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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

아버지 폭력에 맞선 죄, 소년만 감옥 가라고?
[10만인리포트-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 ⑧] 런던에서 온 김태현군 탄원서

14.11.11 08:17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는 한국여성의전화(http://www.hotline.or.kr/)와 함께 진행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 자료사진. ⓒ sxc

수의 입은 15살 소년을 보는 일도, 철창을 사이에 두고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도 힘겨웠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자기 감방으로 돌아갈 때 소년은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봤습니다. 뭔가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교도소 면회를 마친 뒤 머리가 멍했습니다. 한동안 대기실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니 5만 원이 나왔습니다. 모두 소년의 영치금으로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계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찾아온다고 했던가요. 교도소의 단풍도 절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교도소를 걸어 나오며 자문했습니다. 

"엄마가 자살하고 아이가 폭력 속에서 자라는 동안 국가는 한순간도 도와주지 않았다. 지금 저 아이를 잡아 가두고 단죄할 만큼 이 국가는 정의롭고 떳떳한가?"

질문은 여전히 머리에서 맴돕니다. 15년 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아버지를 망치로 때려 '존속살해미수'라는 죄명을 짊어진 김태현(가명·15살)군. 엄마 역시 가정폭력 등의 이유로 6년 전 자살했습니다. 한 사람이 죽고, 15살 아이가 망치를 들 때까지 국가와 공동체는 도대체 뭘 했을까요? (지난기사 보기)

국가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아이와 그 엄마가 아버지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는 걸 이웃과 가정상담 기관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경찰 역시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태현이는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제가 맞을 때 경찰들이 여러 번 왔었지만 사진만 찍어가고 해주는 건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저를 분리해줬다면, 제가 여기(교도소) 있지도 않을 텐데요." (지난기사 보기)

태현군 소식을 듣고 많은 누리꾼과 독자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슴으로부터 깊은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사연입니다. 아이는 국가가 같이 키워야 하는, 이 나라의 큰 자산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켜주세요, 이 아이를." - 와프리

"이 사건의 본질적 책임은 이들 무책임한 방관자들, 나아가 대한민국이 져야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일 뿐인 가여운 태현이에게 죄를 물을 자, 그 누구란 말인가." - 한수

"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어른들이 좋은 시스템을 못 만들어준 잘못을 아이가 지다니요!" - 메아리

▲ 김태현이 수감된 경남의 한 교도소 진입로. 가로수 잎이 물들어 떨어지고 있다. ⓒ 박상규

전화와 이메일로 구명 방법을 묻거나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문의하는 사람들도 이어졌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나서 체계적인 구명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태현이의 상처에 공명했습니다. 

지난 8일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교민 김나나(33)씨가 이메일로 김태현군을 위한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김씨는 이 글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사회가 약자의 피해를 예방해주기는커녕 15년간 이 아이를 폭력에 그대로 방치하였고, 이로 인해 15세에 불과한 아이가 존속을 향해 자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태현군의 어린 시절을 빼앗았고 폭력으로 물들인 후 이제 그에게 '존속살해미수범'이라는 이름을 지워 미래마저 빼앗으려 합니다. 15년간 약자의 보호장치로는 작용하지 않던 사회 시스템이 단 1회의 가해에 대한 처단에는 갑자기 작용한다면 일반국민들은 사법기능에 대한 신뢰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김나나씨는 한국에 "약자를 위한 보호장치로서의 실질적 법률이 존재하는지"를 묻습니다. 김씨의 글은 우리 사회가 김태현군에게 죄를 물을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김나나씨는 '단 1회의 가해'라고 표현했지만, 경찰 등은 김군에게 이전의 폭력행위 등도 문제 삼아 총 네 건의 혐의를 적용했다.)

김씨의 동의를 얻어 탄원서 전문을 공개합니다. 조심스럽게 일독을 권합니다. 김태현군 사건 재판은 오는 14일부터 시작됩니다.

"약자인 학생을 보호하는 법률은 존재합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런던에 거주하며 컨설팅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33세 대한민국 국민 김나나입니다. <오마이뉴스>와 <다음> 뉴스펀딩에 11월 4일, 11일 연재된 15세 김태현(가명)군의 재판 소식을 듣고 멀리서 탄원서를 보냅니다.

많은 국내 법률가 분들이 독일, 영국 유학을 거치시기에 익숙하신 내용이겠지만, 서양의 법률은 강자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해서라기보단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화되었습니다. '강자', '약자', '권익', '권리', '보호', 모두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정의와, 집행력, 집행 수단이 달라질 수 있기에 유럽 국가의 사법부도 지속적으로 사회와 교류하며 법적 장치와 프로세스의 수정을 위해 노력합니다.

김태현 학생의 사건에서 태현군이 약자임에도 이를 위한 보호장치로서의 실질적 법률이 존재하였는지,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는지, 피의자 김태현군에 대한 법률은 그 수사의 집행 수단과 방법에서 적절하였는지를 재판과정에서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1. 사회적 예방 기능의 실패

여러 번 경찰이 찾아왔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학생의 진술, 쉼터를 찾아가고자 했지만 홀로 길을 찾지 못했고 누군가 데려다 줬다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술에, 우리 사회는 이 학생이 본 재판을 앞두기까지 사회적 기능을 다 하였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회적 시스템에 오류가 있었고 이것이 '시계도 못 보던 나이'의 아이가 청소년이 되기까지 엄마도 없이 홀로 폭력에 노출되는 가정에 남겨졌다면, 이 학생의 행동에 사회의 책임을 어찌 외면 할 수 있겠습니까?

2. 피의자 권익보호 기능의 실패

태현군의 진술에 의하면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미성년자에 불과한 태현 학생이 (수사 기관이 고지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숙지한 후 조사에 임하였는지, 진술시 충분한 법률적 조언을 통해 진술이 향후 판결에 끼칠 영향과 의미를 이해하였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로 인해 이뤄진 진술은 수사과정의 불이익으로 재판에까지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사법부의 제도적 의무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60년 넘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 일컬어질 수 있는 것은 사법부가 그 자리를 지켰음에 있습니다. 입법과 행정의 부조리를 밝히고 제도적 법적 장치로 개인을 시스템 아래에서 보호하는 진정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 한 교도소의 내부 모습. (자료사진) ⓒ 권우성

민주주의 국가 삼권분립 하의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입법-행정정책의 견인차가 돼야함에도 그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본 사건 관련, 사회가 입법행정을 통해 사회시스템이 갖추어지기기를 기다리기보단 사법부가 판결로서 그 변화를 주도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현지에서 겪은 경험담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루는 본인이 현지에서 홀로 길을 걸어가는데 몇몇 남성들이 추파를 걸었고 간단히 거절을 하고 가던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때 현지 경찰이 저에게 다가와 이 남성들이 저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는지 등을 물었고 저는 별 일 아니라고 해명한 후 자리를 떴습니다.

이후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상점 쇼윈도를 통해 살짝 뒤를 확인하니, 그 남성들이 아닌 경찰차가 낮은 속도로 저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혹시 그 남성들에게 협박을 받아 경찰에게 아무 일 아니라고 한 것일 수도 있기에 만약을 위해 당분간 보호할 수 있는 시야 안에 두려는 것"이라는 경찰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법은 가해자에 대한 처단이기에 앞서 범죄예방의 긍정적 기능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법률이 예방의 기능보단 처벌로 통용됨에 통탄을 느낍니다. 사회 곳곳 약자들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사후 처리로만 작용하는 법률시스템에 통탄을 느낍니다.

사회가 약자의 피해를 예방해주기는커녕 15년간 이 아이를 폭력에 그대로 방치하였고, 이로 인해 15세에 불과한 아이가 존속을 향해 자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태현군의 어린 시절을 빼앗았고 폭력으로 물들인 후 이제 그에게 '존속살해미수범'이라는 이름을 지워 미래마저 빼앗으려 합니다. 15년간 약자의 보호장치로는 작용하지 않던 사회의 시스템이 단 1회의 가해에 대한 처단에는 갑자기 작용한다면 일반국민들은 사법기능에 대한 신뢰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해, 15세의 아이가 겪어야 하는 현 상황에 사회에 먼저 나온 33세 사회인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1월 8일

김나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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