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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은 항상 그렇게 살아 숨 쉬는 삶의, 그리고 역동의 현장이다.
우선 교통의 요충지답게 숱한 인파들이 열차에서 내리고 또 오른다.
대전역 광장에 가 보면 사람들이 늘 많은데
바로 지척엔 또한 재래시장까지 있어 눈요기가 삼삼하다.
대전역 입구를 중심으로 우측에 보면
역전파출소가 있고 거기서부터 역전시장이 시작된다.
여기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이 시장이 더욱 동가홍상인 건 여기서 파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너무도 헐하다는 것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누구나의 인지상정인 게 바로
왜 그런지 모르게 여하튼 시장기가 돈다는 '사실'이다.
역전파출소의 바로 곁에는 늙수구레한 할머니가 곤계란을 판다.
그리고 소주는 아주 큰 대(大)병에서 따라주는데 한 잔에 1천 원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놀라지 마시라.
불과 1천 원짜리 선지국밥 집까지 있으니까!
또한 이 집에선 막걸리도 파는데 이 역시도 한 잔에 1천 원이다.
하여 돈이 떨어진 서민들이 여길 가면 고작
2천 원만으로도 금세 배가 부른 행복함의 포만감과 만날 수 있다.
역전시장은 무시로 가는데 얼마 전에도
여길 지나다가 곤계란을 파는 할머니 곁을 지나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곤계란은 못 먹는다.
하여 여기서 곤계란을 먹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불변인 건 이 집엔 손님들이 늘 그렇게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 모습을 보자 불현듯 삶은 계란이 먹고 싶었다.
집에 오자자마 계란을 두 개 삶았다.
그리곤 그걸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자니 참으로 합당한 안주였다!
지금도 만나는 동창생 하나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양계장을 하였다.
그 바람에 유복하게 자란 그 친구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내가 보기론) 계란이라고 하면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왜냐면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닭이 풍기는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그처럼 계란이라고 하면 지겹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는 동인이었단다.
그 친구는 그랬으되 나와 거개의 친구들 입장은 달랐다.
그것도 사뭇.
왜냐면 우린 당시에 계란이라곤 정말이지 큰맘을 먹어야만
비로소 찐 계란이든 계란 프라이라도 먹을 수 있었으므로.
혼식장려가 국가적 사업이었기에 담임선생께선 만날 그렇게 도시락을 '조사'하셨다.
그럼 늘 변함없이 반은 꽁보리가 들어간 도시락 밥에
병에 담긴 짠지(김치)만이 그 시절의 단골 메뉴였기에
계란 프라이를 싸올 수 있는 '부자 친구'가 그토록이나 부러웠던 것이었다.
한 번은 삶은 계란이 죽도록 먹고파 자그마치
열 개 가까이를 삶아서 날름 처치한 적도 있었다.
허나 입에선 연신 닭똥 냄새가 어찌나 역겹게 나던지...
아무튼 삶은 계란은 추억과 그리움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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