 저장고가 용량을 초과해 가동되지 않도록 한다 등이다.

이 같은 요구사항에 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진당 소속 후보자가 가장 빨리 반응했다. 그는 핵발전 퇴역 청원서에 공개적으로 서명했다. 국민당 소속 후보자는 서명 여부에 대답하지 않았으나 공개적으로 제1․2 핵발전소가 때가 되면, 퇴역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다. 선거 결과는 국민당 소속의 후보자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시의원은 총 120명의 후보자가 나왔는데, 이중 68명이 신임 시의원에 선출됐다. 당선된 68명의 당선인 중 40명은 핵발전 퇴역 청원서에 공개적으로 서명한 이들이다. 서명자 40명 중 국민단 소속은 4명이고 민진당 소속은 32명이었다." / 정대희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류화젠 대만대학 사회학과 부교수의 글입니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