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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사냥꾼의 사회가 '미생 열풍' 낳았다"
[이 사람, 10만인] <예술로 만난 사회> 책 펴낸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14.12.08 10:30 | 한혜미 쪽지보내기|김병기쪽지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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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인리포트 인터뷰 중인 김호기 교수. ⓒ 한혜미

"우리 사회 20~30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구조조정 등이 일상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사냥감이 되지 않으려면 사냥꾼이 돼서 사냥감을 찾아야 하는 '사냥꾼의 사회'가 우리의 생얼이다. <미생> 열풍은 이런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미생>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사냥꾼의 사회'로 내몰린 사람들의 공감과 공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예술로 만난 사회: '파우스트'에서 '설국열차'까지>(돌베개)에서 <미생>을 다루지 않았지만 만화부터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사진과 영화 등 모든 예술은 그 시대의 절박한 사회상을 담고 있다.

그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창립 초기부터 회원으로 가입한 장기후원자이다. 지난 1일 첫눈이 오던 날 서교동 마당집을 방문한 그가 활짝 웃으면서 친필로 사인한 <예술로 만난 사회>를 건넸다. <주간경향>에 1년간 연재했던 예술 에세이집이다. 타자기 사진을 책 표지에 담은 게 인상적이다. 다른 10만인클럽 회원에게 그의 뜨끈뜨끈한 책 소식을 알릴 요량으로 1시간여 동안 마주 앉았다.

- 딱딱한 사회학자와 말랑말랑한 예술 에세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
"많은 사람이 시간이 날 때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나 역시 그렇다. 예술은 사회와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 사회, 넓게는 세계 사회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사회학자의 일이다. 그러니 훌륭한 조합이다.(웃음)"

책을 펼쳐보니 그의 말을 증명하듯 예술 속에 사회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는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 시, 소설,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 50편을 소개하면서 공동체, 다원주의, 신자유주의, 공감, 꿈 등 5개의 사회학적 키워드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갔다. 그는 유년 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 대학 강당에서 느꼈던 소회 등을 툭툭 던지면서 고리타분할 것 같은 강단의 사회학을 시민의 눈높이로 끌어 내렸다.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키워드와 대표 작품을 꼽아달라고 요청해서 재구성했다.

▲ 김호기 교수는 "경쟁 논리가 공동체의 연대적 자원과 가치를 크게 훼손시켜왔다"고 강조했다. ⓒ 한혜미

[키워드① 공동체]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공동체란 보수의 가치이자 진보의 가치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은 보수의 가치이지만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꿈은 진보의 가치다. 그런데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논리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다.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과도한 경쟁의 논리다. 이런 경쟁 논리가 공동체의 연대적 자원과 가치를 크게 훼손시켜왔다. 그렇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무엇이 우리 사회 새로운 가치가 되어야 할까?

'그래, 제발 같이 좀 살자!'

이런 맥락에서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시선집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를 소개했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도입부)

공동체의 첫 출발은 타자에 대한 발견과 성찰이다. 일상 속에서 항상 부딪치는 타인을 '지옥'처럼 생각하는데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타인이야말로 '구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게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가 던져주는 핵심 메시지다. 농부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펴냈는데, 공동체의 가치는 재미를 넘어 우리에겐 의무다."

[키워드② 다원주의] 진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매학기 '진보와 보수'라는 교양강좌를 열어 좌파와 우파의 이념 구도를 가르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 제대로 된 보수 대 진보 논쟁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념 논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까닭은?
"보수와 진보 모두 책임이 있지만, 먼저 '철학 없는 보수'를 주목하고 싶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 성장, 시장, 공동체 등인데, 한국의 보수는 자기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세력으로만 존재한다.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철학이 없다. 그래서 제대로 된 논쟁이 불가능하다."

- 진보는 어떠한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존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바뀌어야 한다. 변화된 상황에 맞는 정책 대안을 내놓고 보수와 경쟁하기보다는 아직도 민주 대 반민주의 관성적 사유에 머물고 있는 게 진보의 문제다."

그는 말을 이었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직선으로 달려왔다. 그래서 다원주의가 취약하다. 사람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인데,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여전히 허약하다. 다원주의의 상상력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소설인데,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일 수도 있다. 진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 수도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메시지다.

무엇이 우리 사회의 중심 가치가 돼야 할까. 노동, 환경, 양성평등, 소수자 인권 등 모두 소중한 가치다. 하나의 잣대로 사물과 현상을 평가할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봐야 하며, 서로 다른 개인들이 가진 생각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기존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김호기 교수. ⓒ 한혜미

[키워드③ 신자유주의] 이명박과 박근혜는 록그룹 U2 노래 들어야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국내시장 개방이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그 뒤에 다른 나라는 포스트(post) 신자유주의로 나아가고 있는데, 최근 우리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이라는 토건 정책을 펴면서 감세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걸었지만 경제 영역에서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최근 최경환노믹스를 통해 경기부양을 강조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경제 모델을 모색하는 데 반해 우리사회가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문제를 되돌아보려고 독일 유학시절에 즐겨 들었던 아일랜드 출신의 록그룹 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소개했다. 80년대 후반에 독일 대학은 68혁명의 분위기가 퇴조하고 신자유주의가 고조돼 혼란스러웠는데, 이 곡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양극화로 치닫는 황량한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놓인 젊은 세대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모았다."

[키워드④ 공감] 고독했던 고흐, 그는 바로 나와 우리다

▲ 1889, Oil on canvas,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 Gogh

"여기 낯익은 미술 작품 한 점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고흐가 좋아했다는 큰 사이프러스 나무를 배경으로 한 푸른색 바탕의 밤하늘에 자유롭게 춤추는 달과 별. 고흐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쓸쓸한 마음이자 이 쓸쓸함을 견디려는 자기의지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자아의 쓸쓸하면서도 살아있는 내면 풍경을 담으려는 고흐의 그림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나만 쓸쓸한 게 아니었구나! 고흐도 그랬구나!'

우리는 왜 시나 소설을 읽거나 미술작품을 관람할까? 공감을 얻기 위해서다.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기 위해서다. 공감은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와 정의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가 연대인데, 연대의 출발은 공감이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을 '공감하는 존재'(homo emphaticus)로 파악했다."

[키워드⑤ 꿈] 불안한 미래, 불길한 상상

"학문과는 차별화되는 예술의 고유한 특징은 상상력이다.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는 힘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머리칸과 꼬리칸으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계층 체제, 뿐만 아니라 열차 밖에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불편하고 불안한 미래를 상상해 보면서 현재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그 상상이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두 명의 사회학자를 떠올렸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다. 베버는 과학기술과 관료제가 자유로운 정신을 규제하면서 비인간화를 초래하고 결국 인간 정신을 '쇠 우리'에 가둘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윌러스틴은 자본주의의 우울한 전망을 내놨는데, '20대 80 사회', '1대 99 사회'라는 계층화된 질서가 강화돼 새로운 봉건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설국열차>는 예술적 영감으로 두 학자가 우려했던 사회를 그리면서 우리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50편의 작품 중에 2014년 12월,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곱씹어 볼 수 있는 3편을 꼽아본다면?
"존 스타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 사회 하층 계급들이 가졌던 기존 체제에 대한 분노를 담은 작품인데, 최근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세대, 고령세대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세대에 관통하는 기본 코드는 불안이다. 불안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의 제목을 알리는 잘 알려진 구절을 읽어보겠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임옥상 미술연구소에서 만든 전태인 반신상이다. 청계천 5가 평화시장 앞에서 청계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전태일. 1970년 당시 열악했던 노동현실에 저항해서 분신한 청년 전태일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등의 문제가 산적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에 미래가 있는가? 전태일 반신상의 두 다리는 청계천 다리를 받쳐주는 것이자 세상의 다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의 연대성이 공존하는 바람직한 사회로 가려면 노동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괴테의 <파우스트>를 꼽고 싶다. 근대문학에서 시대정신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대정신은 특정한 시대에 시민들이 공유하는 생각과 가치의 총합인데, 괴테는 프랑스 대혁명을 목격하면서 <파우스트>를 통해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을 그렸다. 지금 우리 사회가 새롭게 추구해야 할 시대정신은 뭘까? 더불어 사는 공동체였으면 한다. 이를 위한 핵심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주장한 것인데, 집권세력이 무책임하게 버렸다. 이를 견제하기엔 야권의 역량이 너무 취약하다."

▲ 김호기 교수는 10만인리포트 인터뷰에서 "정보화 시대의 복지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혜미

분노의 포도가 익어가고 있다

- 그럼 어떻게 시대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보나?
"개인과 제도의 이중혁신이 필요하다. 제도혁신의 핵심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新)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포스트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모델을 구체화해야 하는 제도적 과제가 있다. 정보화 시대의 복지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도 변해야 한다. 지금 자기 이익을 배타적으로 극대화하려는 욕망의 정체성이 팽배한데, 생명과 가치, 그리고 연대를 중시하는 '살림의 정체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이런 제도와 개인의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과 새로운 시민적 정치주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50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연분홍 코스모스를 안고 가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일을 하시거나 쉬실 때 장세정이 불렀던 트로트 <울어라 은방울>을 더러 흥얼거리시곤 했다.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한 어머니에게서 나는 삶의 '구체적 지식'을 배웠다. 내가 딸에게 많은 풀과 꽃, 나무 이름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다 어머니의 덕택이다. 나는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등 추상적 지식을 쌓았는데, 어머니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구체적 지식을 알려주셨다. 내게는 더없이 애틋한 글이다."

▲ 10만인리포트 김호기 교수 인터뷰 사진 ⓒ 한혜미

마지막으로 그에게 왜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매달 <오마이뉴스>에 월정액을 후원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삶은 이 땅 많은 젊은이들의 삶이다. 직장, 다시 말해 노동 현장은 누구에게나 삶이 갖는 또 하나의 소우주이다. 꿈과 좌절,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 등은 새삼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불안한 노동의 미래에 대한 공감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분노의 포도'가 익어가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런 상황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한데, '미생'의 사회가 '완생'의 사회가 되려면 위기의 노동시장 개혁을 포함한 제도와 개인의 이중적 혁신이 필요하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시민참여 저널리즘을 추구하면서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오마이뉴스>의 노력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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