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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할아버지의 일침 "국가는 도리 지켜라"
[10만인클럽 밀양리포트21] 고답마을 최고령 박상진 할아버지 인터뷰

14.01.15 13:19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 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와 상근 기자로 현장리포터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 지난 8일 빗속에 마을주민 상당수가 다치면서 박상진(94) 어르신이 주민의 부축을 받고 나왔다. ⓒ 김종술

몸도 가누기 힘든 94세 어르신도 거리로 나섰습니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8일, 밀양 상동면 고답마을에서 최고령 할아버지인 박상진 어르신은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치중이던 경찰을 향해 호통을 쳤습니다.

"우리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하는 짓이냐!"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쓰러지는 주민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기에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이틀 전인 지난 6일, 한전은 밀양 송전탑 113번 공사장 길목에 컨테이너 박스 한 개를 끌고 들이닥쳤습니다. 바로 옆에 설치할 114번, 115번 송전탑 공사가 시작된다는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돈 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은 115번 송전탑이 들어설 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움막을 설치했습니다. 경찰은 이틀 동안 컨테이너를 앞세우고 마을 진입을 시도했고,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이를 가로막으면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틀간 총 20차례가 넘는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연행됐고, 10여 명이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다치고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전쟁터를 지켜야 했던 주민이 10여 명이 넘었습니다.

8일에도 경찰과의 신경전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지팡이를 들고 주민들의 부축을 받으며 박상진 어르신이 증손자뻘 되는 의경 앞에 나서 일장 훈시에 나선 것입니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재가 들어가면서 마을 주민이 땅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경찰은 다른 곳으로 철수했고, 사흘간의 숨 막히는 전쟁은 끝났습니다.

박상진 어르신은 30년간 세무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90세 할머니와 고답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마을 최고령이기도 하지만 주민들도 어르신을 믿고 따른다고 합니다. '고답마을 전투'가 끝난 뒤인 지난 13일,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철제 대문을 여니 넓은 마당에 두 채의 한옥집이 보였습니다. 서예를 좋아한다는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간 서재에는 수백 년간 이어진 집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10여 개가 넘는 조상들의 영정. 붓걸이에는 여러 종류의 붓이 걸려 있고, 자신의 서예 작품으로 만든 병풍도 놓여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넓은 책상에 앉아서 잠시 회상하듯 말했습니다.

"18대 조상의 묘소가 이곳에 있다. 선조부터 400년 이상을 살아온 곳이다. 공직을 끝내고 고향에 와서 선산도 돌보고 문중도 돌보기 위해 30년 전에 돌아왔다. 그리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송전탑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 94세로 고답마을 최고령자인 박상진 어르신 ⓒ 김종술

어르신은 이어 "송전탑이 지나가면서 어떤 피해가 나타나는지 잘 모르지만 송전탑 지역을 알아본 결과, 동물과 식물이 번성을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한전은 피해가 전혀 없다고 하지만 외국에서는 주민들이 살지 않은 바깥으로 (송전탑이)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민들이 일자무식이라고 해도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저 피해만 없다고만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대안도 내놨습니다. 어르신은 "아무리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해도 일직선으로 공사해야만 빨리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데, 힘 있는 지역은 돌아가고 힘 없는 노인들만 살아가는 이런 곳에 마을까지 내려와서 탑을 세우겠다고 한다"면서 "힘이 없어서 우리가 손해를 본다고 쳐도 우리도 사람인데 땅속으로 묻어서 피해를 줄여 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전은 예산이 많이 든다는 말만 할 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없다는 말만 되풀이..."

"송전탑이 지나가는 상동면은 인구도 많고 토지도 많은 곳이다. 엊그제도 한전에서 와서 피해 지역이니 신청을 해서 돈을 요구하라고 했었다. 피해가 없다고 하면서 왜 돈을 주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피해가 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게 아닌가? 무조건 '피해가 없다'고만 하면 서로 신뢰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돈을 위해서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다. 나 혼자 돈을 받고 보상을 받으면, 젊은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존경받으며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갈 것이다."

어르신은 "아무리 대를 위해 소가 희생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산이 많이 들어 못하겠다는 것은 우리를 너무 쉽게 보기 때문"이라면서 "우리가 밥을 달라고 데모를 하나, 돈을 달라고 데모를 하나, 우리는 선조들이 계신 고향에서 조용히 살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르신은 경찰에 대한 불만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나 봅니다.

▲ 박상진 어르신 경찰에게 돌아가라는 경고를 하시는 모습 ⓒ 김종술

"지난 (6일, 7일) 사고는 경찰에 대항했던 주민들의 정당방위로 생각한다. 만약에 경찰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한전이 공사하든, 우리가 죽든 다 끝났을 일인데 경찰이 가운데 뛰어들어 이러는 게 못마땅하다. 경찰은 한전 공사장으로 돌아가서 그곳을 지키는 게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젊은 경찰이 무슨 죄인가. 가서 지키라고 해서 온 것인데, 그들도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어르신은 '공평한 송전탑'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국가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원전을 해야 한다면 막지는 않겠다. 내 마을이 싫다고 다른 곳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쪽도 당연히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구불구불 거리며 춤 추듯 지나가는 송전탑을 곱게 지나가도록 하는 게 공정한 세상이다.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 감수는 해야 한다. 우리는 반대를 하는 게 아니라 피해가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들 머리 위로 송전탑이 지나가는데 어느 누가 반대를 하지 않겠는가?"

고답마을은 감 생산지다. 감 농사만 지어서 1년에 5000만 원을 버는 주민도 있단다. 어르신은 "이곳 주민들이 평화롭게 감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제발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면서 "그렇게 벌어서 아들딸 대학에 보내고 나라 일꾼 만들어 낸다. 나도 세 아들과 세 딸을 키우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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