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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여름은 장례 치르느라 다 지나간 것 같아요. 오늘(2009년 8월 25일) 아침 10시에 동작동 현충원에서 김대중 대통령 삼우제를 지냈습니다. 저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두 분을 모시고 정치 20년을 같이 했는데 올해 이 두 분의 서거를 보면서 '참 유난하고 특별한 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쓴 글을 보니까, 1919년에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번째 왕인 고종황제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로부터 30년 지나서 1949년에 김구 선생님이 서거하셨어요. 그러니까 고종황제가 서거하셨을 때 조선왕조는 거의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고, 김구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독립운동이 끝난 직후지요.
그리고 30년 만인 1979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어요. 산업화를 이끌었던 한 시대가 마감된 거죠. 그로부터 또 30년 만에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30년 단위로 세대의 의미있는 곡절이 있었는데, 2039년에 어느 분이 돌아가실지... 그러니까 그 전에 돌아가시는 분은 별 거 아니에요(청중 웃음). 2039년에 돌아가시는 분이 큰 그릇일 거다, 그러면 지금부터 30년은 어떤 시대인가, 우리가 이걸 짚어보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국정을 운영하면서 제시하셨던 비전 2030이 바로 2030년대를 말하는 겁니다. 대통령께서 그 비전의 청사진을 많이 그려놓으시고 퇴임하셨는데, 그 내용은 앞으로 우리가 채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채운 사람이 2039년에 유명을 달리하면, 이 반열에 들어가는 분이 되리라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하셨던 사람 사는 세상, 이 세상은 참 별 거 아니거든요. 이렇게 우리가 같이 살면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거든요. 그런데 왜 그걸 일부러 강조했을까요? 그게 우리의 과제인 겁니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느냐.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라는 것은, 더불어 즐겁게 잘 사는 사회, 공동체를 만드는 거죠. 이게 우리의, 모든 인류의 좋은 가치이자 목표거든요. 더불어 즐겁게 잘 사는 게 당연한 건데, 이게 잘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세 가지 국정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두 번째는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세 번째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입니다. 이 세 가지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추구했던 3대 국정목표입니다.
(2009년 8월 25일 강의록 중에서)
요즘도 여러 강의를 다니고 있는데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강의인 듯합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 말은 노무현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죠. 사실 제가 1994년에 참여연대를 만들 때 구호가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꿉니다"였는데요, 시민운동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를 좀 더 인간다운 사회로 바꾸는 힘 자체가 시민들의 조직된 힘인 것 같습니다.
시민이란 모래알처럼 다 흩어져 힘을 쓸 수 없어서 우리시대에 조직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 만족하십니까? 더 좋은, 더 인간적인, 더 민주적인, 더 삶의 질이 보장된 세상,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독일어를 배운 적은 없습니다만,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제가 외우고 다닙니다. "Eine andere Welt ist möglich"
2005년에 3개월 간 독일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 속에서도 우리와 같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땀 흘리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독일사회는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사회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위해 땀 흘리는 분들을 발견하고 어느 사회나 이런 분들이 있구나하면서 동지의식,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잊으셨습니까? 저 생생한 기억, 모든 분들이 다 갖고 계실 겁니다. 학생들이 나섰던 장면인데요, 심지어 주부들도 아이들과 함께 나섰지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갇혔군요, 벽이 있습니다.
저는 촛불이란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 마틴 루터 킹이 1970년 대 어느 날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하는 연설했던 걸 기억하시죠.
그 당시만 해도 루터 킹 목사님이 백인만 탈 수 있는 버스에 함부로 잘못 탔다가 끌려 내려오고, 그것이 법률 위반이기 때문에 감옥에 간 아픈 추억을 갖고서 그런 시대에 흑백이 함께 같은 식당, 같은 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또 그 아이들이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면서 이 분이 연설을 했죠. 그때 100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 장소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아버지의 날에도 모였고요, 사회가 요구하는 현안이 있을 땐 늘 많은 시민들이 모입니다.
(2009년 9월 1일 강의록 중에서)
원래 노래를 해도 순서를 잘 잡아야 하는데, 조금 못하는 사람 다음에 하면 유리하죠. 그런데 제가 운이 나빠서 강의도 이해찬, 박원순이라는 명강사 뒤에 걸려서 대조되게 생겼는데, 사회자하고 이재정 이사장님도 워낙 말씀을 잘하시니까 저 같이 말 못하는 사람이 빛이 나긴 글렀습니다. 아까 박수 받은 때가 전성기였고요,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청중 웃음).
잠깐 노무현 대통령과 제 인연을 소개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의 인품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에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팬이 집안에 한 분 더 계셨는데, 제 모친입니다. 돌아가신지 오래 됐는데, 모친은 늘 사회 문제에 관심 많고 시간마다 라디오 뉴스를 들으셔서 정치를 잘 아셨어요. 자식들이 '정치평론가'라는 별명도 붙여드렸는지요.
여러 정치인을 관찰해보고서 하시는 말씀이 "노무현이 최고다, 노무현이라야 한다", 노상 가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런 영향을 받아서 노무현을 좋아하게 됐지요. 2001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여론조사기관에서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내년 대선에 누구를 지지하느냐' 물으니 모친이 '노무현을 지지한다' 하셨대요.
'내년에 누가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느냐' 했는데 노무현이 될 거다(청중 박수), 그랬더니 전화하는 아가씨가 굉장히 의아해 하더라는 겁니다. 대구에 사는 80대 할머니가 노무현을 지지하고 '노무현이 대통령될 거다'라고 대답을 하니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식들이 "에이, 어무이도. 노무현이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겠습니꺼" 했는데 한 달 뒤에 돌아가셨지요.
그리고 그 후에 정말 대통령이 되신 겁니다. 그래서 대선 다음날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당선'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난 한겨레신문을 들고 산소를 찾아가서 보고를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았다고.
또 하나의 인연은 2002년 8월, 1년 뒤의 일입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바닥일 때인데, 캠프에 있던 교수하고 얘기하다 우연히 들으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니 교수들이 뿔뿔이 떠난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화가 나더라고요. 그게 경상도 기질에 맞지 않습니다. 우직하고 의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지했던 사람을 지지율 낮다고 떠날 수가 있나하고 분개심이 생겼어요.
제가 불쑥 "노무현을 평소에 좋아하는데..." 이랬더니 그 교수가 그러냐면서 "얼른 와서 도와달라"(청중 웃음) 그러더라고요. 사람이 떠나고 없으니까. 다 떠난다면 나라도 가서 도와드리지요, 이렇게 대답했어요.
(2009년 9월 8일 강의록 중에서)
아까 기다리는 동안에 노무현 대통령 동영상을 봤는데, 그 속엔 연설하시는 모습도 있었죠. 노 대통령은 연설이든 강연이든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걸 아주 좋아하셨어요.
이렇게 청중이 많을수록 힘이 나고 신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국회의원 낙선하고 원외시절에, 원외여도 대중적 인기는 좋았기 때문에 전국각지의 지구당 창당대회라든지 개편대회, 당원단합대회, 요즘 같은 보궐선거 이런 데 지원유세를 많이 다니셨는데 몸이 아주 파김치처럼 녹초가 된 상황에서도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서 마이크만 쥐어주면(청중 웃음) 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나서 장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게 된다는 겁니다. 일종의 끼겠죠. 연예인들의 끼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선 아주 좋은 자질이죠.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정치인 체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끼가 없어서 대중강연이 오늘 처음인데, 게다가 부산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넓은 곳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더 긴장됩니다. 퇴임하시고 봉하 가셨는데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기 때문에 매일 몇 번이고 나가서 방문객들한테 인사 말씀하셨죠. 그 때문에 얽매여서 힘들다고 저희들한테 하소연도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그러면서도 사실은 방문객들한테 인사 말씀하시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청중 웃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말에 빠져서 방문객들 붙잡고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기도 하셨고요(청중 웃음)‘ 때론 관광버스 타고 오신 연세 많은 분들 상대로 대학생들한테 강의하듯이 따분하게 이야기하기도 하시고(청중 웃음). 그렇게 방문객들 앞에서 밀짚모자 쓰시고 어떤 때는 손녀하고 자전거 탈 때 쓰셨던 제주도 특산 모자 쓰시고 방문객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걸 즐기시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말씀을 좀 더 드리면 노 대통령이 말씀을 참 잘하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 때문에 시비가 많이 걸렸죠. 그 시비 때문에 당신도 참 속상해 하시고 저희도 속상한 때가 많았습니다. 품위가 없다, 깜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비난하고 모욕을 가하는 것도 참 속상하지만 제일 속상한 건 어떤 행사의 취지, 그때 전하려 했던 메시지가 다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지방의 지방혁신, 지역혁신 행사장에 가든 열심히 일하는 중소기업에 격려방문을 가든, 행사장 가실 때마다 노 대통령은 꼭 정책적 메시지를 준비해서 가시는데 행사의 취지나 전하려던 메시지는 오간 데 없고 어느 언론에는 시비가 되는 말만 부각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현장에서 들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이었어요. 오히려 현장 분위기에는 맞는, 청중하고는 소통이 잘 되게 만든, 어찌보면 일체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말이고 표현이었는데 그 다음날 싹다 없애버리고 딱 시비되는 말만 영상으로 잡아내거나 신문으로 옮겨놓으면 그 부분이 여지없이 돼버리는 겁니다.
(2009년 9월 15일 강의록 중에서)
마지막 강의를 맡았는데 사실 저로선 매우 난감한 강의입니다. 미래연과 기념사업회에서 하는 일이니까 하라면 하긴 해야겠는데... 저로서는 주제가 무척이나 난감했습니다. 별 관계 없이 살았던 분들 같으면 부담을 덜 느끼면서 할 수도 있는 주제인데요. 모시고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서 그 분에 대한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어서 몹시 부담이 됩니다. 3월 말, 4월 초 쯤에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제가 강연을 다 중단하고 한 6개월 동안 한 번도 강연을 한 적이 없어서 오늘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강연도 자꾸 해야 느는데, 6개월 동안 그렇게 있어서 강연이 잘될 지도 조금 겁나긴 합니다.
제가 여러분이 모르시는 걸 말씀드리거나, 외람된 표현으로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요. 이 주제에 관해서 제가 그냥 생각하는 바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나름 이 주제에 관한 생각들을 하고 계실 겁니다. 한 번 비교해보시고 맞춰보시면서,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돌아보고 기억하고 또 앞으로 살아나가면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에 대처해 나갈 때 그 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생각해보는 데 참고가 되는 강연이었으면 합니다.
이 주제를 맡고나서 한참 동안 강의 원고를 쓰지 못하고 생각만 했습니다. 쓸 수가 없는 기분이어서요. 그러다가 제가 직접 무어라 말하기보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기대어 보는 게 좋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예전에 읽었고 근자에도 읽고 있는 책들 중에서 노무현 정신 또 그것을 계승하는 방법 등에 대해 원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봤습니다.
노무현 정신이라는 것은 우리 노 대통령의 삶이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로 규정하기가 무척 힘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이나 세계관 또는 인생철학에 따라서 서로 다른 측면을 노무현 정신으로 규정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어떤 무엇, 그게 있다면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1주기 때에 나와야 할 대통령 전기 성격의 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옛 말씀자료, 비공개 자료들인 구술자료와 직접 쓰신 자료들, 노 대통령의 삶에 관한 여러 기록들, 그 분의 연고 등을 쭉 살펴보면서 아,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 게 사생취의(捨生取義)입니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 또는 의를 위해서는 생명도 버릴 수 있다. 조금 더 평이하게 말하면 사리취의(捨利取義), 의로움을 위해 이로움을 버릴 수 있다. 꼭 버린다는 뜻이 아니고, 대통령도 이로움을 취할 때는 취하셨어요. 그러나 의로움과 이로움이 서로 갈등관계나 모순관계에 있어 불가피하게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할 때엔 주저 없이 이를 버리고 의를 취하셨던 분이 아닐까, 제가 보는 바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걸 단 하나로 압축하자면 바로 이 정신인데요.
(2009년 9월 29일 강의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