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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너만 입 닫고 있으면 돼"
칠흑같은 밤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1-①] 윤 일병 쓰러진 그날, 내부 고발자의 기록

15.03.25 14:08 | 강민수 기자쪽지보내기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의 내부고발자 특별기획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가 제18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이 기획은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최초 제보자 김재량씨 인터뷰를 비롯해 포스코 계열사의 동반성장 실적 조작을 고발한 정진극씨, 상사의 성희롱을 외부에 알린 이은의씨 등 총 9편의 내부고발자 이야기를 심층 보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내부 고발자가 당하는 억압과 핍박, 따돌림과 해고, 복직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예심은 물론 본심에서도 최고점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이 기획은 지난 6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도 수상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기획기사 9편을 차례로 다시 싣는다. - 편집자말

▲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해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지난해 발생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최초 고발자, 김재량(24) 상병. 사람들은 그를 '의인', '영웅'이라고 불렀지만 고발 이후 그의 군복엔 '배신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평범했던 그의 군생활은 악몽으로 점철됐다. 고발자 포상은커녕 신분 보호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제 전출과 따돌림으로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은 그의 군생활은 한겨울 한파보다 혹독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릴 때마다 '윤 일병'을 떠올리며 버텼다는 그가 지난 1월 전역했다. 언론 최초로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와 그가 군대에서 쓴 일기, 1200페이지에 달하는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의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김 상병의 내부 고발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오마이뉴스>는 그동안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윤 일병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번 기획에서는 실명을 쓰기로 했다. '일병'이라는 계급 너머,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떠올리고, 보다 생생하게 이 사건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최초 인지] "나 육군교도소 갈 수도 있겠다", 가해 병사의 자백

한창 꽃 피워야 할 나이에 죽음을 맞은 고(故) 윤승주(22) 일병. 그가 본부포대 의무반 생활관(내무반 막사) 안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쓰러진 지난해 4월 6일은 일요일이었다.

본부포대 행정반 소속인 김 상병은 이날 개인 정비(자유) 시간을 이용해 후임병사들과 PX(군대 매점)에서 냉동식품을 먹고 있었다. 만두, 닭강정, 스파게티가 주요 메뉴였다. 음식을 다 먹은 뒤 PX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50미터 앞에서 "빵빵빵" 경적이 울렸다. 본부포대 의무반 앰뷸런스가 '풀액셀'을 밟으며 지나갔다. 운전병은 의무대 최고참 이아무개(27) 병장이었다. 무슨 일인가 했다.

김 상병은 행정반에 돌아와 PX 복귀 신고를 했다. 당직 간부가 김 상병에게 앰뷸런스를 타고 후송 간 병사가 누구인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김 상병은 의무반에 전화를 걸었다. 한 달 선임인, 약제병 지아무개(22) 상병이 전화를 받았다. 통화 뒤 김 상병은 "의무병 윤승주 일병이 후송갔습니다"라고 전했다. 당직 간부는 "왜 후송갔는지 안 물어봤지?"라며 직접 의무반에 전화를 걸었다. 의무반 생활관에서 냉동식품을 먹다가 기도가 막혔다고 했다. 오후 5시 20분경이었다.

오후 6시 20분경, 저녁식사를 마친 김 상병은 생활관 앞에서 다른 병사들과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지 상병이 무리로 다가왔다. 김 상병은 지 상병에게 "승주 후송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지 상병은 "X됐다, 나 육군교도소 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의무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상병과 지 상병은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왔다. 김 상병이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심각합니까?"
"너 어디까지 알고 있냐?"
"승주가 냉동식품을 먹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으로 후송을 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그게 아니야. 우리 의무병들이 승주를 때려서 먹던 게 기도를 막았어. 갑자기 승주가 몸을 막 떨면서 오줌을 지리고 이상한 거야. 그런데 이 병장이 '꾀부리지 마라, 이 새끼 군기 빠졌네' 하고 계속 때렸어."

지 상병의 얼굴은 태연했다. 앞서 지 상병을 비롯한 가해 병사들은 참고인 신분으로 헌병대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헌병대 수사관에게 "화목한 분위기였다", "냉동식품을 먹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특이 사항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 상병에게 상황을 설명한 지 상병은 조사를 받느라 저녁을 못 먹었다며 유유히 사라졌다.

[회유] "너랑 나랑, 우리 둘만 알고 있자"

▲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포병대대 본부포대 구성 및 특징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은 28사단 내 포병연대의 한 포병대대에서 일어났다. 보통 포병대대는 3개의 전투포대와 이들을 지원하는 본부포대로 나뉜다. 사고가 일어난 본부포대는 인사, 군수, 작전, 의무 등으로 이뤄지며 대대의 행정과 전술지원 임무를 수행한다.

때문에 본부포대 병사들은 주로 행정계원, 취사병, 작전병, 의무병, 운전병 등 비전투 병사들로 구성된다. 김재량 상병은 군수과 1종계원으로 식자재를 비롯해 군인들이 먹는 건빵, 맛스타(음료수) 등의 부식을 관리하는 일이 주요 임무였다. 

본부포대 생활관은 중앙에 포대장실, 행정보급관실, 행정반이 있고, 양옆으로 60명씩 생활하는 1·3생활관, 2·4생활관이 길게 펼쳐져 있는 형태다. 훈련소 교육을 마치고 자대로 편입된 병사들은 생활관에서 2주간의 대기기간을 갖는다. 자신의 주요 임무를 숙지하고 부대 적응을 하기 위함이다.

윤승주 일병은 1·3생활관에서 2주간 생활했다. 같이 생활했던 김재량 상병은 윤 일병에 대해 "말수도 적고 뭐든지 조심스러워하는 후임이었다"라고 기억했다. 윤 일병은 대기기간을 끝내고 의무반 생활관으로 옮겨간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의무반 생활관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다. 의무반만 본부포대 막사와 220미터 가량 떨어진 3포대 막사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본부포대뿐만 아니라 나머지 1, 2, 3포대 병사들의 접근성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본부포대 간부들은 거리가 먼 의무반에 관심을 두기 어려웠고, 3포대 간부들도 의무반이 본부포대 소속이어서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딱 한 명의 간부, 의무지원관 유아무개(24) 하사가 의무반을 감독했다. 하지만 유 하사는 의무병들의 폭행을 조장하고, 폭행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야간 점호를 하기 전인 오후 9시 40분경, 김 상병은 생활관 밖에서 후임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재량아, 잠시 얘기 좀 하자"며 지 상병이 그를 찾아왔다.

김 상병은 후임과 15미터가량 떨어져서 지 상병과 단 둘이 섰다. 지 상병이 "아까 한 얘기는 너랑 나랑 우리 둘만 알고 있자"며 운을 뗐다. 김 상병은 말을 돌렸다.

"승주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후송 갈 때 15분 이상 심장이 정지했어. 호흡은 정상인데, 뇌손상이 진행 중이었을 거다. 의식도 없었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아까 헌병대 수사관이 왔었는데, 우리는 승주가 냉동식품을 먹다가 쓰러졌다고 진술했다. 의무병들까지는 다 입을 맞췄어. 단순 사고로 처리될 거야. 너만 알고 있어."

"만일 승주가 깨어나서 진술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리고 부검하면 폭행 흔적 나옵니다. 벌은 무조건 받게 돼 있습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십시오. 혹여나 잘못되면 가중 처벌 받습니다."
"아 그냥, 승주 이대로 안 깨어났으면 좋겠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너한테 지금 말하고 있다는 걸 이 병장이 알면 나도 맞아죽는다. 불안해 죽겠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승주와 승주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십시오. 승주 부모님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모르겠다. 하여튼 너만 입 닫고 있으면 잘 해결될 것 같다."

김 상병의 설득에도 지 상병은 완강했다. 그러나 담배를 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대화를 마친 뒤 김 상병은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승주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지 상병이 짐승 같았다. 한 대 패주고 싶었다(지난해 4월 21일 작성된 지 상병의 군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승주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당시에 너무 힘들고 회피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라고 진술한 대목이 있다. - 기자주).

컴컴한 생활관 천장을 바라보며 김 상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있어야 하나', '별일 아닌데 내가 오버하는 거 아닐까', '내가 너무 감정적인 걸까.' 고민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이런 일이 알려지지 않으면 7살 어린 김 상병의 동생이 군대에 와도 억울한 일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주 얼굴도 떠올랐다.

[고발 결심] "내가 감정적인 것 같나?"... 자기 편을 만들다

▲ 김재량씨는 군생활 동안, 틈틈이 일기장을 썼다. 윤승주 일병이 쓰러진 4월 6일의 일기에는 “승주가 잘못되면 내가 승주 편에서 (진실을) 다 풀어낼 것이다. 승주야, 빨리 일어나 제발”이라고 적혀 있다. ⓒ 정민규

오후 10시 40분경, 잠을 이루지 못하던 김 상병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생활관에서 나와 행정반에서 근무 중인 당직병사에게 다가갔다. 누군가와 고민을 나눠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지 상병과의 대화를 상세하게 전달했다.

"내가 웬만하면 비밀은 지키는데, 이거는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이고 너무 양심이 찔린다. 네가 3자 입장에서 봤을 때 내가 지금 너무 감정적인 것 같나?"

김 상병이 고민을 털어놓자 당직병사는 '지금 당장 보고해라', '(폭행 가해자들의 거짓말이) 가증스럽고 역겹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김 상병은 확신을 갖게 됐다. 당직병사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문 안쪽에 붙어 있던 포대장의 전화번호를 적어와 김 상병에게 넘겨줬다. 당직병사는 생활관 문을 열어줬다. '철컹' 하는 소리가 났다.

생활관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공중전화 박스를 비췄다. 김 상병은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통신보안 본부포대, 상병 김재량입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솔직하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김 상병은 포대장에게 지 상병과의 대화를 그대로 전했다. 전화를 끊고, 후련한 마음으로 생활관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생활관으로 돌아와 랜턴을 켜고 일기장을 폈다. "오늘 의무반에서 승주가 쓰러졌다"로 시작되는 일기를 썼다. 다음은 일기 끝부분이다.

"(승주가) 깨어났으면 좋겠다. 깨어나서 정상적으로 진술해서 다 벌 받았으면 좋겠다. 잘못을 뉘우치려고 하지도 않고 무마시키려고 하는 그 벌레 새끼들 너무 역겹다. 내가 다짐한다. 승주가 잘못되면 내가 승주 편에서 (진실을) 다 풀어낼 것이다. 승주야, 빨리 일어나 제발." (2014년 4월 6일의 일기)

김 상병과 통화한 뒤 본부포대장 김아무개(27) 대위는 서둘렀다. 그는 오후 11시부터 윤 일병의 선임병인 이 병장, 하아무개(23) 병장, 이아무개(22) 상병, 지 상병을 차례로 불러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모두 거짓말을 했다. 공통된 단어는 "화목한 분위기"였다. 의무반 분대장인 하 병장은 "냉동식품을 먹고 있었는데,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분위기는 화목했다, TV 시청한 것 이외에 특이사항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병장은 "승주 표정이 안 좋았다"고 했고, 나머지는 하 병장의 진술과 비슷했다. 이 상병도 "구타나 가혹행위는 절대 없었으며 화목한 분위기로 회식이 진행됐다"고 진술했다.

지 상병도 같았다. 김 대위는 "왜 포대장에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다그쳤다. 앞서 김 상병이 전화로 전했던 충격적인 얘기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 상병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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