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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입양을 인터뷰 하다

"가짜 엄마랑 산다"는 놀림...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10만인리포트-입양을 인터뷰하다⑥] 공개입양아 명랑소녀 김하은

15.02.03 08:08 | 김지영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은 김지영 시민기자가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2010년 7월 10일의 기록이다. 딸 소린이가 네 살이었을 때 일이다. 간밤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자러 들어간 방 안에서 소린이와 엄마가 나란히 누워 나누는 대화가 열린 문틈으로 들려왔다.

"엄마. 나 엄마 뱃속에서 나왔지이~?"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이맘때면 나올 수 있는 질문인가? 하던 일은 멈춰졌고, 귀가 쫑긋해졌다.

"응? 으응... 근데 소린아.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거나 엄마 가슴으로 나온 거나 다 같은 거거든. 나중에 소린이 그것 때문에 마음 아파 하지 마. 알았지?"

아내는 소린이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 모를 얘기를 고통스러운 억양으로 내뱉고 있었다. 아직 정확하게 감을 잡지 못하는 소린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엄마. 엄마도 그러지마. 그러면 내가 엄마 눈물 닦아줄게."

알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엄마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린이의 이 말을 듣고 있는데 울컥, 목이 메고 말았다. 

소린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온 아내. 촉촉하게 젖은 눈에 적잖이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좋지? 지금부터 말 해주는 게 좋을까?"
"......"

메인 목에서 말이 나오지 못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상처와 사랑이 공존하는 그 말... '입양'

▲ 하은이와 엄마 ⓒ 김지영

입양이라는 단어에는 태생적으로 상처와 사랑이라는 의미가 섞여서 공존한다. 상처와 사랑은 입양아와 입양 부모 모두에게 숙명이고 운명이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출산이 불가능한 경우든 혹은 나처럼 딸을 원해서든, 자식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그 질박함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입양을 한다.

시작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입양가족들이 지닌 사랑의 총량은 무게감이 비슷하다. 그러나 상처를 대하는 입양가족들의 자세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크게 나누면 공개입양과 비밀입양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공개입양과 비밀입양을 한 부모들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한결같다. 자식을 정말 마음 깊이 사랑하는, 그 단 하나 때문이다.

비밀입양을 하는 부모는, 아이가 지닌 태생적인 상처가 불거지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예쁘고 소중한 내 새끼'에게 그런 상처를 남겨주기 싫은 게다.

반면 공개입양을 하는 부모는 상처를 드러내어 곪아 터트린 후 딱지가 붙고 떨어지면 거기에 씻은 듯 새 살이 돋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전 인생을 봐서는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근본적인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무엇이 옳은지를 여기서 단정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입양 부모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결과다. 그 가치관은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의 성장 과정과 삶의 이력,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입양 문화의 수준과 이에 대응하는 입양 부모의 자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함부로 옮고 그름의 잣대를 댈 수 없는 이유다. 

청주에 사는 하은이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열일곱 소녀다. 난임이었던 김병수(58)씨와 이미숙(52)씨 부부는 결혼한 지 7년이 되던 해 생후 7개월 된 하은이를 공개입양했다. 하은이가 일곱 살 되 던 해 당시 다섯 살이던 진영이(15)를 입양했다.

지난 2014년 11월 24일, 교원대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하은이네 집에서 가족을 인터뷰했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도착했던 터라 진영이는 잠들어 있었고 아빠는 다른 지방에 있는 현장에 출장 중이었다. 인터뷰는 하은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몇 번 엄마의 참견(?)이 있었다.

공개입양아를 직접 인터뷰하고 싶은 바람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이 자리는 공개입양한 내 딸 소린이의 미래가 궁금한 아빠의 사심 가득한 인터뷰이기도 했다. 여기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공개입양아의 입을 통해서 공개입양이 지닌 실체적 진실의 한 단면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입양 왜곡하는 드라마... 어이 없어요"

▲ 인터뷰에 응해 준 하은이. 머리가 부시시하다고 짚업후드를 입고 찍었다. 열일곱 소녀였다. ⓒ 김지영

- 하은이는 몇 살 때 입양됐어?
"한 살 때요. 아기 때."

- 그때까지 어디서 살았는지 알아?
"옥산에 있는 시설이에요. 기억은 못하는데 엄마랑 여러 번 가봐서 저 돌봐줬던 보육사 선생님도 만나보고 그랬어요."

- 언제 처음 가봤어?
"초등학교 3학년 때 가봤어요."

- 네가 가 보고 싶다고 그랬어?
"네. 제가 가 보고 싶다고 그랬어요."

- 하은이는 낳아 준 엄마가 어떤 분인지도 알아?
"그냥... 학생. 고등학생이었어요."

- 벌써 엄마를 찾아보려고 했네?
"네."

- 그래서 찾아서 만나봤어?
"아니요. 아직 못 만났어요. 결혼도 하고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저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다고…."

- 하은이는 처음에 엄마 아빠가 하은이를 직접 낳아 준 부모라고 생각했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입양가족 모임이나 입양아 캠프 그런데 많이 데리고 다녀서 그냥 저도 모르게 (입양사실을) 알았던 것 같아요. 그냥 어느 순간에 알아버린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고 그런 식으로 자주 이야기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큰 부담 없이 잘…."

- 그렇지만 입양이란 게 어떤 건지 어렸을 때는 그 의미를 잘 모르잖아. 하은이가 생각할 때 그걸 정확하게 이해하던 때가 언제였던 것 같아?
"어... 초등학교 3, 4학년 때인 것 같아요."

- 그때 심정이 어땠어?
"4학년 때는 좀 많이 울었어요. 그때 엄마랑 저녁에 잘 때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낳아 준 엄마 보고 싶다고 울면 엄마가 같이 저 안아주시고 같이 울어주시면서 달래주시고... 그런 식으로 계속 하다가 엄마가 (낳아준) 엄마를 알아봐 주셨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셨다고 그랬대요. 그때는 그냥 쉽게 포기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엄마는 제가 상처 입을까봐 그 사실을 천천히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막 슬프진 않았어요."

- 초등학교 3, 4학년 때 그때 낳아 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얼마 정도나 그랬어?
"그때는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게 한 이주 삼주 정도 간 것 같아요."

- 많이 속상하고 그랬겠네?
"네. 그때는 많이 속상했어요."

- 그때 그 심정은 어땠어?
"뭔가 좀 내가 만나고 싶은데 왜 못 만나나 싶기도 하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왜 못 보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서러웠어요."

- 그때 엄마도 많이 속상했겠다.
"네, 엄마도 함께 울고 함께 속상해주시고 같이 찾아봐주시고 해주셨어요. 엄마가 (옆에 앉아 있는 엄마를 따뜻한 미소로 돌아보며) 엄마가 많이 도와 주셨어요."

- 하은이는 그럼 그렇게 가슴앓이를 한 번 한 뒤로는 괜찮았어?
"네. 별로... 학교 다니면서 바쁘다 보니까 별로 신경이 안 쓰였어요. 근데 중학교 들어가서 이제 가족이란 단원이 나왔어요. 거기서 입양이 나오고 도덕 선생님께서 입양 동영상을 몇 개를 보여주셨어요. 그거 볼 때... 애들이 다 알거든요. 제가 입양된 사실을."

- 애들은 어떻게 알았어?
"저도 얘기를 하고요. 5월 11일이 입양의 날이잖아요. 그때 항상 조퇴하거나 빠지면서 행사를 다녀왔어요. 갔다 와서 아이들한테 책자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애들은 부럽다고 하고…."

- 놀리는 애들은 없었어?
"초등학교 때 짓궂은 애가 한 명 있긴 했어요. 가짜 엄마랑 살고 있다고. 그냥 무시하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엄마가 잘 참았다고 그건 걔가 아직 몰라서 그런 거라고 엄마랑 그런 얘기 했던 것도 기억이 나요."

- 근데 네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다른 애들은 알 수가 없잖아?
"어떻게든 알아요. 친한 애한테 이야기를 하면 소문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먼저 얘기 하고 제대로 알려주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 하은이는 사춘기가 언제 왔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와서 중학교 2학년 때가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입양에 대한 상처가 없었어?"라는 질문에는 엄마가 거들었다.

"입양은 거기에 낄 수가 없죠. 그때는 낳아 준 엄마가 나타난다고 해도 안 만날 때지. 친구 때문에. 친구들이랑 더 깊게 지내고 싶을 땐데."

- 지금은 낳아 준 엄마에 대한 생각은 어때?
"그냥 나중에 제가 평범한 어른이 돼서 만나고 싶어요."

-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네. 딱히... 지금 만나자고 하면 튕길래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

- 근데 그거 거짓말이잖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거 아니잖아?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초등학교 4학년 때 못 만난 일이 상처가 되었구나. 안 만나주니까?
"네. 하지만 조금만 그래요."

- 지금도 그때 일들이 생각나니?
"아니요. 그냥 생각이 나진 않아요. 얘기를 꺼내면 생각 나긴 하는데 지금은 얘기해도 슬프지 않아요. 그냥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그게 막 미워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솔직히 드라마에서 입양 얘기 나오면서 복수하는 거 보면 이해가 안 가요.

그거 보면 참 너무 이상하게 입양을 만들어요. 이상해요. 스토리가 너무 어이없어요. 너무 각색한 거 같아서. 솔직히 그렇게 살지 않고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돈 벌어야 되니까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이해가 안 가요."

- 그런 드라마 보면 또 한 번씩 상처를 받는구나?
"네 어이없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나중에 어른이 되고 결혼하면... 저도 입양할래요"

"어른들은 특히나 나이 많은 어른들은 더 입양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잖아. 혹시 그런 경험 있었어?"라는 질문도 엄마가 받았다.

"동네 할머니가 있어요. 애를 엄청 예뻐해요. 예뻐하는데 '너네 엄마 아빠 같은 사람 없어' 대놓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은이가 그래요. '엄마 어쩐지 기분이 안 좋네' 하고... (웃음) 소린이 할머니도 저보고 그래요. '너가 복 많이 받을 것이다'(일동 웃음)."

- 하은이는 워낙 좋은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입양 때문에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어?
"입양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 사춘기 때 말이야. 초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심하게 가슴앓이 하거나 그런 적도 없었어?
"네. 없었어요. 기억나는 건 어쩔 때 입양 동영상 나오면 애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힘들었던 적은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친구들이 '괜찮다', '왜 그러냐', '너는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줬어요."

- 하은이는 입양 모임 가서 또래 아이들 만나면 금방 친해져?
"네. 느낌이 통해요. 뭔가 그게... 만날 같이 있던 사람 같아요. 편안하고. 처음 본 아이도 한 30분 함께 있다 보면 금방 친해져요."

- 하은이는 입양가족 모임이나 행사 같은 데서 힘을 많이 받는구나?
"뭔가... 같이 있으면 편해지고 학교 친구한테도 못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도 있고."

- 초등학교 때도 그랬어?
"네. 입양 친구들 중에 친한 애들이 3명 있는데 자주 못 만나도 진짜 엄청 친해요. 입양 친구들은 꼭 있어야 될 것 같아요."

- 하은이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결혼하면 입양할 거야?
"네. 당연하죠."

- 왜?
"그냥 하고 싶어요. 어떤 입양가정 애가 그랬대요. '엄마, 한 명은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재미있을 것 같아'라고요. (일동 웃음) 근데 맞는 말 같아요."

- 하은이는 뭘 잘해?
"저는 시 낭송요. 글 쓰는 것도 좋아 하고 재미있어요."

- 하은이는 지금 최고의 관심사가 뭐야?
"고등학교요. 정말 가고 싶은 학교거든요(인터뷰 당시 하은이는 경쟁률이 세다는 강원도에 있는 대안학교에 면접까지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 학교 말고 다른 건?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입양되었다고 해서 특별하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방식으로 가족이 된 거니까요."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하은이가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일등경제 으뜸청주 만들기 그림 글짓기 대회'에 나가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쓴 입양에 대한 글이 청주시장상에 당선되었단다. 그리고 이어 며칠 뒤 그토록 가기 원하던 고등학교에도 합격되는 겹경사가 있었다.

공개 인터뷰할 수 있기까지... 딸만큼 아팠던 엄마

▲ 김하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수시로 옆에 앉은 엄마를 행복한 눈으로 확인하곤 했다. ⓒ 김지영

이미숙씨가 하은이를 입양하면서 공개입양을 선택했던 데는 그녀의 복잡했던 가족사가 한몫했다고 말했다. 결혼한 후였다. 대학 1학년이었던 배 다른 동생이 있었다. 내 부모 내 피붙이가 아니어도 한솥밥 먹으면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다.

어느 날 신혼집에 찾아 온 동생이 술을 먹고는 폭풍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동생은 누나인 이미숙씨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에야 '자신과 누나의 엄마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누나와 엄마가 다르다는 사실에,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자신과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이의 제사인지 알았을 때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말이다. 이미숙씨가 입양을 마음 속으로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때 동생이 울면서 그럴 때 입양은 숨길 수가 없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설계도를 나름대로 그린 거죠. 내가 아이를 입양을 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공개입양이 뭔지 그런 말조차 모를 때예요."

하은이를 입양하고 이미숙씨는 방송을 통해 알게 된 공개입양가족 모임(한국입양홍보회)을 직접 찾아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지금의 하은이를 있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은이도 하은이를 기른 엄마인 이미숙씨도 그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데 '연대'라는 가장 슬기로운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하은이는 보통 친구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하고 각별한 우정과 사랑을 입양 친구들과 서로 나누고 있었다. 이미숙씨도 입양부모들의 모임에서 하은이와 같은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지금 이렇게 웃으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하은이가 있기까지 하은이와 하은이 엄마가 함께 쏟아야 했던, 계량할 수 없는 눈물의 양을 말이다. 하은이의 상처가 방치되거나 외면되지 않고 곪아 터트려지고 딱지가 붙었다 떨어지고 다시 생살이 돋는 동안, 이미숙씨는 똑같은 어쩌면 몇 배나 더 큰 아픔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는 걸 말이다.

인터뷰를 마친 시간은 이미 새벽 세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기 위해 냉기 뻗친 거리에 섰다. 아직 하늘은 먹장이었지만 곧 동이 트고 아침이 올 시간이기도 했다. 소린이는 틀림없이 포근한 엄마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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