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어느 날, 지하철 1호선에서의 풍경입니다.
“양보를 좀 해야지 말야. 버티고 있어. 애들이 아주 어른을 우습게 봐요.”
비좁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등을 맞대고 있는 30대쯤의 남성을 향해 던지는 성토였습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가장 유동인구가 많다는 신도림역.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왔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등이 닿고 어깨가 부딪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60대 남성이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이 제대로 서기 위해 움직이는데 등을 맞대고 있던 30대 남성이 꼼짝도 않고 버티고 있더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조금 비켜서는 시늉이라고 했으면 싶었나봅니다. 하지만 앞으로 좀 당겨서라는 60대 남성의 주장에 30대 남성은 “여기 어디 여유 공간이 있느냐”며 반박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주먹질’로 확전될까 싶어서. 그런 경우를 왕왕 봐왔던 터였습니다. 다행히(?) 청년은 이어폰을 다시 장착했고 무시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60대남의 목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안철수가 애들 다 베려놨어!” 말이 이렇게 쏟구치자 근처 경로석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말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통진당, 이석기, 이북, 6.25, 공권력, 중국, 미국 등의 단어들이 튀어나오면서 종국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야. 다 썪었어”라는 식으로 비약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삽시간 연대였습니다.
저는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의 반응을 보기위해서였죠. 그들은 이미 딴 세상에 가 있었습니다. 눈은 스마트폰에 귀는 이어폰에. 누구하나 분노한 어르신들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분노와 무시가 공존한 지하철 1호선 급행열차는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어느 한쪽을 비난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누구나 그럴만한 행동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결과일 것입니다. 해서 그런 나와 다른 상대와 ‘소통’을 하자면 일단 알아야겠지요. 왜 그랬는지, 그의 처지가 어떠한지.
그래서입니다. 2030-5060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10만인클럽이 주최하는 ‘우리 공부합시다’ 특강 83번째, <세대전쟁,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강사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대 갈등의 현장을 취재해온 박종훈(KBS 경제전문기자, <세대전쟁> 저자)씨입니다. 결론은 ‘경제’입니다. 세대갈등의 원인이 유사 이래 반복되어왔다는 이른바 ‘신세대 싸가지론’의 문화와 이념 차이가 아니라 ‘경제위기’에서 비롯된 매우 구조적이고 위협적인 문제라는 게 박 기자의 진단입니다.
이미 여러 지표들이 말해주고 있지요. 1979년부터 1992년 사이(22~35세)에 태어난 에코붐 세대는 부모와 정반대의 삶의 경로를 거치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대부분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뒤 끝없이 성취의 사다리를 탔다면, 에코붐 세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사회 진출과 동시에 비정규직이나 청년실업자로 추락하는 경험을 합니다. 혼인율만 봐도, 부모세대는 25세 이전에 결혼한 경우가 절반을 넘지만 자식세대는 고작 8.3%에 불과합니다. 당연하겠지요. 에코붐 세대는 사회진출도 하기 전에 빚더미를 떠안은 최초의 세대입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수가 2005년에는 18만명에 불과했지만 2011년에는 136만명이 넘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 에코붐세대가 막 사회활동을 시작할 나이가 되자 청년취업율이 추락했습니다. 2007년 글로벌금융위기가 터졌고 4년제 대학졸업자의 취업률은 70%에서 55%로 떨어졌지요. 빚을 갚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데도 실패한 것입니다.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의 스팩을 자랑한다지만, 얼마 다니지 못한 회사의 퇴직금으로 절망북스 출판사를 차리고, 고시를 준비하다 <월간 잉여>를 창간하고, 독립잡지 <냄비받침>(잡지가 라면의 냄비받침이 되는 신세를 은유한 제호)을 통해 또래 청년들의 자신감 회복을 도모하는 현상들을 봅니다. 자신의 모든 걸 걸어 생존의 시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걸었는가'.
강사는 “세대 문제는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청년층의 인구와 소득 감소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고 기업의 투자와 산업경쟁력, 경제 전체의 성장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노후생활을 파괴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얘기입니다. 단적으로 정부가 집행하고 있는 부동산 부양책은 당장 기성세대들의 자산을 지켜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미래의 부동산 수요를 당겨서 써버린다면 얼마가지 않아 우리 모두의 자산가치가 폭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 아냐? 아닙니다. 강사는 "이 세대전쟁을 넘어설 수 있는 시간이 5년도 채 남지 않았다"며 "2010년 후반이 되면 고령화가 더욱 진전되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의 유권자수를 살펴보니 2030의 인구는 지난 대선에 비해 1% 가량 줄었고 5060은 1% 늘었다고 합니다. 대선 당시 투표율은 2030이 70%에 미치지 못했고 5060 이상은 80%를 넘었습니다. 미래세대의 미래를 기성세대가 '대리'해주는 형국입니다. 강사인 박종훈 기자는 40대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40대입니다. 이 기울어진 정치적 사다리의 균형추를 어디로 맞추는가에 40대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혹자는 ‘40대의 재정치화’를 말합니다. 2030-5060 사이에서 양측을 모두 견인하는 미드필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러고보니 이번 10만인클럽 특강은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강사가 취재하고 관찰한 ‘사실’에 기반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누가 이런 싸움판을 만들었는지 우리 삶의 ‘조건’을 따져봤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되는 시대인지, 아니면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우는데 힘을 써야 하는 것인지 말이지요.
-주제: 세대전쟁,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강사: 박종훈(KBS 경제전문기자)
-일시: 3월 19일(수) 저녁 7시30분
-장소: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홍대입구역 2번 출구)
-문의: 02-733-5505(내선 275)
●10만인클럽 나도동참 http://omn.kr/5g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