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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지들이 다 쥐고 있으면서 맨날 우리 보고 더 노오오오력하래. 그럼 죽창으로 찔러달라는 말인가?"(211.213.*.*)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어떤 목소리다. 꽤 과격하게 들리지만, 과격성만 떼놓고 보면, 분명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옥불반도와 죽창.
 지옥불반도와 죽창.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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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에서 부쩍 '헬조선'(지옥+조선),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 '망한민국'이라는 말이 떠돈다. '흙수저'(↔금수저) 청년들이 10대 입시지옥, 20대 취업지옥, 30대 주거·결혼지옥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들은 노력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억울하다.

지난 8월 말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810명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한 편'이라는 답변 90.7%에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어렵다'는 답변은 81%에 달했다. '노력 담론'에 대한 불신은 이미 뿌리가 깊다.

그러나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청년들은 이들을 '꼰대'라 부른다. 이미 취업·학점·스펙·알바 등 '노오력'의 굴레에서 허우적대는 청년들의 하소연에, 꼰대들은 '니가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동어반복을 일삼는다.

왜 '노력'이 아니라 '노오력'인가. 꼰대들의 권위적이고 잔소리하듯 늘어지는 말투를 청년들이 빗대는 것이다. 꼰대들은 청년의 맥락에 대한 이해나 관심부터 부족하지만, 섣불리 선입견을 들이댄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사회적으로 승인받지 못했다.

답답한 상황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우선 '탈조선'(이민)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지난 17일 JTBC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만여 명 중 90%가, 20~40대인 가운데 88%가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탈조선에도 '노오력'은 필요하다. 각 나라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이민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후의 대안은 '죽창'이다. 이른바 '금수저'(기득권)들의 방약무인한 막말이나, 사회의 모순적 현실에 관한 뉴스에 "역시 죽창밖에 답이 없다", "죽창 앞에서는 너도, 나도 한 방. 모두가 평등하다", "죽창을 달라!"고 댓글을 다는 식이다.

여기서 질문. 그럼 죽창은 '분풀이'에 불과한가. 최근 <경향신문>이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와 '헬조선 담론지형'을 그렸다. 분석은 "죽창은 '저항'보다는 '자기파괴적' 모습에 가까웠"으며, 좌절 가득한 현실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어 "서로 찌르며 함께 파국적 결말"을 맞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또 모든 청년들이 현실에서 바로 '죽창'을 읽어내는 것도 아니다. 트위터는 탈출과 죽창을 이야기하면서 현실 부조리에서 바로 '구조탓'을 읽어내지만, 일베저장소(아래 일베)는 '개인탓'이 섞여 있고 무엇보다 "노오력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만다는 거다.

일리가 있다. '죽창'이라는 기표는 현재 사이버 공간 상에서만 떠돌며, 그것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읽어낼 수 있는 청년들 사이에서만 교환되고 있다. 그럼 구조적 문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개인 노오력' 담론으로 응어리지는 일베와 구조적 문제까지는 읽었으나 일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트위터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죽창은 자위 도구일까... 아니다

재난영화 <2012> 스틸컷 중.
 재난영화 <2012> 스틸컷 중.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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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전문의들이 널리 사용하는 '정신장애 진단·통계 편람' DSM-Ⅳ에 의하면, '화병'은 한국의 문화 관련 증후군이다. 울화병(鬱火病)이라고도 하는데, 분노(火)가 계속 응어리져 답답(鬱)한 게 특징이다. 고 최상진 전 한국심리학회장은 <한국인의 심리학>에서 울화병 억울하고 분한 마음인 '울분'과 연관된다고 설명한다.

울분은 사회적 모멸감으로부터 느껴지면서, 때때로 존엄함을 인정해달라는 투쟁의 추동력이 되기도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 악셀 호네트 소장은 <인정투쟁>에서 '인정투쟁이 때때로 사회의 당면한 모순을 해결하고 진보를 이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헬조선은 민초들의 울분 표출을 용납하지 못하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식 사회적 억압이 강하다. 직장·학교·국가 등을 축으로 강요되는 맹목적 상하위계와 권위주의·자본주의 사회의 '친절 스펙화'가 문제다. '누구나 고통 하나쯤 있다', '더러운 꼴 참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관심 직원이냐' 등, 센 놈에 밉보이지 않으려면 친절을 가장해야 한다.

트위터와 일베의 차이는 급성과 만성 정도의 차이로 읽힌다. 민성길 의학박사의 <화병연구> 임상 경험에 따르면, 20~40대는 분노와 공격 충동을 호소하는 급성 경향, 50~70대는 분노의 직접 표현보다 '한'(恨)을 품고 응어리뜨리는 만성 경향이 강했다.

"센 놈에게 붙어라" 생존 전략을 실천한,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 생존자)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내면화"(시사IN 2014년 9월 29일) 하는 것이 일베의 경향이라면, 일베는 '명예 5070'인 셈이다. 충격적이다. 죽창은 그렇다면 인터넷상에서 분노(트위터)를 해소할 때 사용하는 자위(自慰) 도구 정도에만 그치는 걸까. 그건 아니다. 구원투수의 등판이다.

[종말] 지옥불반도의 '미개감시탑'과 지상의 신들의 메시아적 폭력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맵지도에 빗댄, 헬조선의 현실이다. 헬조선인들은 탄생과 동시에 지옥문이 열리고, 노예전초지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닦달당한다. 이후 끊임없는 생존을 위해 노오력 하지만, 결국 모두 탑골공원으로 수렴돼 여생을 마무리한다는 설정은 섬뜩하지만 현실적이다.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의 맵지도에 빗댄, 헬조선의 현실이다. 헬조선인들은 탄생과 동시에 지옥문이 열리고, 노예전초지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닦달당한다. 이후 끊임없는 생존을 위해 노오력 하지만, 결국 모두 탑골공원으로 수렴돼 여생을 마무리한다는 설정은 섬뜩하지만 현실적이다.
ⓒ 트위터 이카무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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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미개' 코드를 고려하면, 청년들이 뉴스들을 조망하며 인간 세상에 겨누는 죽창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지옥불반도'는 이 두 코드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역작이다. 지옥불반도에 등장하는 '미개감시탑'에 주목하자. 청년들은 헬조선의 노예화된 삶을 조망하며, '미개함'을 포착하고 그 원인을 주입식 교육에서 찾고 있다. 일베와 트위터 모두 그렇다.   흥미로운 건 미개함이 재난이 된 한반도를 감시하는 초월적 공간인 '미개감시탑'의 청년들이, 종말영화 감상자와 무척 흡사하다는 점이다. 자연재해(<2012>), 계급투쟁 디스토피아(<설국열차>), 파국을 맞이한 지구(<오블리빌리언>) 등 종말 영화를 주제로 한 오은정의 석사 논문의 한 구절을 보자.   "각 종말영화들의 다양한 주체는 결국 구원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주체가 속한 세계가 지닌 문제로부터 탈출과 해결을 의미한다. 수용자들은 종말 영화 속에 나타난 극복과 좌절의 이미지를 통해, 실제 문제적 현실에 대한 불안을 대리해소한다. 또한, 이것은 현실 속 인간이 맞닥뜨린 문제적 상황을 파멸시키고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욕망의 반영이기도 하다."(오은정, '종말영화 내러티브의 행위소 분석' 중)   '불(火)'타는 한반도는, 청년들의 울화병과 불쾌함을 드러내는 기호다. 그와 동시에 기존의 미개한 것들을 싹 태워버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정화'의 기호이기도 하다. 헬조선의 '미개함'은 청년들에게 극복해야 할 '인재(人災)'다.   헬조선을 조망하는 이 '초월적 존재'로서 청년들은, 불타는 한반도를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며, 자지러지게 웃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시작한다.

자연재해와 한반도 코드를 결합시킨 콘텐츠.
 자연재해와 한반도 코드를 결합시킨 콘텐츠.
ⓒ fmkorea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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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은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잿더미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해 세상의 기반을 모조리 흔들어놓을 것이다!"(크로***)

이것은 자기파괴적이라기보다는 메시아적이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이다. 그는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법을 지키려는 폭력'과 '법을 세우려는 폭력'을 넘어서는, '신(神)적 폭력'을 주장했다.

여기서 법은, 좁은 의미의 법률이 아니라 기존 주류사회의 모든 구질서를 말한다. '꼰대'들의 질서를 생각하면 쉽다. 이 질서에 종속된 꼰대는 보수꼰대와 진보꼰대가 있다. 꼰대들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의 삶에 봉사할 수 있게끔 구질서부터 초월하겠다는 의사가 실질적으로는 없다. 그러면서도 각종 경제·문화·정치 자본의 혜택을 누린다.

물론 '정치 무대'에서 만큼은, 보수꼰대와 진보꼰대는 이른바 '빠의 정치'를 통해 박 터지게 싸운다. 강준만 교수는 "이슈가 아닌 인물 중심" 정치의,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문제 삼는다.

이때 꼰대들은 맹목적인 싸움을 하며 합리성이 상실되고, 바깥에 있는 청년들의 정치 혐오만 불러일으킨다. 보수꼰대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법을 지키는 폭력'을, 진보꼰대는 이를 대체하는 새 '법을 세우는 폭력'을 통해서 싸운다. 그래서 정작 청년들의 '생존'과 '존엄' 문제와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수준으로 괴리된다. 또한….

"정치 혐오는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철벽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늘 명백한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닐망정 정치혐오를 증폭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28~29쪽)

조장된 혐오는 청년들의 정당 유입을 차단한다. 따라서 꼰대끼리만 각자의 정당 내부에서 '관념의 동종교배'밖에 할 수 없다(동종교배의 진화생물학적 결과는 대개 '퇴화'다). "민주주의는 시민 없는 민주주의"가 되고, "시민은 평소 정당과 정치인을 메르스처럼 대하면서 선거 때만 표를 던지고 후다닥 손을 씻는 구경꾼에 불과"하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벤야민의 폭력인 '신(神)적 폭력'은 구질서를 싹 쓸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초월적·능동적 폭력이다. 철학자 지젝은 말한다. 신자유주의 질서체계로 세계 인구의 절대다수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속에 방치된 현재 상황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상황"이며, '신(神)적 폭력'은 그것을 넘어서는 절대적 폭력이라고.

지옥불반도 청년들의 '불벼락'은 이 신적 폭력과 기묘하게 공명한다. 이 지상의 영웅들, 혹은 신(神)들은 아직 사이버 공간에서만 위용을 뽐낸다. 현실에서 이들도 재앙 한복판에 있다. 불안하다. 그들은 집단적 자위권(自衛權)을 발동하고, '죽창'을 집어 든다. 그들은 지금 자위(自慰)와 자위(自衛)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불평등] "청년이 늙은 정당 주름살 가려주는 비비크림인가?"

각 정당별 '청년'의 범위. 당헌·당규·청년학생위원회 선거 규정 등을 참조했다.
 각 정당별 '청년'의 범위. 당헌·당규·청년학생위원회 선거 규정 등을 참조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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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미 고민됐어야 할 문제는 청년들의 주류사회 진입을 막는 장애물들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에서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를 어떤 경제 집단에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란 "내쫓긴 자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란 '잉여인간'으로 내쫓긴 수많은 청년들이다.

"한국에서 '젊은 정치인'이란 늙은 정당 주름살을 가려주는 비비크림 같은 존재다. 하나같이 잘 생기고 학벌 좋고, 성공했다고 소개된 이들은 정치적 목소리보다, 기존 당원들의 평균연령을 낮춰주는 정도의 역할만 수행한다. '짬(경력)의 정치판'에서 젊은 정치인의 선택지는 별로 없다. … 나이만 젊은 정치인들이 투명인간 취급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의 문제를 적극 해결해줄 정치인들이 없다."(전북대 학생 김신철)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소소하지만 즐거운, 실제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우리 사회와 젊은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목소리를 내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아직 그들의 용기는 페이스북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의 외침에 그칠 뿐이며, 클릭을 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그칠 뿐이다.

아직은 사회에 정면으로 맞서기 두려운 젊은이들에게 '참여하라'는 반복적인 말 대신 실질적인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곳에서 사람도 만나고, 자지레한 말들도 늘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전북대 학생 조순주)

(* 두 청년들의 말은 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인용했다)

결국 정치도 학벌이라는 문화자본과, 짬이라는 정치자본이 있어야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규정한 건 기성세대였다. 그 질서는 이미 청년들에게 '노잼'(재미없음)이다. 정치도 재미다. '니가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짱돌을 들라!'는 훈계보다는, 청년들이 재미를 볼 수 있게끔 문화자본·정치자본 불평등 해소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정당들은 '청년 후보 마케팅'에 나서기 일쑤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청년 연령기준은 만 45세 이하다. 특히 새누리당의 초선 국회의원 비율은 54.3%지만, 초선 평균연령은 56.4세다. 각종 법령·통계자료에서 청년은 만 19~34세지만, 이에 근접한 건 정의당·녹색당·노동당 정도다.

한편, 청년들은 소수의 승자와 절대다수의 패자를 가르는 '학벌'과 닦달하는 '주입식 교육'에 강한 적개심을 보인다. 전북대생 김신철의 지적처럼 잘 나가는 국회의원들은 죄다 명문대 출신이다. 그러나 2015년 서울대학교 정시모집 입학생 52.2%는 강남 3구 출신이다. 청년들은 드디어 '죽창을 달라!'는 외침까지 도달했다.

이 외침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단순 분풀이보다는 '우리는 문화자본이 없어요', '정치자본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해요', '우리에게 문화자본과 정치자본을 나눠주세요'라는 말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20대 개새끼론'을 운운하기 전에, 이미 고민됐어야 할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죽창, 그것은 헬조선 최후의 탈출구다.

참고한 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자크 랑시에르 / 길 / 2013 / 2만원)
<반시대적 고찰>(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05 / 2만7000원)
<한국인의 심리학>(최상진 / 학지사 / 2011 / 1만7000원)
<화병연구>(민성길 / 엠엠커뮤니케이션 / 2009 / 1만5000원)
<종말영화 내러티브의 행위소 분석>(오은정 / 한양대학교 학위논문(석사) / 2014)
<폭력 그리고 진리의 정치: 벤야민과 지젝의 '신적 폭력'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김현 / 민주주의와 인권 제14권 2호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 2014)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 2015 / 1만2000원)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 / 2만3000원)
<구별짓기>(피에르 부르디외 / 새물결 / 2005 / 2만7000원)
<[커버스토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박은하 / 경향신문 / 2015.9.4)
<이제는 국가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천관율 / 시사IN / 2014.9.29)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헬조선, #지옥불반도, #죽창, #신적 폭력, #문화·정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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