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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있다.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희생자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동화되어 자신이 납치 희생자라는 사실을 망각한채 테러리스트에게 애착이나 온정같은 감정을 느끼는 내용이다.
 
1975년 스웨던 스톡홀름 은행강도 사건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은행 강도들이 6일간 인질들을 붙잡고 경찰과 대치를 벌였는데, 구조된 후 면담과정에서 인질들은 인질범들에 대해서는 애착의 감정을 가질뿐 아니라 자신들을 구조한 경찰들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표현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다.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한국 지성계를 강타하고 있다.
 
실증주의라는 미명하에, 한국사와 한국지성계를 난도질하고 있다.
 
하도 궁금해서 그 책을 펴는 순간 나는 기절할뻔 했다.
 
자칭 한국의 최고 대학 박사 및 교수를 한  이영훈 등 저자들 글 수준이 이렇게 천박할 줄을 몰랐다.
 
내가 이렇게 단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영훈 교수 등 저자들은 역사학을 모른다는 것과, 실증주의가 역사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책의 주저자인 이영훈 이 사람은 평생 월급장이 즉 책상물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아래에서 밝힌다.
 
먼저 내 변명을 해야 한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철저히 검토 – 이영훈 교수 식이라면 실증주의적 관점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책을 사야 하는데, 2만원이나 하는 그 책을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첫째는 책 수준이 너무 낮아서이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대한 반론으로 설명하겠다.
 
둘째는 내가 번 돈이 반지성주의자들의 살림살이에 보태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비록 학사에 불과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영훈 교수의 실증적  운운은 이 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책은 식민지 시대 조선사 연구여서 실증과는 다른 그저 통계학적 인용일 뿐이다.
 
이영훈 교수가 실증주의 운운 하려면, 최소한 [사학논총]이라는 역사학계의 학술지를 읽어보고 논하기 바란다.
 
간단한 예로 약 2,000여년 전의 한사군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놓고 벌이는 사학계의 논쟁은 그 방대함이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뿐더러, 그 깊이가 가히 어딘지를 모를 정도다.
 
단편적인 옛기록 하나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희미하게 구전되는 이야기, 잘게 부서진 자기 파편, 심지어는 한중일 삼국을 넘나드는 수많은 기록들 속에서 퍼즐 맞추듯 온밤을 지새며 연구하여 객관성을 얻으려는 것이 실증주의 학문이다.
 
당신들처럼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 아직도 당대인이 살아서 증언하는 현실, 근대적 학문의 소산으로 무수한 통계와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는 시공간을 두고 실증주의하는 운운 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모독이다.
 
그것은 실증주의가 아니라 통계의 인용이고 일종의 자료집일 뿐이다.(절대 통계학에 대한 비하가 아닙니다.)
 
학부생도 – 똑똑한 고등학생도 -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면 얼마든지 알아 낼 수 있는 지근거리의 분야다.
 
게다가 우리는 살아 있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당대의 그 생생함을  접했다.
 
 구한말 의병들의 수난사, 3,1운동 당시의 일제의 만행, 제암리 사건, 청산리, 봉오동 전투, 자유시 참변, 만세보 사건, 수양동호회 사건, 한글학회 사건, 창씨 개명 등등…이루 말 할 수 없는 수많은 일제의 악행을 증거하는 자료가 넘치고 넘치는데, 당신들은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숫자를 끄집어 내어, 자신들의 관점으로 재단하고 요리하여, 실증주의 운운하면서 민족을 능멸하고,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대한민국 사법부, 국민, 지성계를 욕되게 하고 있다.
 
실증주의는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가 처음 주창한 학문적 방법론이다.
 
랑케 이전의 역사학은 연대기 작가가 쓴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개인사와 사회사가 적절히 조합된 불완전한 사료들이었다.
 
랑케는 사료에 근거하여 객관적인 역사학을 확립코자 하였다.
 
랑케식 표현을 빌리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 –  Wie es eigentlich gewegen]을 역사로 탐구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랑케의 방법론은 그 당시로는 혁명적 발상이었고, 한동안 사학계를 휩쓴다.
 
그러다가 한세기가 지나고 실증주의 사학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도대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누구의 관점]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E.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부른 것이다.
 
 당신들의 책은 이러한 역사학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빈약한 숫자로 당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뒤집어 씌운 천박한 자료집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주마.
 
 
 1. 법치국가와 사기 

 이영훈 교수는 반일종족주의 첫 글을 한국사회의 사기적 측면, 거짓말이 난무하는 현상 등으로 시작한다.
 
그 근거로 각종 보험사기, 금융사기, 무고 사건을 나열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 이 양반은 평생 월급만 타 먹었구나…자기 손으로 장사해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구나..
 
내가 왜 이렇게 단언하는가는 단순하다.
 
장사 고상하게는 사업 해 본 사람이라면 내 얘기를 금방 이해한다.
 
나도  약 10여년간 월급생활을 하다가, 지난 10여년간은 사업 즉 장사의 길로 들어섰다.
 
사업을 하는 지금 입장에서, 지난 월급장이 생활을 반추해 보면, 그야말로 인생의 봄날이었다.
 
정부기관 또는 준 정부기관에 근무했었기에, 그 당시 나에게는 IMF도 세계금융위기도 강건너 불구경이었다.
 
기관내에서 직위도 괜찮아서, 먹고 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벗어나, 장사의 길로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사기와 성공, 무고와 억울함이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업은 내 돈만 갖고 할 수가 없다.
 
타인에게 차입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다.
 
나의 심성이나 지적 수준과 관계없이, 성공하면 사업가가 되는 것이고, 실패하는 순간 사기사건에 연루가 되는 것이다.
 
죄목은 대부분이 배임, 횡령, 사기다..현재 한국 상법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인과의 관계라면 대부분이 사기 또는 무고사건으로 변한다.

당사자간의 억울함과 분노가 무고와 맞고소 등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한국의 금융사기나 무고 사건의 대부분은 이러한 관계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불신과 사기의 공화국이 아니라, 오히려 주먹이나 폭력보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해서 만들어 지는 과정이다.
 
내가 이렇게 단언하는 것은, 외국과의 장사 경험에서다.
 
나는 한동안 석탄 사업을 하러, 동남아 국가와 러시아 등지로 돌아다녔다.
 
거기에서 느낀 것은 한국은 법치가 대단히 잘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남아와 러시아에서 기업간 계약서는 간단히 파기되었고, 그로인한 소송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소송을 위해서는 국제상사중재원에 제소를 해야하는데, 비용과 시간 등을 생각하면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
 
그것에 비하면 한국은 카톡 문자도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국가다.
 
이로 인해 금융사기와 무고가 통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기를 방조하거나 보험사기를 옹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영훈 교수와 그 저자들은 사기와 무고의 이러한 구체적 내용은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실증주의라는 숫자 노름에만 빠져서 본질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내세우는 통계와 실증을 위해서라도 내일 당장 법원에 가서 사기와 무고의 내용을 열람해 보라.
 
당신들 통계의 90%가 내 얘기와 일치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신속히 진행시키기 위해 소액소송제라는 것을 도입했다.
 
즉 3,000만원 이하의 사건은 변호사 없이도 인터넷으로 소송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수많은 사기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기가 많은 것이 아니고, 법적 제도가 너무 잘 돌아가서 나타나는 통계현상이다.
 
내가 다녀본 상당 수 국가는 이러한 사건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총으로 협박하고 깡패를 동원하고.
 
현재의 한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하자.
 
나는 이영훈 교수 등 저자들이 유트브를 안보고 있다고 느꼈다.
 
유트브를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이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지,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나라인지에 대한 칭찬이 사방에 널려 있다.
 
서유럽 유명 관광지, 동남아 관광지 남미 여러 나라 사정을 들어가면서 그곳에서의 소매치기, 절도 , 강도 등으로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한국은 한밤에도 여자가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카페에 가방이나 핸드폰을 두고 가도 없어지지 않는 나라, 깨끗한 거리, 편리한 대중 교통 등에 대한 칭찬이 이루 말 할 수 없다.
 
절도, 폭력, 강도 등이 드문 나라, 법과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

이런 나라가 왜 당신들에게는 거짓말 공화국, 사기 공화국으로 보이는 걸까?

 
그래서 반일종족주의는 입론부터 잘못된 천박한 책이다.
 
 
참고로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이영훈 교수와 MBC 기자와의 소송에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통상이라면 MBC는 이영훈 교수를 폭력행위로 관계기관에 고소를 한다.
 
최근의 법원 판결 - 땅콩 회항 사건, 물컵 투척 사건 - 등으로 보면 명확히 폭력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영훈 교수는 무고로 MBC를 맞고소 할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MBC가 자신의 사생활과 초상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상당수의 무고와 폭력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지는를 이영훈 교수가 생생하게 느낄 좋은 기회다.

나는 MBC에게 이영훈 교수를 폭력으로 고소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리하여 이영훈 교수가 한국의 법치가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 그래서 사기, 폭력, 무고죄가 어떻게 양산되고 있는지 직접 체험해 보시기 바란다.
 
 
 이제부터는 세부적인 내용을 지적하고자 한다.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내가 교보문고에서 30분 정도 투자해서 읽은 그 책을 기억에 되살려 이 글을 적는다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학을 공부한 나에게는 책 자체가 수준이 너무 낮아서, 많은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고, 또 이 글을 쓰려고 책을 구입하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저들 입으로 인세가 들어간다.
 
2. 산미증산계획과 미곡 수출

산미증산계획과 대일 미곡수출에 대해, 저들은 한국교과서가 일제시대 대일미곡반출이 수탈이라고 거짓되게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아일보의 기사를 인용한다.
 
그 기사 내용은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쌀 도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오히려 한국에서 미곡가가 폭락할 것을 염려하여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곡의 수탈이 아니고 수출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하나 묻자.
 
그 미곡을 수출한 당사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당신들은 그 미곡수출 당사자가 조선내 일본인 지주 또는  조선의 대지주 즉 상당수 부일협력자라는 사실은 도외시 한다.
 
그저 조선 미곡이 일본에 -당신들이 책에서 인용한 표현으로 -이관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조선 농민은 영세소작농이거나, 대지주 농토에 묻힌 농업 임노동자들이었다.
 
일본으로 수출한 쌀이 오늘날과 같은 자작농들의 쌀이었다면 당신들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문제는 그 쌀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 수탈이냐 수출이냐가 아니라, 그 쌀의 수출로 인해 이익을 얻는 계층이 누군가가  본질인 것이다.
 
1930-40년대 일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기록한 기록을 보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조선 민중의 피맺힌 고통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일본이 만주국을 건설할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만주로 이주를 한다.

식민지 조선이 잘 사는 곳이라면 왜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이주를 한 것인가?
 
김유정, 나도향, 채만식,현진건, 이상 등의 소설을 읽어보라.
 
식민지 조선 민중의 헐벗고 비참한 일상이 구구절절 그려져 있지 않은가?
 
특히 실천문학사에서 발간한 [한국류민시선 – 윤영천 (영남대 국문학)]을 읽어보라.
 
만주, 사할린,시베리아,일본,멕시코 등지로 떠나간 450만명의 일제하 조선유랑민들의 처참한 고통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물위에 기약두고 일제하 유랑시선ⓒ 이재선
   


그런데 당신들은 그 쌀을 고통스럽게 수확하여, 군산항까지 하역한 식민지 조선 백성의 고통은 외면한채, 그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그 과정에서 미곡가를 걱정하는 조선에 있는 일본인 대지주와 부일 조선인 지주들의 이익이 마치 조선 민중의 이익인양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3.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당신들 얘기의 요지는 강제징용노동자도 강제가 아니고 자발적이라고 얘기한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2차대전 말기 일제가 발동한 [국가총동원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전쟁으로 인해 어느 국가나 발동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것이라고 한다.
 
당신들은 참으로 악의적인 인간들이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병합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일제가 만든 [국가총동원법]이 어쩔수 없는 전시 동원법이라면, 한일 양국의 대등한 관계가 전제가 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조선에서는 일제가 임명한 조선총독이 조선 민중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들 얘기데로 일본으로 징용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돈벌러 갔다고 하자.
 
그리고 강제징용은 전쟁 말기 일정 기간에 국한되었다고 하자.
 
만일 그 당시 식민지 조선이 당신들 얘기데로 번창하는 근대사회였다면, 강제징용자들이 전쟁이 한창인 국가에 일하러 갔을까?

미군의 폭격으로 일본 전토가 파괴되어 불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그 위험한 땅에 왜 돈을 벌러 갔을까?
 
특히 관동대지진 때는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타국에 돈을 벌러갔다는 자체가 식민지 경제의 피폐함, 그리고 참혹함을 당신들은 인식하지 못하는가?
 
일본으로 돈을 벌러간 사람들의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롯데의 신격호 같은 이는 정말로 사업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갔을 것이다.
 
당신들은 수많은 사례중에 꼭 위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보편화 시킨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조선에서의 피폐한 삶을 견디어 내기 힘들어서 갔는데도 말이다.
 
이것을 우리는 특수성의 보편화 오류라고 한다.
 
수많은 사례중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마치 보편적 사실인양 호도하는 것이다.
 
 조선에는 일자리가 없고, 조선에는 농사지을 내 땅이 없어서 유랑걸식하던 수많은 조선인이 만주로 일본으로 흘러 간 것이다.
 
당신들 눈에는 그러한 조선사람이 선진 문물과 기술을 익히려 간 것이라고 보이는가?
 
 게다가 2차대전 말기의 강제징용 현황은 수많은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사할린 탄광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언, 태평양 섬에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증언,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에서 포로군무원으로 강제로 징발되었다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가 된 양칠성이라는 사람 이야기도 못들어 보았는가?
 
그리고 당신들이 좋아하는 통계에서 보듯, 돈벌러 간 조선인 노동자의 숫자는 70여만명 내외(설령 자발적으로 갔다고 치자)로 그 당시 2천4백만(1940년 기준) 조선 민중의  3%내외다.

 나머지 90%의 조선 민중( 또 나머지는 부일하여 잘 먹고 사는 부역자들일 수도 있다)은 가혹한 일제 수탈로 화전민이 되거나, 소작농이 되거나, 그나마 드물게 공업노동자로 취업하여 입에 풀칠을 하고 연명하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당신들은 식민지 시대 성공한 조선인들 사례를 들고 나올 것이다.
 
경성방직 김연수, 화신백화점 박흥식, 공주갑부 김갑순, 영남갑부 문명기 등등 그리고 식민지 일제시대에 고등고시 합격한 다수의 중간 계급 관리자 등등…
 
이런 사람들이 과연 조선 전체 인구에서 얼마를 차지할까..그 사람들이 식민지 조선과 조선민중을 대표하는 계층들인가?

당신들은 왜 고통 받고 있는 대다수의 조선 민중은 보지 못하는가?
[계속]
 

덧붙이는 글 | 먹고 사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이런 기사까지 써야하는 우리의 현실이 답답합니다.
실증주의를 가장한 반지성주의가 우리 사회를 흔들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