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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최초의 학생독립만세운동"

제10회 3.10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
17.03.21 07:53l

검토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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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억압에 맞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렸다.

제10회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지난 10일 면천초등학교 일원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조이행)의 주최·주관으로 개최됐다.

면천농협농악단의 풍물놀이로 시작한 이번 행사에서는 장학금 수여식에 이어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약사 및 경과보고가 이뤄졌으며 학생 대표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면천중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 노래 제창 및 만세삼창이 진행됐다.

이후 면천면민들과 학생들은 면천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기념광장까지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거리행진을 실시했다. 면천초등학교를 나설 때에는 일제의 탄압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했다.

또한 기념공원에서는 순국선열에 대한 헌화 및 분향이 이뤄졌으며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은 이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제에 맞섰던 선열들을 기렸다.

조이행 기념사업회장은 "면천공립보통학교 전교생이 태극기와 현수막을 들고 독립의 노래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던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은 충남 최초의 학생운동"이라며 "우리의 독립정신을 드러낸 애국애족 운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은 지나간 한 시대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98주년을 맞는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고자 지역민들이 지난 2008년 2월 기념사업회를 조직해 매년 기념식 및 만세재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3.10학생독립만세운동

면천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원용은은 서울에 갔다가 3.1운동에서 남녀 학생들이 선두가 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는 광경을 보고 벅찬 가슴을 안고 귀향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다짐했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원용은은 동급생 박창신과 상의해 4학년 급장 이종원과 계획을 꾸렸고, 전교생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논의하고 제반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들은 일본국경일인 3월 10일, 오후 수업이 없다는 것을 예견하고 오후 4시에 만세운동을 치르기로 정했다. 3월 10일 오후 4시경 동문 밖 저수지를 지나 산 너머 으슥한 골짜기에서 전교생이 집합했고 독립만세운동을 대서특필한 10척의 장폭 현수막과 태극기를 길게 달고 나갔다.

학생들이 행진하던 가운데 덕산보통학교 심상열 선생님을 마주쳤고 심 선생은 손을 번쩍들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학생들은 이를 보고 용기를 얻어 펄펄뛰며 면천공립보통학교 정문 앞에까지 당도했다.

선생님들은 깜짝 놀라 저지하려 했으나 이를 막지 못했고 면천주재소(현 파출소) 앞을 통과하려 할 때 경찰이 출동해 강력히 저지하는 바람에 해산당하고 말았다. 이 가운데서도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려고 웅성웅성하던 가운데 선생님들이 총 맞지 말고 어서 도망가라고 호통 치는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후 공주 헌병대에서 16세의 원용은과 18세의 박창신을 주모자로 색출해 공주 형무소로 이감됐으며, 4개월 간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이후 원용은과 박창신은 면천공립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해 졸업하지 못했다.

이 사실은 4학년 급장이었던 이종원 선생이 1977년에 쓴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으로 공주형무소에서 찾아낸 형사기록부가 증명하고 있다.

※출처 :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덧붙이는 글 | 당진시대 신문사 김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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