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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얼까? 내가 알게 된 인문학이란 바로 '미래 먹거리'를 말한다. 다 먹고살자고 이 난리기 때문이다. 이건 농담반 진담반이다. 기업이 인문학을 각광하며 떠받드는 것도, 그걸 하면 먹을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의하는 사람들이 창의하는 것도 먹거리를 찾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이 글은 내가 힘차게 읽은 책 한 권이 주축이 되고, 그동안 내가 읽어온 글이 바탕이 돼 나올 거다. 창의란 그렇게 베껴서 완성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하나만 베끼면 표절이고, 여러 개를 베껴 궁리하여 배치하면 연구란 말도 있다. 자, 들어가 보자.

내가 존경했던 분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분은 인문학을 전공했고, 여차해서 직장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분야와 인문학을 합쳐 유명한 작가가 되셨다. 한국에서 인문학을 외치는 분이 많았지만, 인문학에 대해 내게 가장 큰 감흥을 주셨다. 그 이유는 그 분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과 열린 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을 스스로 깨달은 바를 몸소 실천한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내게 큰 울림을 주었던 분들의 대다수는 그렇게 온라인에 열린 공간을 두고 활동을 하셨다. 아무튼 내가 인문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이 요소를 가장 첫째로 둔다. 대가들은 어렵게 말할 수 없고, 대중과 소통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우연히도 인문학과 관련이 된 거다. 내가 그 분과 관련해 글도 한 편 썼지만, 동양 미학을 선보이신 분으로 난 기억한다. 그 분은 서구 존재론에 맞서, 동양의 관계론을 펼친 분이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며 그 사실이 가장 와 닿았다. 동양 고전을 그 관점에서 읽으셨으니까 말이다. 허나, 이번에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는 별로 내게 와 닿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그 분이 '노인'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삶에 대해 반대하고, 젊은이는 모험하며 삶을 체험한다.' 이게 내 이유다. 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걸 혐오하고, 충돌을 빚을지언정 선두에 서는 걸 선호한다.

맥 빠지는 얘기는 이쯤하고, 젊음을 이야기해 보자. '인문학은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 했고, 젊은이는 버릇이 없다고 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배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젊은이만 창의할 수 있다는 거다. 삶에 길이 든 기득권에 속하는 사람은 창의할 수 없다. 창의는 버릇없는 데서 나오고, 인문학이 버릇없음을 길러주고, 버릇없는 게 젊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창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스타일이 있다. 스타일이 있어야 섹시할 수 있다. '다 섹시하자고 이 난리들이기 때문'인데 말이다. 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젊은이와 소통이 잘 된다는 거다. 역시 이것만 봐도, 그들이 젊은이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을 하는 이유는 먹거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전제를 깔았는데, 자연히 젊음을 이야기하게 됐다. 전제가 하나 더 붙게 됐다. 인문학이란 젊음에 관한 거다, 라고 말이다.

내 생각에 젊게 사는 이들이 괴짜들이다. 내가 말하는 괴짜란, 괴벽을 일삼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남과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미래를 꿈꾸는 이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창조적인 괴짜'에 대해 말하는 거다. 이들은 선례와 전통을 안고서는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에서 '창조적인 문제아'가 된다. 조직에 깊이 헌신하지만, 반대를 외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차, 먹거리 얘기를 못 했다. 기업인들은 한 번의 판단으로 생사가 오간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간다. 그런 이들이 2000년대 들어 인문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앞서 얘기했지만, 창의하는 이들도 먹거리를 찾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기업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이전 한국과 다르게 이제는 먹거리가 창의하는 일에서 나오는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 길로 들어서지 못 하면 살아남기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인문학을 그렇게 떠드는 거다.

다시 정의를 내려 보자. 내가 왜 인문학을 주제로 글을 쓰는가? 그대가 살아남기 위해서고, 이 시대에 인재로 발돋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버릇없음이 요구되고, 젊어질 것이 요청된다. 그건 괴짜들이 잘 한다. 괴짜 친구를 다들 곁에 한 명씩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태그: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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