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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입양을 인터뷰 하다

"언니랑 차별 안 해? 안 때려?" 이런 질문이 당연한 이유
[10만인리포트-입양을 인터뷰하다⑧] 공개입양 가족 희은이네

15.02.17 20:45 | 김지영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은 김지영 시민기자가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
- 아리랑 中, 님 웨일즈

'입양을 인터뷰하다'를 잘 읽고 있다는 어느 독자가 바다 건너 보내 온 메일 내용 중 일부다. 연재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발견하는 입양 동기는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한결같은 공통점이 보였다. 

입양과 관계없이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커다란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인생은 예기치 못한 어떤 어려움들이나 혹은 그와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환희의 순간들을 항상 예비해 놓고 있다. 어쩌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하면서,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정신적인 성취를 가지게 된다. 위에 인용한 글처럼 실존적 인간인 우리는 배가 고파봐야 배고픔의 진실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 온 인생에서 이런 중요한 고비들을 그게 고통이든 환희든 결코 쉽게 지나치려 하지 않았다. 직면한 사건이나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이는 극심한 혼란과 성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성질로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물이 수증기로 변할 수 있었던 것도 부단하게 끓어야 가능할 수 있었던 것처럼.

2014년 11월 30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희은이네 가족이야기는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21살 청년의 죽음... 입양을 결정하다

▲ 희은이와 엄마 김경아씨 ⓒ 김지영

올해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인 희은이네 가족은 모두 다섯이다. 아빠(김종호, 49, 한국기독학생회 대표) 엄마(김경아, 46) 그리고 큰 언니(김희연, 22)연)와 둘째 언니(김희수, 16)가 있다. 위로 두 언니들은 엄마가 배로 낳은 딸이고 희은이는 생후 24일 되던 날 경아씨가 가슴으로 낳은 딸이다.

김경아씨에게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선교단체 소속이었던, 그저 교회 오빠 정도로 생각했던 김종호씨가 어느 날 남자로 보였다. 둘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졌고 김경아씨가 대학을 마치자마자 결혼했다. 그리고 큰 언니 희연이가 엄마 나이 스물네 살에 세상에 나왔다.

김경아씨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다. 첫째를 낳은 것부터가 상당한 모험이었다. 류머티즘이 유전되는 병은 아니지만 아이를 임신하고 극심한 산통을 겪으며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산모에게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의사는 둘째를 낳지 말라고 단정적으로 경고했다. 천성이 아이를 좋아하는 김종호씨와 둘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김경아씨가 그런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6년 만에 둘째를 낳게 된 데에는 사소한 '우연'이 함께 했다.

"류마티즘 환자는 약을 계속 먹어야 돼요.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을 억제하는 약을 먹어야 하거든요. 피임도 물론 계속 했는데 약을 잠깐 바꾼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약이 임신안정성이 입증이 안 된 약이었어요. 그러다 어떻게 임신이 된 거예요. 마음이 굉장히 즐겁고 기뻤지만 의사가 기형아일 확률이 높다라면서 기형아 검사를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 부부는 '하면 어쩔 건데. 기형아면 그에 맞게 또 키우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검사하지 않고 그냥 낳았어요.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제가 낳은 두 아이는 자가면역질환이 없어요. 두 애를 낳은 건 너무 기쁘고 좋은데 (아픈 몸으로) 키우는 게 너무 힘들었죠."

그렇게 둘째를 낳고 얼마 안 돼 김경아씨는 걸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삶의 활기도 생겼다. 아이 둘을 양육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창 예쁘게 커가고 있는 딸들을 보며 삶의 기쁨과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셋째 얘기를 꺼냈다. 그렇지만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류머티즘 환자인 몸인 김경아씨에게 셋째까지 낳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리가 대학생 때 사회에 공헌해야 된다, 이런 얘기 하면서 친구들끼리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저는 듣기만 했고 얘기는 안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데는 공감을 했지만요. 그런데 제가 어지간한 남의 고통에 대해서는 그렇게 불쌍히 여기고 그러질 않는데 언젠가 아동보호시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힘든 그런 마음이 생기긴 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4년을 살았어요. 둘째도 미국에서 낳았지요. 거기서 한인 입양아도 만났고 백인부모가 흑인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것도 보고 하면서, 저나 우리 큰 딸은 입양이 뭔지는 알고 있었죠."

한국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셋째를 입양하자고 경아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큰 딸의 은근한 압력도 가해졌다. 김경아씨의 결정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있는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버거웠고 또 아이가 생기면 집안에 묶여 있어야 된다는 답답함은 마음의 빗장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은근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지도하고 있던 카이스트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자기 친구가 모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사고가 있었어요. 제가 가장 가까이서 겪은 첫 죽음이었어요. 죽은 시신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저한테 '사모님, 사모님' 그러면서 밥도 같이 먹고 늦은 시간에 집에까지 찾아와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던 그런 어린 학생이었어요. 스물한 살. 근데 너무 허무하게 간 거예요. 정말 너무 허무하게. 딱 한 번의 사고로.

그 죽음을 보고 나서 살고 죽는 게 별게 아니구나, 어쩌면 사는 동안 아등바등 하거나 혹은 내 살길 찾자고 애쓰고 사는 것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 사는 동안 의미 있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 내가 의미 있게 사는 게 뭘까 생각해 봤어요.

죽은 그 아이를 보고 와서 하루를 꼬박 밤을 새우며 한 생각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입양결정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해요. 걔 죽음과 입양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저에게는 그 아의의 죽음이 다가왔고, 제가 입양결정을 하면서 희은이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됐죠."

삶에는 참 많은 우연과 선택이 존재하고 또 그런 것들이 삶을 때론 어둡게 때론 밝게 하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재능이 있고 심성도 고왔던 젊은 대학생의 어이없는 죽음이 김경아 씨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 죽음을 죽음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김경아씨는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커서 다섯 명 입양할 거야" 큰 딸의 눈물

▲ 김희은 ⓒ 김지영

희은이를 낳은 고등학생 엄마는 3일 만에 희은이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20일을 넘기고 하루가 지난 어느 날, 김경아씨가 희은이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슴에 품었다. 원래는 아들 입양을 원했지만, 딸인 희은이를 입양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희가 처음으로 시설을 방문하던 날, 가족 네 명이 모두 다 충격을 받았어요. 2층에 신생아부터 시작해서 한층 한 층 올라가는데, 9개월 10개월 된 아이들이 기어 다니잖아요. 우리가, 낯선 사람들이 들어갔는데 애들이 기어서 오는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낯가림도 안 하고. 거기서 24개월까지 있다가 보육원으로 가는 거예요. 애들이 막 걸어와서 안아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저희 부부랑 큰 딸이 압도가 된 거예요.

굉장히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근데 큰 애가 무슨 말로 침묵을 깼냐면. '엄마 나는 커서 다섯 명 입양할 거야.' 이렇게 말을 하면서 펑펑 우는 거예요. 그걸 보고서 제가 이 결정을 미뤘던 거 그리고 망설였던 거 이런 게 너무 미안하고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아이들의 절박함에 비해 나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부터 제가 아주 열심히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된 거예요. 이후 상담 받고 거기서 추천해 준 첫 번째 아이가 희은이였고 저희는 거절할 아무 이유도 없었고요. 신생아를 입양한 이유는 신생아가 예뻐서가 아니라 하루라도 더 시설에 있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많았죠. 그렇게 입양을 하게 된 거죠."

김경아씨는 입양을 결심하고 희은이가 입양되기 전부터 공개입양 가족들 모임에 예비입양가족으로 참석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반편견 입양교육 강사(보건복지부 지원으로 한국입양홍보회가 시행하는 초중고 대학생 대상 입양교육)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경아씨에게 공개입양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희은이와는 어릴 때부터 입양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숨김없이 터놓고 이야기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일곱 살 때 희은이가 했던 충격적인 말이 뭐였냐면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아주고 있을 때였어요. '엄마 우리는 입양가족이 돼서 새로운 가족이 돼서 행복한데요. 날 낳아주신 엄마는 날 떠나보낼 때 얼마나 슬펐을까?' 그래요. 일곱 살짜리가. 제가 그랬어요. '그래 낳아준 엄마는 진짜 슬펐을 거야. 어떤 엄마든 자기가 낳은 아이를 떠나보낼 때 슬픈 거고 절대 잊을 수 없어'라고요.

그리고 이런 질문도 해요. '엄마, 근데 낳아 준 엄마는 왜 나를 못 키웠어요?' 큰애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어요. '희은아 큰 언니 쳐다봐봐. 저 언니가 애를 낳아 키울 수 있겠니?' 지 언니를 쳐다보더니 '안 되겠네' 그래요. 지 언니 '꼬라지'를 보고 이해를 한 거죠. 어린 엄마가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을 거라는 거. 새로운 가족을 만난 행복과 아이를 떠난 보낸 슬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게 입양이라는 것을 희은이가 인지를 한 거죠."

매사에 꾸밈없이 솔직한 엄마를 둔 덕에, 그리고 내리사랑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아빠 덕분에 희은이는 입양에 대한 상처를 잘 극복해냈다. 한때 급속도로 사랑했던 희은이 엄마아빠는 속도는 한참 줄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이제 대학생이 된 큰 언니는 처음부터 워낙 터울이 컸던 터라 딸 같은 동생으로 잘 대해주고 있다. 위로 네 살 많은 둘째 언니는 가끔 희은이 속을 터지게 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래도 봐줄 만은 하다. 이렇게 꾸밈없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희은이가 입양을 얼마나 스스로 잘 소화해 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2학년 학기 초에 단짝이 생겼어요. 걔 나름으로는 처음으로 입양공개를 했어요. 그 친구한테. 그 친구도 가족의 비극사가 있는데 그걸 희은이에게 말했어요. 둘이 비밀 한 가지씩을 공개하고 공유를 한 거죠. 집을 왕래할 정도로 되게 잘 지냈어요. 근데 애들은 싸우잖아요. 그게 회복이 안 됐어요. 상대방 여자애가 얘기를 하고 다니는 거예요. '얘들아 희은이 입양된 아이래. 이상한 애니까 놀지마'라고. 2학기 들어서 한 명 한 명 소문이 늘어나더니 어느 날 희은이가 다른 아이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데 '희은아. 근데 너 입양된 애라고 놀지 말라는데 사실이야?'라고 말을 하는 거죠.

희은이가 그날 집에 와서 펑펑 울면서 뭐라고 했냐면, 입양 사실을 나쁘게 말하는 게 슬픈 게 아니래요. 희은이가 친한 친구한테 말했던 것을 친구가 배신을 한 거잖아요.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거래요. 그러면서 저한테 애들이 입양 사실을 다 알게 됐는데 그것도 잘못 알게 됐으니까 '엄마가 우리 반에 와서 입양수업 해주세요'라고 희은이가 요청을 했어요.

선생님이 날짜를 잡아줘서 걔네 반에서 반편견 입양교육을 했어요. 교육이 성공적이어서 2학년 전 반에 가서 하게 되었고요. 근데 웃긴 게 제가 수업하러 간 날, 희은이 입양사실을 놀렸던 아이는 감기 때문에 결석을 했어요. 그 다음날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멀리서 희은이가 보니까 그 아이가 한 아이를 붙들고 희은이 입양사실을 얘기를 하고 있더래요.

근데 그걸 듣는 아이가 어제 수업을 들었잖아요. '너 왜 희은이 입양사실 가지고 놀리냐, 우리가 수업 들었는데 입양은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말하더래요). 희은이가 그날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엄마 이런 일이 있었다'고 신나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저는 그 사건의 가장 수혜자는 희은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 자기 입양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자연스러워졌어요."

'입양된 아이는 아마 그럴 거야'라는 편견들

▲ 희은이와 엄마 김경아씨 ⓒ 김지영

혈연은 아니지만 다른 보통의 가족과 다름없이 화목하고 밝은 가정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희은이에게 세상은 가끔씩 잊지 않고 편견의 돌을 던진다. 그럴 때마다 희은이는 당장은 아프지만 결국은 말끔하게 상처를 치유해내면서 성장해가고 있다. 물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힘이 있어 가능한 이야기다.

"3학년 2학기 때, 희은이가 체조를 하고 있는 운동부에서 아이들끼리 혈액형 얘기가 나왔어요. 근데 우리는 혈액형을 안 맞췄어요. 공개입양이니까. 희은이도 알고 있죠. 학교 갔다 와서 희은이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얘기를 했는데 희은이 차례가 온 거예요. 거짓말 못하는 희은이가 우리 엄마는 B형 아빠는 O형 자기는 A형이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에이, 네가 잘 모르는 거지, 그렇게 나올 수 없다'고 말하더래요.

희은이가 자기는 입양된 아이라고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를 했대요. 애들이 갑자기 침묵. 그리고 희은이가 말해요. '엄마 신기한 게요. 엄마가 학교에서 입양교육 할 때 엄마한테 애들이 했던 질문을 똑같이 말해요'라고. 그 질문이 뭐냐면 '그럼 학교에 찾아오는 그 엄마가 너 입양한 엄마야?' '그럼 너 진짜 엄마 어디 있어?' 또 '그 엄마가 너 사랑해주셔?' '그러면 너 언니 두 명 있잖아. 그 언니들도 입양했어?' '엄마아빠가 차별 안 해?'"

입양된 아이는 아마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초등학교 3학년이 지니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우리나라 입양문화의 민낯이다. '콩쥐팥쥐' 류의 전래동화나 막장연속극에서 자주 써먹는, 피가 다른 가족의 살풍경한 복수극이 여전히 잘 팔리는 씁쓸한 입양문화다. 하지만 그런 문제에 상처 받지 않고 아이들 시선으로 잘 설명해주는 김경아씨는 역시 희은이 엄마다.

"저는 그런 질문이 학교에서 들어오면 역으로 이렇게 질문해요. '학생은 형제 자매 있나요?', '그러면 엄마아빠가 차별 많이 하세요?' 물어보면 애들이 그렇다고 해요. '내 동생만 좋아해요'라고. 그러면 저는 '부모는 내리사랑이다. 어릴수록 예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을 잘 듣는 애가 제일 예쁘더라. 낳았다고 더 예쁜 게 아니라 어느 날 낳은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걔가 최고로 밉고 입양한 아이가 말을 잘 들으면 너무 예쁘다. 그런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부모자녀관계도 커다란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나랑 잘 맞으면 좋은 거고 안 맞으면 그렇지 않은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질문이 '애들끼리 잘 지내요?' 그런 질문. 거기도 무슨 추정이 있는 거냐면 낳은 아이 둘이 입양한 애를 따돌릴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저는 그러죠. '형제자매 있나요?' 있다고 해요. '항상 서로 잘 지내나요?' 아니래요. '우리도 그렇다.' 그러면 애들이 수긍을 하죠."

희은이가 2학년 겨울방학 때 일이다. 서울시 서부교육청 관할에 있는 운동부서가 있는 초등학교에서 외부 학생들에게 운동부를 개방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근성도 있고 운동신경이 남다르다고 생각해왔던 희은이를 경험삼아 그 프로그램에 참가를 시켰다. 종목은 기계체조. 열흘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감독이 희은이가 재능이 있다고 계속 시켜보라고 했다. 그래 부부가 의논 끝에 희은이는 운동을 시작했다. 2년 전 일이다. 

아직은 이 나라에서 운동을 시킨다는 게 금전으로나 성공할 확률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희은이 부모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재능이 있고 무엇보다 희은이 자신이 그 어려운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희은이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희은이가 원하는 한 운동을 계속 하게 될 거예요. 애가 분명히 권태기가 올 텐데. 뭐 그거는 자기가 극복해 넘어가야 되는 거고. 못 넘으면 할 수 없는 거고. 현재는 굉장히 만족하고 다니니까요."

매 순간 닥치고 마주하는 현실이 항상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입양이라는 상처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에 따르는 사회적 편견의 벽을 가족들과 함께 무너뜨리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고 있는 열두 살 희은이의 밝은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흐뭇했다.

스스로 선택한 기계체조에서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을 구르고 뛰어 넘어야 하는 그 모진 훈련을 2년 넘게 버텨오면서도, 아직도 그 운동이 좋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희은이의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나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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