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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더해가고, 의심만 깊어지는 '깨달음'

[서평]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18.01.23 10:3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불교에 관심을 갖고, 스님 영결식에 참석해 들었던 말들 중 아리송하기만 했던 것은 '득도'라는 말이었습니다. 입적하신 스님의 행장(수행이력)을 소개하던 중 이미 수십 년 전에 '득도'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도(道)를 득(得)했다면 이미 도를 터득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스님 생활은 뭣 때문에 했는지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득도'는 '득도(得道)'가 아니라 '득도(得度)', 즉 '스님이 되었다'는 뜻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며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제도(制度), 공인된 절차를 밟아 스님생활을 시작했다는 설명쯤으로 이해하고 나니 스님의 수행이력을 정리하는 데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용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이래 지금껏 단 한 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말입니다. 출가수행자의 삶을 산 역대 고승들 일대기를 정리한 책들을 읽다보면 '깨달음'과 관련한 내용이 빠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내용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데 역대 스님들이 깨달았다는 것은 뭘 어떻게 깨달았다는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뜬금없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하니 황당하기 조차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게 벼락을 맞아 터득하는 것도 아니고, 천둥소리에 놀라 깨우치는 것도 아닌데 동문서답, 말장난 같은 화두, 황당무계한 반응에 홀연히 깨달았다고 하니 머리로는 물론 가슴으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 지은이 혜담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1월 9일 / 값 20,000원 ⓒ 불광출판사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지은이 혜담,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고희(古稀)를 며칠 남기지 않은 혜담 스님이 20대에 출가해 반백년 동안 궁극적으로 좇은 깨달음, 깨달음에 대한 실체를 무지갯빛을 내고 있는 무지개처럼 설명한 내용입니다.

깨달음을 수십 년 간 좇은 스님조차 의문만 깊어지고, 의심만 더해갔다고 하니 깨달음이란 승속을 가리지 않고 그 실체가 불분명하고 아리송하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하기야 깨달음이라는 게 어떤 객관전인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관적 논리로 검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깨달음이라는 표현 그 자체가 어쩜 그렇고 그런, 통하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형이상학적 수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감출 수 없습니다. 

사조 스님의 깨달음도 스승 남전 선사의 말에 기인했습니다. 역시 깨달음과 말의 상관관계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깨달음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수행자가 어떤 언구 아래서 즉시에 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만 깊어 갔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53쪽-


덕소 국사의 깨달음의 기연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만, 소납의 '깨달음의 궁극적 의미와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심만 더해갔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59쪽-


부처님 가르침을 정리하고 있는 경전들은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나'는 부처님 10대 제자 중 한분인 아난존자입니다. 경전이 여시아문으로 시작되는 이유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을 25년 간 시봉하던 아난존자가 '붓다의 설법이 이러했다'고 하면 500명의 제자들이 이를 확인해 정리한 것이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25년이나 시봉하던 아난조차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도를 깨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도를 깨치지 못한 상태이니 경전을 정리하는 결집자리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난은 가섭존자가 "아난아"하고 불렀을 때 "예"하고 대답하자, 가섭존자가 다시 "문 밖의 찰간(刹竿)을 넘어뜨려라."했을 때 이 문답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7일을 생각하다 드디어 그 도리를 알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봐서는 부처님을 25년간 모시고 있으면서도 도를 깨닫지 못했던 아난존자가 말 한두 마디 주고받은 것으로 단 7일 만에 도를 알았다고 하니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 할뿐입니다.

'깨달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목표

책에서는 어떤 과학이나 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깨달음, 우리나라 불교를 이해하려면 전제조건으로 갖춰야 할 '달마'와 '혜능'의 수행이력과 가르침까지를 싣고 있어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틈새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혜가가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자 '마음을 가지고 오라'고 한 달마의 말이 깨달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깨달음'이란 어쩜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믿으며 실천하려는 데서 이룰 수 있는 형이상학적 목표가 아닐까하고 어림해 볼 뿐입니다.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를 읽어 새기다보면 무지개처럼 눈에는 보이나 그 실체는 확인 할 수 없는 깨달음, 그 깨달음의 실체를 어슴푸레하게나마 더듬어가며 어림해 볼 수 있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 지은이 혜담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8년 1월 9일 /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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