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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한기의 이번이 마지막

왜 오연호 대표는 새벽에 전화를 걸었을까?

13.07.18 14:40 | 이한기 기자쪽지보내기

박형숙 팀장에게서 10만인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고정 연재 코너에 글을 쓰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제 조건은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라는 거다. 모바일을 주제로 한 첫 원고는 완성되기도 전에 '퇴짜'를 맞았다. 사람 냄새가 안 난다는 거다. 개인의 신변잡기도 좋고, 오마이뉴스 야사(野史)도 좋단다. 폼 잡지 말고, 10만인클럽 가족들과 격의없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으라는 주문이다. 아, 불독같은 후배에게 잘못 걸렸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한기의 이번이 마지막'은 오마이뉴스 초창기 일화부터 시작한다. 기억의 한계로 사실관계가 다소 불명확할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양해를 구한다.

초창기 오마이뉴스는 롤 모델이 없었다. 인터넷신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일부 '신문사닷컴'이 인터넷뉴스 서비스를 했지만, 오마이뉴스와는 방향이 달랐다. 좋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새로웠고, 달리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낯설었다. 분초를 다툰다는 의미에서 자칭 '초일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건이 터지거나 뉴스거리가 발견되면 취재가 시작됐고, 기사가 마무리되면 곧장 인터넷에 기사를 올렸다.

편집국(뉴스게릴라본부) 체제도 취재팀과 편집팀으로 단순했다. 상근 취재기자 숫자도 한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기사 아이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고, 남들보다 한 발 빨리 접근하려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비정규 '뉴스게릴라'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오마이뉴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택과 집중'도, 그러한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초창기 오마이뉴스 편집국을 진두지휘한 건 오연호 대표다. 그는 '대표이사'이자 '대표기자'였다. 당시에는 '대표기자'의 정체성이 더 강했다. 사실상 편집국장의 역할을 한 것이다. 기획부터 취재 지시와 기사화 하는 전 과정을 함께 했다. 편집국이 가족적인 규모였기 때문에 호칭도 '오 대표'보다는 '오 선배'로 불려졌다. 초창기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공통적인 경험 가운데 하나가 '오연호 선배의 새벽 전화'다. 그것도 불시에 걸려오는.

초창기 취재팀장을 맡았던 나도 오 선배의 새벽 전화를 몇 번 받아봤다. 모월 모일 새벽 2시께도 그런 날이었다. 얼마나 전화 벨이 오래 울렸는지 모르지만,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졸리운 목소리로) 여... 보... 세요?"
"이한기씨? 안 자고 뭐해?"

새벽 전화의 첫 마디는 항상 그랬다. 안 잔 게 아니라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서 받은 것뿐인데.

"그게 아니라, 자다가......"
"그건 그렇고, OOO 뉴스 봤어?"
"예?" (그 뉴스는 대개 취침 이후 보도된 것이라 꿈에 나타난 게 아니라면 알 리가 없는 그야말로 따끈한 것이었다.)
"한 번 컴퓨터 켜서 확인해봐. 다룰만한 것인지."
"그런데,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요. 급한 건가요?"
"집 근처에 PC방 없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동네 PC방에 갔다. 체크해봐야 할 뉴스거리임에는 분명한데, 새벽시간에 챙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다시금 오 선배에게 전화로 보고하니, '그럼 아침에 이야기하잖다.' 잠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허탈감은 밀물처럼 다가왔다. 나중에보니, 다른 기자들도 나와 비슷한 '새벽 체험'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기자 한 명이 '오연호의 새벽 전화 퇴치(?)법'을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밤늦게까지 술을 한 잔 한 상태에서, 자정 넘어 오 선배 집에 '새벽 전화'를 먼저 걸었다는 거다. 십수 차례 벨이 울린 뒤 오 선배가 전화를 받았다.

"저 OOO 기잔데요. 주무셨어요?"
"(잠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아니......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의연하게 전화를 받았던 오 선배는 잠이 깰 때까지 십여 분 넘게 후배 기자의 '횡설수설' 정보보고를 받아야 했다. 한참 후, 맨 정신에 내린 결론은 '아침에 사무실에서 다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후배 기자는 지금도 이 사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하고 있다.)

공수가 바뀐 거다. 최대의 공격이 최대의 수비라고 했던가? 그 이후로는 오 선배의 새벽 전화가 끊겼다는 거다. 이 이야기를 듣던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부러움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지나고, 기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연호의 새벽 전화'는 잦아들었다. 가끔 향수처럼 그 시절, 이 이야기가 술자리 안주처럼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한 마디 하면, 술이 확 깬다. "그렇게 그리우면, 오 선배에게 새벽 전화를 다시 걸어달라고 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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