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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 ⓒ Ministerio Presidencia
 

들어가며
 
농촌진흥청 볼리비아 센터 소장 댁에서 우연한 기회에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를 보니 비자발급을 위해 왕래한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의 액자 속 주인공이었다. <Mi Vida. De Orinoca al Palacio Quemado: 나의 생애, 오리노카에서 캐마도 궁까지>의 저자,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Evo Morales Ayma)는 볼리비아 다민족국(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 현직 대통령이다. 2014년 발간된 에보 대통령 자서전은 당시 주 볼리비아 이종철 대사가 직접 번역하였고 2017년 국내 출간됐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백인(혼혈)이 정ㆍ재계를 꽉 잡고 있는 남미에서 시골농부가 자력으로 조합원 대표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직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우리나라 대표 흙수저 출신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과 묘하게 겹친다. 고졸출신에 사병으로 군복무한 것까지 동일하다. 에보는 한국어판에서 2010년 한국 첫 방문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이 근로자의 근면함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불과 몇 십 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을 볼 때 볼리비아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얻었다고 했다. 볼리비아 못지않은 자린고비 경험이 축적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수성가형 정치인 에보 모랄레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오히려 모자를 정도로 남미 최초 인디오 출신 대통령의 생애는 다채롭고 매력적이었다.
 
볼리비아 오루로주 오리노카 에보 대통령 생가ⓒ 에보 트위터 @evoespueblo
 
 
 1. 농사꾼 에보: 고원지대에서 열대지역까지
 
1959년생 에보가 나고 자란 볼리비아 서부 오루로주(州) 오리노카(Orinoca)는 아이마라 부족의 가족농 지역이다. 소년 에보는 이곳에서 감사농사를 짓던 아버지를 도와 “좋은 감자는 먹고, 다른 것은 감자 전분과 씨감자ㆍ돼지감자로 이용하고, 남은 것은 이웃에게 판매”하는 일을 거들었다. 한편, 건조하고 일교차가 크며 잡초 투성이의 고원지대의 자연환경은 에보 가족에게 큰 시련이었다. 이곳 원주민은 2~300미터 떨어진 곳의 우물 물을 길어 사용했는데 어린이들은 얼굴, 머리, 손 정도만 씻었다 할 정도로 만성적 물 부족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냉해,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점차 심화되면서 에보 가족은 냉해 피해로 수확한 모든 감자를 내다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에보가 10살이 되던  해 냉해피해를 겪은 아버지는 “우리들이 아무리 더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결코 잘 살 수가 없고 번영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청년이 된 에보는 사촌이 거주하던 열대지역 차파레에서 농사짓기 시작했다. 30도가 넘는 폭염과 도마뱀, 독사, 박쥐, 모기, 개미, 쥐가 들끓는 열대지역의 달라진 자연환경에 에보는 병이 나고 도망치기도 하는 등 고된 정착기를 보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에보가 고원지대에서 열대까지 어떤 환경에도 정통한 농사꾼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볼리비아 전체를 아우르는 조합장ㆍ정치인이 되는데 주요 발판을 마련한다.

 
청년 농사꾼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 CONSULADO DE BOLIVIA
   

2. 볼리비아의 포레스트 검프
 
볼리비아는 세계에서 데모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과거 두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Gonzalo Sanchez de Lozada)와 카를로스 메사(Carlos Mesa)를 하야시켰을 정도로 자국 내 시위의 힘은 강력하다. 이런 정치적 목소리는 볼리비아 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농민ㆍ근로자로 구성된  '조합'이 주도하고 있다.
 
에보는  자서전에서 "정부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조합이 곧 국가였다"고 소회했다.
 
볼리비아에서 조합은 국가가 제공해야 마땅한 기본 행정 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떠맡고 있다. 지역 농민들에 의해 학교가 세워졌고 길이 닦였다. 보건, 체육, 생산품 판매 시장, 인권 보호, 심지어 마을 공동체 및 부부ㆍ가족 간 갈등 해결까지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 조합은 ‘보이는 손’을 행사 중이다. 지역사회 실정이 이렇다보니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조합, 연맹, 본부에 가입하고 본부 지침을 따르게 된다. 볼리비아 내 조합의 집단적 목소리와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연유다.
 
평범한 농사꾼이던 에보가 적극적으로 조합의 집회ㆍ활동에 참여한 계기는 코차밤바 주 코카 조합 동료가 마약거래 혐의로 경찰에게 산 채로 불 태워진 사건때문이다. 그는 볼리비아인 모두의 아버지 같은 대통령이 사람에게 가솔린을 붓고 태워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렇게 열성 조합원이 된 에보는 항의행진의 선봉에 서게 됐다. 독재 정권 하에서 볼리비아 원주민의 유일한 정치 투쟁의 수단은 시위뿐이었다. 그는 조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도로 봉쇄 데모에 참여했다. 농장 파괴에 나선 군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간선도로와 오솔길을 막기도 했고 긴장이 최고조일 때는 한 달 이상 도로를 점거한 적도 있다. 자타공인 항위시위는  에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렇게 볼리비아 전역을 누비며 시위를 주도한 에보는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의 주인공처럼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전국구 조합장 탄생의 서막이었다.

 
시위를 주도하며 거리 행진에 나선 에보 모랄레스ⓒ Rafael Archondo
 

3. 원주민 대통령의 탄생: 코카 잎 보호의 의미 
 
독자 대부분은 코카(coca)란 단어에서 마약 코카인(cocaine)이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존재하는 코카 잎은 코카인과는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에보는 코카 잎을 조상 대대로 재배해 온 의료 재료이자 농업 생산품으로 안데스 문화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주장해왔다. 코카 잎은 17~18세기 유럽 교회는 코카 포도주를 만들어 소비한 전례가 있고, 코카 잎의 영양학적 가치는 여러 학술 논문에서 이미 밝혀졌다. ‘코카’ 콜라(Coca Cola) 초기제품에 코카 잎이 사용된 일화는 널리 알려져있다. 그리고 코카 잎의 논란은 2013년 1월 유엔 총회에서 종식되었다. 당시 169개국의 승인받아 ‘코카를 씹는 행위’는 대체 의약품의 일종으로 공식 선포된 것이다. 다만 그 때 반대표를 행사한 국가가 있다. 에보가 대통령이 되는데 의도치않게 기여한, 한 때 볼리비아 막후의 실세였던 미국이 그 주인공이다.

 
유엔 총회에서 코카 잎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에보 대통령ⓒ 볼리비아 정부(통신부)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시 마약으로 사회 혼란이 야기됨에 따라 대대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문제는 미국이 코카인 원료인 코카 잎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중남미 지역에 직접적으로 정치ㆍ군사개입을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볼리비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받는 루이스 가르시아 메사 정부는 당시 미 정부 지원을 받고 레몬, 야자와 같은 대체작물 생산을 유도하면서 군대를 동원해 제초제를 살포하며 코카 농장을 대량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은 에보는 코카 잎 보호 운동에는 단지 경제적 가치 이상의 함의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코카 제거 정책이 “라틴아메리카의 자연 자원을 통제하고 경제적, 군사적 확대를 위한 미국의 숨은 의도”라고 대내외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눈엣가시가 된 에보는 마약거래상, 테러리스트라 불렸고 여러 차례 고문과 살해위협을 받았다. 경찰은 그에게 반란과 살인 혐의를 씌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대놓고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세계는 에보가 궁지에 몰릴수록 그의 활동에 더욱 주목했다. 벨기에, 독일, 스페인에선 원주민 권익보호를 위해 헌신한 활동가 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했다.

정부와 에보의 오랜 대립은 2003년 카를로스 메사 정권에서 코카의 합법적인 생산 승인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에보 또한 조합 생산물 중 일부가 마약 불법시장에 들어갔음을 인정했고 적정 수준의 코카 재배 감축에 동의하였다. 볼리비아 나라 전체를 생각한 현명한 정치적 타협이었다.

 
경찰로부터 공격받는 에보ⓒ CONSULADO DE BOLIVIA
 

볼리비아 국민들은 코카제거에 항거하며 그 이면의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문제를 제기해 온 투사, 에보에게 그 동안 열렬한 지지를 보내왔다. 각종 권모술수로 국회 윤리위원회 회부되고 의원직을 박탈당해도 그는 전국의 가장 많은 득표수를 차지한 국회의원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1월, 에보는 남미 최초 원주민 출신 볼리비아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선서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맺으며
 
에보 대통령은 군사독재와 가난으로 병들어가던 볼리비아 경제를 회생시켰다. 남미 대륙 전체의 경제 침체 현상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5%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우량한 경제실적”을 보여 왔다. 10년 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전 정권들에 비해 청렴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에보의 사회주의 운동당은 선거재판소에서 법률에 따라 지원받은 경제적 지원금을 볼리비아 역사상 국가에 반납한 유일무이한 정당이기도 하다.

 
볼리비아 국민에게 둘러싸여 환영받는 에보 대통령ⓒ 에보 트위터 @evoespueblo
 

반면 그는 임기 기간 중 전례 없는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다. 대통령 연임 문제로 찬불이 팽팽한 상황에서 국민투표 결과에 불복하고 헌법 소원을 통해 2019년 대권 도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기존 독재자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당장 10월 10일 '볼리비아 민주주의 날(Día de la Democracia)'에 전국적인 파업과 도로시위가 전개되어 필자가 속한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 센터 직원들은 가택근무에 돌입하기도 했다.


 
쿠바 피델 카스트로와 에보 대통령ⓒ 에보 트위터 @evoespueblo
 
 
쿠바의 정치ㆍ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는 에보에게 “내가 했던 것을 하지 말고 우고 차베스가 했던 것처럼 해라. 혁명은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식으로 해야 한다. 우린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필자는 에보 모랄레스 자서전(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생애)에 드러난 그의 인간적 면모와 불굴의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자서전 말미에 "스스로 살아있는 볼리비아의 역사로써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당선 포부를 밝혔다.

2019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볼리비아는 현재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에보 대통령의 향후 선택은 자서전의 새 챕터로 쓰임과 동시에 볼리비아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국민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행보에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 주목하는 이유다.
 
 
볼리비아 여성들과 함께 투쟁한 에보ⓒ 에보 트위터 @evoespueblo
   

[참고자료]
1.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역자 이종철). 2017. 『나의 인생(볼리비아 대통령 자서전)』 마스타. 
2. 전영욱. 2014. "볼리비아에서 대한민국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코피아 볼리비아 센터와 함께했던 순간들". 코피아 볼리비아 센터. 

[연관 기사]
[농촌진흥청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이야기#1] 안데스 산맥의 정기를 받은 토착민과 동고동락하는 사연 / 링크: http://omn.kr/u2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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