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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아만남

"보수의 심장 대구에 '콩나물 1호' 심겠다"
[10만인리포트-아름다운 만남①] <콩나물신문> 한효석 이사

15.03.30 19:23 | 권우성 쪽지보내기|김병기쪽지보내기

▲ 꽃방석, 윷놀이 말판, 종이배 접기 등 재미난 내용으로 꾸며진 <콩나물신문>을 들고 있는 윤혜민 이사, <담쟁이문화원> 한효석 원장, 박병학 기자. ⓒ 권우성

제호 글씨체를 자주 바꾼다. 심지어 아이들이 쓴 글씨도 제호로 박는 대책 없는 신문사다. 제일 뒷장 한 면을 털어서 '나를 접어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주세요', '깔개로 써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비행기 접기 방법이나 방석 문양을 넣고 윷놀이 말판을 그려놓기도 했다. 신문 구독 후 처리 요령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이상한 신문사다.

편집회의는 협동조합원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연다. 이들의 표현대로라면 2~3시간 동안 서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진상'을 떤다. 편집국장을 제비뽑기로 정하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구독료를 내는 조합원들은 직접 글을 쓰는 기자이자 광고주이다. 이들 중 일부는 신문배달부이기도 하다. 격주로 발행되는 5000부를 십시일반 가져가서 집 근처나 관공서에 직접 뿌린다.

제호도 뜬금없다. <콩나물신문>. 이름만 보면 지역신문이 아니라 콩나물 가게 주인이 발행하는 신문으로 오해할 수 있다. 지역신문 기자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한 주부는 편집회의에 참석했다가 "신문사 이름이 쪽팔려서 명함을 돌릴 수 없다"고 혀를 내두르면서 그만뒀단다.     

지난해 2월 말 창간호를 낸 <콩나물신문>이 얼마 전 첫 돌을 맞았다. 한효석 콩나물신문협동조합 이사(61. 담쟁이문화원 원장)를 만났더니 이렇게 말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콩나물 같은 신문 1호가 출발했으면 좋겠다. 10년 뒤에는 <조선일보>를 인수하거나 전국지인 <콩나물 일보>를 만들겠다."

<조선일보> 사주가 들으면 코웃음 칠 말이다. 지난 1년 동안의 가계부를 들춰보니 설상가상이다. 277명의 조합원이 출자한 2500만 원을 다 까먹었단다. 매달 조합원들이 내는 구독료 1만 원으로는 상근자 2명(기자 1명, 사무국장 1명)의 월급을 주기도 부족하다. 그 공백을 이사들이 채우고 있으면서도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노트북에 담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이 신문사가 지속가능할까?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면 깜깜합니다. 저 멀리서 바늘구멍 만한 빛이 들어오고 있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 몸뚱이가 확 빠져나갑니다. 변화는 순식간입니다. 지금 당장 어렵지만 우리 식당에서 주꾸미 덮밥을 더 많이 팔면 그 순간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하-하-하."

[만남] 드러머와 식당 주인

▲ <콩나물신문> 윤혜민 이사와 <담쟁이문화원> 한효석 원장. ⓒ 권우성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아래 3분30초짜리 동영상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영화 <위플래쉬> 주인공 앤드류의 드럼처럼 핏물이 튀지는 않지만 즐거운 삶의 열정이 톡톡 튄다.



YB밴드가 부르는 'Dash'에 맞춰 드럼스틱을 두드리는 사람은 매월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 윤혜민(43)씨다. 드럼을 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렛츠 드럼> 동호회 운영자이자 부천 지역에서 발행하는 <콩나물신문> 협동조합 이사다.

그가 10만인클럽 <아름다운 만남>에 초대한 이는 <콩나물신문>을 만든 한효석 이사다. 한 이사는 부천 약대 오거리 근처 3층 건물 주인이다. 1층은 주꾸미 식당, 2층은 담쟁이 북카페, 3층은 콩나물신문사와 담쟁이 문화원, 시민사회단체 사무실이 있다. 계단 입구에는 체게바라의 큰 그림이 그려있고, 투명 아크릴판에는 도종환 시인이 아니라 가수 안치환씨가 노래로 만든 이경임 시인의 시 <담쟁이>가 적혀 있다.       

- 한효석 이사를 왜 소개하고 싶었나?
: "멋진 분이다. 보리밥 식당으로 번 돈으로 건물을 사들여서 담쟁이 문화원과 행복한 신문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공동체 운동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분 찾기 어렵지 않나? 내 인생의 멘토이다."

- 왜 이런 일을 하는 건가?
: "보리밥 집이 잘 돼서 큰 돈 벌었다. 건물 사서 임대료를 받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건 사는 게 아니라 서서히 죽는 선택이다. 그 때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고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돈 쓰고 싶었다."

드러머와 식당 주인의 만남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드럼 동호회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바꾸려던 윤씨가 담쟁이 문화원에서 연 협동조합 강좌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윤씨는 그 뒤 좋은 사람들에 이끌려 <콩나물신문> 시민기자이자 조합원으로 참여했고, 멘토인 한 이사의 꾐에 빠져 권한은 별로 없고 책임만 막중한 이사 자리를 꿰찼단다.  

[콩나물] 대구 콩나물, 광주 콩나물이 모이면  

'까치는 도시인에게는 친숙하지만 농촌에서는 싫어해', '느티나무는 나이든 사람은 좋아하는데 젊은이들에겐 고리타분해' '무지개는 유치원 이름 같아'. <콩나물신문> 제호는 난상토론 끝에 정해졌다. 지루했던 토론을 종료시킨 한 마디는 한효석 이사의 푸념이었다.     

"아~ 신문 이름이 콩나물이면 어떻고, 고사리면 어때?"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러 사람이 맞장구를 쳤단다.

"우와~ 콩나물 좋네."
"부천 콩나물, 안양 콩나물, 광주 콩나물, 대구 콩나물…….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도 거부감이 없어."

<콩나물신문>은 협동조합이다. 드러머 윤씨는 "조합원은 신문을 전공한 분들이라기보다는 나 같은 장삼이사"라고 말했다. 주부, 회사원, 공인중개사, 감자탕 가게 주인, 만화가……. 고등학생도 있다.

한 이사는 "세력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지역 협동조합은 시민단체나 노조, 정당 등 특정세력이 주도하는 데, "여기는 새누리당 당원에서부터 진보적 정당 당원에 이르기까지 이쪽 끝에서 저쪽 끝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한 이사는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무지하게 힘든 설득과 토론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꼴통 기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

'모든 조합원은 기자다'. <콩나물신문>이 추구하는 것인데, <오마이뉴스>가 내건 '모든 시민은 기자다'란 모토와 비슷하다. <콩나물신문> 조합원이 되면 인터넷 판에 기사를 올릴 자격을 준다. 페이스북, 블로그에 글을 쓰듯 신변잡기에서부터 시, 고발, 주변 밀착 취재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내용이 자유롭단다. '흥, 쳇, 대박!!! 헐~' 신문 기사에서 볼 수 없는 표현도 그대로 노출되는 무편집본 생얼 기사가 올라온다.

격주로 12면 발행하는 대판형 종이신문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골라서 싣는다. 격주에 한 번씩 어떤 기사를 올릴지 결정하는 열린 편집회의가 열린다. 전 조합원에게 문자를 날리면 적게는 10명, 많게는 30여명이 모인단다. 이 신문사의 유일한 상근 기자인 박병학 기자는 별 내용도 없는 회의를 2~3시간 동안 하다가 기진맥진해서 자기 페이스북에 이런 소감을 올렸단다.

"개판이었다. 그런데 언제든지 오셔서 진상을 떨었으면 좋겠다."

드러머 윤씨는 "다른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게 우리네 삶이고, 그걸 들어주는 것이 <콩나물신문>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 이사는 "나는 '50대는 입 닫고 지갑 열자'는 철칙을 지키려고 열린 편집회의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렇게 토론해서 결정하기에 신문이 보수적일 수가 없다, 꼴통 같은 기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콩나물신문>은 부천 지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성가병원 전직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발하는 글을 보내온 적이 있다. 우리는 사실 여부만 확인한 뒤에 기사를 올렸고 그 뒤에 병원의 노동조건이 개선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때 한 고등학교 교장이 학생들의 자발적 애도 표현을 막은 적이 있다. '슬픔도 통제하는 ㅅ고등학교'란 제목의 기사다. 지금까지 클릭수가 가장 높다. 그 뒤에 교장선생님이 많이 순해졌다고 들었다. 하-하-. 이게 지역 언론의 힘이다."(한효석)

"10년 뒤 <콩나물 일보> 만들겠다"

- 재정 상황이 만만치 않던데, 지속 가능할까?
: "조합비 외에도 조합원들이 내는 광고료와 구독료가 있다. 하지만 매달 300만 원 정도 적자이다. 올 1년 동안 이사들이 충당할 것이다. 관건은 구독자를 확보하는 일이다. 조합원 이외의 구독자는 아직도 70명 수준이다. 조합원들이 각각 2명의 구독자를 늘리면 600명인데……. 이렇게 차근차근 밟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열심히 밥을 팔아야 한다."

- 풀뿌리 언론으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과제가 있다면?
: "기존 언론사 모델이 취하고 있는 문법을 버리면 살 수 있다. 제호가 매번 바뀌는 게 뭐가 중요한가. 자기가 쓴 제호가 5000부 발행됐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자기가 쓴 글이 기사로 오르면 역시 마찬가지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공한다.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기에 창간 준비호부터 지금까지 우리 발자취를 다음카페에 공개하고 있다. '사초'를 쓰듯이. 부천 콩나물이 정착하면 다른 곳에서 우릴 보기 위해 달려올 것이다. 그 뒤 마산 콩나물, 대구 콩나물, 광주 콩나물을 만드는 데 자금을 보탤 수 있다. 10년 뒤에 전국의 콩나물신문들이 모여 <콩나물일보>를 창간할 수 있다." 

유쾌-통쾌-발랄한 <콩나물신문>의 실험이 기대된다. 

☞ 2편에 계속됩니다(기사 읽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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