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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국수를 만나고 돌아온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까지 많은 생각을 하다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이 틀 무렵 마무리가 되었지만 바로 올릴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닌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출장을 다녀온 이제서야 홀가분히 올린다. 나 역시 이세돌답게 타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얼마 전인 10월 22일의 감흥까지 실어서 말이다. - 박민식 書.
어제 저녁, 이세돌 팬클럽 모임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세돌 국수와 처음 만나는 자리, 반갑게 내미는 손을 마주 잡으며 생각한다. 이 여린 손으로 세계를 호령하는구나! 서글서글한 눈매에 짙은 눈썹, 호리호리한 자세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영리한 눈망울이 예사롭지 않게 반짝거린다. 얼마나 흐뭇했던지 함께 있던 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렇게 멋진 그를 아프게 한 것이 무얼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을 가두려 하거나 거꾸로 흐르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리석은 부류들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부류가 의외로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다. 날마다 변하고 달마다 달라지고 해마다 확연하게 바뀐다. 그런 세상을 누가 만드는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거시적인 안목과 미시적인 안목은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난간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과 난간 사이로 바라보는 세상이 같다고 우기는 사람들, 순리대로 흘러가는 세상이 아닌 틀어 막아 썩게 하거나 되레 역행시키려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쓰럽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모른다. 자신의 틀에 갇혀 창살 사이로 보이는 세상, 난간 사이로 보이는 세상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을 공격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세돌을 돈밖에 모르는 싸가지 없는 사람 정도로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러한가? 이세돌을 가까이 접한 사람들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모함이라고 말한다. 순전히 자가당착에 빠져 구태의연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낡은 사고방식의 대표자들이 덮어씌우는 모략이라고 단정한다. 그 정도로 주둥이만 놀린다면 상대하지 않고 넘어가련만 비논리적인 사안들을 늘어 놓으며 그의 앞 길까지 막아서서 좌지우지하려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유창혁 프로가 떠오른다.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는데 꿈적도 않는 바둑계에 개혁이 필요하다며 총대를 맨 사람이다. 그리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개혁안은 낡은 풍파에 유야무야 묻혀 버리고 엄한 이세돌이 희생양으로 부각된다. 한국바둑의 자랑이자 세계바둑의 기린아인 이세돌, 그런 인물마저 썩은 구조 아래서 속절 없이 당하고 만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조광조가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스포츠에서 바둑계가 가장 보수적인 이유를 아는가? 대개의 스포츠는 나이 서른이 넘어가면 황혼이고 거의 대부분이 마흔 전에 은퇴를 한다. 그러나 멘탈 스포츠의 대표격인 바둑은 실력이 떨어져도 은퇴라는 것이 없다. 예와 도를 중요시 여긴다는 미명 아래 노인네들을 꼭지점으로 장년층, 중년층이 내리 누르고 있는 희한한 역피라미드 구조를 갖고 있다. 뛰어난 기재들이 꼭지점에 가 있어야 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다보니 언감생심 개혁을 외쳤다가는 삼강오륜도 모르는 후레자식으로 몰리는 거다. 한국기원은 문자 그대로 동네 기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누가 한국기원을 동네 기원 수준에 머물게 하였는가? 평생 바둑만 두어서 잘 모르겠다고? 모두 눈을 감고 깊이 자성해 보라.
모든 어른들은 젊은 후진들을 국가의 미래라고 말한다. 미래의 주역들을 위해 자신들의 희생까지도 각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둑계는 요지경이다. 한 시대를 책임질 최고의 경지에 있는 후진일지라도 자신들을 거스르면 옛 법을 내세우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악법을 만들어 단죄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젊은 신진들의 침묵이다. 왜 그럴까?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바둑은 스승에게 배워 스승과도 겨루는 스포츠이다. 가부장적인 구조가 저항을 용납하지 않아 똑똑한 체하는 놈은 싹을 잘라버리려 하니 젊은이들은 두려움에 침묵한다. 비겁하기 그지 없다.
올바른 것과 그른 것을 제대로 구분 못하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예의와 겸손의 잣대로 마녀사냥하는 늙은이들은 더 이상 스승도 어른도 아니다. 진정한 스승과 진정한 어른은 아랫 사람을 벌 주기 이전에 자신을 탓하는 법이니까. 과연 바둑계에 현재라는 공간이 있기나 한 것인가?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계속 패달을 돌리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는가? 아니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자전거를 끌고 가거나 홀가분하게 버리고 걸어 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복장에 똑 같은 장비를 가질 수는 없다. 핼멧 없이도 탈 수 있는 것이고 청바지 차림에 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자전거가 남들보다 좋은 것일 수도 있듯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리석다. 훗날 바꿀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주어진 자전거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자전거의 등급을 정해 도로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하는 악법이 생긴다고 가정해 보라. 핼멧을 정해진 색깔로 쓰지 않았다고 통제한다고 상상해 보라. 입술 사이로 바로 터져 나올 것이다. "미친 것들!"
이세돌은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자전거를 세워 놓고 있다. 자전거를 오래 세워 두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자전거라도 오래 방치해 두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이세돌 본인도 운동량이 적어져 예전만 못하게 된다. 그나마 중국에서 활동하는 리그전마저도 그의 요청으로 빠지기로 했단다.
지금 그에게는 바둑을 두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 같이 활동하던 동료들에게 상처를 입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누구라도 그런 경우를 당하면 같은 입장이 될 것이다. 특히나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러나 그 자신을 위해서도 팬들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하루 속히 그가 자신의 자전거를 몸소 손질해서 다시 타고 싶은 의욕이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
그와 술잔을 나누고 묵은지에 노릇노릇 익은 고기를 나누어 먹는다. 여기저기에서 대화들을 나누고 있어 주변이 떠들썩하다.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목소리,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대화의 절반은 놓치게 된다. 사람을 집중시키는 마력이 있는데 필시 목소리도 한몫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그토록 걱정했던 기우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책장 속에 간직해 둔 오래 된 친구의 엽서처럼 그의 이야기는 진실했고 따뜻했고 힘이 있었다. 힘이 되어 주기 위해서 한달음에 달려왔건만 되레 힘을 얻고 위로 받은 것은 나였다. 이래서 세계 1인자구나 하는 생각이 듬직하게 밀려 온다.
나는 이세돌을 참 좋아했다. 그의 기풍이 좋았고 그의 명쾌함이 좋았고 그의 용기가 좋았다. 그를 만나고 나서는 인간성까지 좋아졌다. 그가 휴직한 이후, 나는 망할놈의 바둑계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허나 이세돌을 만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가 나에게 힘이 되어 준 것처럼 나도 그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졌다. 왜냐고? 그의 신념을 존경하게 되었고 그의 생각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세돌은 자신의 선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냥 허송세월 보내는 휴식이 아니다. 한 발짝 물러 서서 보다 높은 곳에 올라 먼 곳까지 둘러보고 있다. 정신 없이 바둑에만 몰두해 달려온 세월, 가야할 길이 아직 멀기에 가족들과의 오붓한 여유를 맛보며 세상 공부도 하면서 제대로 된 방향키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는 오체투지의 심정으로 마음을 비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긴 세월 거슬러 햇빛 눈부신 비금도 갯바람 내음 속에 홀연히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세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를 생각한다. 아마도 그는 지금, 어릴 적 아버지가 내주신 묘수풀이에 몰두하는 섬마을 아이의 심성으로 돌아가 보다 큰 세상을 향한 야무진 꿈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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