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실시간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가 정식기사로 채택하지 않은 글(또는 검토 전 글)입니다.
  • 오마이뉴스 에디터가 검토하지 않았거나, 채택되지 않은 글에 대한 책임은 글쓴이에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착각에서 비롯된다. 나의 진심이 너에게 통하지 않고, 걱정했던 일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경우는 이 때문이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다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이 나를,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 번의 폭풍이 지나가고 착각에 한껏 취해있었던 자신의 멍청함을 뿌리부터 후회하며 다시는 이 착각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하늘에 맹세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짝사랑은 힘들다. 당신이 그(녀)의 호의를 호감으로 착각한 건지, 호감으로 인정할만한 충분한 근거에 기댄 건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아니 매순간 마음이 타들어가고 그 혼탁한 연기에 취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때까지 버티다가 쓰러지기 직전에 이르러 겨우 주위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 봐도 소용없다. 그(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을 공산이 크다.
 
당신은 물론 이 같은 현실이 잔인하고 염세적이며, 당신의 경우는 나의 경우과 다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퐁네프의 연인들>을 조용히 건내 줄 것이다. 이 영화는 지독한 짝사랑에 시달려 폐렴을 앓고 있는 당신에 폐를 잠시나마 해독시켜줄 것이다. 그리고 신선한 산소를 주입해 당신의 숨통을 트이게 할 것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거리의 화가 미셸(줄리엣 비노쉬)과 거리에서 불꽃 곡예를 하는 청년 알렉스(드니 라방)가 만난다. 이들이 만나는 곳은 무너져 내려 수리 중인 퐁네프 다리고 이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건 드니 라방과 줄리엣 비노쉬라는 이름의 듬직함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배우들에 대한 기억과 믿음은 잠시 접어두자. 이 영화에는 단지 미셸이라는 여자와, 알렉스라는 남자가 존재할 뿐이다. 그 두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는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다.
 
단순한 스토리를 자극적이지 않은 절제된 표현으로 다루어낸 영화들이 많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거기에 불꽃 곡예와 사방에서 터지는 폭죽에서 나오는 강렬한 색체를 더한다. 병들고 헐벗어 어둠 속의 바닥을 기어가는 인생의 미셸과 알렉스도 그 환한 강렬함 속에서만은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꽉 채운 다리와 센느강, 그리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파리의 전경과 도저히 흥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 중심에는 술에 취한 채 서로에게 서로의 몸을 맡기며 춤을 추는 미셸과 알렉스가 있다.
 
알렉스는 진심으로 미셸을 사랑한다. 그러나 미셸의 마음에는 줄리앙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잊으려는 미셸의 행동과 말에 알렉스는 시시각각 사사건건 넘어간다. 그녀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착각하고 오래하고 좋아하고 끝내 상처받는다. 그녀와 나눈 키스와 섹스도, 그녀를 위해 물에 몸을 던진 자신의 희생조차 자기위로였을 뿐이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니 라방이 연기한 알렉스라는 이름은 사실 레오스 카렉스 감독의 본명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이 지독한 짝사랑의 후유증으로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쨌든 짝사랑은 왕복없는 애정다툼같은 것이다. 온전히 혼자서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이 악마의 장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서서히 연기로부터 질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