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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힘든 난관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 주었던 아들 김영섭 씨,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는 며느리 전미옥 씨와 함께한 이은수 씨.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인생이 최고의 전성기가 될 수 있었다. ⓒ 방관식
 
50여년 가까이 동부전통시장(충남 서산시)에서 장사를 해온 이은수(69) 씨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이 씨는 8일 인터뷰에서도 칠십을 목전에 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그녀가 지나쳐온 과거의 시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살 때 없는 집에 시집 왔는데 큰아들인 남편 밑으로 5~13살까지 5명의 시동생들이 줄줄이 있었죠. 거기다 시아버지도 편찮으셔서 집안 사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시장에서 좌판을 시작했을 때는 막내였는데 어느새 지금은 최고참이 됐네요."
젊은 새댁이 생선 좌판에 나선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당시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월남참전 용사인 남편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온전한 건강상태가 아니었던 탓에 가장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아야했던 것이다.
거기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5억이란 어마어마한 빚까지 갚아야하는 상황. 주변사람들이 보기에 이 씨의 젊은 시절은 '암울',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는 좀 많이 달랐다.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로 울지 않았다. 최소한 남 앞에서는 말이다.
"눈앞에 닥친 상황이 하도 힘이 들어서인지 철이 일찍 든 거 같아요. 견디기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남들 앞에서 하소연 하거나 눈물을 보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도리어 절망스러울 때면 근심, 걱정 하나 없는 사람처럼 더 웃었죠. 물론 혼자서는 많이 울었습니다."
이러한 긍정의 힘은 그녀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다. 끝이 보이지 않던 빚도 갚을 수 있었고, 좌판에서 벗어나 번듯한 가게도 갖게 됐다.
가게 이름도 자신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벙글벙글수산'이라고 지었다. 자꾸 힘들다 힘들다하면 진짜로 힘든 인생이 되는 만큼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멋지게 살아보자는 깊은 속뜻이 있는 이름이다.
그녀는 지금이 자신의 전성기라고 했다. 전통시장의 터줏대감이자 상인회 이사로 전통시장 발전을 위한 일에 동분서주하고 있고 사물놀이, 난타 등 재미난 것이라면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민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인 아들과 며느리가 몇 해 전부터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숱한 고생 끝에 찾아온 행복인 만큼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써도 모자랄 것 같지만 그녀는 남을 위한 일에도 열심이다. 30년 인연 중 25년을 앓다가 죽은 남편이 남긴 선물이라 생각하며  얼마 전부터 전몰군경미망인서산지회장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지금 얼굴을 보면 고생은 전혀 모르고 산 부잣집 마나님 같지 않냐?"며 환하게 웃는 이 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웃으며 산 덕"이라며 힘든 길을 가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담담히 이야기 했다.
긍정의 아이콘 이은수 씨. 확실히 지금이 그녀의 최고 전성기가 맞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뉴스라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