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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에는 신안 해저 유물관도 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이 유물들은 일본의 물주들이 중국에서 수입해 가는 도중에 해상 실크로드인 동중국해를 건너다가 침몰한 무역선이 싣고 가던 상품들로 밝혀졌다.

국립박물관 도록에 의하면, 신안 해저 문화재는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어느 어부가 우연히 그물에 걸린 청자 화병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을 실시했다. 발굴 장소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임자도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임자도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발굴 결과 도자기를 포함하여 동정, 금속 제품, 목제 상자, 목패, 자단목, 약재 와 열매 그리고 돌·뼈·옥으로 만든 기물 등이 인양되었다.

출토된 선체 편을 복원한 결과 이 선박(이하 신안선이라 함)은 선체의 총 길이가 34미터, 폭이 11미터이며, 칸막이와 선창(船倉), 용골(龍骨)을 갖춘 200톤 안팎의 V자형 목선으로 밝혀졌다. 중국 송나라(960-1279)과 원나라(1271-1386) 시기에 푸젠 성(福建省) 푸저우(福州)는 선박 제작지로 유명했고, 푸젠 성 취안저우(泉州)에서 신안선과 유사한 송대의 선박이 발견된 바 있다. 

신안 해저에서 건진 도자기는 약 2만여 점으로 대부분 원나라 산이고, 일본의 세토(瀨戶) 매병 2점과 고려청자 7점도 발견되었다. 고려청자는 베개, 잔탁, 완, 주자뚜껑, 순청자 매병, 사자 연적 등인데, 고려에서 원나라로 수출된 물건을 일본인들이 다시 수입해간 것으로 보인다. 동전은 299종 800만개로 약 28톤이 발견되었다. 왕망(재위 서기9-23년)이 세운 신(新)나라 때의 화천(貨泉)에서부터 1310년에 제작된 지대통보(至大通寶)와 대원통보(大元通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화폐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일찍이 중국 동전을 조공 하사품으로 받아 돌아왔는데, 당시 일본 상인들은 중국에 대량의 금을 가져가 동전과 바꿔서 큰 차익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 고화폐가 많이 실린 까닭은 이를 고물로 수입하여 녹여서 일본 화폐를 주조하는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신안선에서는 먹으로 쓴 화물 꼬리표인 목패(木牌) 360여 점이 출토되어 신안선의 구체적인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거기에는 화물의 주인 이름, 기년명, 사원 명칭, 물자 종류와 수량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기년명이 지치(至治)3년(1323년 - 고려 충숙왕 때)으로 적혀 있어 신안선의 침몰 연대를 알 수 있다. 또한 화주 이름으로 일본 교토에 있는 사원 명칭인 동복사(東福寺 도후쿠지), 조적암(釣寂庵 조자쿠안) 그리고 왕가 명칭인 거기궁(莒崎宮 미야자키궁) 등이 등장하여 화주들이 미리 주문한 물건을 토대로 상인들이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식물의 품종은 후추, 파두, 산수유, 사군자, 빈낭, 여지핵, 은행, 복숭아씨, 매실, 호두, 개암나무, 밤, 계피, 생강 등 다양하다. 발견된 식물류 중에는 중국 남부 지방과 인도나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재배되는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당시에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광범위한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불상이나 고급 목기를 만들 때 쓰는 자단목이 1000여 자루나 발견되었는데, 이 목재 또한 동남아산으로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여러 나라를 거쳐 교역되는 물품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 배는 1323년 4월 하순에서 6월 초순 사이에 중국 양자강 하구 상해 아래쪽에 있는 닝보(寧波영파)를 출발하여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 항구를 거쳐 세토 내해로 가던 무역선이었으며, 7월 어느 날 항해 중 아마도 태풍을 만나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의 막부와 사찰들은 금과 은이나 나전칠기 나 금속 공예품 등 일본 상품을 영파에 싣고 가서 팔고 돌아올 때는 일본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수입해다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으므로 이 배도 그런 무역선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신안 보물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해상 실크로드를 오갔던 무역선의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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