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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캠프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영입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를 '영원한 특전맨'으로 추켜세우던 자칭 보수세력들은 전 전 사령관의 페이스북까지 찾아와 분노와 실망을 표하고 심지어 '빨갱이'라는 말로 그의 군 생활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 야권에서조차 과거 그가 지휘관이던 시절 발생한 부하들의 순직 사고를 들어 그의 영입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목소리가 옳은 것인지 돌아보고자 했다. - 기자 말

지난 4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북콘서트 '대한민국이 묻는다' 행사에서 안보자문위원 합류 소식을 전하는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모습
 지난 4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북콘서트 '대한민국이 묻는다' 행사에서 안보자문위원 합류 소식을 전하는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모습
ⓒ 문재인 전 대표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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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영입' 다른 의견의 기사] 부하 둘이 질식사했는데 아무도 책임 안 졌다

[기사 수정 : 8일 오전 7시 55분]

1983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해외 순방의 일환으로 미얀마(당시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과 내각 관료들이 아웅산 묘소 참배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내각 관료들이 먼저 묘소에 들어서고 대통령을 기다리던 순간,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났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고위 관료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건물 잔해에 깔려 쓰러졌다.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 역시 머리와 배에 파편이 박힌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젊은 장교 한 명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2차 폭발의 위험을 무릅쓴 채 뛰어든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 의장을 구해냈다. 덕분에 현장에 있던 대다수 관계자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의장만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훗날 그를 구한 젊은 장교는 "상황이 무서웠지만, 더 무서운 것은 상관이 죽고 부하는 살았다는 불명예였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얘기다.

영원한 특전맨,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 '이 시대의 참군인'. 그의 이름 앞에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의 업적을 띄워주기 위해 언론이나 군 관계자들이 붙여준 빈말이 아니다. 그가 지휘했던 부하들이 직접 붙여준 별명들이다. 아웅산 테러 당시 몸을 던져 상관을 구해낸 무용담은 그가 36년 군 생활 동안 보여준 미담 중 일부분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 어떤 조직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군부 내에서 그는 군 개혁의 선두 주자를 자처했다.

그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특전사령관으로 복무하며 특전사를 지휘했다. 부임한 직후 들여다본 특전사의 현실은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라는 명성과 달리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장비는 열악했고 훈련 역시 실전과는 괴리되어 있었다. 강도 높은 개혁이 시작됐다. 사격량을 대폭 늘리고 체력단련을 강화했다. 필요하다면 규정에 없는 비인가 장비까지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보수적인 군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나라 지키겠다고 사비로 장비를 샀는데 왜 못 쓰게 하느냐"며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과 장비 개선으로 특전사는 세계 특수부대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최정예 부대로 거듭났다.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가 개혁을 밀어붙인 것은 실전과 같은 훈련만이 부하들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신념은 부하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국회의원 오든지 말든지 평소대로 하라"

그가 작년 7월, 36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지휘를 받았던 부하들이 SNS에 앞 다투어 그에 관한 미담을 인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하 사랑이 극진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강원도 화천에서 27사단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폭설이 내리자 본인이 직접 넉가래를 들고 대민 제설작전에 앞장선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자신보다 상관은 물론 국회의원이 부대에 방문한다는 소식에도 병사들에게 "오든지 말든지 평소처럼 하라"고 지시했다. 훈련으로 지친 장병들을 고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고위 인사가 방문하면 병사들을 닦달해 '때 빼고 광내던' 대부분의 지휘관들과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사병들의 전역 당시 "군 생활하느라 고생했는데 줄 건 없고 투스타 경례나 받고 가쇼"라며 거수경례를 한 일화도 존재한다. 이런 상관이었으니 어찌 부하들의 자발적인 충성과 존경을 이끌어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가 전역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한 훈훈한 미담을 인증하며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표현했던 것이리라.

빨갱이가 된 전직 쓰리스타

그런 그가 지난 4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북 콘서트에 깜짝 등장했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전 전 사령관을 더불어민주당의 안보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전 전 사령관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안보 강화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있어 결심하게 됐다"고 영입 사실을 인정했다. 그의 깜짝 발표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거웠다.

야권에서는 그의 영입으로 인해 더욱 튼튼한 안보와 군 개혁을 기대한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정작 그를 '이 시대의 참군인'으로 추켜세웠던 자칭 보수세력들은 실망과 분노를 표하며 그를 떠나갔다. "국회의원 한 자리 얻어먹으려 한다", "대세가 기울자 변절했다"며 근거 없는 비난과 막말까지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역시 이런 비난을 충분히 예상했던 것 같다. 계속되는 비난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야당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백했다. 그는 "특전사에 가보니 그동안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회귀했다"며 "특히 7만 원짜리 특수작전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누구보다 특전사 개혁을 위해 앞장섰던 전직 장성 입장에서 자신이 추진했던 개혁이 부정당하는 것을 보며 어떤 심경이었을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는 앞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도 사병 복지는 뒤로 미루고 각종 방산비리로 지탄받는 고위 장성들과 관련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군대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로 군의 실태를 인정하고 개혁을 촉구했다.

이유 있는 해명과 함께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그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비난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랜 세월 독재정권이 반대파를 억압하기 위해 내세웠던 '빨갱이'라는 굴레마저 덧씌워졌다. 그에게 "머리에 빨간 물이 들었다"며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마저 등장한 것이다. 야당에 안보자문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만으로 30년 넘는 세월 동안 군에 헌신한 전직 장성을 종북좌파로 깎아내리는 그들의 주장에 이제는 씁쓸한 웃음마저 나올 지경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민주당의 안보정책을 검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 번을 양보해 그들의 주장대로 민주당의 안보정책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문 전 대표의 전 전 사령관 영입은 부족한 안보정책을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인 셈이다. 그러니 야당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자문하기로 한 전 전 사령관의 선택은 마땅히 존중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까닭은 대체 뭘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정당은 오로지 여당뿐이라는 것인가.

심지어 이제는 야권 내부에서조차 그를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당 김영환 최고위원은 6일, 그를 영입한 문 전 대표가 특전사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특전사 코스프레에 집착한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또 전 전 사령관이 특전사령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발생했던 부하들의 순직 사고 사실을 다시금 들춰내며 그의 아픈 과거를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사고에 관해서는 전 전 사령관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오히려 그는 예하 부대에서 일어난 당시 사고와 관련해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스스로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합류 소식을 전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합류 소식을 전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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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나라와 국민을 바라보며 군에 헌신했던 그의 입장에서 자신의 36년 군 생활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일 것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심지어 한때 그와 한솥밥을 먹었던 군 시절 상관, 동기, 부하들마저 그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믿었던 이들로부터의 절교 선언은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에게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은 결국 그 스스로가 감내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다. 공직에 나선 이상 그 역시 비판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야만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 놓고 보자면 안보자문위원으로서 그의 능력은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본다. 공직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의 도덕적 흠결도 아직까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향해 터무니없는 비난과 조롱만이 쏟아지는 현실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다.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직 장성에게 이런 식의 비난을 쏟아낼 길밖에 없는지 말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을 존중하지는 못할망정, 반대 당파에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비난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나라라면 과연 어떤 군인이 나라를 위해 희생할 마음이 들겠는가. 비판은 없고 비난만 존재하는 이번 논란이 안타까운 까닭이다.


태그:#전인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빨갱이, #특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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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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