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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
 
단기 4352년 3월 1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부터 할아버지들이 태극기를 꺼낸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간다. 금방이라도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들릴 듯 하다.
 
단기 4252년 3월 1일, 100년 전 오늘 이 땅의 전국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만세 소리가 울러 퍼졌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잘난 자 못난 자 모두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이 말을 새겨보면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74년이 되도록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지 못했고, 그 결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하여 정의롭지 못한 나라,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왜 그랬을까?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일본정부는 대북지원불참을 선언하며 반대하고 자유한국당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한다. 이 땅의 주류언론인 조선과 동아는 지면과 스크린에서 남북관계 진전의 성과를 폄하하고 왜곡하며 불편한 속내를 연일 드러내고 있다. 남북분단의 원흉인 일본은 원래 그래왔다.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은 일본이 아닌데 왜 이러는 것일까?
 
100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든 손과 오늘 성조기를 받들고 일장기를 환영하며 '한미일 동맹 강화'를 외치는 태극기를 든 손에 그 답이 있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독립했지만 곧바로 남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남은 미군정 체제가 되었다.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준비위원회 등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국 각지의 자발적 자치기구들도 모두 강제로 해체시켰다. 그리고 일제의 통치기구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일제에 부역한 친일관료·경찰·지주 등 인사들을 그대로 등용하였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제강점기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내며 탄핵 후에도 임정 대통령 행세를 하며 인맥을 쌓았다. 해방이 되자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제공한 군용기를 타고 점령군의 일원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미군정의 지원으로 남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의 친일파 인사들을 그대로 이어받아 중용하였다. 1948년 9월 7일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 활동이 시작되자 당연히 이승만 정부의 인물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이승만은 그들의 석방을 종용하고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했다. 급기야 일제강점기 고위직을 지낸 친일파 장경근(내무차관), 이호(치안국장) 등의 지시로 친일 경찰들이 반민특위 특경대를 습격했다. 이승만은 이를 묵인했다. 습격이 특경대를 강제 해산시키고 성공하자 이를 추인했다. 이후 반민특위는 크게 위축되었고 반민법이 개정되고 친일세력이 특위의 주축이 되면서 친일 청산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셀프 친일 청산의 아픈 역사다. 셀프개혁이 제대로 된 적이 있던가.
 
남과 달리 북은 친일 청산을 하였다. 북이 친일 청산을 시작하자 친일을 한 자들이 대거 남으로 도피하였다. 그리고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자들은 주로 빨갱이'라 주장하며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그 결과 친일파는 일제에 부역한 대가로 얻은 막대한 부와 권력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군사·경제·교육 등 핵심 분야의 지배계급이 되어 공고한 공범 카르텔을 형성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혼맥으로 얽히고설키며 그 세력을 키워왔다.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하면서 그 힘을 더욱 키웠다.
 
조선·중앙·동아일보, 한국의 주류 언론인 조중동은 이 세력의 대변인이자 참모다. 신문시장이 쇠퇴하면서 대변인의 목소리가 약해지자 이 세력은 자신들의 대변인에게 종편방송이라는 막강한 스피커를 내어 줬다.
 
이들 세력은 조중동 대변인을 내세워 이제 그만 과거는 덮어두고 미래를 이야기하자고 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이 되면 친일반민족매국이라는 원죄가 다시 거론될까 불편하다. 반민특위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지은 죄를 처벌 받을까 두렵다. 친일의 대가인 막대한 부와 권력을 잃을까 두렵다. 과거의 원죄 안에서 두려움에 갇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홀대하고 남북관계의 발전과 통일로 가는 길목을 막아선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대한민국의 화합과 미래를 막고 있다.
 
개는 두려움이 클수록 더 크게 짖는다. 과거의 원죄에 대한 죄 값을 치루지 못한 자들이 그 두려움으로 짖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여 쫓겨난 지 74년이 되었건만 일제에 충성하던 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100년 전 3.1만세운동을 향해 짖어댔던 것처럼 권력과 돈으로 지면으로 스크린으로 독립 대한민국의 시민을 여전히 황국신민 대하듯 한다.
 
두려움에 갇혀 짖고 있는 저들을 죄 값을 치르고 편한 마음으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렇다. 과거사 정리만큼 미래지향적인 것은 없다. 과거사 청산 없이는 미래도 없다. 친일 청산이 곧 미래다.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다.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분단 상태, 좁은 한반도 그것도 반으로 나뉜 땅 덩어리와 겨우 인구 5천만의 작은 시장, 이런 여건에서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고 OECD 회원국이 되었고 G20 국가가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국가가 되었다. 이제 정점에 이르렀다. 이대로는 더 이상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발전은 어렵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던 전쟁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무드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대륙횡단 기차여행을 이야기 하고, 200만평 개성공단에서 남북이 함께 이룰 미래, 꿈에도 그리던 다시 볼 금강산을 이야기 한다.
 
2019년 3월 1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부터 할아버지들이 태극기를 꺼낸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간다. 100년 전 그 날처럼 광장에 울러 퍼지는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