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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
이번 임정 탐방단 2기 여정에서 나의 고정관념을 깨고 나라 사랑에 대한 참 지평(地平)의 틀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라 하겠습니다.
내가 이제껏 알아 왔던 임시정부에 대해 애국지사들의 실천적 삶의 모습을 통한 새로운 모습의 발견과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임정로드 탐방 기간에 약산 김원봉에 대한 내용이 매우 비중 있고 가장 많이 할애되고 있음을 통해, 김구가 임정의 정점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이 두 개의 거대한 강줄기를 형성하고 있음을 다시 알게 되었고, 또한 그 큰 강줄기의 근원인 발원지가 예관 신규식 선생의 지대한 역할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약산 김원봉에 대한 애국의 참모습을 발견함으로써 내가 기존에 희미하게 알고 있던 그의 전설적 이야기들은 사실적 의미를 갖게 되어, 그의 이념이 무엇이길래 그를 그토록 열혈 지사로 탈바꿈시켰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2. 약산의 이념에 다가가다.
가방끈도 짧고 인지능력도 별로인 제가 이념을 말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어 보이지만 그래도 저의 수준에서 당시 그의 생각은 무엇이며 실천적 이념의 모습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에 다가가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김종훈 기자의 "Storytelling"입니다. 인간관계의 최고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합니다. 산사람이 죽은 사람의 입장에 다가가 동일함을 갖는 게 불가능한 일이지만 거의 근접하게 마치 그의 영혼에 빙의 된 것처럼 나에게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약산의 입장과 상당한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약산을 조금은 알게 되었고 그의 이념에 다가가려 하는 것입니다.

1). 이념에 접근하는 나의 자세
이념에 대한 담론은 높은 지식인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사상이나 이념에 관한 이야기는 보편적 수준인 민초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사변적 논리로 가까이하기 힘든 언어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산주의 사상이죠, 그리고 다음 사회주의, 자본주의, 요즘의 자유주의, 좀 더 나아가면 무정부주의 등 보통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칼 맠스의 "자본론"을 구독하는 것은 통과의례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금서였지만. 그리고 난해하고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낮은 수준의 식견으로는 "넘사벽"인지도 모르지요. 저도 그 책 껍데기도 보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아는 것은 평등사상과 노동자의 계급투쟁에 의한 이상향의 실현이라고만 들었습니다. 그 결말에는 아나키스트였던 예수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신론과 종교는 아편이라는 주장 때문에 멀게 느껴지는 이념이죠.
이분법적 이념대결로는 우리나라의 꼴통 보수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도 종북 좌파 빨갱이로 둔갑됩니다. 그래서 북한과의 대화도 보통 거부감을 갖고 멀리하게 되지요. 지금은 많이 분위기가 좋아진 편입니다만.
공산주의 체제였던 구소련이나 중국이나 북한 모두 일그러진 공산주의 체제지 순수 공산주의는 아니랍니다. 어느 식자 논평에서 얻어들은 이야기이지요.
자본주의 체제는요 어떠할까요? 그 정점에 "맘모니즘"이 도사리고 있어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장 대국인 미국이 자본주의나 자유주의 잣대로 경제적 패권 국가가 되어 경제적 약소국가에 갑질을 하지요. 당하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죠.
전에 공산주의 체제였던 중국이나 소련도 변질하면서 미국을 닮아가지요. 미래학자들의 말로는 자본주의 체제도 곧 종말을 고한답니다. 글쎄요. 그래도 저도 낮은 수준이지만 이념은 있습니다.
수준 높은 식자들에게는 보잘것없을는지 모르지만 엄연히 상존합니다. 보편적 상식 수준이라도 이념의 옳고 그름은 판단할 줄 안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도 싫고 자본주의도 싫어합니다. 예수에 이은 톨스토이의 영향으로 "아나키즘"을 좋아합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대상인 "의식주"는 공개념으로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누구나 다 사용하고 있는 ITC 통신도 공개념 대상입니다. 너무 앞으로 나갔나요?
그렇다고 급진적 아나키스트는 아닙니다. 다스림이 없는 "평등 공존 공생"의 이상사회 그 끝에는 예수가 말하는 "하늘나라"와 같은 사회입니다. 이를 당장 실현하려 함은 급진파에 속하죠. 이상사회로 가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현재 첫발을 밟고 있는 내 삶의 모습을 정형화한 이념적 좌우명은 있습니다.
이의 실천적 삶을 통해 미래로 진화해가면 언젠가는 그 이상사회가 올거로 확신합니다. 내가 아니고 내 후대에라도. 그래서 저는 "아나키스트"입니다.
제가 약산에 대해 들어왔던 이야기들 – 공산주의자다. 그냥 빨갱이다. 아나키스트다. 테러분자다. - 지금까지의 나의 이런 선입관을 깨버리는데 저의 이념적 상항도 한몫하였기 위의 이야기를 전제로 늘어놓은 것입니다.
약산의 이념적 성향이 저와 상당 부분 공유하는 부분도 있는듯해서요.
 
2). 약산 김원봉 평전을 구독하다.
임정 로드 탐방 중에 동행중 이소영 님이 휴대하고 있던 "약산평전"이 눈에 띄어 평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약산에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서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평전을 통해 얻게 된 약산의 독립 애국투혼의 다큐적 이야기에 의존해 풀어가기보다는 여기서는 그의 중십적 사상체계와 이념의 성장 과정의 맥락적 핵심만 이야기 하는 게 좋겠다 싶군요. 사실 이야기 중에는 안타깝고 가슴 시린 내용이 많지만, 그의 긍정적 새로운 품격도 발견하게 됩니다. 위대한 인물임을 입증하게 됩니다.
톨스토이 문학을 좋아했고, 자문과 참모역활을 했던 유자명, 그리고 특히 단제 신채호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생각의 틀을 이루어 가면서 거의 아나키슴에 가까워졌음도 보여줍니다. 공산주의자는 아닌 거 같고 애국의 입장이 같은 것이면 누구와도 협력하려 했던 것이 그의 이념을 오해하게 된 면도 많다고 보겠습니다.
그가 평생 몸담았던 "의열단"선언인 조선혁명선언은 한국독립운동사의 불후의 명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자명과 신채호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5장의 선언내용과 행동강령(내용 생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1928년 10월에는 상해에서 의열단 강령(20개조)과 슬로건을 채택하고, 1935년 7월 5일 분산되었는 한인투쟁단체들을 통합하여 "민족혁명당"을 창단 민주혁명이념강령 12개항과 당면정책17개항을 발표합니다. 이를 통해 "조선의용대"도 창설하고, 1939년 5월 10일 김구와의 좌우 합작전선을 합의하고 동지 동포에게 보낸는 공개통신에 김원봉이 직접 초안한 걸로 짐작되는 10개의 정강이 발표됩니다.
평전 마지막 부분에는 민족혁명당의 당의, 당강(17개항), 정책(6개항)에 적시된 내용을 보면 당시로서는 시대를 뛰어넘는 민주 민족 공화체의 국가이념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 내용입니다. 선각자임이 틀림없습니다.
 
3). 약산의 이념을 살펴보다.
그를 공산주의자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무정부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극단적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임정로드4000km"와 "약산 김원봉 평전" 그리고 임정로드 탐방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약산의 정체성을 통해서 그의 이념을 살펴본 바로는 전부 아닌 것 같습니다.
백범과 약산이 좌우합작 공동 임정을 선언할 때 합의한 10개 조 항의 내용을 약산이 초안을 했다는 것에서 그의 이념의 핵심을 대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공동작성한 것이 아니지만 이에 공감하고 나라 사랑의 이념에 같은 태도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둘의 합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양성의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패권의 논리를 거부한 것입니다. 10개항의 내용 중에는 공산주의의 모습도 보이고, 약산이 그의 동지 유자명과 단재 신채호와의 밀접한 관계라는 선입감에서인지 아나키즘적 냄새도 풍깁니다. 설사 그가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나 테러리즘에 물든 이념을 가지고 있다해도 나라 사랑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영향받을 수 없으며 이 10개항을 철저히 몸으로 실천하며 "새나라 새천지"의 꿈을 이루려 했다는 것으로 그의 다른 사상을 초월한 모습입니다.
이 10개조항은 당시의 기존 이념을 뛰어넘어 먼 미래까지도 앞을 내다보는 위대한 선각자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념은 그냥 순수한 "나라사랑"의 이념일 뿐입니다. 아래 보여준 약산이 초안한 "10개조항"을 탐방 여정 중 김기자로부터 듣고는 그 내용에 나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글을 쓰기 위해 김기자에게 자료를 요청하여 아래 복사한 내용을 계시합니다.

1).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해 조선민족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함.
2). 봉건세력 및 일체의 반혁명세력을 숙청하고 민주공화제를 건립함.
3). 국내에 있는 일본제국주의자의 공사 재산 및 매국적 친일파의 일체 재산을 몰수함.
4). 공업·운수·은행과 기타 산업부문에서 국가적 의의가 있는 대기업을 국유로함.
5). 토지는 농민에 분급하되, 토지 매매를 금지함.
6). 노동시간을 감소하며 노동에 관한 각종 사회보험사업을 실시합.
7). 부녀의 정치·경제·사회상의 권리 및 지위를 남자와 평등으로 함.
8).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신앙의 자유가 있음.
9). 국민의 의무교육 및 직업교육을 국가의 경비로 실시함.
10). 자유·평등·상조의 원칙에 기초하야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촉진함.
 
위의 내용은 누구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보편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선진적이고 진보적 내용입니다. 그가 몸담았던 민족혁명당 당의 당강(17개항) 정책(6개항)을 축약시킨 핵심 사상입니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은 잡소리가 될 뿐입니다.
토지 등 경제에 관한 공개념적 발상, 철저한 자유평등사상, 보편적이며 선진적인 복지개념,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 선언 등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뛰어넘는 이념입니다. 그가 몸담았던 "의열단"과 "민족혁명당" 행동지침의 뿌리라고 생각도 됩니다.
그는 보편적 사회주의이념을 자신의 실천적 삶의 모습에 투영시킨 사회주의혁명가임은 분명합니다. "체 게바라"가 순수하고 철저한 공산주의 혁명가라면 약산은 그냥 보편주의적 사회혁명가입니다. 약산은 공산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는 평생을 나라에 몸바쳐 애국애족의 투혼을 불사르며 그의 꿈을 포기하지않고 죽는 마지막까지 실천하다 사라진 우리나라 현대사의 민족 영웅입니다.
약산은 해방 후 남과 북의 극단적 좌우세력에 의해 왜곡된 이분법적 논리의 그릇된 이념의 잣대로 희생물이 됩니다. 가슴 아픈 현대사의 굴곡입니다.
 
3. 해방 후 약산의 이념 평가
해방 후의 정국은 약산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승만에 의해 일그러진 집권세력 그늘아래 기생하며, 낡은 보수 지배층과 지식층의 왜곡된 이념적 형태와 청산해야 될 친일 매국세력의 대거 등장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그들 발악의 모습은 극을 달립니다. 바른 소리를 내야 할 지식층은 "화이부동"의 정신을 버렸습니다. 다양성을 포용해야 할 조화의 모습은 버리고, 자신들의 인지능력을 무지한 민초들에게는 패권의 논리로 무시하고 억압합니다. 자신들의 주장과 조금 모습이 다르면 이분법적 다순 논리로 상대를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로 몰아붙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기회 삼아 무지한 공권력의 친일 졸개들이 척살하려 듭니다.
해방 후 내가 어렸을 때 그냥 주워들은 것만도 많습니다.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장덕수, 조봉암, 그리고 박정희 때는 장준하 등이 희생되었고, 그 외 무명의 회생 자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산은 청산돼야 할 왜정 때 형사였던 노덕술에게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불가피하게 월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껐 그가 진짜 빨갱이로만 아는 무지한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지요. 이런 일그러진 시대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아직도 이승만 박정희에 의해 왜곡된 현대사의 그늘아래서 기득권을 행사하며 몰상식의 막가파식 행동을 서슴지 않는 해묵은 보수꼴통 세력이 막강합니다. 작금의 그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도 우리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건 모두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약산은 남과 북 모두 잘못된 이념의 잣대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에 대한 나 아니 우리들 모두 그의 나라사랑에대한 무지가 그의 죽임을 방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방임죄로 용서를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용서를 어떻게 받느냐고요?
우리 모두 약산을 다시 살려야 합니다. 부활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죽은 그의 몸은 부활시킬 수 없지만, 그의 이념은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선구자적 위상이 드높은 그의 이념으로 "새나라 새천지"를 세움으로 국권을 회복하려 했던 그의 꿈과 이상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야 하고 실현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못하면 우리 후대들이 이어받아 이루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무지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나의 감성에 치우친 이야기가 길어져 송구합니다. 당시 백범은 "우" 약산은 "좌"의 양대산맥입니다. 하지만 현재 편협한 보수계층의 잣대로는 백범이나 약산이나 모두 "좌"가 됩니다
잘못되고 왜곡된 이분법적 잣대로 만들어진 남과 북의 이념의 갈라치기 분기점에 약산의 이념이 우뚝 서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이정표입니다. 갈라치기된 2개의 길은 새로운 이념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김구와 약산의 마주 잡은 손의 모습처럼….
임정 로드 탐방 2기가 우리들의 나라 사랑에 대한 인식과 의식의 잠을 깨웠다면 앞으로 약산로드 탐방을 통해서 이를 더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에게 이것을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막중한 메신저 역할입니다.
어떠한 이념의 잣대로도 약산을 폄하할 수 없습니다.
아래 저의 생각을 간략히 정리하며 끝내려 합니다.
 
약산의 이념은 그냥 "나라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라 사랑의 "종결자"입니다.
 
2019년 9월 2일 (월) 임정로드 탐방체험에 대한 마지막 소감
 
 
< 사진화일 : 5-약산1 = 김원봉지사 거주 추정지
중국 중경시 남안구 탄자석 대불단정가 172호
5-약산2 = 탐방중 채취한 약산 김원봉의 간략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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