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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에도 종류가 있다

ⓒ 하지율

"야밤에 3연속 트롤을 만나 빡쳐서 잠을 못 이뤘다."
"트롤들아 제발 작작해. 진짜 너희들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너희들 때문에 3000점에서 2456점까지 내려갔어."
"트롤들이 많아서 이길 수가 없어요. 이겨도 또 트롤 만나서 지는데 점수를 어찌 올려요? 제발 제재 좀 해줘요."
"마음에 안 드는 놈과 '같은 편 되기 피하기' 기능을 만들어야 한다."

원래 북유럽 신화 속 심술쟁이 괴물을 뜻했던 '트롤'은, 이제 인터넷과 게임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반사회적 행위(자)를 일컫는 말로 전유 됐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 '트롤'을 검색하면 위와 같은 절규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요즘 한창 인기인 블리자드사의 FPS 게임 오버워치 역시 트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트롤인지' 모두가 합의할 만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학자들은 나름의 노력 끝에 위 카드뉴스처럼 트롤 '후보'들을 주요 유형별로 추리는데 성공했다. 오버워치 유저들은 이중 무엇을 트롤의 전형으로 인식할까.

그전에 누가 오버워치 유저인가. 당신이 어느 날 PC방에 갔다 치자. 그 다음 넋을 놓고 오버워치에 열중하는 이들을 보라. 그들은 주로 20대일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유저들의 평균 연령 역시 24.1세. 플레이 기간은 8.8개월. 오버워치 정식 출시로부터 10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을 감안하면, 이들이 초창기부터 여러 유형의 트롤들과 맞닥뜨렸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트롤은 왜 문제인가, 또한 그것은 과연 게임 세계만의 문제일까.

공동체를 망하게 하는 방아쇠, '트롤'

"일단 게임의 목적은 이기는 거라고 본다." 태언씨가 운을 뗐다. "목적을 이기는데 둬야 재미가 있다." 청호씨도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을 포함한 인터뷰이 과반은 게임의 목적을 '승리'로 보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또한 주로, 승리에 악영향을 주는 행동이면 트롤로 인식했다. 태언씨는 게임 내 '언어 폭력'에 대해 "욕설도 트롤 같다. 제가 멘탈이 좀 안 좋아 욕을 들으면 하기 싫어지고 실력도 잘 안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같은 팀의 플레이를 고의로 방해하는 '그리핑', 게이머 사이에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영웅 조합을 벗어난 '꼴픽', 게임이 안 풀리면 팀원끼리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질' 등도 트롤이 되긴 마찬가지다. "나는 이 행동들을 사실상 같은 종류로 본다. 왜냐하면, 이 행동들이 벌어진 다음 팀 내 분란이 안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분란이 일어나면 게임에 영향을 준다." 청호씨의 말이다. 더 나아가 '실력 부족'도 트롤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버워치는 유저들의 점수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티어제(등급)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 비슷한 실력의 점수, 등급의 유저끼리만 경쟁전을 치를 수 있고 승리를 해 점수를 높여야만 상위 티어로 승급할 수 있다. 오버워치의 티어는 총 8개(상위 500위권-그랜드 마스터-마스터-다이아몬드-플래티넘-골드-실버-브론즈)다.
 오버워치는 유저들의 점수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티어제(등급)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 비슷한 실력의 점수, 등급의 유저끼리만 경쟁전을 치를 수 있고 승리를 해 점수를 높여야만 상위 티어로 승급할 수 있다. 오버워치의 티어는 총 8개(상위 500위권-그랜드 마스터-마스터-다이아몬드-플래티넘-골드-실버-브론즈)다.
ⓒ 블리자드/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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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는 비슷한 실력의 유저끼리 게임을 즐기도록 한 게임이다. 그런데 실력이 안 맞는 팀원이 존재한다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청호씨가 말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성민씨도 "운전하다 보면 누가 상황 판단, 즉각적 대처 능력이 있고 없고가 보인다. 팀게임도 마찬가지다. 지금 타이밍에 빠질지 들어갈지 궁극기는 언제 같이 쓸지 등등. 아무 생각 없이 혼자 놀다 죽으면 '아... 트롤이구나'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실력 부족'도 트롤로 본 것은 아니다. 실력이 모자라도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가 있으면 트롤로 보기 힘들고, 게임을 방해하는 '고의성'이 있어야 트롤에 가깝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조합 안 맞추고, 얼마나 능동적으로 팀의 승패에 악영향을 주는 행동을 하느냐를 본다." 산하씨의 생각이다.

"고집 부리는 사람이 문제다." 지연씨가 말했다. "저는 잘 못하는 팀원이 있으면 그 사람 전적을 보고 가장 잘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 영웅해주실 수 있나요?' 물어본다. 이 정도면 꽤 나이스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고집부리는 사람이 꽤 많다." 지연씨처럼 게임의 목적이 꼭 승리라고 뚜렷하게 규정하지 않은 유저도, 대부분 팀 조합만큼은 강조했다.

오버워치는 기본적으로 6 대 6 팀 경기 시스템이므로 "조합이 반절은 먹고 들어가므로" 팀원 간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할 분담 과정에서 기본 능력치나 기술, 맵과 임무, 영웅 간 상성 등을 고려해 몇몇 비인기 영웅들은 기피 대상이 된다. '한조'나 '위도우' 같은 저격수, '솜브라'와 '트레이서' 같은 작고 날렵한 영웅, 포탑을 설치하는 '토르비욘' 등은 유저의 실력에 따라 퍼포먼스의 기복이 크기 때문이다. 오버워치에서 팀의 협력이 깨지는 대부분의 상황은 바로 이 역할 분담에서 협상이 결렬될 때 발생한다.



이 상황을 영화 <반지의 제왕>에 패러디한 영상도 나왔을 정도다. 가령 누군가 (1) 한조를 픽하면, (2) 바로 다른 팀원이 위도우를 픽해버리고, (3) 팀원들끼리 언쟁을 벌이다가 이길 생각을 모두가 놓아버리는 식이다('게임을 던진다'고도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인터뷰이가 셋 중 첫 번째 사람이 아닌 두 번째 사람을 가장 나쁜 사람으로 지목했다는 것. 다이아 승급 직전 트롤들을 만나 좌절된 경험이 있다는 하영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영씨가 말했다.

"한조 한 명쯤은 안고 갈 수 있다. 갓조가 아니라 망한 한조라도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든 거점에서 잘 비벼보면은 안 되는 건 아니다. 물론 한조가 궁극기를 막 하늘에 쏘고 이러면 화낼 수도 있다. 그런 게 아니고 픽밖에 안 했는데 사람을 단정 짓고 '나도 마음대로 할래'이러면 두 번째 사람이야말로 팀이 망하는데 방아쇠를 당긴 격이다."

"전 일단 한조 전적을 보고 실력이 좋으면 오히려 믿고 간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람의 태도는 애초에 '어 한조 나왔네? 그럼 나 위도우' 이런 식이라 그 판을 구성하는데 더 큰 책임이 있지 않나 싶다. 한조, 위도우 둘 다 나오면 너무 이길 확률이 낮아지니까." 지연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렇게 조합을 중요시하는 유저들은 승리보다는 협력을 중요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하영씨는 "게임에서만 즐길 수 있는 쾌감"이 있다고 말한다.

"팀플레이가 굉장히 어렵지만, 한 번이라도 팀원들 간에 호흡이 맞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한 번이라도 더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계속 게임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영씨가 게임을 하는 목적이다. 그렇다면 트롤이 문제인 이유는 크게 둘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이머들이 자기효능감을 경험할 기회를 뺏는다. 둘째,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협력과 그 짜릿함에 대한 학습 경험을 가지려는 게이머들의 기회를 뺏는다.

또한 게이머들은 대개 청년이기에, 청년들이 지친 현실을 잠시 잊고 가상 세계에서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 한 판 즐겁게 놀아볼 수 있게 해주어야할, 게임 본연의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또한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경험할 수 없으며, 그 옛날 전자 오락실의 감수성은 추억속에 박제될 뿐이다. 이것은 사회적 손실이다. 트롤은 모두가 트롤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형태의 즐거움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 파괴자와 사기 놀이꾼

한편 소수의견도 나왔다. "사람들이 조합을 안 맞추면 트롤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는 잘 하면 뭐든 상관이 없다고 본다. 잘 안 돼더라도 다른 팀원들이 부담을 뿜빠이(분배)해보면서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성민씨의 말이다. "나머지 팀원들도 잘 못하고 조합을 안 맞춰버리면 어쩌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하, 그럼 저도 같이 즐겜한다"고 답했다. 심지어 그는, "저는 욕설도 무조건 트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유저들끼리 욕을 막 섞다 보면 재밌는 경우가 가끔 있다. 미묘한 정(?) 같은 게 생길 때도 있다"고 답했다. 성민씨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그는 낙천적이고, 약간 트롤끼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그조차 인터뷰이들이 하나같이 싫어하는 비매너 행위를 싫어했다. 바로 고의로 팀이 패배하도록 유도하는 행위인 '그리핑'이다.

"본인이 겪은 가장 기분 나빴던 트롤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같이 게임하다가 거의 다 이긴 상황에서 갑자기 친구가 자기를 화나게 했다며(?) 일부러 적에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 그러고 있으니 질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오버워치 영웅 중 한 명인 메이가 빙벽으로 같은 팀원의 진로를 막는 모습. 게임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리핑 사례 중 하나다.
 오버워치 영웅 중 한 명인 메이가 빙벽으로 같은 팀원의 진로를 막는 모습. 게임 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리핑 사례 중 하나다.
ⓒ 오버워치 플레이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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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에서, '사기 놀이꾼'과 '놀이 파괴자'를 구분해 후자를 전자보다 위협적인 존재로 봤다. 사기 놀이꾼은 겉으로라도 놀이판과 그 규칙을 인정하는데 반해, 놀이 파괴자들은 놀이판 자체를 붕괴시켜 다른 참여자들이 놀이에 관여하고 있다는 '환상(illusion)'을 깨뜨리고 재미를 앗아간다. 환상이 깨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게임을 통해 꿈을 꿀 수가 없다.

머릿속으로 그려본 플레이를 실현할 수 없게끔 예상치 못한 방해를 받는 것이다. 현재 오버워치 유저들은 이러한 그리핑을 그리핑이라 부르지는 않고, 특별히 '고의'를 강조해 '고의 트롤'로 부르는 것 같다. 나름 계획적인(?) 그리핑도 있다. 가령 원래 실력보다 낮은 점수대로 내려가 '양민 학살'(낮은 레벨의 유저를 상대로 농락하는 경우)을 할 목적, 혹은 일부 영웅의 승률을 부풀릴 목적으로 고의로 패배를 유도하는 사람들은 '패작(패배 작업하는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핵쟁이(승부 조작용 프로그램 사용자)'나 '대리기사(금전적 대가를 받고 다른 사람 아이디의 점수를 대신 올려주는 고수)'는 어떨까? 핵쟁이는 승부 조작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대리기사는 게임 개발사가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게끔 정한 실력대보다 높은 고수가 편법으로 게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모두 '사기 놀이꾼'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핵쟁이를 트롤로 볼지는 의견이 엇갈렸다. 규칙을 어기니 트롤이라는 의견부터, 같은 편에 있으면 트롤이 아니라는 의견까지(성민) 분분했다. "3700점대까지는 같은 팀에 핵이 있어도 그냥 덕보겠다는 사람들도 많고, 4000점대에 적팀에 매너로 무승부를 내주니 마느니 말이 나오고, 4300점대가 돼야 현지인들이 핵을 이기는 모습이 나온다. 만약 무승부를 내주기로 합의를 보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오히려 트롤이다." 청호씨가 말했다.

이처럼 게임 실력과 상황에 따라 트롤의 범위는 상대적이었다. 한편 대리기사는 트롤로 보기 애매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리기사는 게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 문제는 맞지만 트롤과는 다른 종류다. 원래 티어제(등급제)는 같은 점수대 사람들끼리 게임을 즐기라고 만든 건데 본말이 전도되면서 승급 자체에 집착하는 현상 같다." 태언씨의 말이다. 한편 여성 유저들은 언어폭력, 특히 성차별 발언을 트롤로 보는 경향이 남성 유저들보다 도드라졌다.

이 주제는 3편 "그녀가 게임을 던진 이유"에서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겠다. 우선 2편에서는 게임 내 트롤의 발생 원인과, 해결책을 논해보고자 한다.

② "저 새X는 왜 또 트롤짓인가?"
③ 그녀가 게임을 던진 이유

참고한 글
- 문정우, "트롤과 게이머, 그 전환시대의 만남", 시사인, 2016년 9월 12일.

- 서성은·김치요, 「<리그 오브 레전드> 트롤링 유형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인식: 사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국게임학회지 15(4):93-110, 한국게임학회, 2015.
- 이준명·나정환·도영임, 「플레이어의 개인 성향과 게임 내의 트롤링 행위의 관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중심으로」 한국게임학회지 16(2):63-72, 한국게임학회, 2016.
- 정정현, 「게임플레이어들의 협력 매커니즘: '오버워치' 영웅 선택과정을 중심으로」, 강원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상문화학과 학위논문(석사), 2017. 2.
-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10.


태그:#블리자드, #오버워치, #경쟁전, #티어, #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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