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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의 육체로 말한다

마흔, 훌륭한 '양아치 전문 배우'를 꿈꾸다

14.01.03 16:13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이상했다.

2014년 1월 1일, 나는 마흔살이 됐다. 특별한 일도, 별다른 마음의 동요도 없었다. 전날인 서른의 마지막 아침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떡국 대신 수제비를 끓였다.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배추김치와 함께 따뜻한 수제비를 나눠 먹었다. 그렇게 내 마흔의 첫 아침은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마흔이라... 물론 중년이 됐다는 사실이 가볍지 않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내가 아버지 나이를 물었을 때 당신은 "42살"이라고 답했다. 그 후, 42살은 내게 어른이 되는 나이로 각인됐다. 누구 말마따나 계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마흔이 됐고, 금방 42살이 될 거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철이 덜 들었거나 남들보다 깨달음이 느려 그럴 거다.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느리고 더뎠다.

초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지난한 나머지 공부를 거쳐 한글을 깨우쳤고, 초중고 내내 줄반장 한 번 못했다. 대학은 재수를 거쳐 간신히 들어갔으며, 토익 점수도 없이 나이 서른에 <오마이뉴스>에 입사했다. 친구들은 어느새 학부형이 됐지만 난 아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중년을 맞았다.

내가 남들보다 빠른 건 딱 하나다. 훌렁 빠진 머리카락과, 그로 인해 최소한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 난 겨우(?) 마흔살인데, 남들은 내 얼굴에서 50년 세월을 읽는다. 지금만이 아니다. 스무살엔 서른살로 보였고, 서른살의 내 얼굴에는 40년 세월이 아른 거렸다. 그렇게 내 얼굴은 늘 세월을 저만치 앞질러 갔다.

오죽하면 주성영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나를 보고 "나랑 동갑으로 보이는데... <오마이뉴스> 정치부장이야?"했을까. 그때 나는 수습기자로 국회에서 교육받는 중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위로랍시고 내게 말했다.

"상규야, 너무 절망하지마. 너처럼 젊을 때 늙어 보이는 사람은, 늙으면 젊어 보여."

내가 이쯤 살아보니 알겠다. 이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확히 지난 2013년 7월 29일,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어깨동무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적었다.

▲ 지난 2013년 7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왼쪽)와 사진을 찍었다. ⓒ 박상규

"묻습니다. 둘 중 누가 더 젊어 보입니까. 왼쪽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오른쪽은 사원 박상규입니다."

사람들은 솔직했다. "박 기자가 더 잘 생겼다"고 답한 사람은 있어도, 내가 더 젊어보인다는 의견은 없었다. 오연호 대표는 64년생, 나는 75년생이다. 그렇게 나는 사장을 추월한 사원이 됐다.

세상이 말하는 새빨간 거짓말은 또 있다. 뭐, 마흔은 불혹의 나이라고? 세상의 유혹에 더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웃기시네! 나보다 앞서 마흔을 넘긴 선배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내게 세상은 온갖 유혹 투성이다. 난 여전히 전지현을 보면 '헉!'이 터지고, 바람이 불면 가슴이 떨린다. TV 프로그램 <사랑과 전쟁>을 봐도 불륜 현장의 주인공은 죄다 중년이다.

얼굴만 세월을 앞지르고, 뭐든지 남들보다 늦은 중년이어도 그리 좌절하지 않는다. 언젠가 문득 '아, 나는 남들보다 좀 더딘 사람이구나'하고 깨달은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 괜히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 좋고, 그러다보니 조바심도 적어졌다. 체념과 자기기만일 수도 있지만, 남들보다 먼저 성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은 삶의 여러 국면에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줬다.

그런 위안과 긍정 덕분인지, 아니면 유혹에 약한 탓인지,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세계여행 계획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오래 꿈꿨던 내 첫 소설이 곧 출간될 듯하다.(이건 간접 광고로 봐도 된다^^) 남들은 스무살, 서른살에 등단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도 난 그리 부끄럽지 않다. 이미 이야기 하지 않았나. 나는 늘 느리고 더뎠다고.

내가 40대에 이루고픈 꿈은 또 있다. 바로 영화배우다. 영화판에 장동건, 원빈, 조인성, 하정우 같은 배우만 있으면 큰일난다. 그럼 조폭, 똘만이, 양아치, 기둥서방, 노숙인 역할 등은 누가 하나. 나는 훌륭한 '양아치 전문 배우'가 되고 싶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꼭 이루고픈 꿈이다.

언젠가 강원도 깊은 산골의 스님과 차를 마셨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스님이 내 얼굴과 몸을 훑어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책상에 앉아 얌전하게 노트북이나 두드릴 얼굴과 몸이 아닌데... 저 뒷골목에서 술 마시고 기분 틀어지면 싸움질이나 하면서 살면 참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래, 세월을 앞지르고 뒷골목에 딱 어울리는 얼굴을 그냥 묵힐 수는 없다. 이미 15년 전, 내 영화계 데뷔를 충동질한(?) 사람들이 있다. 1999년 가을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모닥불 피고 놀다가 몸에 불이 붙는 사고를 겪었다. 한 선배가 모닥불을 키우기 위해 시너를 끼얹었는데, 그게 내 몸으로 튀었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분에 빨리 옷을 벗어 큰 화를 면했다.

그래도 나는 119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늦은 밤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는 내 얼굴과 상반신 전체에 흰 붕대를 감았다. 화상 전문 의사가 출근하는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대학병원 규모는 아니었어도 꽤 큰 병원이었다.

다음날 새벽, 간호사가 내 병실로 들어왔다. 간호사는 수술실로 가려면 붕대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는 허리 쪽부터 붕대를 천천히 풀며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영화 <약속> 포스터. ⓒ 약속

"박상규씨 그거 아세요? 지금 이 병원 모든 강호사들이 박상규씨 어떻게 생겼을까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모두들 영화 <약속>의 박신양을 상상하고 있어요."

1998년 개봉한 <약속>에서 박신양은 조폭 두목으로 나온다. 다른 조직원에게 '당한' 그는 병원에 입원해 얼굴에 붕대를 감았다. 그가 병원에서 붕대를 풀었을 때, 의사 전도연은 박신양의 얼굴을 보고 반한다.

그러니까 내가 입원한 병원의 간호사들도 그런 박신양을 상상한 거다. 간호사가 내 허리와 배, 가슴의 붕대를 풀고, 이윽고 얼굴 쪽 붕대마저 다 풀었다.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간호사가 나직이 말했다.

"아... 다들 <약속>의 박신양을 상상하고 있는데... 큰일이네요. 내가 간호사들에게 뭐라고 말할까요?"

박신양과 너무 다르게 생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내 얼굴을 보고 실망했을 그 수많은 간호사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세월을 앞질러 간 내 얼굴은, 다른 조직원에게 두들겨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조폭 역할을 하기에 더욱 안성맞춤이 됐다. 곧 그 병원 간호사들의 실망을 위로해 줄 순간이 올 거다.

마흔, 세상의 유혹에 흔들려도 된다. 세계여행을 떠나도 좋고, 작가로 등단을 해도 좋으며, 영화배우의 꿈을 키워도 된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어쩌겠나.

새해가 밝아도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 나이를 물은 그때, 내가 이토록 빨리 중년이 될 지 몰랐다. 여전히 남들보다 느리지만, 아직도 꿈꾸고, 설레고,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빨리 안 가도 된다. 그저 내게 딱 맞는 순간이 있을 테고, 그때 활짝 피어나면 된다. 그 순간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이렇게 나를 긍정하는 것도, 세월이 준 힘인지도 모른다. 많은 세월을 산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거나,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닐 거다. 그럼에도 나는, 세월은 사람을 허투루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어느 작가의 말을 신뢰한다.

마흔이 된 첫날 아침, 내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 건 딱 하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말했다. 특별할 것 없는 그 전화통화를 끝낸 뒤 내 가슴엔 작은 뿌듯함 같은 게 흘렀다. 어쩌면 그 느낌이야말로 내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는 작은 증거인지도 모른다.

나는 세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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