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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의 육체로 말한다

엄마, 북한 정보원, 남한 장교는 통했다!
[10만인리포트] 박상규의 육체로 말한다 2

13.10.16 11:05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엄마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바로 지난 주말(11일)의 일이다. 친구와 밤샘 '작업'할 일이 생겼다. 급하게 방을 하나 구해야 했다. 모텔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여러 효과음(?)이 우리 작업을 방해할 게 뻔해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다행히 집 옆에 리조트가 하나 있다. 문제는 가격. 놀지도 못 하고 밤새 일해야 하는데 10만 원 넘는 돈을 지불하는 게 아까웠다.

엄마에게 손을 벌리기로 했다. 엄마는 해당 리조트 간부 등 여러 사람과 친분이 있다. 아들의 부탁을 받은 엄마는 휴대폰을 열어 일부러 큰 목소리로 간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통화는 금방 끝났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얼굴에는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의기양양함이 흘렀다.

"됐다. 내가 직접 가서 말하면 방 하나 준단다. 너 빨리 수염 깎고 옷 갈아 입어! 같이 가게."

오랜만에 엄마의 힘을 확인했다. 근데, 수염 깎고 옷을 갈아입으라니? 나는 "바로 옆인데 뭘 씻어 씻긴..."이라며 대충 운동화부터 신었다. 그러자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 빨리 수염 깎고 옷 갈아 입어!"

나도 지지 않았다.

"갑자기 왜 그래? 엄마는 내가 부끄러워?"
"어! 부끄러워!"

헉, 엄마가 막내아들인 나를 부끄러워하다니! 엄마는 물러서지 않았다. "너 수염 안 깎으면 안 가!"라고 엄포를 놨다. 상황상 엄마가 '갑'이다. 일단 작전상 일보 후퇴하기로 했다. 수염을 깎고 점퍼를 걸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내가 너무 약하게 나갔나? 갑인 엄마는 한 번 더 치고 나갔다.

"야! 너 모자도 써!"
"엄마는 내가 대머리인 게 부끄러워?"
"어! 부끄러워!"

헉, 이건 또 뭔가. 나는 모자를 거부하고 밖으로 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엄마는 기어코 모자 하나를 챙겨와 차에 올랐다. 리조트로 가는 짧은 길. 엄마가 대머리 아들을 부끄러워 하는 이유를 밝혔다.

"야, 인마. 내가 리조트 사람들에게 '내 아들 기자야!'라고 큰소리 쳐놨는데... 산적같이 수염 기르고 머리 다 빠진 대머리 아들을 데리고 가면, 좀 그렇지 않냐? ㅋㅋㅋㅋ.... 일단 오늘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기자가 산적같이 수염 좀 기르고 머리 좀 벗겨지면 안 되나? 엄마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또 엄마가 '갑의 횡포'를 부리면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엄마 '빽'으로 전망 좋은 방을 저렴하게 구했다. 방에 들어가 거울에 나를 비춰봤다. 산적같이 생긴 아들이 부끄럽다고 당당히 말한 엄마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오래전 평양에서 만난 북한 정보원 허철남이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

▲ 2005년 북한 평양에서 만난 허철남씨. ⓒ 박상규

벌써 8년 전 일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2005년 <오마이뉴스>는 평양에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했다. 나는 취재기자 자격으로 평양에 갔다. 평양 행사 일정에는 관광도 있었다. 김일성 생가에 갔을 때 일이다. 남한에서 간 일행들과 우르르 이동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잡아끌었다.

"동무 이리 오라요! 남한 동무들 이동하는데, 왜 자꾸 여길 끼고 그라요! 빨리 저리 비키라요!"

키가 큰 북한 정보원이 나는 질질 끌고 갔다. 요약하면, 그 정보원은 나를 북한 주민으로 알았던 거다. 북한 주민의 외모와 스타일을 폄훼할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봤을 때 북한 인민과 내 스타일은 많이 다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그 정보원이 바로 허철남이다. 이 일을 계기로 '허철날 동무'와 친해졌다. 그날 밤, 맥주 한잔 하는데, 그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박 동무 아직 결혼 안 했지요? 내레, 그럴 줄 알았습네다! 내레 그동안 남한 동무들 많이 봤지만 고조, 박 동무가 최곱니다! 남남북녀란 말도 있고... 요즘 남한 남성 동무들 보면 죄다 잘 생기고 훤칠한데, 박 동무는 이건 뭐...(아래 위로 나를 훑어보며) 남한에서 장가나 갈 수 있겠습네까? 내레 맘이 아파서 안 되갔습네다! 날래 통일합시다. 참한 북한 여성 하나 소개해줄 테니, 날래 통일합시다!"

북한 정보원이 보기에 나의 외모는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나보다. 하지만 '국격' 좋아하는 이명박 정부 때나 해외에서 외교보다는 패션 등 고운 자태에 더 신경쓰는 지금의 박근혜 정부 때 저런 일이 벌어졌으면 어땠을까? 통일부와 국정원은 공동조사단을 꾸려 "적국에서 국격을 손상시키고 나라 망신시킨 종북세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듯하다.

역시 정부 당국이 알면 '종북' 운운하겠지만, 북한 정보원과 엄마는 한 가지 생각에서 제대로 통했다.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내 아들이지만... 저 얼굴로 어떻게 기자 일을 할까?'
'저 남한 동무 기자라는데... 남한에는 외모 기준이 없나?'

어쨌든 기자 생활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한 외모가 아니냐는 우려, 혹은 편견을 남북이 함께 갖고 있는 거다. 글쎄, '잘생긴 놈'이 이 바닥에서 어떤 특혜를 받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어서 알 길이 없거나, 특혜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일 터다.

분단의 경계를 넘어 남북이 함께 걱정하지만, 내가 외모 탓에 취재하면서 차별을 겪은 적은 없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을 적극 활용한 적은 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일이다.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 장병 가족들이 모였다. 군 특성상 아무나 정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군측은 버스를 이용해 정문에서 장병 가족만 태워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에 있던 나는 그 버스가 장병 가족만 태운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냥 차에 올랐다.

장병 가족들이 모인 강당은 슬픔으로 가득찼다. 잠시 뒤 천안함에서 생존한 병사와 함장이 등장해 경위를 설명했다. 강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분노한 장병 가족들은 군측에 거칠게 항의했다. 돌발 상황이었다. 나는 앞으로 뛰어나가 현장을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담았다. 이 일로 내가 장병 가족이 아닌 기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순간, 2005년 평양의 그때처럼 누군가 뒤에서 나를 잡아끌었다. 군 장교였다.

"장병 가족이세요?"
"......"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
"신분증 없어요? 빨리 보여주세요! 장병 가족 맞는지 저희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한동안 당황해 머뭇거리던 나. 잠시 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내 아들 때문에 마음 아파 죽겠는데, 왜 그래!"

헉, 동생 혹은 조카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내 아들"을 찾았을까. 그때 36살이었는데, 군에 아들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는 장교의 눈을 바라보며 '이런, 내가 왜 이런 실수를...'하며 자책했다. 하지만 그 장교의 반응은 더욱 놀라왔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장교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취재를 시작해 '단독' 기사를 송고했다. 시간이 지난 뒤, 기자실에서 그 장교를 다시 만났다. 장교는 나를 보고 '아버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라는 식으로 엄청 당황했다. 나는 장교에게 다가가 "본의 아니게 신분을 속여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장교는 진심인지 아니면 복수하려는 것인지, 내게 말했다.

"진짜 아버님 아니세요? 정말 깜빡 속았습니다. 근데 나이가....?"

이거 참 큰일이다. 조국의 안보를 최전선에서 지키는 남한 장교나, 감각과 눈썰미가 좋아야 하는 북한 정보원이나, 이렇게 사람을 제대로 못 봐서 쓰겠나! 그나저나, 정말 나의 외모는 그들이 깜빡 속을 정도의 경지에 이른 건가?

엄마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PS : 북한 정보원 이야기는 내 책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에도 있다. 자기 표절 논란을 우려해 밝히는 것이지만, '광고'로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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