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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산 삶의 결과가 내일 돼

[서평] 범일 스님 에세이 <통과 통과>
17.08.07 06:45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스님도 사람입니다. 잠도 자고, 밥도 먹습니다. 일도 하고 방귀도 꿉니다. 스님이 꾸는 방귀도 냄새가 고약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속인들이 꾸는 방귀가 뱃속에 찬 가스 때문에 구린 것이라면 출가한 스님이 꾸는 방귀는 속세의 독이 빠지느라 구린 것이라고 하니 방귀는 같아도 구린내에 담긴 의미는 승속을 달리합니다.   
전생이 있나요?

어떤 분이 묻습니다.
"전생이 있나요?"
그분께 물었습니다.
"어제 있었습니까?"

오늘까지 산 삶의 결과가 내일이 됩니다. -<통과 통과> 67쪽-

촌철살인입니다.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전생'을 의문하는 질문에 자질구레한 설명 않고 '내생'이 있다는 것까지 실감토록 정신 번쩍 나게 확 일깨워 줍니다.

짧은 글로 간추린 산사의 일상 <통과 통과>

<통과 통과> / 글과 사진 범일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7월 31일 / 값 15,000원 ⓒ 불광출판사
<통과 통과>(글과 사진 범일,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천년고찰 부산 운주사에서 구도 중인 범일 스님이 산사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일들을 풀을 뽑듯이 뽑고, 고양을 밥을 주듯 간추려 짧은 글로 정리한 에세이집입니다. 

책 속에 춘하추동 사계절이 실려 있고, 산사에 드리운 일상을 시를 읊듯 그렸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밭에 묻었더니 참외가 나서 열매가 열렸습니다.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가 물을 줘야하는 수고를 한방에 덜어 주었습니다.

올챙이를 위해 축원을 하고, 가뭄 끝에 내린 풀을 뽑으며 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우리의 삶에서도 좋음과 나쁨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실감합니다.

절집을 오가며 볼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풍경,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 같은데 짧게 정리한 글속에 보이지 않게 똬리 튼 법문이 법고소리만큼이나 크게 울려댑니다.

서정의 글인가 하고 읽으니 어리석음을 깨우는 죽비소리이고, 서사의 글이려니 하고 읊다보니 감고 있는 눈에도 햇살이 비추는 광명의 지혜입니다.

"행자님 나가서 배출하시오!"
"아직 남은 속세의 독이 빠지느라 더 독한가 봅니다."
"-_-;"  -'방귀' 중에서, 131쪽-

스님은 꽃피는 봄날, 꽃잔디가 활짝 핀 절집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걸음에서 조고각하(照顧脚下, 발아래를 잘 살펴보라.)를 일깨웁니다. 돌 사이마다 예쁘게 피어있는 꽃잔디를 밟지 않으려 발아래를 살피는 것이 바로 조고각하임을 짧은 글로 읊었습니다.

입술이 터져 쉬 나지 않는 상처에 락스를 발라 꼬독꼬독해졌다는 글에는 경고의 글이 달려있고, 스님이 삭발을 자주하는 이유가 안색이 좋아 보이고, 많이 젊어졌다는 말 때문이라고 하니 스님도 사람이고, 사람이 스님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150편의 글과 46컷의 사진은 산사엘 가지 않고도 산사를 둘러볼 수 있는 천리안, 출가를 하지 않고도 출가수행자의 눈을 빌릴 수 있는 천안통의 대신입니다. 짧은 글로 그린 산사 풍경은 리듬을 타고, 소(앙꼬)처럼 켜켜이 들어가 있는 출가수행자의 사진은 산사의 시선을 가늠하게 하는 무주상 보시의 단상입니다.

덧붙이는 글 | <통과 통과> / 글과 사진 범일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7월 31일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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