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거대한 굴뚝이 토해낸 미세먼지..."암 환자가 급증했다"

10만인 리포트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

"25년간 마음대로 때려... 남편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10만인리포트-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①] 남편 살해한 윤필정씨 사건

14.09.29 13:54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는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진행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폭력도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 사진은 지난 제4회 여성인권영화제 부대행사로 진행된 폭력반대서명캠페인. ⓒ 한국여성의전화

고개를 돌리니 종이 박스 위 노끈이 보였다. 3일 전,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 사용한 그 끈이다. 이번엔 윤씨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 뒤로 가 끈으로 목을 졸랐다. 남편은 몸부림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여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먼저 가 있으면 나도 금방 따라갈게."

윤필정(가명, 40대 후반)씨는 울며 "미안해"를 반복했다. 잠시 뒤 남편의 몸부림이 멎었다. 그제야 윤씨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녀는 더는 숨 쉬지 않는 남편 곁에서 약 15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금방 따라갈게"라는 말대로 수면제를 입으로 털어 넣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문득, 두 딸이 생각났다. 윤씨는 경찰서로 가 자수했다.

"공장에 남편이 죽어 있는데, 우리 딸이 못 보게 치워 주세요."

윤씨는 경찰에게 이 말을 하고 약에 취해 쓰러졌다. 2013년 9월 9일 오후의 일이다. 얼마 뒤, 윤씨는 살인 피의자 신분으로 검사 앞에 앉았다. 검사가 물었다.

- 평소 남편에게 어느 정도 폭력을 당했나요?
"남편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요.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습니다."

- 가장 많은 폭력을 당한 상황은요?
"그 사람은 달랐습니다.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기분에 따라 때렸습니다."

"때리고 싶으면 때리는" 남편에게 25년간 두들겨 맞은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윤씨는 말문이 막혔다. 대신 눈물이 터졌다. 윤씨는 그동안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사연을 검찰, 경찰, 여성단체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한 '25년 폭력'

윤씨는 고교를 마치고 서울 방직공장에서 약 1년간 일했다. 그 뒤 자격증을 취득해 유치원 교사로 2~3년 일하다 1986년 남편 김성훈(가명, 사망 당시 40대 후반)씨를 만났다. 연애 초기 김씨는 친절한 남자였다. 하지만 조금씩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탓에 윤씨는 결혼을 거부하고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자 폭력의 고삐가 풀렸다.

"헤어지자니까, 제 자취방까지 찾아와서 칼로 위협하며 결혼하자고 협박을 했어요. 저희 친정 식구들까지 죽인다고 협박을 했거든요." - 검찰 신문 발언에서

윤씨는 무서웠지만 남편이 자기를 너무 좋아해 그러는 것이라 여겼다. 남편이 달라질 거라 기대하며 윤씨는 1988년 3월 결혼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첫 물리적 폭력은 결혼 1~2년 뒤에 발생했다.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고속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다른 사람에게 항의를 받고 남편은 머쓱하게 담배를 껐다. 화풀이 대상은 임신 4개월째인 윤씨였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자기 편들어 주지 않았다고 때리고 욕하고, 완전히 인간이 아니었어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편을 들어 주냐고 했더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편이 되어서 여자가 큰 소리로 싸워줘야 한대요." - 한국여성의전화로 보낸 편지에서

가정형편 등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한 남편은 한글을 잘 몰랐다. 아내에게 많은 걸 의지했고,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심했다. 다혈질이고 감정 기복도 컸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행동했지만 스트레스와 짜증을 아내에게 풀었다.

부부는 1997년 IMF 이후 가내수공업 공장을 운영하며 전자제품을 만들었다. 윤씨는 종일 남편과 일하면서 구타, 잔소리, 욕설에 시달렸다. 알바로 채용한 아주머니마저 무서워 할 정도로 남편은 집요했다.

"제가 있는데도 사장님(남편)은 흥분하셔서 계속 욕을 하며 아주머니를 툭툭 때리셨어요.(중략) 사장님은 아주머니를 매우 심하게 다그쳤고, 심한 욕설은 제가 보기에도 위협적이고 무서웠습니다. 다음날 출근하기 싫을 정도로요." - 종업원 OOO씨의 탄원서에서

두 딸도 많은 폭력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첫째 딸이 초등학교에 고학년일 때였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 나가보니, 아버지가 작업공구인 드라이버로 엄마 머리를 치고 있었다. 엄마 머리에서 흐른 피가 셔츠를 적셨다. 엄마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했다. "그만 하라"고 말하면 더 심하게 때릴 걸 알기 때문이다.

"(제품에) 피 묻으면 큰일나니까, 피 닦고 와."

남편이 명령했다. 그제야 윤씨는 화장실로 가 피범벅된 얼굴의 피를 닦았다. 아내 윤씨는 남편과 함께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 

"떳떳하게 살자고 한없이 부탁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제가 (운전면허시험 교재를) 읽어주고 남편이 답을 말하고 열심히 해서 세 번 만에 (운전면허시험을) 합격했습니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저 아니면 그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남편에게 저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막연한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 한국여성의전화에 보낸 편지에서

불행히도 남편은 좋아지지 않았다. 첫째 딸이 중학생이 됐을 때,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댔다. 도박하러 가는 남편에게 "나가더라도 일은 마치고 가라"고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다음날, 돈을 다 잃고 돌아온 남편은 "재수없게 잔소리해서 망쳤다"며 병과 물건을 닥치는 대로 던지며 윤씨를 때렸다.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지만...

윤씨는 "자식에게 이런 모습 보이기 싫으니 제발 그만하라"고 울며 빌었다. 이 모습을 딸이 지켜봤다. 화가 난 남편은 주먹으로 윤씨 목을 쳐 기절시켰다. 남편은 딸에게 다시 도박하러 가야 하니 돈을 찾으라고 소리쳤다. 딸은 울며 돈을 찾았다. 잠시 뒤 윤씨가 깨어났다.

"죽고 싶을 정도로 싫었습니다. 지옥같았습니다. 그래서 깨진 병으로 제 손목을 그었습니다. 피가 줄줄 흘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혼자 병원 가서 꿰맸습니다." - 한국여성의전화에 보낸 편지에서

상처는 꿰맸지만 폭력과 스트레스 탓에 몸에 문제가 생겼다. 코뼈에 금이 가고, 고막이 터지고, 이명이 생기고... 25년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우울증도 심해져 여러 신경정신과에서도 치료를 받았다.

남편이 지역 운동동호회에 나가는 등 자기 시간을 보내며 변화의 조짐을 보인 적도 있다. 윤씨는 "처음 단체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게 부정적이던 사람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갔다"고 회고했다. 남편도 "고생했다, 너같은 여자 없더라, 이젠 속 썩이지 않고 잘해 줄게"라고 반성하기도 했다.

"옛말이 틀리지 않구나, 참고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구나, 견딘 보람이 있구나 하며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 한국여성의전화에 보낸 편지에서

▲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이미지. ⓒ 한국여성의전화

이런 행복도 수명이 짧았다. 2011년 11월 결혼기념일. 윤씨는 남편과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공장 거래처에서 윤씨에게 전화가 왔다. 일이 잘 안 풀렸다. 남편은 "네가 말을 잘못해서 그렇다"며 아내 탓을 했다. 윤씨는 "당신이 직접 전화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말이 많다고 주먹으로 머리를 치더라고요. 그러고는 자기 성질에 못 이겨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고, 가다가 또 밟고... 욕하고 주먹 날리고 귀 잡아당기고. 가슴 조마조마하고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 검찰 신문서에서

윤씨는 차에서 뛰어내려 야산으로 도망쳤다. 그날 윤씨는 자살 등 여러 생각을 했다. 두 딸을 생각해 나쁜 생각을 접었다. 윤씨는 속초의 한 찜질방에서 밤을 보냈다. 그 때, 집에서는 사달이 났다. 남편이 두 딸 앞에서 아내의 옷을 칼로 찢었다.

"엄마가 나를 떠나면 다 죽는 거야, 알아? 너네 엄마가 도망가면 외갓집 피바다 만들고, 청부업체에 의뢰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 엄마 OO 버리고 나도 자살할 거야. 그 꼴 안 보려면 잘 말해서 (엄마) 들어오라고 해!"

다음날 집에 들어온 윤씨는 "잘못했다"고 울면서 남편에게 빌었다.

"가장 죽고 싶을 정도로 참기 힘들었던 건 화내고, 짜증내고, 욕하고, 때리고, 자기 화풀이가 어느 정도 끝나면 늘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하면서 부부관계를 (강제로) 합니다. 그런 느낌 알 수 있을는지요.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 검찰에 보낸 편지에서

비극은 파국으로 향한다. 2013년 9월 6일, 남편은 아내에게 쓸 데가 있다며 돈 400만 원을 요구했다. 윤씨는 가진 돈이 없었다. 윤씨는 딸 학업비 때문에 전세로 살던 집을 월세로 돌린 상황도 이야기했다. 남편 몰래 한 일이었다. 남편의 분노가 폭발했다.

다음날(7일) 남편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내의 귀를 잡아당기며 "오늘부터 피를 말려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윤씨는 "아이들은 나처럼 살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남편이 물었다.

"어떻게 살았는데?"
"사람 대접을 해준 게 아니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잖아."

윤씨는 자기 의지대로 할 말을 했다. 이게 맞아 죽어야 하는 근거라도 될까? 눈이 뒤집힌 남편이 박스 묶을 때 사용하는 노끈으로 윤씨의 목을 졸랐다. 곧 머리가 하얘지면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잠시 후 남편이 힘을 풀었다.

"너 죽으면 내가 재미를 어떻게 보냐? 너 괴롭히는 재미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널 죽이면 내가 괴롭힐 사람이 없잖아. 넌 더 살아야 돼."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이어졌다. 머리를 때리고 귀를 잡아당기며 부엌칼을 아내 목에 대기도 했다. 25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폭력. 체념한 윤씨가 별 반응이 없자 남편은 칼을 침대에 꽂으며 "눈 뜨고 자라. 언제 어떻게 죽일지 모르니까"라고 말했다. 그날 남편은 아내를 성폭행하고 새벽 4시 이후에 잠들었다.

9일 오전 윤씨는 "(공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아줌마 있을 때는 제발 참아 달라"고 남편에게 빌었다. 남편은 공장 작업대에 망치를 쾅 내려놓으며 "너 오늘 머리를 OO 버릴 거야. 일 끝내고 보자"고 말했다. 주먹으로 아내 머리를 때리고 작업용 전등 스탠드도 깨트렸다.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가 퇴근한 뒤, 윤씨는 '아, 오늘 정말 죽겠구나'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때 윤씨의 눈에 노끈이 보였다. 3일 전 남편이 자기 목을 조를 때 사용한 끈이다. 윤씨는 끈을 집어 들었다. "미안하다"고 흐느끼며 남편 목을 졸랐다. 어디를 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25년의 가정폭력은 그렇게 한 명이 죽고 나서야 끝났다.

윤씨가 성동구치소에 검사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나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래서 늘 함께 해줘야 할 것 같았던 이 미련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결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선택한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주어진 죄값 남편에게 사죄하며 벌 받겠습니다. 평생 말 못하고 맘속에 쌓아 놓고 속앓이했던 나만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살아 있어 죄송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잘못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작년 겨울, 일부 언론과 방송이 윤씨 사건을 다뤘다. 이후,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지난 5월 2일 법원은 징역 2년을 결정하며 이렇게 밝혔다. 

"피해자(남편 김씨)를 살해하기 이전에 이혼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등 가정폭력 문제에 적극 대처해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 유성호

검찰은 "형이 가볍다"고, 정당방위를 주장한 변호인은 "형이 과하다"고 모두 항소했다. 지난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공판이 열렸다. 두 딸도 공판에 참석했다. 윤씨는 푸른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딸들에게 보이기 싫어서였을까? 윤씨는 단 한 번도 딸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변호인은 두 딸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윤씨가 울며 거부했다.

"둘째 딸은 아직 어린데, 미안해서 차마 증인석에 세울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그냥 제가 벌을 더 받을게요. 판사님, 부탁드립니다."

윤씨는 남편이 때리면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 남편을 자기 손으로 해칠 땐 "미안하다"며 울었다. 검사에겐 "살아 있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젠 딸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돌린다.

누가 한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국가와 공동체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25년간 폭력을 당한 그녀에게 이 사회는 어떤 죄를 물을 수 있을까.

* '아니, 그동안 왜 이혼하지 않았어?' '왜 경찰 등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 '멀리 도망가면 되는 거 아니야?' 많은 독자는 궁금할 듯하다. 다음 기사에서 관련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변호인 측이 무죄를 주장하는 이유도 함께.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