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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선의 정치수다

새벽 0시, 나는 왜 '국정원 김직원'을 추격했나
[10만인리포트] 장윤선의 정치수다 2

13.08.20 15:39 | 장윤선 쪽지보내기|남소연쪽지보내기

▲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현직 국정원 직원 박원동 전 국장, 민병주 전 국장, 최영탁 전 팀장, 김하영씨가 얼굴 공개를 꺼려, 왼쪽 상단의 흰색 가림막 뒤에 전신을 가린 채로 증인석에 나와 있다. 야당 의원들은 얼굴 비노출에 동의해준 것이지 전신을 숨겨도 된다고 용인한 적 없다며 국정원 직원들의 청문회 출석 태도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 남소연

19일 오전 10시 국회 국정원 댓글의혹사건 청문회가 시작됐습니다. 말은 길었고 야유는 시도 때도 없이 터졌습니다. 의원 간 고성과 삿대질, 반말과 막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할 정도로 상황은 엄중했습니다.

제2차 청문회 증인은 무려 26명이었습니다. 이중 가장 주목받는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명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고, 다른 한 명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였습니다. 권 과장은 무려 14시간이 넘는 청문회 내내 단 한 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청문회에 임했습니다. 트위터에서 "이번 청문회 스타는 권은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야무지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상황을 잘 전달했습니다.

▲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직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흰색 가림막 뒤에 몸을 숨긴 채 증인심문에 응하고 있다. 심문 내내 김씨는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들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 남소연

소위 '국정원 댓글녀' 김하영씨는 이날 청문회장에 '김직원'이라는 명패 앞에 앉아 울먹이며 "무서웠다" 등등의 말들로 연민을 자극하려 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국민적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태도였습니다. 시종일관 되뇌였습니다. "나는 억울하다."

정말 그럴까요?

김하영씨는 야당 의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도 불리한 대목에선 답변을 피했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짜맞춘 듯 빠져나갔습니다. 그렇게 '김직원'도 무려 14시간을 앉아 있었습니다.

청문회 초반 권 과장은 선풍기도 없이, 김직원은 선풍기 두 대 사이에 공기청정기까지 갖다놓고 높다란 장막을 친 채로 말입니다. 그렇게 두 여성의 증언은 둘 중 하나는 위증이 틀림없게 엇갈렸습니다. 이 역시 검찰의 수사와 하루종일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의 판단에 달렸겠지요?

허나, 저는 기자로서 정말 궁금했습니다. '김직원'으로부터 이번 청문회에 임한 소회와 느낌을 정말 듣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국민들께 전달하는 것은 기자인 제 소임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저녁밥을 해먹이며, 집에서 TV로 청문회를 지켜보다가 저녁 설거지를 끝낸 뒤,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 현장에 가 앉았습니다. 질문의 수준은 밤으로 가니 더욱 노골화 됐습니다.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인 김태흠 의원은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대놓고 묻습니다.

▲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증인심문에 응하고 있다. ⓒ 남소연

"권 과장은 문재인 의원이 당선되기를 바랐죠?"

권은희 과장이 웃으며 답했습니다.

"의원님의 지금 그 질문은 헌법에서 금지한 십자가 밟기와 같습니다."

구약시대 예수 수난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인격권조차 박탈하는 듯한 질문에 말 그대로 '어이상실'이 됐습니다. 말장난인가 싶은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고 그 질문들을 꿋꿋하게 받아내는 권은희 전 과장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제2차 청문회는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자정이 지났고, 청문회 기일인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무려 14시간의 청문회, 실내온도 26도에 맞춰진 회의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제일 먼저 새누리당 위원들이 퇴장했고 뒤이어 민주당 위원들이 퇴장했습니다. 증인들도 떠났습니다. 어차피 마감은 국회 정론관에서 해야 하니 그 현장을 지킬 이유가 없는 기자들도 자리를 떠났습니다.

남은 것은 국정원 증인들과 국정원 관계자들, 그리고 소수의 취재진이었습니다.(오마이뉴스는 취재, 사진, 방송 등 5명의 기자가 끝까지 청문회장에 남아 현장을 지켰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김직원'의 마지막 뒷모습을 촬영하려고 현장을 지키고 있던 기자들을 대놓고 취재방해를 했습니다. 그만 찍으라는 주문이 이어졌지요. 제법 나이가 지긋한 한 분이 ENG 카메라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찍으시오. 원의 명예도 좀 생각해주고 그래야지, 뭘 그렇게 계속 찍어. 그럼 우리가 나갈 수가 없잖아."

현장을 지키던 몇몇 기자들은 촬영은 취재권리고 보도할 때 유의토록 하겠다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습니다. 실제 국정원 직원들이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뒷말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못 나가잖아."

▲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국정원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이렇게 말하는 순간, 김하영씨가 여자 변호인, 여성 조력자, 그리고 남성 1인과 함께 서류봉투로 얼굴을 가린 채 청문회장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습니다. 국회 본청 2층 좌측 복도를 따라 계단으로 내려가 1층 민원 출입구를 통해 빠져나가려고 했지요.

그때 <오마이뉴스> 카메라 기자가 따라붙었지요. 그러자 국정원 직원들의 물리력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기자들과 국정원 직원들은 한덩이로 엉켜붙어 육박전을 치렀습니다.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제 취재수첩을 국정원 직원이 낚아챘습니다. 고의성이 느껴졌지요. 왜 국정원 직원은 '김직원'을 취재하던 기자의 취재수첩을 툭 쳐서 집어갔을까요? 이튿날 오전 저는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취재수첩을 돌려받기는 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국정조사와 관련된 취재를 빼곡히 해놓은 수첩을, 그것도 현직 국정원 직원이 가져가 밤새 갖고 있다가,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을 통해 항의하자 그제서야 돌려준 것일까요?

취재수첩도 놓치고, 손에 쥔 거라고는 핸드폰 밖에 없었지만, 저는 그 와중에 떠나는 '김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김하영씨, 오늘 하루종일 청문회 참석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국정원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청문회장을 나서자, 김씨의 뒷모습이라도 기록해두려는 취재진과 이를 막는 국정원 관계자(얼굴 모자이크 처리)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검찰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들에게 기자들이 곧잘 묻는 질문입니다. 저는 정말 그게 궁금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댓글을 달았던 국정원 여직원이 무려 14시간동안 청문회에서 선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국민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대통령선거에 차질이 생겼다면 그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공무원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고 변호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입을 뗐습니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김직원' 일행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김직원'은 그렇게 국정원 남성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국정원이 미리 준비한 버스 차량에 올라탔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를 새도 없이, 국정원 직원의 외마디가 이어졌습니다.

"빨리 불 끄세요."

▲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국정원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회 본관 앞에 대기중이던 버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자정무렵 청문회 산회후, 국정원 관계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회 본관 앞에 대기중이던 버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혹시라도 얼굴이 알려질까 노심초사하는 그들은 얼굴 가리기에 급급했습니다. 정작 왜 자신들이 국회까지 불려나와야 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는듯 했습니다. '김직원'이 차에 탄 뒤에도 기자들과 국정원 직원들 간의 '한밤의 격투'는 한동안 지속됐습니다.

국정원이라는 국내 최고 정보기관이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에 댓글을 달면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면 그 자체로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국회 청문회장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보인 태도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기관인듯 했습니다.

헌데 아무리 되뇌여도 찾지 못한 답이 있습니다. '김직원'은 무슨 이유로 끝내 국민들 앞에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버스에 쫓기듯 올랐을까요? 이날 풀지 못한 의혹은 이제 정치부 기자인 저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일평생 2013년 8월 19일 '김하영과의 한밤의 질주'를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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