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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더러운 여자는 여자로 안 보여."

20대 초반 무렵, 아는 오빠들이 술자리에서 한 말이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피부가 깨끗하지 않으면 여자도 아니란 말인가. 그들 눈앞에 있는 내 피부도 좋지 않는데 나는 어떻게 보일까.

회사에 취업하고 2년쯤 지났을 때 업무 스트레스로 피부가 일어나 트러블이 심했고, 며칠 전에는 병원에서 성인아토피라는 진단까지 받은 참이었다. 피부가 안 좋은 나를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동의하는 남자들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금이라면 화를 냈을 텐데 그때는 충격받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피부 트러블로 고민이 많던 나는 그 말에 여자로서의 자신감까지 떨어졌다.

트러블 진정에 좋다는 화장품도 사보고, 1일 1마스크팩도 붙여보고 좋다는 건 다 해봤지만 피부는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아토피가 생긴 이후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낫는데도 몇 달씩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굴을 긁는 버릇까지 있어 피부 상태는 나날이 나빠졌다.

피부 트러블이 심했지만 월급이 박봉이라 비싼 피부과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 마음 먹고 찾아갔던 피부과에서 1회 치료비로 13만 원이라는 진료비가 나왔다. 당시 월 100만 원을 간신히 벌던 나는 두 손이 다 벌벌 떨렸다. 그렇게 20대 때의 피부과 치료를 포기했다.

고되게 일해서 번 돈이 피부에 들어가는 게 아까웠다. 피부가 깨끗하지 않은 여자로서 이성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생각을 하면 자신감이 줄어들어 소극적이 되었지만 피부과에 다시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서른 살이 되자, 정장과 화장이 사회생활 하는데 있어 점점 필수항목이 되었다. 맨 얼굴로는 집 앞 슈퍼도 나가지 않는다던 또래 여자친구들의 말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민낯이 부끄러워 립스틱 하나라도 바르고 나가게 되었다. 눈가와 목에 잔주름이 생기면서 젊을 날보다 나이들 날이 더 많아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십 대 때는 여름에 반팔 입은 여자들의 얼굴과 몸에 생긴 피부 트러블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다. 평생 피부가 좋을 수는 없다. 아이처럼 맑은 깨끗한 피부를 성인 되어서까지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피부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관리와 유지라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 년 전 직장을 이직한 후, 업무 스트레스로 피부상태가 더 나빠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굴을 긁은 버릇도 여전했다. 가족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결국 피부과에 가게 되었다. 20대때 비싼 피부과 가격에 놀랐던지라 가족들이 알아봐준 동네 피부과의 저렴한 진찰비에 마음이 동했다.

그렇게 가게 된 동네 피부과는 필요한 양 이상의 약을 처방하지 않아 신뢰 가는 곳이었다. 어떤 피부과는 비누에, 스킨세럼에, 알약에 연고제까지 종류별로 골고루 약을 처방했는데 그곳은 알약 몇 개과 연고제만 처방해줬다.

약을 먹는 동안 피부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처방 받은 알약에 들어있는 소량의 스테로이드제 때문에 속이 항상 쓰렸고, 이내 위염이 생겨 버렸다. 피부과 약 중에는 독한 게 많다더니 유독 나에게는 그 약이 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약을 먹어야 피부가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속이 쓰렸지만 약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반년을 약을 먹고 연고제를 처방 받았다. 심했던 피부 트러블이 어느정도 가라앉으니 이번에는 그동안 생긴 오래된 묵은 상처 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피부가 조금 좋아지니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피부관리실에 관심이 갔지만 비용을 알아보고 좌절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가 피부관리비를 아까워하는 내가 안타까웠던지 생일날 피부관리실 10회 이용권을 끊어 주었다.

처음에는 목돈 썼다고 어떡하냐며 미안해 했지만 내심 나 대신 목돈을 쓴 언니에게 무척 고마웠다. 관리실에 가보니 원장 선생님이 늘어난 모공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묵은 상처 자국은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자국들은 지울 수 있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하는 한편,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피부가 내 모든 걸 대변해주는 것도 아니고, 거울이 없는 이상 내 얼굴 내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남이 더 자주 본다는 이유로 얼굴과 피부가 신경쓰인다.

나는 타인의 눈을 신경 쓰고 있다. 타인에게 내 피부가 결점으로 비춰줘 내가 여자로서 매력 없어 보이고 더럽거나 게을러 보일까 봐 걱정된다. 내가 들었던 싫은 말이 뇌리에 박힌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피부 관리에 목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깝다. 이 돈이면 다른 취미활동이나 외식이 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급한 건 얼굴의 묵은 상처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나 자신이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꼴이지만 그보다는 내 스스로가 피부가 안 좋다는 걸 자각하고 있고 이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휘둘린다는 걸 알더라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피부관리를 하고 싶다. 피부가 깨끗하면 반대로 자신감이 일부 생기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피부관리에 목돈 들이는 이유가 이런 걱정 때문이란 걸 이제는 나도 이해한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내 내면도 함께 봐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먼저 보이는 게 내 얼굴이라면,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마음에 들어 하기 위해 피부를 관리할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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