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6m 준설한 강에서, 꼬마물떼새알을 찾았다

10만인 리포트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

'그냥 당신이 죽지 그랬어요'...재판부는 왜?
[10만인리포트 -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⑤] "도망" 주문하는 재판부가 먼저 변해야

14.10.28 08:14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는 한국여성의전화(http://www.hotline.or.kr/)와 함께 진행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 가정폭력 문제를 다룬 미국다큐멘터리 'Sin by Silence'. ⓒ Sin by Silence

'123명.'

2013년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 숫자다. 이 중 105명이 남편에게 살해된 아내다. 살인미수 등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여성은 최소 75명이다. 여성 차별이 심한 중동 국가 이야기냐고?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수치는 최소 규모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작년 한 해 언론보도를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언론을 '타지' 못한 사건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는 더 많을 듯하다. 희생자들은 무슨 죽을죄라도 졌을까?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 때문에 죽인 사건이 가장 많았다.

OO고등법원은 지난 24일, 25년 동안 극심한 가정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살해한 윤필정씨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다. 이로써 한국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 살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무죄를 선고한 적 없는 나라로 남았다. 재판을 지켜본 한 여성은 낙담하며 말했다.

"결국 아내는 맞아 죽으라는 얘기구나."

가정폭력을 대하는 사법부와 사회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를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1983년 설립된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을 여성인권 문제로 바라보면서 폭력 근절과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해왔다. 정 대표는 1992년부터 이 단체에서 일했다.

여성은 도망으로 가정폭력 굴레 벗어날 수 있을까

정 대표는 윤씨 사건같은 재판이 가까워지면 일선 활동가들에게 '예방주사'를 놓는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큰 기대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야 활동가들의 실망과 좌절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정 대표 역시 윤씨 재판에 기대를 했을 터. 이번에도 기대는 빗나갔다. 

"윤씨 행위가 정당방위가 아니면 뭐가 정당방위일까. 폭력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고, 국가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판결 내용도 과거와 비슷하다. 재판부는 '다른 길이 있지 않느냐' '이혼하지 그랬느냐'고 하는데,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정 대표 지적대로 지난 24일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과거와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남편이 노끈으로 윤씨 목을 조르고, 칼로 위협했지만 실제로는 살인하지 않았다. (윤필정씨는) 쉽게 도망갈 수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 맞선 윤씨의 선택은) 사회통념상 합리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재판부의 말대로 윤씨는 "쉽게 도망갈 수 있었"을까? 정말로 여성은 도망으로 가정폭력의 굴레를 벗을 수 있을까?

"그런 말은 '그냥 당신이 죽지 그랬어요'라는 말과 똑같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마지막 선택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나 자식이 죽을 것 같아서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일까봐 자신이 나선 사례도 있다."

정 대표는 가정폭력 피해 아내의 남편 살해 사건에 대해 매번 비슷한 결론을 내는 사법부를 비판했다. 아내의 도망을 주문하기 전에 이제는 사법부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짠 것도 아닐 텐데, 판결문이 거의 비슷하다. 사회는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는 등 많이 변했다. 하지만 (가정폭력 관련 판결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채, 책과 판례에 의지해서만 나온다. 물론 법의 안정성은 중요하다. 근데, 사람이 옛날과 똑같이 사는 게 아니잖나.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 살해 무죄 판결이 나온) 다른 나라 사례를 이야기해도 한국의 판결은 똑같다.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판단한 첫 번째 사례로 남는 걸 꺼리는 것 같다."

▲ 법은 과연 공평할까?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 살해에 대해 한국 법원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정방방위를 선고하지 않았다. ⓒ 유지원

사법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 대표는 2012년 4월에 발생한 오원춘 사건을 거론하며, 한국 사회가 가정폭력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피해 여성이 112에 전화해 다급하게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경찰은 자기들끼리 '부부싸움인 거 같은데'라는 말을 주고받지 않았나."

"사회가 가부장적... 폭력도 일상적이다"

당연히 부부싸움이었더라도 국가기관은 신고를 받으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랬다면 피해 여성은 끔찍한 일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뒤늦게 경찰청장에게 직원들의 성인지 교육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인권위는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정 대표는 인권위가 가정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는 주로 공권력에 의한 개인 침해와 사회 차별 등을 다룬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사인 간 문제'로 본다. 가정폭력과 아내강간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권의 지평은 달라진다. 한국 여성은 물론이고 전 세계 모든 여성이 가장 크게 고통을 겪는 문제가 바로 가정폭력이다."

한국은 가정폭력 세계 1위권인 국가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19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 남녀 2659명 중 부부 간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53.8%였다. 이것도 해마다 증가 추세다. 경찰에 접수된 사례만 2011년 6848건, 2012년 8762건, 2013년 1만6785건이다. 이 중 압도적 1위는 아내학대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2013년에만 여성 123명이 남편 등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됐다. 왜 이렇게 폭력이 빈번할까.

"사회가 굉장히 가부장적이다. 폭력이 일상적이다. 5살 아이에게 땅에 머리를 박는 '원산폭격'을 시키는 일도 발생했다. 사람 때리는 걸 우습게 여긴다. 최근 서울대학교 게임대회에서 팀명으로 '삼일한'을 쓴 학생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 북어와 여성은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을...

그동안의 재판 결과도 많이 아쉽다. 남편이 아내를 때려 사망케 하면 폭행치사, 과실치사로 여겨지고 전과기록이 없으면 그 남성은 2심 때 사회로 나오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평생 아내를 때리다가 죽인 사례도 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고의성이 없다고 한다. 반대로 여성이 폭력을 참다못해 남편을 살해하면? 자신이 죽을 것 같아서 자구책으로 그렇게 했어도 살인죄로 기소된다. 정의가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가정폭력을 일부의 '사회 부적응자' '문제 남성'이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정 대표는 20년 넘게 현장에서 경험한 대로 따끔하게 이를 반박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 내가 만난 가해자는 절대 일부의 문제 남성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고 학력에 부유층 남성도 많다."

가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가정폭력 피해자도 '도망가지 못하는 답답한 여성'만이 아니다. 세상을 떠난 고 최진실씨, 여자 대학생이 닮고 싶어하는 여성 1위에 오르기도 했던 김주하 앵커도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최근 법원은 김주하씨 남편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특별법을 만들고 가사노동을 담당했던 여성의 재산권을 인정케 하는 등 한국여성운동사에 길이 남을 성과를 남겼다.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에만 머물지 않고 제도 개혁을 이뤄냈다. 하지만 가정폭력 가해자의 '스토킹'은 피할 수 없었다. 

"가해자들이 우리 사무실로 많이 찾아왔다. 욕하고, 행패부리고, 어린 아이 데려와 불쌍한 상황 연출하고, 아내 돌려달라고 협박하는 등 유형도 다양하다. '가만 안 둔다'  '밤길 조심해라' '죽이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우리는 무조건 가정폭력 피해 당사자를 만나기 때문에, 협박도 구체적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끔찍한 사례를 상담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가해 남성의 '괴롭힘'까지. 어떻게 이 활동을 수십 년 지속할 수 있을까.

"침묵하지 말라... 가정폭력은 바뀌기 어려워"

"상담을 하면서 신체 폭력, 성폭력, 욕설에 따른 굴욕감 등 여성 피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었다.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이 남편에게 들은 욕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상담만 하는 조직이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린 상담을 통해 사건을 접하고, 운동으로 문제를 푼다. 법을 만들고, 정책 제안을 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불평등한 사회에서 출발한다. 상담의 어려움을 운동으로 극복했기에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 한국여성의전화

정 대표는 지금도 어디선가 가정폭력을 겪고 있을 사람에게 "침묵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상대방의 폭언, 물건 던지는 행위 등을 포함해 모든 부당한 행동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좋다. 자기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폭력을 인식하고, 주변에 말하고, 자기 인생을 생각하라. 상대방이 나중엔 괜찮아 질거라고?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산 할머니가 할아버지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폭력 행위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뭘 해야 할까.

"많이 변해야 한다. 법과 정책만으로 안 된다. 공교육에서 여성폭력, 인권을 가르쳐야 한다. 또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생활지원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가해자는 당연히 처벌하고. 가정폭력은 피해자 인권 문제이자,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윤필정씨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남편 살해는 언제쯤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법원이 즐겨 사용하는 '사회통념'은 언제 바뀔까?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