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삼풍백화점 붕괴, '골든타임'은 있었다

10만인 리포트

10만인 밀양리포트

"휘발유 아저씨 안아 드리는데 울컥했다"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 28] 두 명의 '밀양 특임기자'와의 대화

14.01.23 16:56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 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로 현장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는 밀양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는 두명의 시민기자 인터뷰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5일 오전 8시30분경, 경남 밀양시 내이동의 '너른 마당'(밀양두레기금)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 상황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예, 상황실입니다. <오마이뉴스> 기자요? 예, 이야기를 해볼게요."

밀양 할머니는 <오마이뉴스>기자부터 찾았단다. 장수민 활동가(39)는 전화를 끊고 상황실에서 나왔다. 그는 찬 물에 대충 머리를 감고 난로 앞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털고 있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팀의 김종술 시민기자에게 고답마을의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경찰이 컨테이너 박스를 들고 고답마을에 들이닥쳤다네요."
"그럼 빨리 현장에 갈게유!"

'금강의 요정', 밀양 특임기자로 나서다

▲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를 진행하고 있는 김종술 시민기자가 기사를 쓰고 있다. ⓒ 김병기

김 기자가 배낭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집어넣고 차량에 탑승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대기조보다 빨랐다. 한달 여전에 충남 공주에서 밀양으로 달려온 그는 백태양 활동가(35)와 함께 취재 현장으로 출동했고, 그날 오후 편집국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송고했다.

"할배들의 바가지 시위 "경찰이 미치지 않고서야..."

밀양대책위 상황실의 창고 방에서 더부살이하면서 <오마이뉴스> 특임기자로 활동하는 김종술 기자는 49세 노총각이다. 김 기자는 지난해 12월 초에 상근기자와 시민기자로 구성된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팀'의 일원이었다. 당시 상근기자들은 일주일 여간 취재를 마치고 충남 공주로 철수했지만 그는 "밀양 할매들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면서 지난해 12월31일 다시 밀양으로 와 현장 리포트를 이어가고 있다.

금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공주 공산성 붕괴 사건 등을 특종보도했던 그의 별명은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은 '금강의 요정'. 4대강사업으로 파괴되는 금강의 모습을 보도하면서 함께 아파하는 기자의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란다. 이번에는 송전탑으로 파괴되는 밀양 할매-할배들의 현장 목소리를 기사로 담고 있다.

상황실에 전화벨이 울리던 시각, 정대희 시민기자는 너른 마당 '시끌벅적 공부방'에서 모자를 쿡 눌러쓴 채 기사를 썼다. 그의 책상은 노트북 한 개를 간신히 얹은 수 있는 조그만 간이탁자. 5~6평 공간에서는 오전에 기타강습이 열리고, 오후에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저녁에는 회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 기자는 매일 시끌벅적한 또 다른 전쟁터인 이곳에서 기사를 쓰고, 잠을 자면서 김종술 기자와 함께 밀양리포트를 이어가고 있다.

▲ 밀양에 체류하면서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를 쓰고 있는 정대희 시민기자. ⓒ 김병기

정 기자 역시 34세의 노총각. 충남 태안에서 오랫동안 시민기자로 활동해 온 그는 김 기자와 함께 지난해 12월 31일 밀양에 특파됐다. 이 두 기자의 또 다른 공통점은 <오마이뉴스>를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이라는 점이다. 매달 자신의 지갑을 열고, 그것도 모자라 노트북을 열어 기사를 쏘아주는 일인 다역의 열성파 시민기자다. 지난 14일 '특임기자 기자증'을 전달하기 위해 두 사람을 만났다.

덜렁이 기자 VS 설거지 기자

- 밀양에 왜 왔나?
김종술 : "할머니들이 보고 싶었다. 1차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왔을 때 만난 할머니들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어머니가 82세인데, 밀양 할매들은 어머니같은 분들이다. 분향소에 갔을 때 나에게 스스럼없이 피멍든 팔, 피멍든 다리를 보여줬다.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정대희 : "현장 기자로서 살고 싶었다. 르포 기사를 써서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상황실에서 시작한다. 정 기자는 공부방에서 생활하는데, 김 기자는 너른 마당에서 독방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창고방이다. 장난감과 각종 시위용품 등이 쌓여있는 2평 남짓한 공간인데,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빈곳이 그의 숙소이자 기자실이다. 얼마 전부터 온수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찬물로 대충 씻고 지내고 있다.

김 기자는 매일 오전 8시에 눈뜨자마자 상황실과 분향소를 들른다. 밀양강의 겨울 칼바람 속에서 할매-할배들이 돌아가면서 분향소를 지키기 때문에 새로운 기사 아이템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단다. 밀양 송전탑 예정지의 일상이 시시각각 타전되는 상황실은 바로 건넌방이어서 현장 취재 정보를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정 기자는 처음에 밀양에 왔을 때, 3일 동안 할매-할배들이 비닐이나 천막을 치고 한전 직원들을 지키는 노상 움막에서 잤다. 그 뒤에는 시끌벅적 공부방에 진을 치고 오전에는 현장 기획 기사를 준비하려고 자료를 찾은 뒤에 할매들을 인터뷰하러 오후에 취재에 나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김 기자는 현장 취재를 전담하고 있고, 정 기자는 현장 기획 취재를 중심으로 역할분담이 이뤄진 셈이다. 정 기자의 또 다른 역할은 설거지. 대책위 상황실에서 신세지는 게 미안해 밥을 먹고 난 뒤에 설거지를 한다.   

- 기사를 봐도 두 기자의 취재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지는 않나?
김 : "난 덜렁이 기자다.(웃음). 정 기자는 자료 활용해서 꼼꼼하게 쓰는데, 난 현장 기사를 주로 쓴다. 현장에서 경찰들이 할매들을 과격하게 진압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기도 한다. 활동가형 기자라고 할 수 있다."

- 김 기자가 '활동가형 기자'라면 정 기자는 '학구파 기자'인가(웃음)?
정 : "기본적으로 현장 취재를 하지만 전체적인 윤곽을 담으려고 자료를 많이 활용한다. 경찰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송전탑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도 만나려고 애를 쓴다. 김 기자와는 취재 스타일이 다르지만, 다행히도 취재 동선도 달라서 서로 싸울 일은 없다.(웃음)"

"<오마이뉴스> 때문에 살아남았다"

- 밀양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나?
김 : "당근! 일단 현장에 가면 어머니들이 우리를 찾는다. '오마이뉴스가 있어서 우리가 살아남았다'라고 말씀하신다. 기자가 현장에 가면 경찰의 진압이 부드러워진다고 말씀하기도 한다. 내가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한다."
정 : "할매들은 <오마이뉴스> 이름만 들어도 반색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밀양의 문제를 전국화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 말이 끝나자 시끌벅적 공부방으로 박준호(초등학교 4학년)군이 들어왔다. 

정 : "너 오늘 고대 풀었네?
김 : "야, 형한테 뽀뽀 한 번 해주라. 너, 나 안 보고 싶었니?"

이 모습을 보니 두 명의 시민기자들은 영락없는 밀양 주민이었다.  

- 현장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김 : "지난 6-7일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경찰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았던 경찰과는 너무도 달랐다.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 입고 온 철거 현장의 용역 같았다. 경찰이 되레 주민들을 자극했다. 경찰이 고답마을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려고 시도하면서 5명이 구속되고 10여명이 병원에 갔다. 너무 잔인했다."
정 : "밀양 부북면 위양리 127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인 화악산 산꼭대기 1번 초소에서 할머니는 움막을 지키고 있다. 반면 여수마을은 경도 좋고 조용한 마을이다. 너무 대비된 풍경이다. 그런데 마을 속으로 깊이 발을 들여놓았더니, 송전탑 한개 때문에 엉망이 돼버린 주민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8년 동안 싸우면서 욕쟁이가 된 할매, 할배들. 시골의 순박한 어르신들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상황에 대해 화가 났다."

"휘발유 아저씨 안아 드리면서 울컥"

▲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를 진행하고 있는 김종술 기자가 묶고 있는 밀양대책위 사무실의 쪽방. ⓒ 김병기


- 비슷한 질문인데, 가슴 아팠던 적은?
김 : "가을의 끝자락에 왔을 때였는데, 추수를 못해서 나락을 베어서 들에 쌓아놓았더라. 메주콩도 선별이 안 된 상태로 마당에 쌓여 있었다. 할매한테 왜 이렇게 두었냐고 물었더니 '매일 싸움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1년에 콩을 수확해서 500만원 벌이를 해서 그동안 자식들에게 손을 안 벌리고 살았는데, 올해부터는 자식들을 의지해야 하는 게 슬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정 : "지난 6일 고답마을에서 할매들이 많이 다치니까 한 주민이 격분해서 휘발유를 가지고 현장에 가는 것을 빼앗았다. 간신히 그 분을 막았다. 그날 저녁에 모닥불을 펴놓은 자리에서 그 아저씨를 안아드렸다.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하셔야지, 극단적으로 행동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울컥했다."

- 현장에서 만난 할매들이 송전탑을 반대하는 까닭은?
김 : "수십 년 모아온 재산인데, 하루아침에 국책사업이라면서 말뚝만 꽂으면 국가 땅이 되는 세상에 심한 박탈감을 갖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또 송전탑의 유해성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전 측은 무해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서울 강남 심장부에 송전탑을 꽂으면 문제될 게 없다. 왜 시골에만 송전탑을 세워야 하나. 생산지는 시골인데, 전력 소비지인 서울에는 송전탑이 거의 없다. 언제까지 시골에 희생을 강요할 건가. 한전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는 데, 주민들의 요구대로 지중화 하는 것이 옳다." 
정 : "현장에서 본 할매들의 인식은 '탈핵'에 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김 기자 말처럼 사유재산권 문제 때문에 오늘도 싸움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한전, 그리고 일부 언론들은 이를 두고 '님비' '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게 사유재산권이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사유재산권은 중시되고, 약자들의 사유재산권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그렇다면 정부와 한전은 왜 송전탑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나?
김 : "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뿐만 아니라 현재 서있는 송전탑도 모두 지중화해야 한다고 우려할 것이다. 나아가 핵발전소 수출건도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정 :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도 765kV 송전탑을 많이 세워야하는데, 여기서 꺾인다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핵발전소를 더 지을 수도 없을 것이다."

밀양 송전탑이 없어지려면?

▲ 김종술, 정대희 시민기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10만인클럽 회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 김병기

- 일부에서는 공권력에 맞선 밀양 할매들의 싸움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김 : "밀양 할매들이 대한민국의 에너지정책을 바꾸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막무가내로 송전탑을 꽂지는 못할 것이다. 국책사업이라고 해서 제 맘대로 사유재산에 깃발을 꽂지 못할 것이다. 할매들은 집회문화도 바꿨다. 다른 지역에서는 소위 외부세력들이 앞장서서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밀양 할매들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외부세력들은 밥을 지어주고, 심부름하고, 병원에 데려가는 보조자 역할만 하고 있다. 목숨을 걸도 달려드는 할매들을 보면서 이 지역 지도에서 송전탑을 영원히 추방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정 : "사실 밀양에 오기 전에는 승산이 거의 없다고 봤다. 80% 이상은 할매들이 진 싸움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곁에서 싸우는 할매들을 보면서 이길 수도 있는 생각을 했다. 밀양 할매들이 지역에서 고립되면 역시 승산이 없겠지만, 전국 송전탑 반대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이 싸움이 서울 등 전국적으로 확대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정 기자는 23일을 마지막으로 밀양을 떠나 고향 태안으로 돌아간다. 2차 희망버스(25일)가 도착하기 이틀 전이다. '희망버스를 취재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니 "기자 한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밀양의 희망은 '우리'다"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희망버스가 열심히 사람을 실어 나르면서 다 함께 고민하고 밀양의 할매들처럼 아파하면 그게 바로 밀양의 미래"라는 것이다. 

김 기자는 희망버스 취재를 마친 뒤인 26일 밀양 취재를 마치고 공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김 기자는 "집에 들렀다가 다시 올 것 같다"이라면서 "할매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를 전하는 두 회원이 다른 회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었다.

▲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를 진행하고 있는 김종술 시민기자.

ⓒ 김병기


▲ 10만인클럽 밀양 리포트를 진행하고 있는 정대희 시민기자.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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