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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오남매의 엄마 "저에게 1초만 주소서"
[10만인리포트] 석달째 세월호 1인 시위... 10만인클럽 회원 오지숙

14.07.12 11:44 | 박형숙 기자쪽지보내기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세월호침몰사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오지숙씨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행인이 시선 멈추는 시간은 평균 1.5초

▲ 취재만 해봤지 시민 자격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는 처음. '엄마'로서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 쥐고 있는 피켓 문구와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살아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오지숙

석 달이 지나서야 알았다. 10만인클럽 회원 오지숙씨가 광화문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7월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으로 가니 그는 그렇게 서 있었다. 간단하게 수인사만 나누고 자연스럽게 "제가 좀 들고 있을게요" 하고 그가 쥐고 있던 피켓을 받아 들었다. 순간 '어?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나도 엄만데 한번 해보자' 싶어 40여분을 그의 자리에 서 있었다. 전달받은 피켓문구를 내려 보니 이렇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이 보이십니까? 형제 잃은 아이의 슬픔을 아십니까?" 순간, 나는 자식 잃은 부모가 된다.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데, 저만치 서 있던 또 다른 엄마가 다가온다. "어휴 이렇게 서 있으면 안돼요. 얼굴 화끈 거려서 잠 못 자요." 그러더니 자기 팔 토씨와 흰 장갑을 나눠준다. "이거라도 끼고 하세요." 다음에 나올 때는 커다란 챙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기라고 준비물을 알려준다. "오늘은 잠깐만 하고 가세요. 큰일 나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자기 1인 시위 위치로 돌아간다. 맞다. 오늘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다.

그토록 오갔던 광화문 거리가 새롭다. 시야 정면에 좌우 기둥처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건물이 위세 등등하다. 이순신 동상이나 세종대왕 보다 높고 크다. 돌아보니 국민이 5년 동안 우리 좀 잘 보살피라 뽑아준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도 가깝다. 서울의 멜팅팟 광화문 사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직장인, 연인, 친구, 외국인…. 이들이 오지숙씨(39)에게 시선을 멈추는 시간은 평균 1.5초. 그 짧은 시간에 그는 전력을 쏟는다.

"제 온몸이 피켓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지나자 나는 삐딱하게 서 있게도 되고 피켓을 아예 지지대 삼아 구부정하게도 되는데 저 앞에 있는 오지숙씨는 단단하게 서 있다.

"저의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세월호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봐서요. 그래서 최대한 예의바르게 서 있으려고 해요."

처음 얼마간은 화장실도 가지 않았단다. 그래서 4시간 서 있으면서 물도 먹지 않았다.

"제가 없는 사이 한 사람이라도 못보고 지나갈까봐, 그 사람에게서 세월호를 기억할 기회를 제가 뺏는 것 같아서…."

2주가 지나서야 "생수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싶어 물은 먹었지만 점심식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리멤버 0416'. 그의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접한 엄마들이 나섰다. 점심밥 먹는 시간은 자신이 대신 서 있겠다는 엄마들이다. 현재 회원은 180명. 오지숙씨는 그렇게 40일을 보낸 끝에 몸에 탈이 났고, 팽목항 1인 시위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 나온다.

대학 때 시위 한번 안 해봤는데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세월호침몰사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한 학부모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 이희훈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세월호침몰사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학부모를 지나가던 시민이 쳐다보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는 큰 슬픔이었다.

"배가 기울어지고… 어 왜 이러지… 물이 들어오네… 구해주겠지… 근데 캄캄한 밤이 되고… 누군가는 먼저 죽었을 거고… 그 시체 옆에 누군가는 살아 있었을 건데… 마지막 아이는 시체들에 둘러싸여 죽어갔을 거잖아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복받쳐 울고 있었다.

"구조를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면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실수, 교통사고 기후재난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세월호는 그게 아니에요. 태평양 공해상도 아니고 우리 앞바다에서 어떻게 한명도 못 구하냐고요. 그 진실을 밝히는 힘은 국민이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검찰이 밝혀줄까요? 아니요. 청문회가 생중계되는데도 이 모양인데…. 국민의 관심이 없으면 희망이 없는 겁니다."

4월 23일 그는 광화문으로 무작정 나섰다. '경찰이 잡아가는 거 아닐까' 내심 많이 떨었다. 맨 처음 들고 나간 피켓 문구는 이랬다. '세월호 은폐엄단 진실규명' 그러다가 '세월호 다 밝히라'로 바꿨다.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강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1인 시위의 목적은 내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공감해주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이렇게. '세월호, 내 가족 우리 아이' '아이들이 끝까지 애타게 불렀을 이름, 엄마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살려 달라는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 벌써 잊으셨습니까.'

오지숙씨는 대학 때 시위 한번 안 해봤다. 사법고시 준비 외에는 다 곁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6살에 첫 아이를 낳고 지금은 오남매의 엄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 '일상의 오지숙'은 엄마 50%, 주부 30%, 여자 10%, 이웃으로서의 나에 10%의 에너지를 분배하는 삶을 살았다. 1인 시위를 시작한 이후는? 이웃으로서의 나에 70%, 엄마 20%, 주부 5%, 여자 5%로 바뀌었다. 집은 엉망이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엄마와 주부가 내 일이고 나머지는 곁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바빴고 많이 힘들었어요. 쳇바퀴 삶에 메어 살다가 이 일을 계기로 내 아이를 잘 돌보고 공부시키는 게 다가 아니란 걸 깨달았죠. 세월호는 나에게 커밍아웃할 기회를 주었어요."

상위 10% 아이 위해 진입장벽 만드는 시험

세월호 참사가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면 대한민국 교육은 아이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고 오지숙씨는 생각한다. 그는 중1인 큰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피아노 학원, 하나 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싶어서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 본 전 과목 시험에서 수학 점수가 38점. 시험 문제를 살펴보니 해독이 어려웠다. 그는 소위 배운 여자다. 명문대 법대를 나왔다. 그냥 어려운 게 아니라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예 못 풀게 만든 문제라는 의도가 읽혔다.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기능인'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아이는 "이해가 안 된다"고 운다.

"아, 이렇게 수포자(수학포기자)를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재능이나 소질을 발휘할 기회 없이 사회 루저(패배자)로 만드는 환경에 아이들이 살고 있는 게 실감됐죠.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부모 전체모임이 있어 학교생활과 관련한 안내려니 싶어서 나가봤는데 분위기는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더라고요.

문제를 어렵게 내는 이유가 자사고, 특목고, 외고를 가는 상위 10% 아이들을 위해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더라고요. 그 자리에 100여 명의 엄마들이 왔는데 직장맘,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아이들은 아예 제외되는 거잖아요. 문제는 그 엄마들이 전체가 아닌데도 '내 아이가 이기고 내 아이만 살리는' 목소리가 크게 반영되는 구조라는 점이에요."

오지숙씨는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서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척도로 삼아왔다. 미소를 잃으면 그걸 없애주는 방식으로 균형감을 잡았다. 하지만…. "엄마 혼자서 아이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임계점이 넘어가고 있는 게 느껴져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아이를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세월호 참사가 엄마 오지숙의 문제가 된 이유다.

그의 1인 시위 이야기를 읽고 페친들이 많이 늘었다. "나는 못하는데 너는 대단하다"는 반응이 많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실망하지 않아요. 나 하나 행동하는 것에 만족해요. 내 남편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누가 나랑 같겠어요.(웃음) 저에게 세월호 1인 시위는 예방접종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 수 있는.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다만 저는 나와 다른 51%(박근혜 지지)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거죠. 누구나 공감하는 '엄마'의 이름으로."

세월호 기억하게 한다면 "뭐든지 다 됩니다"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세월호침몰사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학부모들 피켓을 들고 각자의 위치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는 간절히 소망한다. 1초의 시간을. '하느님 한 명이라도 저를 쳐다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도 그래서다. 처음에는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게 싫었지만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라면 "뭐든지 다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날은 가장 많은 엄마들(6명)이 함께 1인 시위를 했다. 용인에서 오고, 공주에서 왔다. 이들 모두 오지숙씨처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왔다가, 아이가 집에 오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신세다. 낮에 가출하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30분도 좋다. 동참을 권한다. 해보니 엄마수업, 된다. http://omn.kr/8t1s

*첨언: '인간 오지숙'을 이해할 수 있는 추가의 일화.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뙤약볕에 말라가는 지렁이를 보고 그녀는 집어서 풀숲에 옮겨주는 유형. 곁에 있던 남편은 어차피 새먹이가 될 텐데 뭐그리 애를 쓰냐고 안쓰러운 표정. 이에 "당신 말이 맞는데 그래도 나는 죽어가는 생명을 봤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줘야겠어"라고 말하는 사람.

▲ 10만인클럽 7월 특강 '엄마와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 ⓒ 오마이뉴스

덧붙이는 글 | 10만인클럽 7월 특강은 '엄마와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입니다. 세월호를 계기로 엄마의 자리를 찾는 많은 분들이 오십니다. 오지숙씨도 함께 합니다. http://omn.kr/8t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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