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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

아내 때려죽인 남편, 감옥에 가지 않은 이유
[10만인리포트 -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④] 법원은 왜 아내에게만 가혹한가

14.10.21 08:58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는 한국여성의전화(http://www.hotline.or.kr/)와 함께 진행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 자료사진. ⓒ scx

"여보, 왜 이러는데... 살려줘!"

아들 방으로 피신한 A씨는 간절히 애원했다. 잠긴 방문이 열리지 않자 남편은 부엌칼을 들고 와 문을 내리찍었다. 칼날이 문에 꽂혀 부러졌다. 이번엔 현관 연장함에서 망치를 들고 왔다. 남편은 망치로 힘껏 문을 내리쳤다. 방안에 있던 아들도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아빠 그만해요! 살려주세요!"

아내 A씨가 수개월 동안 다른 남자와 연락한 사실을 안 남편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결국 남편은 망치로 문을 부쉈다. 망치를 든 채 방으로 들어간 남편은 아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A씨는 공포에 질렸다. A씨는 창문 밖 베란다로 도망갔다. 추락방지용 펜스에 매달렸으나 오래 버틸 수 없었다. A씨는 아파트 9층(25m)에서 아래로 추락했다. 그녀는 다발성 골절로 사망했다. 2006년 9월의 일이다.

검찰은 "피고인(남편)이 약 1시간가량 고함과 욕설을 하고 (중략) 피해자(아내 A씨)로 하여금 생명이나 신체에 심각한 위협을 느낄 정도로 위협한 행위를 A씨에 대한 폭행"으로 봤다. 검찰은 남편에게 폭행치사죄를 적용했다.

도망간 아내는 결국 추락사... 남편에 무죄 선고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법원은 "폭행치사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남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무죄 판단 근거는 이렇다. 

"피고인(남편)이 피해자(아내 A씨)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방문을 부엌칼과 망치로 여러 차례 내리쳐 손괴한 행위는, 방문을 통해 공간적으로 격리된 피해자를 만나기 위한 수단적 행위에 불과할 뿐 '피해자의 신체'에 대하여 유형력을 행사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즉, 망치와 칼로 방문을 부순 행위는 '격리된 피해자'를 만나려는 수단에 불과할 뿐, A씨의 신체를 폭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폭행치사죄는 형법 제260조 제1항의 폭행죄 성립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위법한 유형력을 뜻한다. 한마디로, 남편은 A씨를 폭행하지 않았으니 폭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 판결에 수긍하든, 분노하든 잠시 감정을 유보하고 다른 사건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지난 2009년 3월에 발생한 일이다.

사건이 발생한 날 오전, 남편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아내 B씨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격분했다. 그날 저녁 남편은 B씨가 남성 K씨와 식당에 있는 걸 알았다. 식당을 찾은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며 K씨를 폭행했다.

B씨에게는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B씨는 "알 필요 없다"는 식으로 답했다. 오후 10시께, 남편은 아내를 차에 태우고 어느 공사현장으로 갔다.

남편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차 안에서 주먹과 손바닥으로 B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B씨의 머리를 잡고 밀어 차문에 부딪히게도 했다. 차에서 내린 뒤에도 남편은 다시 주먹과 발로 아내를 때렸다. B씨가 땅에 쓰러지자 온몸을 발로 밟고 차는 등 약 20분 동안 폭행했다. B씨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상해를 입었다.

다음날 아침, 결국 B씨는 흉복부 손상 등으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폭행 현장에서 사망하지 않았을 뿐, 남편에게 '아내가 맞아 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남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내렸다. 수십 년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게는 잘 내려지지 않는 집행유예가 '아내 때려 죽인' 남편에게 내려졌다. 물론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한 것도 고려됐다.

"남편 폭력범죄 전과 있지만, 폭행하는 성향 아니야"

▲ 자료사진. ⓒ sxc

법원의 양형 이유를 보면 다소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 나온다.

"(피고인 남편은 과거) 수회의 폭력범죄를 저지르는 등 다소 일탈된 생활을 하였으나, 2000년경 이후에는 수회의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등 범죄전력 외에는 특별히 폭력을 수반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였다. (중략) 피고인의 성격 및 범죄전력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전에 피해자(아내 B씨)를 폭행했다는 걸 인정할 자료가 없다."

법원은 남편이 K씨를 폭행한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석'했다.

"폭행 이후 K씨의 해명을 듣고 바로 사과를 하고 화해를 했다. K씨가 수사기관에 피해사실을 알린 다음에도 특별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K씨와의 합의에 성실히 임한 점 등을 비추어, 현재 피고인(남편)에게 평소 함부로 타인을 폭행하는 성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판결문에는 성차별적인 발언과 함께 아내의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도 나온다.

"다소 남성적인 성격의 피해자(아내 B씨)는 거래처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고 나이 어린 피고인을 무시하였으며, (중략) 피해자가 이 사건 범행 당시까지 계속 피고인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피고인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된 나머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폭행..."

그러면서 법원은 '아내를 때려죽인 남편'의 처지를 이렇게 배려한다.

"피고인(남편)에게 실형이 집행되면 불행한 가족사가 연장돼, 피고인에게 더욱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위험도 있다.(중략) 수형생활보다는 화목한 가정환경과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가 피고인의 교화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중략) 피고인의 부모도 장남인 피고인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있다. (중략) 단순히 범행의 태양 및 그 결과라는 일면만을 염두하고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얻게 되는 응보적 효과보다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조속히 사회에 복귀하여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통해 그 죄값을 치르고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피고인이나 사회공동체가 얻게 되는 이익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판단된다."

자, 정리해보자. 앞의 사건에서 A씨는 남편의 '부엌칼, 망치 위협'을 피하려다 아파트 9층에서 추락사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쉽게 하는 질문,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는 말을 A씨에게 할 수 있을까?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형량 감경 사유

B씨는 남편에게 맞아 죽었다. 남편에 대한 법원 판결문에는 "술에 취하여" "우발적으로" "흥분된 상태에서" 등이 등장한다. 성폭행 등 많은 사건에서처럼 남성의 이런 상황은 주요 죄 형량 감경 사유가 된다.

모든 사건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건 많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이를 감안한 뒤, 25년 동안 남편에게 심한 가정폭력을 당한 뒤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윤필정(가명)씨 사건과 비교해보자.

지난 기사에서 봤듯이 (관련기사 : 25년간 마음대로 때려... 사람이 아니었어요) 한국 법원은 약 25년간 폭행하고 사건 당일에도 자신을 때린 남편을 뒤에서 목조른 윤필정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윤필정씨는 남성, 그것도 장남도 아니기 때문일까? 변호인 측이 정당방위를 주장해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해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필정씨 사건에서 법원은 "(사건 당시의 아내 반격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행위라고 결정했다.

여성의 가정폭력 남편 살해사건 판결문에는 '사회적 통념' 기준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위 두 사건에서 남편(남성) 행위는 사회적 통념으로 봤을 때 정당한 행위일까? '사회적 통념'은 왜 주로 여성에게 적용될까?"

세상에는 아내를 때려 결과적으로 사망케 했어도 "수형생활보다는 화목한 가정환경과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집행유예를 받은 남편이 있다. 부모가 장남인 그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는 점도 고려됐다. 반면, 25년 가정폭력을 겪은 뒤 "살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 윤필정씨는 그런 배려(?)를 받지 못했다. 각별한 애정으로 엄마를 기다리는 미성년 딸의 사정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형사법의 성편향>에서 쓴대로 "형법은 계급, 계층, 성별 등으로부터 '중립적'인 추상적 인간을 상정"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대로 그 추상적 인간은 "남성편향적이고 여성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쉽게, 법원이 종종 기준으로 삼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생각해보자. 위 두 사건과 윤필정씨 사례는 과연 적절한 판결로 다가오는지 말이다.

2013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이화여대 허민숙 연구교수와 당시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고미경 소장은 <살인과 젠더>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발표문 끝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왜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는가?' 폭력을 피해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벽을 넘어 도망쳤을 때, 그 여성은 사망했었다. 망치와 칼을 들고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남편을 피해 벽을 넘어 베란다로 도망쳤던 여성은 결국 죽었다. 그 가해자는 폭행치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벽을 넘으라'고 더 이상 주문하지 말기 바란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실제 사망에 이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재판부가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은 성차별의 벽을 넘고, 성편견의 문을 열고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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