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23명 목숨 앗아간 4대강 사업, 변한 게 없다

10만인 리포트

김종술, 금강에 산다

나는 큰빗이끼벌레를 먹었다
[10만인리포트-김종술, 금강에 산다] 오늘도 '아버지의 강'에 나간다

14.08.12 20:58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10만인클럽>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언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매달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유료 독자들의 모임(http://omn.kr/5gcd)입니다. 클럽은 회원들의 후원으로 '10만인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이 글 연재하는 김종술 기자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합니다. [편집자말]
▲ 금강에서 막 잡은 큰빗이끼벌레. ⓒ 김종술

"네가 강 귀신에 씌인 거여. 굿이라도 해야겠다!"

아직도 가족들은 난리다. 모든 일을 그만두고 4대강을 취재한답시고 맨날 금강에 나가는 내가 못마땅한 것이다. 당연하다. 금강을 취재하면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다.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기사의 원고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 주일에 2~3차례 금강을 헤집고 다니며 쓴 한 달 주유비만 120여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가끔 금강에 비행기를 띄워 영상촬영을 하기도 했으니, 수중에 돈이 남아날리 없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까지 팔아먹은 불효자가 됐으니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저주와 욕설

그렇다고 주변의 시선이 고운 것도 아니다. 금강의 녹조, 물고기 떼죽음, 공산성 붕괴, 그리고 큰빗이끼벌레 특종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묵묵하게 지켜봤던 지인들의 시선도 요즘은 달라졌다. "몇 년 동안 혼자 날뛰어 봤자 변한 게 없다"는 투다.

내 핸드폰 번호를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큰빗이끼벌레는 옛날부터 있었는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는 항의는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사람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가족까지 들먹이는 협박을 당했을 때는 '내가 이리 살아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난 오늘 금강에 나간다. 눈을 뜨면 강으로 달려가고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나마 집으로 온 날은 행복하다. 강을 혼자 두기 미안한 날에는 강변에 차를 세워놓고 쪽잠을 잔다. 이쯤 되니 가족 걱정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내가 봐도 나는 강에 미쳤다. 아니,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가는 금강이 내 추억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롭다.

내 고향은 전남 장성이다. 어머님 고향은 지금은 수몰된 장성댐 속에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집 뒤편의 작은 개울과 가까운 거리에 넓은 황룡강이 있다. 작은 개울과 드넓은 강변은 친구들과 씨름하고 물놀이하던 곳이었고 서리해서 가져온 수박·복숭아를 까먹던 놀이터이자 삶의 공간이었다. 아직도 나에게 강이란 친구들과 가족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버지 품과 같다.

아버지의 강, 난 멱살을 잡혔다

그 뒤 서울에서 살았는데, 2005년에 충남 공주로 내려오라는 가족의 권유를 받았다. 그 때 공주를 헤매다가 해질녘 붉은 노을이 번져가는 금강의 모습에 반해 망설임도 없이 이사를 했다. 이때부터 지역신문 기자로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거닐던 금강은 내 나이 스물한 살 무렵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나는 그런 금강에 푹 빠져들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될 때 나는 무서웠다. 강변 모래사장은 사라지고 아침 산책길에 만났던 고라니와 백로가 노닐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 나섰던 강 낚시도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럼 아버지의 강은 어떻게 되는 거지? 결국 강의 동태를 살피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눈뜨기가 무섭게 강으로 달려갔다.

▲ 지난 2010년 1월 26일 충남 공주시 신관동 공주대교 및 골재채취 작업장에서 떼죽음을 당한 붕어·대형 잉어 등 물고기. ⓒ 김종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국민들의 반대에도 이명박 정부는 '녹색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금강변 곳곳에 설치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준설을 하려고 강물을 빼자 물고기가 새까맣게 죽었다. 준설선에서 기름이 유출됐다. 강을 맑게 하겠다고 했으나 녹조가 잦아지고 급기야 물고기 떼죽음 사태도 벌어졌다. 금강을 준설하면 공주의 상징인 공산성이 붕괴할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는 우려했는데, 작년에 그 장면을 처음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나의 접근을 막았을 때 비행기를 띄워 붕괴의 현장을 기록했다.   

강의 죽음, 이 진실을 기록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뛰었던 나는 툭하면 현장 인부들에게 멱살을 잡혔다.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종교인들까지 하루가 멀다고 금강을 찾았고 강을 살려야 한다고 몸부림을 쳤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4대강 삽질을 막기에는 바람 앞에 촛불이었다. 갇힌 물은 썩는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현실이 됐지만, 이런 주장에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되레 이명박 정권 시절에 잘 나갔고,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상식의 어처구니없는 이율배반,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추억도 썩는다

아버지의 강은 이제 물결 없는 강이 되어 버렸다. 굽이굽이 여울져 흐르던 금강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있을 뿐이다. 거대한 물구덩이로 변해 버린 금강은 준공과 동시에 신음했다. 2012년 물고기 떼죽음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나는 기막힌 상황을 처음 보도했지만 취재만 한 건 아니다. 그 뒤부터 매일 아버지의 강에서 수많은 주검을 건져 올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은 물고기를 건지고 돌아서면 다음날 다시 떠오르는 주검들.

난 지옥 같은 취재를 마친 뒤 자주 악몽을 꾸었다.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 때, 지인들은 나에게 '산도둑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여린 구석도 있네'라면서 '금강의 요정'이라는 우스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녹조와 물고기 떼죽음, 그 난리를 치르고도 박근혜 정부는 선거 때 약속한 철저한 검증을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4대강을 버린 것이다. 당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날치기로 4대강 예산을 밀어붙일 당시 한나라당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의원이었고, "다 밀어-"라고 외치면서 국회의장석을 점거했던 야당 의원들의 사지를 붙잡아 내동댕이쳤던 '행동대장' 김무성 의원은 지금 새누리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 무지막지한 4대강 사업이 '이명박근혜'의 작품이었기에 제 손으로 허물기 어려운 것이다.    

불도저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모래무지와 눈불개 등 여울성 물고기로 가득하던 금강은 거대한 콘크리트 보에 갇히면서 계속 썩었다. TV에서나 보던 녹조까지 창궐하면서 비단결 같았던 금강은 악취가 풍기고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늪으로 변해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도 '지금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데'라면서 덮어둘 수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이 함께 썩고 있다. 그게 못 견디게 괴로운 것이다.   

괴물 같은 녀석의 정체... 난 녀석을 먹었다

▲ 큰빗이끼벌레는 들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축구공보다도 더 크게 번성하고 있다. ⓒ 김종술

그날도 그랬다. 지난 6월 20일 배낭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겨 공주보에서 좌·우안을 타고 세종보·백제보까지 자전거도로와 물가를 하염없이 걸었다.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의 기획 취재인 '오마이리버 낙동강투어'를 끝마치고 선물로 받은 대형 스카프를 이불 삼아 강변에서 잠을 자면서 모니터링을 했다. 

사흘째 되던 날, 강변에 앉아 쉬다가 이상한 녀석들을 보았다. 나중에 안 이름인데, 이것이 올해 여름 4대강 정국을 뜨끈하게 달아오르게 했던 큰빗이끼벌레였다. 주변에 물어보고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아무도 몰랐다. 환경단체에도 자문을 구했으나 그 녀석의 정체를 몰랐다.

우선 기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만져봤다. 물컹했다. 팔뚝에 문질러봤다. 피부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기사를 쓰기 전에 이 녀석이 강의 생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했다. 결국, 징그러운 녀석을 먹어 보기까지 했다. 온 몸에 두드러기와 두통이 밀려왔다. 강의 생태에 미치는 영향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구분하지 못하는 기자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난 절박했다.

4대강 사업으로 콘크리트 보가 막히면서 유속이 느려지고 큰빗이끼벌레가 확산하고 있다는 기사를 2회에 걸쳐 내보냈다. 온라인과 SNS는 큰빗이끼벌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환경단체는 물론 언론에서 지상파 방송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4대강 사업 이후 이토록 많은 언론이 폭발적으로 관심을 가진 사안이 있었을까?

큰빗이끼벌레를 처음 목격한 덕에 환경단체들과 함께 낙동강, 영산강, 한강 등을 돌아볼 기회도 주어졌다. 가는 곳마다 큰빗이끼벌레가 있었고 언론들은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인터뷰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물론 여러 곳에서 협박 전화를 받았고 한편에서는 진보언론이 만들어낸 4대강 사업 비판을 위한 비판 기사라는 지적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강에게 본래 숨결을 찾아줄 해법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큰빗이끼벌레가 인체나 생태계에 무해하다고 반론을 펼치던 정부는 TF팀을 꾸리고 수거에 나섰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매일같이 물살을 일으키면서 큰빗이끼벌레를 거둬들이고 있지만, 금강은 녀석의 사체로 넘쳐나고 있다. 수십만 마리가 될 것 같다. 곳곳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죽어가고 있다. 금강에 불어 닥친 또 다른 재앙이다. 수문을 개방하는 등 큰빗이끼벌레가 살 수 없는 근본처방을 쓰기보다는 우선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흐트러트리는 꼼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시행정의 극치다. 

내년엔 또 어떤 괴물이 출몰할지...

이 와중에 피서객들로 넘쳐야 할 휴가철 강변에 낚시꾼도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금강에 언론의 발길도 뜸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제도 오늘도 강을 찾고 있다. 그리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을 파헤치며 기록하고 있다. 때론 벌에 쏘이고 뱀을 물리기도 했지만, 또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강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4대강 사업 첫해에 녹조가 창궐했다. 이듬해에는 물고기가 떼죽음했다. 올해에는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가 집단 폐사했다. 지난 2년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금강은 계속 몸부림치며 인간에게 주검의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괴물이 출몰해 그 어떤 생명체에게 치명상을 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그 피해자가 인간이 되는 것이 두렵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건국 이래 최대의 국토사업이던 4대강 사업의 진실을 기록하고 싶다. 1년에 최소 100일, 또 일 주일에 2~3차례 금강을 돌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한숨과 기억을 하나씩 풀어보고 싶다.

김종술, 아무리 욕 먹고 삶이 힘들어도……. 진실이 거기 있기에 금강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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