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독교의 반지성, 어찌할 것인가.

17.12.13 01:47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독일의 작가 귄터 그라스(Gunter Grass)는, 자신의 나치군 복무 경험을 소설로 옮기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수시로 멈칫거리며 고백했다. 무지해서 나는 범죄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의 소설을 통해 나치 집권 시기,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이 지었던 '무지의 죄'를 반성하였다. 지성의 시대라고 일컫는 현대 사회 속에서, '진리'를 가르친다는 기독교는 애석하게도 '무지', 혹은 '반지성'의 구렁텅이로 향하고 있다. 최근 들어 큰 이슈로 부상하는 이슬람과 동성애자, 여성을 향한 공포와 혐오의 중심에 무엇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기독교가 지탄받는 이유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작년 1월, 익산시 할랄단지에 관한 카카오톡 메시지가 떠돌기 시작했다. 익산에 할랄단지가 조성될 것이고 수많은 무슬림들이 나라의 지원을 받으며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서 우리나라는 이슬람에게 앉아서 '먹힐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출처도 없는 정보들을 통해 이슬람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를 조장하는 이 메시지의 주장의 거의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슬람 관련학자이자 선교사인 김동문 목사는 한 언론기사에서 이 메시지를 조목조목 분석하며 "반대 측에서 제기하는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왜곡된 것"이라고 말했고, "또한 하나의 자료가 아닌, 몇 건의 할랄 반대주장이 모아져서 새롭게 만들어진 주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거짓을 바탕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집단행동은 사회적으로 옳지 않으며, 이것은 반사회적인 범죄인 동시에 비성경적이다"며 왜곡과 곡해로 점철된 정보 공유를 통해 '카톡교'에 다다른 기독교인들을 다그쳤다.

기독교의 '반지성주의'는 도를 넘어섰다. 가장 비근한 사례는 바로 최근 박성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의 '창조과학' 논란이다. 이제까지 소수자를 억압하며 내부의 결속력을 키워왔던 기독교가, 이제는 '창조과학'을 기치로 내걸며 과학이라는 다수로부터 자신들이 핍박당한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과학도 그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또한 왜곡과 체리피킹(본인의 논증에 유리한 사례들만 취사선택하는 행위)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마치 과학을 통해 신을 증명한다고 하면서, 과학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전형적 순환 논리와 자기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박성진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며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비지성적 기독교'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무책임한 반지성주의는 더 이상 능사가 아니다. "의심하지 않는 신앙은 악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사는, 자신의 제자인 아드소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비판과 의심은 필요하다. 종교도 성역일 수 없다. 기독교는 '복음'을 이야기한다. 영어로 'Good News'. 하지만 현재 근본주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단체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들은, 소위 'Fake News'나 다름없다. 의도적인 체리피킹과 왜곡, 그리고 곡해는 도를 넘었으며 정치와 사회, 과학에까지 미친 기독교의 무지와 반지성에 대중들은 비난을 퍼붓고 있다. 종교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합리적 비판과 의심을 하지 못하게 하는 행태는 큰 문제다. 종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영역이다. 이제는 '진리'와 함께 '사실'을 이야기 해야 한다. 결코 '진리'로 가장한 거짓을 가르치며 그들만의 성을 쌓아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