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거대한 굴뚝이 토해낸 미세먼지..."암 환자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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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에 소변... 밀양시장 너무한다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 30] 고 유한숙씨 분향소 결국 철거

14.01.28 12:04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 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로 현장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 고 유한숙 어르신의 장남인 유동환씨가 영정을 모시고 시청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 김종술

"엄용수 밀양시장은 빨리 나와서 대화에 응하라!"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은 폭력적인 진압을 중단하라!"
"밀양시청 공무원은 도둑질해 간 영정을 지금 당장 돌려 달라!"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포위된 후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노상에서 밤을 새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27일 낮 12시 15분부터 28일 오전 11시 20분 현재 밀양시청 앞에는 총 8명의 사람(밀양 주민 6명, 대책위 1명, 다큐멘터리 감독 1명)들이 경찰에 포위돼 있다. 이들이 이렇게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꼬박 샌 이유는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 이전 설치 때문이다.

밀양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2일 음독자살한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는 영남루 건너편 체육공원 입구에 있었다. 하지만 그곳 상인연합회가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지난 27일 낮 대책위와 유족, 주민 40여 명은 시청 인근에 분향소를 이전 설치해 달라는 요구안을 가지고 엄용수 밀양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시청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들을 반긴 것은 경찰과 밀양시청 공무원들이었다.

이계삼 765㎸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4천여 명을 태운 희망버스가 왔을 때 얼마든지 밀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한전과 밀양시처럼 더러운 짓을 하기 싫어서 떳떳하게 와서 면담을 요구하는데 받아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불법을 행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주민들이 버거우면 유족과 주민대표, 대책위 대표 등이 시장과 면담하겠으니 길을 열어라"라고 말했다.

유족들 "고 유한숙 분향소 설치 요구, 왜 막나"

▲ 수녀님들이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 봅니다. 그 시간에도 경찰의 채증 카메라는 돌아갑니다. ⓒ 김종술

▲ 경찰의 끌어내기 진압이 시작되었다. ⓒ 김종술

유한숙 어르신의 큰아들 유동환씨는 "왜 막고 계십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765 송전탑 때문에 약 먹고 죽으려고 했다'고 했던 말을 경찰도, 나도, 동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고 이아무개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는 조문까지 왔던 엄용수 시장이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하세요? 여러분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이렇게 안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시장과 면담하러 왔습니다. 경찰과 공무원은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200여 명의 경찰과 50여 명의 공무원이 밀양시청 정문에서 막아섰다. 항의하던 주민과 유족은 정문 좌측 공원에 자리를 잡고 영정을 모셨다. 오후 1시 30분, 흙먼지를 일으키며 경찰과 공무원들이 진압을 시작했다. 목에 쇠사슬을 걸고 저항하는 주민과 수녀님을 뺀 나머지는 경찰에 끌려 나왔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경찰에 이끌려 나왔다.

▲ 경찰과 공무원의 진압이 시작되면서 상처를 입은 심명선(여·42) 전국어린이책시민연대 대표가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종술

▲ 1차로 주민들이 끌려 나가고 목에 쇠사슬을 걸었던 주민과 수녀님만 남은 가운데 1명이 실신해서 쓰러져 있다. ⓒ 김종술

유한숙 어르신의 딸은 끌려 나오면서 목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또 심명선(여, 42) 전국어린이책시민연대 대표가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다른 주민 한 명도 실신했지만, 병원행을 거부했다. 오후 2시경, 목에 쇠사슬을 걸고 있던 주민과 수녀님들은 경찰과 밀양시청 공무원에 의해 고립됐다.

오후 2시 30분, 경찰의 스피커에서는 "미신고 불법집회입니다. 지금 즉시 해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산하지 않으면 사법처리됨을 알려 드립니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자 유족 유동환씨는 "우리는 불법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며 "아버지를 모실 수 있도록 분향소를 설치해 주세요, 내 동생은 끌려 나오면서 방패로 찍히고 내동댕이쳐져 목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영정은 염원인데 상주를 발로 밟고 끌어내는 게 도리입니까?"라고 재차 말했다.

결국 이계삼 사무국장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경찰에 의해 포위돼 있고 화장실로 가지 못한다며 구제신청 전화를 했다. 오후 2시 48분, 현장에 나와 있던 부산 인권위사무소 소장은 "인권위가 경찰에 권고할 수 있으나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며 "경찰이 포위를 풀고 주민들이 화장실에 가게 하도록 중재하겠다"며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경남청 제1기동대 대장이라고 신분을 밝힌 경찰은 "고착(포위)이 아니다, 화장실을 다녀와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경찰은 "밖으로 나갔던 사람은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전제를 달았다. 결국 수녀님 한 분이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다시 주민들 무리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화장실도 못 가고 페트병에 소변 보는 수모까지

▲ 목에 쇠사슬을 걸고 영정을 지키기 위해 유족과 주민들이 흙먼지가 이는 가운데도 참아내고 있다. ⓒ 김종술

▲ 영정을 지키던 고 유한숙 어르신의 딸까지 끌려나오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목에 상처를 입었다. ⓒ 김종술

상황이 일어난 지 다섯 시간이 다 돼 가던 오후 4시 50분, 지친 주민들을 위해 컵라면과 요강이 도착했다. 수녀님 2명, 주민 7명, 대책위 2명, 다큐멘터리 감독 1명까지 총 13명이 5평 정도의 장소에 계속 꼼짝 못하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한 주민들은 음식을 놓고도 먹지 못했다. 결국 한 남성은 참지 못하고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인권위의 중재로 오후 5시 36분 정도에야 주민들이 2명씩 짝을 이뤄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경찰과 공무원은 1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주민들 주변을 돌았다.

시간은 흘러 오후 8시 14분. 대책위는 다시 주민들을 위한 라면과 김밥을 가지고 왔다. 이 과정에서도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가져온 박스는 경찰에 빼앗기고 음식물만 반입할 수 있었다. 또 동행한 연대자의 가방을 수색하려는 과정에서 또다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밤이 되면서 급격히 떨어진 기온에 대비한 목도리와 침낭 바닥에 깔려던 박스, 영정까지 모두 경찰과 밀양시청 공무원들에게 빼앗겼다. 이 과정에서 주민 3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 오후 10시, 주민들은 경찰에게 둘러싸여 고착되어 있다. ⓒ 김종술

▲ 밖으로 끌려 나간 주민들도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추위를 달래고 있다. ⓒ 김종술

▲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도 경찰에 둘러싸여 고착되어 있다. ⓒ 김종술

주민들은 기자가 기사를 쓰기 위해 자리를 뜨던 27일 오후 12시까지도 대치를 계속하고 있었다. 밖으로 끌려 나온 주민들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부상 당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병원행을 거부하고 경찰에 의해 고립된 다른 주민들을 지켜봤다.

한편,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유족들은 경찰이 방패로 유족(유선화씨)을 찍었다고 주장하는데, 밤새워 경찰이 채증한 자료를 확인한 결과 방패로 찍은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또 "고착되어 있는 주민과 수녀님도 본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들어가지 못해서 나오지 않았을 뿐 화장실을 못 가게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유선화(여·43)씨는 "두 번째 끌려나오면서 경찰에 밟히고 방패로 목과 어깨를 찍혔다"며 "그래서 오빠(유동환)가 몸으로 나를 막아서 큰 사고를 면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밀양 주민들은 경찰·공무원들과 함께 밤을 하얗게 샜다. 기자가 밀양을 취재한 이래 주민들이 경찰 등에 의해 24시간 가까이 고립된 경우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결국 28일 오전 10시경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는 완전 철거됐다. 그리고 주민들은 여전히 밀양시청 앞을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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