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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고양이의 천국 '미로숲'에 가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제주 편 (5)
18.07.26 14:56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강호는 길고양이였습니다. 동네 철물점에 매일 밥을 먹으러 오던 강호가 어느 하루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찾아온 강호는 뒷다리가 심각하게 부러져 있었습니다. 앞발로 기어서 평소에 밥 주던 사람을 찾아온 거지요. 그 분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을 받고 강호는 두 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이 되었고요. 장애를 얻었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한,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강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기자 말

4. 10

제주에서 강호가 흥미로워할 만한 곳은 어디일까 생각하다 '여기다!' 싶은 곳을 발견했다. 바로 김녕미로공원. 제주대학교에 재직한 미국인 프레드릭 H.더스틴 교수가 미로 디자이너 애드린 피셔의 설계를 바탕으로 조성, 1997년부터 일반에 개방된 곳이다. 이름처럼 아름답고도 재미난 미로숲으로 유명하지만 우리가 주목한 것은 이곳에 5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강호의 모처럼 장거리 외출. 장거리라 해도 귀가까지 반나절 이상이 걸릴 곳은 강호와 함께 가지 않는다. 개체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개의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상당 예민하다. 음식 섭취나 대소변은 정해진 안정적인 자리에서만 한다. 그래서 반나절이 넘는 외출은 동물에게 상당 부담이 될 수 있다. 숙소에서 김녕미로공원은 차로 약 1시간, 체류 시간을 감안해도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김녕미로공원보다 세계자연유산인 만장굴이 더 가까웠다. 온 김에 가보자 싶어 매표소까지 갔으나 반려동물 입장을 금지하고 있었다. 관람할 동안 강호를 안전하게 맡길 곳이 있는 지 직원에 물으니 "물품 보관함에 넣고 들어가라"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고양이가)숨을 쉴 수 있겠냐" 하니 "열어 놓으라"고, "누가 가져 가면요?" 하니 "누가 가져 가겠냐"며 무책임한 조언을 계속 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동물과 여행 시 방문할 장소에 동물 입장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앞서 만장굴과 같이 세계자연유산 중 하나인 거문 오름에도 사람 외 동물 입장은 금지되었다. 당시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해 강호를 안 데리고 간 게 다행이었다. 반대로 같은 오름이라 당연히 안 되겠지 하고 혼자 갔던, 숙소에서 상당 가깝고 오르기도 쉬웠던 아부 오름은 동물과의 동행이 가능했다. 반려인과 함께 온 개를 보며 강호도 왔으면 좋았을 걸, 후회했다.

만장굴은 다음 번에 혼자 오기로 하고 원래 목적지인 김녕미로공원으로. 입구에서부터 역시 잘 왔구나 싶었다.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는 세상'이란 글로 시작되는 입간판에는 고양이가 싫어하는 행동, 고양이의 언어나 몸짓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정보와 그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 등이 그림과 함께 쉽게 적혀 있었다. 이 밖에도 공원을 소개하는 안내 소책자나 군데군데 방문객 쉼터에서 유사한 안내문들을 볼 수 있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미로숲으로 이어지는 주변 정원엔 고양이들을 위한 쉼터 겸 놀이터가 조성돼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고양이는 네댓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튼 그들은 여유로워 보였고 곁을 지나가는 녀석들의 몸에선 깨끗하고 좋은 향이 났다. 이 곳 고양이들은 설립자인 더스틴 교수가 재직한 제주대학교 수의대학으로부터 정기적인 의료 서비스와 TNR(무분별한 개체 증가를 막기 위한 안전한 포획-중성화수술-방사 전 과정을 뜻함)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고양이들과의 본격 만남은 나중을 기대하며 미로숲 입장. 마침 입구에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척에 반응도 않고 누워 있었다. 어릴 적 봤던 만화 속 고양이처럼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질 것 같기도, 무언가 힌트를 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도움 없이도 이까짓 미로쯤이야, 장난 삼아 한 번 걸어본다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5분 만에 '출구 발견!'...... 이라 생각했지만 착각. 12분이 지날 때 '이번에야 말로!' 했지만 또 착각.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출구를 알리는 골든벨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통하는 길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30분, 40분…… 손에 쥔 종이 지도를 볼까 말까 망설이는데 아뿔싸, 봐도 모르겠다! 이러다 정말 못 나가면 어쩌나 불안감이 솟는 찰나, 일렬로 서서 길을 찾고 있는 일가족을 만났다. 대화를 들어보니 그들도 여러 번 헤맨 모양. 반신반의하며 그 대열에 합류했는데 얼마지 않아 탈출. 나는 결국 미로숲을 찾은 방문객들 중 5%에 해당하는, 말하자면 1시간 넘도록 헤맬 확률에 속한 1인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강호 역시.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생각보다 너무 길었던 미로 찾기를 끝내고 강호와 휴식. 음료수를 사서 숲 속 의자에 앉았다. 이동가방에서 나온 강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냐옹 냐옹 소리를 내자, 마치 화답하듯 고양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웃기게 생긴(미안) 검정 얼룩이를 필두로 곧 애교 많은 흰둥이도 다가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고양이 쉼터 겸 놀이터가 있는 숲으로 더 깊숙이 가니 낮잠 삼매에 빠진 노랑 얼룩이 둘, 스스럼 없이 사람에 다가와 배를 보이는 삼색이 등 십여 마리 고양이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김녕미로공원은 근래 성행 중인 도심 속 동물 카페나 미니 동물원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한 시설들이 인위적인 공간에 동물들을 수용하고 사람들이 그들을 보거나 만지게 하는 데 초첨을 뒀다면 김녕미로공원은 우선 한정적이지만 자연 공간이며 고양이들의 보호와 자유 의사를 우선하고 사실상 그게 전부다. 사람들이 그들을 볼 수 있게끔 먹이를 주는 체험이나 강제적인 훈련을 통한 쇼 등은 일절 없다. 다만 제가 원해서 밥을 먹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들이 다가온다면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바로 이런 순간. 막 공원을 떠나려는데 올 때 만난 매표소 직원이 곧 고양이들 밥 시간임을 알려줬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 많은 고양이들을 볼 수 있다며. 이미 밥 때를 알아 급식통 앞에 앉은 녀석들도 여럿, 이름을 부르자 숲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곳 고양이들은 하루 두 번, 아침 9시와 오후 4시에 식사를 한다. 고양이들이 편안히 둘러 앉아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제주도와 고양이를 사랑한 한 이방인의 마음이 씨앗이 되어 오늘날에 이른 김녕미로공원.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이러했으면.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강호, 오늘 즐거웠니? 푹 쉬고 내일 또 놀자!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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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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