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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1 밖에 안 되서 상장의 의미를 잘 모르는 아들은 상장을 대충 구겨서 가방에 넣어 왔고, 꼴랑 2년 남짓 중국에 산 게 다여서 중국 상장을 구경해 보지 못한 어미는 그냥 아들이 종이접기한 걸 가져온 줄 알았다. 중국말로 된 상장이 무엇인지 알아볼 눈을 가진 아비가 이 상장을 뒤늦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귀한 상장이 하마터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뻔했다. 

중국어 성적 우수자에게 나온 상장이라는데, 2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감회가 깊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은 이름만 중국식이었고 중국말을 할 줄 몰랐다. 9개월 때부터 중국으로 돈 벌러 간 아빠와 떨어져 한국에서 자라다보니 아빠와 중국말을 할 기회조차 없어서 완전히 한국 아이로 자라났다. 

3년을 떨어져 살다가, 회사에서 수고했다고 공로상까지 받았던 해에 이대로는 가정이 위험하겠다 싶어서 정말 어렵게 휴직을 하고선 중국으로 왔다. 중국에 올 때 다섯 살 짜리 아이에게 딱 세 마디 - 니하오, 쎄쎄, 짜이찌엔 - 가르쳐서 왔는데, 여덟 살로 접어든 요즘, 그간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며 과외까지 병행하며 전방위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보람이 나서 기쁘다. 아들이 중국어를 해야 제 아빠와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될 수 있는데, 혹여 그렇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고민했던 내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냈다. 휴직을 어렵게 결정하고 중국으로 온 보람이 난 듯하여 또한 기쁘다.

여기로 오니, 특유의 오지랖을 민족 전체가 장착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자꾸만 날더러는 중국 남편을 두고 왜 중국어를 못하냐, 아들더러는 중국 아빠를 두고도 왜 중국어를 못하냐고 이상해 했다. 이 이야기는 여기 온 1년 넘게 듣다가 내가 중국어 능력시험 5급을 통과할 때 즈음에서야 귀에 안 들리게 됐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들에게 의구심을 갖던 사람들도 어느 틈에 주변에서 사라지고 안 보이는 듯 하다. 오지라퍼들 눈에 이제서야 우리는, 마땅히 했어야 할 중국어를 하는 사람들, 정도로 보이는 걸 게다. 남의 인생은 다 쉬워 보이는 것인지라. 

한국 사람끼리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된다.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결혼해서 영어를 쓰면 중국어를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우리는 십 여 년 전 학교에서 1년 간 수업을 들으면서 각자의 언어를 배워서 기초를 쌓았다. 매일 8시에 한 세대는 어린 학부생들과 수업을 듣고서 9시에 연구실로 출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정의 초석을 세우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는 서로 뿐만 아니라, 양가의 어른들과 그분들의 말로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결혼은 선천적 환경이 아니어서 노력하지 않고서 언어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지금껏 우리는 집에서 구어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쓰고, 문어는 영어로 쓴다. 채팅은 98% 영어로 한다. 그 쪽이 오해를 줄일 수 있어서 의사소통하기 편하다. 남편의 한국어와 내 중국어는 이제 어지간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우리가 썼던 언어로 말하는 게 더 편할 때가 많다. 유카이도 이제 삼 개 국어가 거의 자리를 잡아가서 상황에 따라 세 가지 말로 부모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아이를 삼중 언어 환경에서 기르면서, 심지어 부모-자녀 간에도 언어는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이란 걸 배우게 됐다. (한국어 능력이 한국 사람 간에 균일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로 소통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부모의 언어적 유산은 자녀에게 제대로 대물림되지 못한다. 요즘 수저계급론이 유행이던데, 어쩌면 밥 떠 먹을 수저보다도, 숟가락 위에 얹을 무형의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 주는 게 더 현명한 증여일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본인 페이스북에 중복 게재된 글입니다. 교육 분류일까 망설이다가 사는 이야기로 더 적합한 것 같아서 그리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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