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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김종술, 금강에 산다

사진 찍지 말라? 비행기 띄워 특종했는데...
[10만인리포트-김종술, 금강에 산다] 욕먹고 뱀에 물리고, 생활고에 몰려도

14.10.18 19:22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김종술, 금강에 산다] 글을 연재하는 김종술 기자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합니다. [편집자말]
▲ 2010년 5월 19일 금강 7공구(시공사 SK건설) 금강둔치공원 앞 하중도 준설현장 웅덩이 속에 갇힌 물고기가 산소부족으로 뛰어 오르고 죽어가자 시공사 직원들이 물고기 구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당시 평탄작업을 하면서 상당수 물고기가 그대로 흙속에 파묻혔다. ⓒ 김종술

"야, 새끼야 찍지 말라니까! X새끼 정말로 말 안 듣네."
"콱! 파묻어 버리든지 해야지, 징그러운 새끼."

카메라를 들고 4대강사업 공사 현장을 취재할 때 들었던 폭언이다. 직업 기자가 아닌 일개 시민기자였기에 욕설이 더 심했다.

[협박과 욕설] "물에 빠져 뒤져라"

그런데 이 정도는 약한 편이다. 충남 공주 금강둔치공원 앞 하중도에 갇힌 물고기 취재를 시작했을 때 낯익은 시공사 담당 부장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잠시 뒤 다른 곳으로 갔다. 하지만 이번엔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작업자가 삽을 들고 다시 막아섰다. 햇볕을 등지고 선 작업자는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삽을 허공에 휘두르며 쌍욕을 했다. 첫 봉변이었다.

그들은 여럿이었고, 난 혼자였다. 그 순간, 떨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물러서면 앞으로 취재는 어렵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 사람과 죽어가는 물고기에 초점을 맞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는 험악한 현장을 증언해 줄 나의 유일한 무기였다. 

"더러운 새끼! 가다가 물에 빠져 뒤져라."

내 앞에서 씩씩거리던 그는 결국 침을 튀겨가면서 악담을 퍼붓고 돌아섰다. 그들은 그날을 시작으로 툭하면 욕설을 퍼부었고 멱살을 잡았다. 그때마다 크게 웃어 주었다.

그날도 비슷했다. 30mm 가량의 비가 내린 다음날 강변 풀밭은 습기로 가득했다. 무거운 배낭에 카메라까지 메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이 울렸다.

"공산성이 무너졌어요!"
"네? 뭐가 무너졌다고요?"
"아, 공산성이 무너졌다니까요!"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비명 같았다. 공주 공산성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공산성 앞 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했다. 숨을 헐떡이며 단숨에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성곽으로 내달렸다. 현장 입구에서 공무원들이 막아섰다.

"김 기자님, 위험하니까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진만 찍고 바로 나갈게요."

[나의 오기] 까짓 꺼, 비행기 띄우지!

▲ 2013년 3월부터 성곽의 배부름 현상이 발생하면서 붕괴가 우려되던 중 9월 14일 오전 10시 30분경 공산성(사적 제12호) 공산정 앞 높이 3m 정도의 성곽 길이 10m 가량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김종술

평소 알고 지내는 공무원에게 사정을 했지만, 옴짝달싹 못하게 양팔을 벌려서 막았다. 그냥 머리부터 밀고 들어가 사고 현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 작업자가 푸른색 대형 천막으로 무너진 성곽을 덮고 있었다.

그는 "여기 위험하니까, 나가세요"라고 말하면서 나를 막았다. 철근 파이프를 세우던 또 다른 작업자는 "말 더럽게 안 듣네!"라면서 들고 있던 작업 도구를 땅에 던졌다. 4대강 사업으로 황망하게 무너진 공산성의 생생한 모습을 찍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 까짓 거, 또 비행기 띄우면 되지.'

급하게 항공 촬영 전문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돈은 없었지만 항공료는 내일 지불할 테니, 비행기를 띄워 항공촬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각,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나의 취재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타 부서 공무원을 비롯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까지 짧은 시간에 약 10통의 전화를 걸어왔다.

"안 그래도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데, 기사가 나가면 아무도 공주를 찾지 않을 거유."

협박 반, 사정 반이다. 그냥 전화기를 꺼버렸다. 잠시 뒤 <오마이뉴스>에 항공사진이 담긴 이런 제목의 톱기사를 올렸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얻은 특종이었다. (관련 기사 : 결국...공산성 성곽 10m '와르르')

4대강 사업으로 금강을 준설하면 공산성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2009년에 경고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다음 날 현장을 찾았다. 환경단체, 문화재청장, 안희정 충남도지사까지 달려왔다.

유명인들을 따라온 수많은 언론인들로 공산성은 북새통을 이뤘다. 평소 현장에 거의 나타나지 않던 정치인들도 앞 다투어 몰려와 무너진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도 공산성에서 "공주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특종의 우울한 그림자] "방 빼세요"

▲ 2010년 5월 14일 충남 공주시 금강둔치 앞 하중도 준설을 위해 각종 장비들이 들어간 모습으로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 김종술

하지만 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려면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2009년부터 10여 차례나 항공기를 띄워 강을 기록했다. 내가 생각해도 특별한 호구지책이 없던 나는 매번 후회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또 잊어 버리고 강변을 걸었다. 나라도 좀 더 노력하면 막힌 강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아니, 몇 푼이나 된다고 월세를 못 내요. 방 빼세요!"

월세가 밀렸다고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난리다. 미납된 각종 청구서는 책상에 쌓여 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 때문에 저장된 번호가 아니면 받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디 이뿐인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발표가 나던 그날부터 일 주일에 2~3번씩 세종시에서 서천 하굿둑까지 왕복 200km 넘는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모니터링을 해왔다. 3년을 사용한다는 타이어도 강변의 정비되지 않은 험한 길을 다니면서 돌부리에 찢겨서 6개월이 안 돼 갈아야 했다. 차량 유류비와 경비로 월 200만 원 넘는 돈을 강에다 쏟았다.

강변을 걷다가 말벌에 쏘여 눈 언저리가 퉁퉁 부어 안경을 쓰고 며칠을 앓아 눕기도 했다. 한 번은 풀밭에 웅크리고 있던 뱀을 밟아 발뒤꿈치를 물렸다. 독이 퍼지지 않도록 허리띠로 발목을 묶고 혼자서 절뚝이며 병원으로 향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남은 상처가 몸 곳곳에 흉터로 남았다.

[후회] 어머니가 쥐어준 돈... 하지만

▲ 2012년 6월 27일 완공된 공주보 세굴발생으로 가물막이를 설치하고 공사를 하는 모습을 찍은 항공사진. ⓒ 김종술

취재 현장에서는 그리도 당당했건만 생활 현장으로 돌아오면 참 한심스러웠다. 내 처지를 아는 어머니는 2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된 논을 팔아 "허튼 데 쓰지 말라"며 돈을 쥐어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빌려 쓴 돈을 갚고 기름 값과 취재비로 사용했다. 그것도 충분하지 못해 전셋집마저 월세로 돌렸다. 강에 미친 대가로 매번 후회하고 자책하면서도 자고 나면 잊어 버리는 바보가 돼 버렸다.

요즘도 매일 저녁 같은 고민에 빠진다. 금강을 포기하고 '노가다'라도 다녀야 하는 건 아닐까? 머리가 지끈거려 두통약을 끼고 산다. 강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서 방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곤 한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날이 밝아오면 밤새 고민을 까맣게 잊고 가방에 카메라를 챙기고 금강을 헤집고 다닌다는 거다. 가족들 말처럼 굿이라도 한 번 해야 하는 걸까?

요즘도 나는 매일 금강에 나간다. 간혹 금강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기도 하는데, 그들을 안내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기도 광명 YMCA 볍씨학교 초·중생들과 선생님이 일 주일 동안 금강을 다녀갔다. 2012년 물고기 떼죽음과 녹조, 올해의 큰빗이끼벌레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취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학생들은 금강에 손을 담그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난] 금강의 부활을 믿는다

▲ 명승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마나루는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솔밭`연미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는 곳으로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2008년 운하반대생명평화도보순례단이 찾았던 당시에는 준설 전 모습. ⓒ 박용훈

오늘 금강을 홀로 걸으면서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이 문득 생각났다. 일개 시민기자가 금강에서 건져 올린 각종 특종은 온갖 욕설과 협박 속에서 나왔다. 생활고에 힘겹지만 한 사람이라도 금강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금강에 박힌 '쇠말뚝'이 제거되지 않는 한 강은 흐르지 못하고 계속 죽어간다. 강물 냄새를 맡으면서 코를 쥐어 잡았던 그 맑은 눈동자들이 물속에 들어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예전의 금강은 가능할까?

오늘도 난, 금강을 걷는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꽃은 피었지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그곳 금강의 찬란한 부활을 꿈꾸며. 

☞지난 연재기사 보기 : 구더기 가득한 물고기들이...금강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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