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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청춘스포츠 서서빈 기자]
 
2017 FA컵 MVP 김용대에게 상을 수여하는 조병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대한축구협회
 
한국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인 '슈퍼리그'는 1983년 출범했다. 그리고 최초의 프로축구 팀은 '할렐루야'였다. 이전까지 국내 축구 무대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면당해왔다. 국가대표팀의 주력 선수들도 해외에서 뛰고 있었다. 프로리그는 커녕 프로팀도 없었기 때문에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의 여러 기독교인 선수들이 이에 문제의식을 가졌고, 여기서 할렐루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할렐루야에 자극을 받은 다른 팀들도 프로화에 합류했다. '유공'이 프로 2호팀으로서 할렐루야와 함께 슈퍼리그 첫 시즌에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다수의 아마추어 팀이 프로로 전향했으며, 새로운 프로팀이 창설되기도 했다.

한국 축구의 프로화에 공을 세운 할렐루야는 슈퍼리그의 초대 챔피언 자리에 우뚝 올라섰다. 할렐루야의 선전에는 주전 골키퍼 조병득의 활약이 컸다. 그는 슈퍼리그 초대 최우수 골키퍼 상을 받았다.

하지만 할렐루야의 황금기는 길지 않았다. 원년 다음 시즌 4위를 기록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최하위(8위)를 기록했다. 결국 프로팀 할렐루야는 전격 해체를 선언했다.

사실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한 할렐루야가 프로에서 긴 시간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모기업이나 다름없던 신동아그룹의 재정난도 겹쳤다. 결국 1985년 6월, 할렐루야는 시즌 도중 팀을 해체하고 아마추어로 돌아가겠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할렐루야의 주축 선수들은 새 둥지를 찾아 떠났다. 하지만 조병득은 아마추어 전환 이후에도 1년간 할렐루야의 골문을 지켰다. 할렐루야의 마스코트는 성경 이사야 40장 31절에서 따온, 승리를 상징하는 독수리였다. 그는 마지막 독수리로 남을 것을 선언했다.

당시 리그 최고의 골키퍼였던 조병득에게 많은 러브콜이 들어왔지만, 그는 신앙인으로서 1986 월드컵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그는 월드컵에서 돌아온 뒤 포항제철로 이적했다. 1983년 데뷔하여 1990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주전 프로선수로 활약했던 조병득의 1986년이 '공란'으로 남겨진 이유다.

포항제철로 이적한 후에도 조병득은 주전으로 활약하며 A매치 42경기에 출전했다. 또한 1989년 10월 21일 현대 호랑이와의 경기에서 도움을 기록하면서 K리그 최초로 도움을 기록한 골키퍼가 되었다.

조병득은 은퇴 후에도 축구계에 남았다.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전북, 전남 , 수원 삼성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조병득은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K리그의 탄생을 함께했던 선수가 이제는 한국축구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청춘스포츠 서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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