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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옹이 자국을 드러낸 수필,『달빛 타기』
소통을 위한 한 권의 책, 생명존중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책

"'나는 어디서 왔는가.' 칠통타파(漆桶打破)의 일념을 곧추세우며 먼먼 기억 속으로 더듬더듬 역주행 한다. 유년 시절을 지나 방싯대는 갓난아기를 본다. 더 지나자 어머니 탯줄에 매달려 있는 조막 아이가 곤하다. 더 깊숙한 곳에선 수많은 환영(幻影)의 편린이 부표처럼 떠오르는가 싶더니 사라진다. 희뿌연 안개에 가리어진 마을과 사람들과의 인연이 옹송망송하다. 대체 나는 누구였고 어디서 왔단 말인가. 사대(地水火風)로 이루어진 이 기육(肌肉)덩어리 말고, 너는 누구냐고 호통하는 나,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생겨나와 이렇게 중생의 윤회를 거듭하고 있는가."
이순종 작가의 수필,『달빛타기』의 일부
   
달빛 타기 수필집 달빛 타기 ⓒ 신영규
   
<달빛 타기>에는 불자들이 참선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밝은 달빛 속에서 선객들이 앞 사람의 어깨를 잡고 경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얼핏 기차놀이를 하는 듯 보이는 행선(行禪), 노스님의 이끎에 따라 도량의 뜨락을 돌다가 독대를 지나, 대웅전을 돌기까지 발자국 소리가 그칠 줄을 모른다. 선객들은 지쳐 숨을 헐떡이는데 노스님은 지칠 줄을 모른다.
행선 뒤에는 달빛 향이 그윽한 선방(禪房)에 들어 벽면좌선(壁面坐禪)을 한다. 행선이 외면에 있는 대상을 내면에 수용하는 수행이라면 좌선은 오롯이 내면에 침잠(沈潛)하는 수행이다.     
저자는 2010년 월간『수필과비평』을 통해 문단에 나온 후 이곳저곳의 원고청탁을 받아 문예지에 투고한 글과 문학 동인활동에서 다듬었던 글,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것들을 한데 모아 엮어 수필집《달빛 타기》를 발간하였다. 저자에게 있어 수필이란 것은 삶의 자국이다. 나무의 옹이 자국 같은 영광스러운 흔적이 아니라 상처일지라도 삶에 자극과 용기를 주어 한층 더 성장하게 하고 깨우침을 주어 삶을 승화토록 하는 것이다.『달빛 타기』는 그러한 흔적들을 고르고 골라 엮은 수필집이다.
"'수필'은 밤하늘의 별이다. 생명이 다하여도 머나먼 이국땅까지 방광하는 별. 수필은 밤길을 가다가 팔각정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가는 둥근 달이며, 바람결을 타고 노니는 초승달이기도 하다. 인생을 밤이라 치면 수필은 달과 별 같은 홀연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의 순간 포착이다."
- <수필> 중에서 중략
   
달빛 타기 본문 일부 수필 달빛 타기 ⓒ 신영규
   
옹이 없는 나무가 있을까. 나무는 오래 되면 오래될수록 옹이를 더 많이 품고, 저마다 다른 자태를 지닌다. 전에 나는 목기를 내다 판 적이 있다. 목기에는 옹이가 서로 다른 빛깔과 모양으로 흉터처럼 박혀 있다. 초보 장사꾼의 눈에는 그것이 흠인 줄로만 알아 일일이 가려내곤 하였다. 그러나 백옥 같은 여인의 콧잔등에 살포시 내려앉은 자그마한 까만 점 하나가 더 고혹적이듯, 옹이가 박힌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품이었다는 걸 훗날에야 알았다. 수필은 나무의 옹이가 아닐까 싶다. 설령 굴곡진 삶의 한 부분일지라도, 삶의 흔적, 감촉, 고뇌, 사랑… 수필가만의 옹이를 담담히 그려내는 것, 그것이 곧 수필의 본령이 아닌가 싶다.
-<수필> 중에서
피천득의 <수필>이 사계의 호평을 받았기 때문일까. <수필>의 화자가 제시한 몇 가지 견해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옹이론' 이다. 피천득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가 객관적 상관물에 의지한 비유라면, '수필은 나무의 옹이가 아닐까 싶다.'는 생활 속에서 얻은 체험에 의지한 비유이다. 저자는 목기장수를 하면서 터득한 옹이의 진가를 인생에 접목시켜 수필의 핵심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이순종 수필가의 특이점이다.
삶의 흔적, 감촉, 고민, 사랑…, 저자만의 옹이를 담담히 그려내는 것,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수필, 그것이 수필가의 본령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순종 수필가의 삶에서 가장 뚜렷한 옹이는 불심이다. 그 중 불심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씨알'이다.
"만 원어치 주세요."
"낚시에 쓰시려고요?"
"아니요, 뭐…. 그냥…."
 
달빛 타기 달빛 타기 수필 <방생> ⓒ 신영규
 
대답을 얼버무린다. 아낙은 하기야 어디에 쓰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무심한 얼굴에 익숙한 솜씨로 한소쿠리 떠서 저울대에 올려놓는다. 봉지에 오투를 주입하고 복어 배처럼 팽팽해진 입구를 고무줄로 묶는다.
"더 살릴 수 있었는지 몰라, 더 살릴 수도 있었는데…. 더, 더…. 이 차는 왜 팔지 않았을까? 열 명은 더 구할 수 있었는데, 이 금배지로 두 사람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안 했어, 안했다고."
-<씨알> 중에서

화자는 시장에서 강력한 생명력으로 파닥거리는 미꾸라지를 산다. 용도를 묻는 말에 대답을 얼버무린 채 산다. 그 바로 뒤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쉰들러리스트」에 나오는 쉰들러의 독백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더 많은 미꾸라지를 구입하지 못하는 화자의 안타까운 내심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대야에 갇혀 파닥거리는 미꾸라지와 감옥에 닫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유태인 같은 시각으로 봄으로써 미물과 인간의 생명을 동일시한다. 함께 중생임을 암시한 것이다. 그래서 미꾸라지를 방생하는 것과 유태인 죽음에서 구하는 것은 중생구제라는 측면에서 불심과 접합시킨다. 생명 존중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또 우리나라에서 그리 흔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이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해치지 않는 사상 때문이다.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이롭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바로 업보의 법칙 때문이다. 남을 해치면 곧 나도 그 업으로 죽는다는 사실. 살아있는 동물을 억지로 죽여 그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남의 사체를 먹는 것과 같은 이유다.
  
수필 달빛 타기 수필 ⓒ 신영규
 
수필집은 소통의 창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학에서의 소통은 어떤 면에서 모호함이 있다. 저자의 논지(論旨)가 수많은 독자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 것인가, 라는 점이다. 문학의 속성은 어쩌면 참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저자의 하는 말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없다. 수많은 클라이언트는 오로지 저자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하며 저자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단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 이래 대부분 이 일방적인 소통 창구를 이용하고 있다. 이순종 저자는, 그의『달빛 타기』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여타의 수필집들과 다를 게 무에 있겠느냐며 그저 오늘을 사는 우리네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 그 이상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오히려 이런 점들로 인해 그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을까 역발상 해본다. 난해하고 신기한 것보다는 늘 신던 신발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이순종 저자의『달빛 타기』는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일상을 보여 주는 저자의 잔잔한 목소리와 소박한 문체에서 편안함이 느껴지고 그의 해학과 위트가 넘쳐나는 수필에서 우리네 평범한 삶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달빛 타기 달빛 타기 앞표지 ⓒ 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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