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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입양을 인터뷰 하다

"풀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의문... 아이들이 안타깝다"
[10만인리포트-입양을 인터뷰하다⑤] 나주 이화영아원과 강은숙 원장

15.01.27 18:38 | 김지영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은 김지영 시민기자가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생 후 한 달. 영아원에서 삶이 시작되었다. ⓒ 김지영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전라남도 광주로 넘어가야 했다. 나주에 있는 영아원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짙은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버스에 올랐다. 도착하면 자정이 넘는 시간이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인터뷰는 영아원 원장과 할 예정이지만, 정작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 시설에 살고 있을 아이들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동물 중에서 보육기간이 가장 긴 동물은 호모사피엔스다. 자라서 독립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가장 길다는 말과 같다. 그 기간 피보호자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헌신적인 보호자다. 인간의 경우 대체로 낳은 부모 아래서 배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눈물겨운 지극정성을 다 받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이전 10년 동안 매년 적게는 5천여 명에서 많을 때는 8천 명에 가까운 아이들은 낳은 부모가 있는 가정이 아니라 유사가정과 시설로 들어가게 된다. 그 중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들은 적게는 1800여 명에서 많게는 4400여 명에 이른다.

▲ 영아원에서 사는 아이. 다섯 살까지 생모가 데려가지 않거나 입양이 안되면 보육원으로 가야 한다. ⓒ 김지영

그 곳에서 아이들은 적절한 보호는 받지만 배타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지극 정성한 보호는 받지 못한다. 그건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러기 싫어서가 아니라 시설이 지니는 한계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좋은 성품을 지닌 원장도 대신 할 수 없는 게 엄마아빠가 있는 가정이라는 것을.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는 매년 43만여 명에서 49만여 명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전체 출생아 중 0.5%에서 1% 사이의 아이들은 가정이 아닌 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이 통계는 불행하게도 호모사피엔스가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통계다.      

예상대로 버스는 자정을 넘겨 광주에 도착했다. 터미널 안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고 집이 광주라는 영아원 원장의 차를 낯선 아침 낯선 거리에서 기다렸다. 전날, 나주에 있는 영아원까지 동행하기로 약속했었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 사람들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도 시설과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분주히 움직였다.

일반 가정집과 다를 게 없는 영아원

▲ 이화영아원 전경. ⓒ 김지영

전라남도 나주시 보산동에 위치한 이화영아원은 신생아에서 만 5세까지의 영유아 50명을 보호하는 대한사회복지회 소속 아동복지시설이다.

나주에서 목포 방향으로 십여 분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 외곽에 있지만 최근에 신축한 건물은 시내에서나 볼 수 있는 3층 빌라 형식의 외관이었고 내부도 일반 가정집과 똑같은 배치를 하고 있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구성만 아니면 일반 가정집과 다를 게 없었다. 강은숙(53) 원장은 이 영아원에서만 30여 년을 근무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 건가요?
"크게 봐서 두 경우예요. 미혼인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기로 했는데 당장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안 돼서 일시적으로 위탁하는 형식이 대부분이고요. 아예 친권을 다 포기하고 입양동의서까지 작성한 입양 대상 아이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데려가겠다는 부모 중 절반 이상은 곧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요."

- 그런 아이들은 입양도 못 시키고 여기 시설에서 계속 머물겠네요?
"계속 있기는 어려워요. 입양 대상 아동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5세까지 있다가 생부모가 데려가지 않으면 큰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으로 옮겨가야 해요. 학교 다닐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 가서도 18세가 지나면 독립해서 나가야 해요."

- 아이들 부모에 대한 많은 사연을 접했을 텐데요?
"주로 미혼 부모가 많죠. 나이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이고요. 직업은 주로 아르바이트에요.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거죠."

- 어린 부모라면 그 가족이 책임지려 하지 않나요?

"그런 경우는 여기 들어올 필요가 없지요. 여기 아이들 부모는 자기 앞가림을 못 하는 형편인데 그 가족에게 어린 부모의 아이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죠. 여기 부모들은 특징이 있어요. 이혼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혼한다고 다 잘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느 쪽이든 부모가 역할을 못 하는 거죠. 자라면서 관심과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당연히 또래 적응이 안 되고, 학업도 문제가 생기고, 자동으로 중도탈락이 되는 거죠. 그러면 가출해요. 이건 공식이에요. 부모 이혼에 이은 부적응과 가출. 여자라면 바로 성에 노출이 되고 아기를 가지게 되는…. 낳아서는 다른 결정을 하잖아요. 양육과 입양으로요. 이유는 같아요. 나와 같은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같은 이유로 어떤 엄마는 양육하고 어떤 엄마는 입양을 보내요. 그런 결정은 아마 생모의 자라온 환경과 개인적인 경험에 달려 있죠."

-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양육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뭔가요?
"여건이 좋아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다 비슷하죠. 여전히 여건은 안 좋은데 내가 힘들게 자랐으니까 이 아이는 절대로 그렇게 안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공통으로 해요. 입양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엄마 아빠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고요."

- 우리나라 아동보호 정책이 원 가정 위주로 바뀌고 있잖아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도 그렇고 이게 흐름이고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긴 한데 정책적으로 그렇게 해도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는 계속 발생할까요?
"저는 그렇게 판단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똑같은 이유로 아이의 운명이 정반대로 바뀌잖아요. 그런 엄마의 자라온 환경과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나라가 양육을 전폭 지원해도 그런 환경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강한 엄마도 있는 거죠."

"자기 뿌리 확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

▲ 이화영아원 강은숙 원장. ⓒ 김지영

- 아이들이 다섯 살 때까지 있다고 했는데 그 전에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입양해서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나요?
"지금은 입양되는 경우가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다른 시설로 전원되는 한계가 있어요."

-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인가요?

"입양특례법 이전에는 대개가 갔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많이 바뀌었죠. 법 이전에 입양 가던 35% 정도만 입양을 갑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남자 아이거나 발육이 느리거나 장애가 있으면 입양이 안 되고 간혹 아무 이상이 없는 경우에도 입양을 못 가는 경우가 생겨서 많이 안타깝죠. 특히 남자 아이들이요. 요즘은 여자아이를 선호하는 게 뚜렷하게 보이는 현상이에요."

입양 대상에 대한 여아선호는 입양특례법 이전부터 있어 왔던 현상이었다. 2012년 8월 시행된 입양특례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과거 입양부모와 입양기관이 중심이 된 신고제가 법원의 허가제로 바뀐 것이 첫째다.

둘째는 출생 신고다. 입양을 보내기 위한 필수 서류에 출생신고를 통한 가족관계등록이 포함되면서 많은 미혼모들과 가족들이 이를 꺼리게 된다. 이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신생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와 연계해서 나타난 또 다른 부작용이 주로 인터넷을 통한 불법입양이다.

마지막 세번째 특징은 입양숙려기간제 도입이다. 출생 후 일주일 동안 입양을 보낼 수 없도록 하고 좀 더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입양특례법에 대한 문제는 추후 다른 지면에서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 5살 이후에 보육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양육 의사를 밝힌 부모들한테 연락하지요?
"하지요. 그런데 일단 맡겨 놓으면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엄마들도 아기를 낳을 때는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커요. 본능적인 거니까요. 아이를 맡겨 놓는데 핸드폰 요금도 못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요. 이런 상황에서 설사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제대로 양육이 될 거냐는 문제도 있는 거죠. 이 일을 30년 해왔는데 가장 무서운 현상이 이런 문제죠. 생모 대에서 끝나야 하는데 대물림된다는 거죠."

- 여기는 비교적 시설이 좋아 보이는데요. 가정 같은 분위기라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긴해요. 그래도 부모 밑에서 지내는 것과는 좀 다른 면이 있겠죠?
"가정에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잖아요. 저희 아이들은 보육사를 엄마라고 불러요. (주로 여성들만 근무하다 보니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도 대상도 없죠. 다행히 우리집 식구라는 개념은 알죠. 또, 같이 있는 아이들이 형제가 아니란 것도 알아요. 아이들은 수시로 엄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커가야 하는데 한쪽만의 사랑으로 자란다는 게 한계죠." 

- 원장님은 아이들이 빨리 입양되기를 바라시겠네요?
"저는 시설을 운영하기 때문에 시설 보호의 한계점을 알아요. 필요한 아이에게 시설이 좋은 점은 있지만, 부모하고 같이 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해요. 원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나만 봐달라'고 '나를 좀 봐주세요'라고 하잖아요. 시설에서는 한 보육사가 네 다섯 명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데 가정은 다르잖아요. 어차피 생부모 품으로 못 갈 상황이면 차선책으로 입양이라도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죠. 지난 30년 동안 그 생각으로 일했어요."

- 입양과 관련해서도 많은 일을 하시는 걸로 들었는데요.
"모든 입양아동은 자기의 뿌리, 역사를 알고 싶은 기본 욕구가 있어요. 저는 거기에 초점을 뒀어요. 아이들이 언제든지 여기 와서 자기 뿌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했거든요.

2001년에 시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해외로 입양 간 아이들 중 매년 두 명을 초청해서 3주 정도 여기에 머물다가 가요. 나이가 보통 열아홉에서 스물다섯 내외인데 지금까지 스물아홉 명이 왔다 갔어요. 반응이 좋아요. 설령 생부모를 못 만났어도 와서 자기 후배 같고 동생 같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시설을 보고 아이들 지내는 것 보고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요.

나도 이렇게 자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잖아요. 입양을 갔던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하고요. 여기 어린 엄마들(영아원과 함께 미혼모자시설도 함께 운영중이다)이 있잖아요. 나를 낳아 준 엄마는 아니지만, 간접 경험을 하는 거죠. '이 엄마들 보니 입양을 보낼 때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내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진짜 마음이 아팠겠구나'라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죠.

이런 식으로 아이가 자기 뿌리를 직접이든 간접이든 확인을 하는 행위가 굉장히 중요해요. 자아정체감 형성에 아주 좋은 도움이 되거든요. 입양아동이나 시설아동은 자아존중감이 낮아서..."

 2003년부터 '낳은엄마 기른엄마 열린프로그램' 시작

- 왜 그럴까요?
"자기를 모르니까. 자기 뿌리를 모르니까요. 아무리 입양부모가 잘해줘도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생모에 대한 의문이 있는 거죠. 일하면서 그런 안타까운 상황들을 자주 목격하고 또 아이들 심정이 되어 생각을 하다가 생모와 입양모가 만나는 일명 '낳은엄마 기른엄마 열린프로그램'을 2003년부터 시작을 했어요. 당시에는 공개입양도 잘 모르던 때라 국내에 일으킨 반향이 컸죠."

국내에서 공개입양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중반부터다. '낳은엄마 기른엄마 열린프로그램'은 이전 비밀입양에서 진전된 공개입양을 뛰어넘어 입양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개방입양에 대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입양선진국은 생모와 입양가족의 만남과 교류가 당연하게 인식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공개입양조차도 상식이 되지 못한 실정이다.

- 실제 낳은 엄마 기른 엄마가 만난 사례가 있나요?
"2014년까지 11년 동안 100건이 넘어요."

▲ 미혼모들이 남긴 기억들. 입양아들이 훗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화영아원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기록을 만들고 보관한다. 아이들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김지영

- 외국 개방 입양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우리는 미혼모가 태교 할 때 만들었던 배냇저고리, 일기장 이런 것들을 입양 갈 때 줘요.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설령 아이들이 나중에 생부모를 못 만나도 내가 세상에 귀한 존재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잖아요. 우리는 심지어 보육일기도 다 써서 개별적으로 정리하고 보관해 둬요.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보면 표정이 편안해지고 달라져요. 평생을 안고 온 궁금증이 풀리는 거죠."

- 앞서 시설에서 크는 아이들의 한계에 대해 말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시설에서 크는 아이들 한계가 뭐냐면 가장 특징적인 게 정서적으로 불안하다는 거예요."

- 시설에 계시면서 사명감이 더 많아지셨나요?
"당연히 그래야죠. 굉장히 중요하고요.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일은 한 아이의 전 인생이 달려있는 문제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밤낮없이 일할 때도 있어요."

- 원장님 혹시 가정이 있으세요?
"시설에 있는 50명이 모두 제 아이들이에요. 저는 미혼이에요."

- 아이들 입장에서는 원장님이 미혼이신 게 다행이네요.
"일 할 때는 그럴 수 있겠지만. 눈에 안 보이는 단점도 있겠죠. 저도 사람인데..."

인터뷰를 마치고 강은숙 원장은 나를 공항까지 차로 바래다주었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훌쩍 넘어가, 집으로 돌아가는 제주행 비행기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강은숙 원장은 영아원 한쪽 공간을 놀이치료시설로 바꾸고 있었다.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심리치료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30년 시설 운영 경험의 소산이었다. 아직 미혼인, 어쩌면 아이들 때문에라도 끝까지 미혼일 강은숙 원장은 지금 놀이치료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는 중이다.

영아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시설하면 떠오르던 그늘지고 어두웠던 마음을 강 원장과 이야기하면서 많이 거두어들인 덕분이다. 그 덕에 여유 있게 비행기에 올라탔고 가뿐하게 하늘로 치솟은 비행기는 포물선을 그리며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하지만 한동안은 시설에서 본 어린 아이들 얼굴이 떠오를 때면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세상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 날 때부터 결핍을 원죄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가엾은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의 그런 결핍된 마음이 부디 아이들의 전 인생 안에서 치유되고 회복될 그런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미니 인터뷰] 보육사 진영화씨(32) 
▲ 다섯 아이들의 젊은 엄마 진영화씨. ⓒ 김지영

강은숙 원장과 인터뷰를 하기 전 시설을 먼저 둘러보다가 진영화씨가 있는 방을 촬영했다. 아이를 키우는 보육사라고 해서 노련한 기혼여성을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젊은 여성이 아이들 다섯을 돌보고 있었다.

- 이 일을 하신 지는 얼마나?
"2009년 9월에 입사했어요. 첫 직장은 아니고 청소년 수련관에서 근무하다가 오게 되었어요."

- 사회복지사예요? 아니면 보육교사?
"둘 다 가지고 있어요. 대학에서 전공은 사회복지를 했어요."

- 근무는 어떻게 하세요?
"여기는 시외라서 교통이 안 좋아서요. 48시간 근무하고, 48시간 쉬는 방식이에요. 다섯 명 아이들을 두 명이서 교대로 돌보고 있어요."

- 힘들지 않으세요?
"영아들 돌보는 게 쉽지 않아요. 우유를 줄 때도 꽂아주지 않고 아이를 안아서 수유해요. 그러다보니까 2년 정도 수유하면 직업병이 생겨요. 허리가 아프고..."

- 삼십대 초반 미혼 여성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한다는 게 요즘 사회풍토로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제 생각으로는 할 사람은 하고 아닌 사람들은 초반에 왔다가 못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 지금 돌보고 있는 아이들은 연령이 어떻게 돼요?
"40개월, 24개월, 15개월, 5개월, 1개월 이렇게 다섯 아이들이에요."

-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죠?
"네, 직접 키우는 보육사에게는 엄마라고 하고 나머지 분들한테는 이모라고 해요."

-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아플 때요. 애들이 아프거나 제가 아플 때. 제가 아플 때는 평소에 해주는 것만큼 못해 주게 되는 것 같아서 힘들고요."

- 시설 말고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아이들이 말 안 듣고 그러면 혼도 내고 매도 때리고 그러잖아요. 아이들 키우다 보면 그런 상황들이 있을건데요?
"말로 해주려 노력해요. 방마다 섞여 있다 보니까 아이들이 말을 잘 못하더라도 눈으로 보는 게 있어서 큰 아이한테 하는 걸 보면 '아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구나'라는 거를 어느 정도는 아는 것 같아요."

- 보통 한 아이하고 함께 생활하는 기간이 얼마나 되죠?
"입양특례법 이후로는 거의 일 년 가까이 보게 되는 경우들이 많고요. 그 전에는 2,3개월 만에도 아이들이 바뀌고 그랬어요."

진영화씨는 말도 또박또박 잘 하고 인상도 야무져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글쎄 이 질문이 나오고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눈물부터 쏟아내고 만다.

- 아이들하고 살 맞대고 비비고 부대끼면서 지내다가 입양이나 (보육원으로) 전원 갈 때 헤어지잖아요?
"그 때가 제일 슬픈 것 같아요. 2교대를 하다 보니까 아이가 갈 때는 제가 근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대답을 끝내고도 울음이 그치지 않아 기다려야 했다. 인터뷰 진행이 어려울 만큼 그녀는 울었다.

- 생각만 해도 힘들고 슬프신가 봐요?
"(울음) 네... 어린아이 보내는 것보다 큰 아이 보내는 게 더 슬픈 것 같아요. 어린 아이는 잘 모르잖아요. 울음으로만 표현해서 잘 모르는데 돌이 넘어가면 감정표현까지 다 되니까 그게 보여요. 그리고 아이가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 감정적인 걸. 자기가 언어표현 하는 게 한계는 있겠지만 표정이라든지 그런 걸 보면 아이가 어떤 마음이겠구나, 라는 걸 느끼니까요." 

가뜩이나 어린이집 폭력 문제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들이 그럴 수 있는 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서다. 내가 아프면 타자도 아프다는 간단한 이치가 그 인간들에게는 간단하게 입력되지 못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나 편하게 돌아가야 하는 게 그런 인간들의 간단한 이치다.

편하게 책상에 앉아 키보드 두드리는 일 대신 나흘 중 꼬박 이틀을 다섯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살고 있는 서른한 살 미혼 진영화씨. 그녀의 소중한 선택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순전히 이별의 순간을 묻는 질문에 그녀가 쏟아낸 눈물의 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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